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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해지지 말자'던 구글의 위기] ['AI 킹' 허사비스] ....

뚝섬 2024. 10. 15. 08:32

['사악해지지 말자'던 구글의 위기 ]

['AI 킹' 허사비스]

[공부 상위 1%의 좌절]

[구글의 行馬]

 

 

 

'사악해지지 말자'던 구글의 위기

 

미국의 거대 기술기업 구글은 요즘 온탕과 냉탕을 동시에 겪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최근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에서 인공지능(AI)을 개발해온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와 존 점퍼 수석연구원에게 노벨 화학상을 수여했다. 신약 개발의 주요 절차인 단백질 구조 예측에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AI 모델 ‘알파폴드’를 개발한 공로 덕분이었다. 인공신경망(딥러닝)이라는 현대 AI 기술의 토대를 닦은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 역시 작년까지 구글에서 AI 개발을 총괄하던 인물이다. AI 기술이 노벨상에 처음 편입된 역사의 배경에 모두 구글이 있었다.

 

그러나 구글은 기업이 쪼개질 위기에 처해 이런 영광의 순간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반독점 당국은 노벨상 수상 소식 발표 직전 “구글의 온라인 검색 시장 독점에 따른 폐해를 완화하기 위해 사업 일부를 매각하도록 연방법원 재판부에 제안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글은 지난 8월 반독점 소송에서 패소했고, 미국 연방법원은 구글을 독점력을 남용하며 경쟁자들을 밀어낸 부당 기업이라고 판단했다.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며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를 기업 행동 강령으로 정했던 구글은 어느새 불법에 편승해 돈을 벌고 있다. 구글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온라인 영상 플랫폼 유튜브에선 영화나 드라마 저작권을 대놓고 침범하는 ‘결말 포함’ 영상 요약(패스트 무비)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타인의 고통과 죽음을 돈벌이 삼는 사이버 레커와 전과자 유튜버들로 요란하다.

 

인간의 본성에는 선악(善惡)이 공존하고, 그런 인간을 군집시키는 플랫폼에는 다양한 모습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인간은 달성하기 어렵고 알아주지 않는 선(善)보다 쉽고 빠른 악(惡)에 더 흔들린다. 구글의 모토가 진심이라면 선을 우대하고 악을 홀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한 국내 자산운용사 대표는 기자에게 “인기 많은 자칭 투자 전문 유튜버들의 콘텐츠를 살펴보면 욕망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한다”며 “우리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과 달리 광고 심의필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펼쳐질 AI 시대 역시 선을 좇다가 악에 물들 여지가 충분하다. 노벨상을 받은 힌턴 교수는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내 학생 중 한 명이 샘 올트먼을 해고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의 제자이자 오픈AI의 공동 창업자인 일리야 수츠케버는 오픈AI가 ‘챗GPT’ 성공으로 영리 기업이 되자 대표인 샘 올트먼 축출을 주도한 적이 있다. 오픈AI의 시작은 구글의 AI 개발 독점을 막고 모두에게 도움이 될 AI 기술을 만들어 공개(Open)하겠다는 취지의 비영리 AI 연구소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안상현 기자, 조선일보(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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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킹' 허사비스

 

네 살 때 체스를 시작해 영국 주니어 체스팀 주장, 14세 이하 세계 2위가 된 내성적인 소년은 항상 같은 질문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난 체스 말의 움직임을 나는 도대체 어떻게 떠올린 걸까?” 인간 뇌와 사고 과정, 지능에 대해 골몰하던 그는 대회 상금으로 컴퓨터를 산 후 금방 답을 떠올렸다. “자동차가 인간 능력을 물리적으로 증폭하듯, 컴퓨터는 인간의 정신을 확장하는 도구라는 것이 즉각적으로 이해됐다”고 했다. 올해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데미스 허사비스(48)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얘기다.

