[여행]/[국내]

[통영] [멍게비빔밥] [충무김밥]

뚝섬 2022. 4. 3. 05:48

통영 멍게비빔밥

 

[김준의 맛과 섬] 

 

멍게비빔밥/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경남 통영 판데목을 건너 미륵도로 들어서니 동백꽃이 마중을 나온다. 산양일주도로 가로수는 온통 동백이다. 겨우내 붉게 꽃을 피웠다가 봄이 오는 길목에 내려앉았다. 이 무렵 통영 바다는 멍게가 붉게 꽃을 피운다. 맛이 제대로 올랐다. 운 좋게 봄을 듬뿍 품은 멍게를 고물에 엮어 마을 포구로 옮기는 배를 만났다. 붉은 꽃을 가득 싣고 영운리로 가는 걸까, 신봉리로 가는 걸까. 아니면 처음 멍게 양식을 했다는 미남리로 가는 것일까.

 

멍게비빔밥

 

이들 마을은 멍게 양식을 많이 하는 마을이다. 통영은 우리나라 멍게 공급량의 70% 이상을 댄다. 멍게는 통영에서 양식하는 붉은 멍게 외에 제주도의 돌멍게, 동해의 비단멍게 등이 있다. 멍게는 암수한몸으로 수정을 한 후 올챙이처럼 헤엄치며 어린 시절을 보내다 줄이나 바위에 붙어 생활한다. 이 과정에서 고착 생활에 불필요한 꼬리와 지느러미 기능은 퇴화한다. 그렇게 3년을 자라야 밥상에 오를 수 있다.

 

멍게 양식은 1970년대 산양읍 미남리 답하마을에서 시작되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2016년 발간한 ‘우리나라 수산 양식의 발자취’에 따르면, 어선 닻줄에 빼곡하게 달려 있는 우렁쉥이를 모체로 산란 및 채묘를 시도해 1975년 첫 우렁쉥이를 생산했다. ‘우렁쉥이’가 표준말이지만 통영말 ‘멍게’가 널리 사용되면서 멍게도 표준어가 되었다. 이제 멍게는 통영이 좁다. 전국을 누비는 주연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널리 알려진 데에는 멍게비빔밥의 역할이 크다. 통영 음식을 연구해온 이상희 셰프의 역할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멍게비빔밥뿐 아니라 해초비빔밥, 멍게된장국, 멍게전, 멍게샐러드, 멍게무침, 멍게회 등 통영 바다에서 건져 올린 멍게를 다양한 메뉴로 올렸다. 특히 멍게비빔밥에는 세모가사리, 톳, 미역, 김 등 해초와 새싹을 넣고 노란 멍게를 한가운데 올려 맛과 멋을 냈다. 마무리는 통영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합자장을 더했다. 합자장은 자연산 홍합을 삶은 물을 달여 만든 젓갈이다. 이렇게 재탄생한 멍게비빔밥은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섬발전지원연구센터장, 조선일보(2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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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김밥

 

경남 통영의 충무김밥은 규모가 각기 다른 '원조집'이 많다. 이들 중 여객선터미널 부근의 풍화김밥은 손님이 많아 입구에 행렬을 이루는 집으로 유명하다. 본관 6평, 별관 10평의 소규모다.

이 집 이야기가 본지 8일자 A2면에 실렸다. 제목은 '소문난 맛집들, 너도나도 가격 인상'. 전국 22개 맛집 중 한 곳으로 소개됐다. 그런데 풍화김밥만 이야기가 제목과 달랐다. '너도나도 올릴 때 나 홀로 안 올린 집'으로 소개됐다. 경쟁 맛집들이 반찬인 무와 오징어 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충무김밥 값을 500원 올렸을 때 풍화김밥은 4000원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주인 김민숙씨에게 전화로 "박리다매(
薄利多賣)로 도전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조그만 시골집이라 얼마에 얼마나 팔아야 얼마가 남는지 정확히 계산해 본 적도 없다"며 "그냥 손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리곤 이런 말로 마무리했다. "욕 들어 묵(먹)으면서까지 묵(먹)는 장사 안 하고 싶습니더(다)."

풍화김밥은 '500원 전쟁'을 벌이는 경남 통영시에 든든한 우군(
友軍)이다. 통영시는 7일부터 시내 음식점과 숙박업소를 상대로 '제값 받기 운동'을 시작했다. 작년에 500원씩 줄줄이 올린 충무김밥 값을 원상 복귀시키자는 것이다. 현재 캠페인에 참여한 충무김밥 집은 19곳. 풍화김밥처럼 남들 올릴 때 안 올린 집도 있고, 터미널식당처럼 올렸다가 내린 집도 있다.

왜 이런 운동을 할까. 담당 부서인 통영시청 지역경제과에 물었다. "한려수도 케이블카가 생기고 거가대교가 생기면서 관광객이 엄청 늘었심더. 최고 호황임더. 통영 인구도 작년보다 1040명이나 늘었고예. 그런데 관광객이 충무김밥이 '비싸졌다' 안 합니꺼. 하지만 강제할 방법은 없습니더. '잘나갈 때 잘해보자'고 권유하는 깁니더."

경제학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기업의 모든 철학은 최종적으로 '가격'에 수렴된다. 프랑스의 에르메스처럼 최고의 가격으로 경영철학을 구현하는 곳도 있고, 일본의 다이에이처럼 '가격파괴'라는 철학을 끝까지 밀고 가는 곳도 있다. 오른 재료 값을 곧장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남들이 가격을 올렸다고 냉큼 따라 올리는 곳은 제아무리 글로벌 대기업이라도 그저 삼류다. 전경련 테이블에서 대통령과 경제를 논의하는 경영자라도 가격에 철학을 담지 못하고 세태에 휩쓸리는 경영자라면 그저 삼류다. 기업을 설득하지 못하고 공정위와 동반성장위를 동원해 압박하는 정부 역시 천하의 'G20' 정부라도 삼류에 불과하다.

반대로 "욕 들어 먹으면서까지 먹는 장사 안 하겠다"는 가게 주인은 지방의 16평짜리 가게에서 평생 김밥을 말아 팔아도 일류다. "잘나갈 때 좀 더 잘해보자"며 주민을 설득하는 지방정부가 있다면 인구 14만명 소도시 지방정부라도 일류다. 찾아보면 우리나라에도 삼류만큼이나 일류도 많을 것이다.

한국은 아직 소비가 공급을 능가하는 경제다. 이런 경제에선 남이 올리니 나도 덩달아 올리는 삼류도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주력 소비층(15~64세)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2017년부터 그런 느슨한 시대는 끝난다. 소비곡선이 하강하는 순간, 혁신을 미루고 편승만 하던 삼류는 도태되고 풍화김밥 같은 일류만 살아남을 것이다. 소비자를 졸(
)로 보는 눈꼴신 세상도 앞으로 몇 년이다.

 

-선우정 WeeklyBiz팀장, 조선닷컴(1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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