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쿠바의 오바마] '검은 케네디'를 맞은 쿠바는 축제 분위기..

뚝섬 2016. 3. 21. 07:49

라틴 특유의 여유일까. 쿠바는 '혁명 영웅' 체 게바라만큼이나 미국의 문호(文豪) 헤밍웨이를 내세운다. 20여년 동안 쿠바에서 산 헤밍웨이는 곳곳에 흔적과 추억을 남겼다. 쿠바는 그곳에 헤밍웨이 동상을 세우고, 그가 즐긴 칵테일을 팔면서 손님을 끌어모은다.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쫓겨난 건 카스트로혁명 직후였다. 이듬해인 1961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창작욕을 자극하던 쿠바의 강렬한 햇살을 쬐지 못한 탓일까.

 

같은 해 미국의 체면을 땅에 떨어뜨린 사건이 일어났다. 케네디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쿠바와 국교를 끊었다. 그래도 분을 풀지 못한 모양이다. 쿠바인 망명자 1500명을 무장시켜 쿠바 해안에 보냈다가 끔찍한 패배를 당했다. 이른바 '피그만 침공'이다. 훗날 베트남전 패배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미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작전으로 기록됐을 것이다. 케네디는 이듬해 발생한 쿠바 위기에서는 인류를 핵전쟁 문턱까지 끌고 가는 승부수를 던져야 했다.



두 나라가 단교(斷交) 1961년 케냐 흑인 유학생과 미국 백인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반세기 후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된 오바마다. 마흔여덟에 미 대통령에 오른 그는 '검은 케네디'로 불렸다. 케네디를 연상시키는 참신함과 설득력 있는 말솜씨 덕분이다. 오바마는 존경하는 인물로 링컨과 함께 케네디를 꼽는다. 그는 케네디가 뉴프런티어 정책으로 미국 사회의 인종적 편견과 장벽을 허물어 자신을 대통령까지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케네디의 부정적 외교 유산까지 긍정적 유산으로 돌려놓았다. 케네디가 끊은 쿠바와의 국교를 54년 만에 다시 이은 게 작년이다. 그리고 오늘 쿠바 땅을 밟는다. 미 대통령으론 88년 만의 방문이다. 때를 맞춰 쿠바에서 열리는 미 메이저리그팀과 쿠바 대표팀과의 친선 야구 경기도 관전한다. 국교 정상화 산파역을 맡은 쿠바 가톨릭의 오르테가 추기경도 만난다고 한다. 반세기 이상 담을 쌓고 지냈는데도 두 나라는 문학·스포츠·종교 분야에서 폭넓은 자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쿠바는 과거 미국 자본주의를 진하게 맛본 나라다. 최근 핵을 포기한 이란도 중동 국가 중 드물게 미 자본주의의 기억을 갖고 있다. 남은 나라는 북한이다. 하지만 미 대통령의 쿠바 방문을 앞둔 날에도 북한은 독설을 뿜었다. "혁명 강군의 총대로 미제 침략자들과 박근혜 괴뢰 역적 패당들에게 무자비한 죽음을 안기고…." '검은 케네디'를 맞은 쿠바는 축제 분위기다. 북한의 '형제 국가'는 다른 길로 들어섰다.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16-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