 

▶허사비스는 기상천외한 괴짜들이 몰려 있는 테크 업계에서 유독 조용한 학자형 인물이다. 거부(巨富)가 된 지금도 런던 북부에 살며 통근 기차로 출퇴근한다. 일렉트릭 음악을 들으며 일하고, 저녁 식사는 매일 가족과 함께 한다. 보드게임·체스·바둑을 즐겨 취미조차 소박한 그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함께 인공지능(AI) 업계를 대표하는 양대 거두(巨頭)이자, 천재 중의 천재로 불린다. 

 

허사비스는 지난 10여 년간 급진전한 AI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다. 2016년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알파고 쇼크’는 그의 존재를 온 세상에 알린 상징적 장면이었다. 2011년 창업한 딥마인드를 2014년 구글에 약 7000억원에 넘겼고, 2020년엔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내는 AI인 ‘알파폴드’를 개발했다. 챗GPT를 만든 오픈AI도 딥마인드가 구글에 매각되자 그 반작용으로 설립됐으니 허사비스야말로 체스로 치면 AI 판의 ‘킹’(가장 중요한 말)이었던 셈이다.

 

그는 프로그래머라기보다 뇌신경 과학자에 가깝다. AI 그 자체가 주연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신성을 이해하기 위한 궁극적인 도구로 사용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AI ‘알파폴드’로 생물을 이루는 근본 단위인 단백질 구조를 파악함으로써 생명의 비밀을 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화학’ 부문 노벨상을 받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허사비스가 노벨상을 받자 테크 업계엔 “AI가 모든 것을 휩쓸어가기 전 울린 전주곡”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지금까지의 AI가 미풍이라면 다가올 AI는 태풍이 될 것이란 얘기다. 허사비스는 현재 우리는 10년 후 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의 겉부분만 긁고 있는 수준”이라며 “어쩌면 과학 발전이라는 새 황금기의 시작 단계에 있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과학의 ‘새로운 황금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이 엄청난 변혁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궁금하고 착잡하다.

 

-김성민 논설위원·콘텐츠전략팀 차장, 조선일보(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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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상위 1%의 좌절

 

한국에선 자타가 공인하는 수재였던 전 서울대 교수의 고백을 사석에서 들었다. 평준화 이전 경기고와 서울대를 수석 입학·졸업한 그는 의외로 자신이 느꼈던 열패감(劣敗感)을 말했다.

"나는 공부에선 한국의 대표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미국 학생들에게 뒤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 명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딴 이 교수는 논문 자격시험에서도 역시 1등을 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발견해내는 과정인 논문 작성에 들어가자 길을 잃고 헤맸다고 한다. 정답만 찾는 한국판 교육 트랙에선 챔피언이었는데, 정해진 길이 없는 지식의 벌판에 던져지자 열등생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1% 엘리트들이 공부의 메이저리그에 가서 참담한 패배를 맛보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유학 간 한국 학생이 영어는 떨어져도 수학을 잘한다는 소리를 흔히 듣지만, 최상 단계에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서울대를 나와서 미국 명문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딴 A 대학교수는 "대학원 초기에 미국 학생들의 수학을 보면 이런 것도 모르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개념을 잡고 들어오니까 따라가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국내에서 '수학 천재'라는 칭찬을 들으며 프랑스에서 유학한 또 다른 교수는 "어디에 쓰는지, 왜 필요한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미적분을 풀었던 나와, 개념을 터득한 뒤 접근한 외국 학생은 고등 수학에서 차이가 났다"고 말했다.

기계처럼 정답을 찾고, 무조건 외우는 한국 교육은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그럭저럭 중간 단계 인재는 배출해왔다. 중 3~고 1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PISA(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우리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PISA 2000년 읽기 영역 성적을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6위지만, 이는 중간 등급인 3등급 이상 학생 비율이 76%로 높았기 때문이다. 이 비율이 세계 2위다. 하지만 읽기 능력의 최상위 단계인 5등급 비율은 6%에 불과하다. 세계 20위로 떨어진다. 엄청난 사교육비와 교육열로 모든 학생을 '압력밥솥' 같은 교육 시스템에 넣어 평균은 올리지만, 창의적 사고로 새로운 길을 여는 인재를 길러내는 데는 결함이 있는 것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교육 시스템을 극찬할 때 우리가 본능적으로 머리를 갸우뚱하게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학교에서 낙오하는 학생이 많은 미국 교육 관점에서 보면, 졸업 다 하고 평균 성적도 높은 한국 교육의 장점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부모들이 허리띠를 졸라매 사교육에 없는 돈을 쏟아붓고, 학생들은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만 해서 얻은 결과가 이 정도라는 걸 알까. 질문을 하지 않는 교실에서, 시험 기계처럼 하나도 안 틀리는 반복 훈련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A 학점을 받으려고 교수의 토씨까지 베끼는 현실도 알까. 16년간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한국 졸업생들이 다국적기업 인사 담당자들에게 "토익 점수는 높은데 회사에서 영어를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공지능이 일자리 절반을 없앨 수 있는 대변혁 시대에 이런 교육을 받은 우리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알파고를 만드는 허사비스 대신 기계에 대체될 싸구려 인력만 양산하는 시대착오적 교육을 해놓고, 우리의 미래를 기댈 수 있을까.

 

-박종세, 조선일보(1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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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行馬

 

구글은 작년 12월 이세돌 9단에게 상대를 밝히지 않고 바둑 대국을 제안하며 100만달러의 상금을 걸었다. 이 9단은 5분쯤 고민한 뒤 계약서에 사인하고서야 상대가 인공지능 알파고임을 알았다. 국내 변호사 몇몇은 그래서 이번 승부가 '불공정 계약'이었다고 말한다. 구글은 석 달 전 호텔을 예약하며 다른 사람 명의를 쓰고 행사 목적도 밝히지 않았다.

 

▶'옳은 일을 하자(Do the right thing)'는 게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모토다. 하지만 정작 무슨 일을 왜 하는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게 또 구글이다. 이번 대국에서도 구글은 알파고에 대해 사전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다 알파고가 대국에서 잇따라 승리한 뒤에야 딥마인드 CEO 데미스 허사비스가 트위터에 알파고가 대국 당시 계산했던 승률이나 초반에 실수했던 부분을 흘리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허사비스는 사람들 관심이 절정에 달했던 시점에 KAIST 공개 강연을 열어 대대적인 인공지능 선전장으로 삼았다. 이세돌이 4국에서 승리하자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깜짝 등장해 축하하는 일도 있었다. 정보를 틀어쥐고 국면마다 홍보 효과를 극대화한 행마(行馬)였다.

 

일주일 새 구글 회사 가치가 58조원 넘게 올랐다고 한다. 전 세계 언론들이 매일 수천 건씩 기사를 쏟아내고 구글 직원들 사진이 신문 1면을 점령했다. 구글은 IBM, 애플 같은 경쟁사를 제치고 인공지능 분야의 리더로 떠올랐다. IT업계에선 구글이 챙긴 실리가 드러난 것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애초에 구글이 인공지능으로 바둑에 뛰어든 것은 자사의 인터넷 검색 기능을 소비자 의중을 수십 수 앞서 예측하는 형태로 개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4국에서 알파고가 패하자 구글이 "버그를 보완할 수 있게 됐다"며 반긴 것도 이런 이유다. 구글의 검색 서비스는 눈부시게 진화할 것이다.

 

▶이번 대국을 돌아보니 재주는 이세돌이 부리고 이득은 구글이 다 챙긴 것 같다. 인터넷에는 '구글이 얄밉다' '대국료 1억8700만원 받고 수십조원을 헌납했다'는 댓글이 쏟아졌다. 구글의 주도면밀한 인공지능 실험에 온 나라가 들러리 선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씁쓸해 할 일만은 아니다. 구글이 이세돌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인공지능에 관심을 보였을까. 곧 알파고가 보통 사람들에게도 '승부'를 걸어올 것이란 현실을 이렇게 실감 나게 깨닫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닥쳐올 변화에 지금부터 준비를 서둘러야 훗날 이번 일을 "입에 쓴 보약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근 논설위원, 조선일보(1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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