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국내]

[파주] 전쟁 상처 덮으며 江이 흐릅니다

뚝섬 2016. 6. 15. 07:42

김신조가 지나간 파주와 초리골 나무꾼 우성제 동파리에서 초리골까지

김신조 부대 침입 루트 나무꾼 4형제 붙잡혔던 초리골은 생태관광지로 변해

초평도 보이는 동파리는 체험마을 해마루촌으로 변신

민통선 안쪽 '동의보감' 허준 묘도 일반인에 개방

 

장파리 이야기

조용필은 가수 레이 찰스와 밴드 벤처스에 빠져 살았다.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교육자 집안이 반대했다. 1968년 서울 경동고 졸업과 함께 조용필은 경기도 파주 파평면 장파리로 가출해버렸다. 장파리 미군 클럽에서 연주를 하고 노래를 했다. 주로 흑인 전용 클럽 블루문홀에서 했다. 백인 클럽 라스트찬스에서도 했다. 김태화, 윤항기도 라스트찬스에서 음악을 했다. 장파리에 있던 클럽은 메트로홀, 럭키바, 나이트클럽, DMZ홀과 라스트찬스와 블루문홀 여섯 군데였다.

장파리에는 미군이 뿌린 '딸라'가 흘러넘쳤다. 미군은 장파리에 재건학교를 지어줬다. 시외버스 종점도 장파리에 있었고 이발소와 다방과 극장과 정미소도 외지인들 덕에 성업을 했다. 쌀 한 가마가 3500원 할 때, 가수 이미자는 장마루극장에서 세 곡을 부르고 6만원을 개런티로 받았다. 세월이 흘러 조용필은 가왕(
歌王)에 등극했다. 미군은 장파리를 떠났다. 블루문홀은 사라졌다. 라스트찬스는 카페로 바뀌었다. 장파리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한다.

감악산 백비(
白碑) 



1951 4 23일 영국 글로스터 대대는 감악산 설마리에서 밀려오는 중공군과 혈투를 벌였다. 사방으로 포위된 상태에서 글로스터 대대는 1개 중대를 제외한 530여명이 포로로 붙잡혔다. 전술적으로는 패배였지만, 사흘 동안 중공군 공격을 지연시키는 전략적 승리를 거뒀다. 그들이 지켜낸 감악산 꼭대기에는 비석이 하나 서 있다. 법륜사를 스치며 오르는 등산길은 밑도 끝도 없이 오르기만 하는 행군 수준 산길이다. 꼭대기에는 헬기 착륙장과 군부대가 서 있다. 거기에 백비(白碑)가 있다. 당나라 장수 설인귀 비석이라고도 하고 신라 진흥왕 순수비라고도 한다. 하지만 비문을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어서 그저 백비라 한다. 서쪽 임진강변 장파리부터 동쪽에 솟은 감악산까지, 파주 역사에서 전쟁 흔적을 지우면 파주는 이해 불가능이다.

김신조와 초리골과 나무꾼 우성제

장파리에서 도로로는 11, 직선거리로는 5㎞가 못 미치는 임진강변에 고랑포 나루가 있다. 삼국이 임진강변을 쟁패하던 시대, 고구려는 고랑포 위 절벽에 호로고루 성채를 건설했다. 서기 978년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이 나루를 건너지 못하고 언덕배기에 묻혔다. 1968 1 19일 북한 특수부대원 32명이 청와대를 목표로 얼어붙은 고랑포 여울목을 건넜다. 속칭 김신조 부대다. 훗날 군이 파악하기로, 기관단총 31, 실탄 9300, 권총 31, 대전차 수류탄 252발과 방어용 수류탄 252, 단검 31정으로 중무장한 특수부대였다.

부대는 고랑포를 건너 파주 법원읍 법원리 삼봉산에서 1차 숙영을 했다. 동지섣달 산속 기온은 영하 15. 날고 기는 특수부대가, 응달에 은폐한다는 원칙을 깨버리고 따뜻한 바위 앞에 짐을 풀었다. 첫 번째 실수였다. 그날 오후 1시 산 아래 단양 우씨 집성촌 초리골에 살던 우씨 형제가 땔감을 구하러 산에 올라왔다. 네 명이나 올라왔다. 이름은 각각 희제, 경제, 철제, 성제였다. 6, 8촌 사이였던 네 형제는 희제가 서른 살, 막내 성제는 스무 살이었다. 우성제가 말했다.

 

"겨울에 해 먹을 게 뭐 있어. 점심 먹고 낫이랑 지게 메고 땔감 구하러 갔지. 나랑 쌍둥이처럼 같이 자란 6촌 철제 형이랑 갔는데, 앞에 방한모자를 쓴 남자 셋이 앉아 있는 거라. , 산 너머 갈봉리 애들이 초리골 나무 훔치러 왔구나. 나중에 뺏어야겠다 생각하면서 그냥 지나쳤어." 우성제가 산 아래 20~30m 내려가 나무를 베고 있는데, 위에서 철제 형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형 손짓에 올라갔더니, 군인 너덧이 서 있는 거라. 아이쿠, 죽었구나 했지. 소위, 하사, 사병 계급을 붙여놨는데 딱 봐도 국군이 아니야. 개머리판 없는 AK소총에 권총에 수류탄에 지도에 주렁주렁 매달고…." 소위가 성제에게 물었다.

 

소위: 너희들 네 명인데 둘은 어딨나.

성제: 내려갔다. (도망가려고) 가서 데려오겠다.

소위: 됐다. 너는 학교 어디까지 나왔나.

성제: (형을 보며) 국민학교 2학년 나왔다(사실은 중학교 졸업했다).

소위: (철제에게) 너는?

철제: (성제를 보며 우물쭈물) 국민학교 졸업했다(사실은 중학교 졸업했다).

소위: 서울은 가봤나.

철제: 창경원 가봤다.

소위: 청와대는?

철제: 그게 뭐하는 곳인가.

척하면 척하는 쌍둥이 같은 형제들이었다. "똑똑한 청년들"이라며 숙영지까지 같이 가자는 소위에게 형제가 대답했다. "이 나무 장에 갖다 팔아야 내일 아침에 부모님 보리죽이라도 드신다. 여기서 얘기하면 안 될까." 소총으로 툭툭 치며 소위가 말했다. "거기 낫 내려놓고 따라와라." 가보니 공비들이 바글바글했다. 공비들은 사발엿과 오징어를 줬다. 이름 안 적힌 담배와 이름 없는 캐러멜도 줬다.


-김신조 부대한테 잡혀 죽을 뻔했던 우씨네 집성촌 초리골 마을. 우씨들은 초리골을 생태 친화적 마을로 변신시켰다.

"
우리가 누군가."

"26
사단에서 훈련 나왔지? 수고 많다. 우리 집 가서 따뜻한 국이라도?"

"
우리는 지하혁명당 소속이다. 일 끝내고 이북으로 복귀하는 길이다."

"
? 어떻게 북에서 올 수 있나."

"
믿어라. 우리 당원이 경기도에 5만 명, 의정부에만 5000명이다. 6개월 뒤에 남조선이 해방된다. 김일성 태양님 햇빛 받아 거지 없이 다 잘산다. 지상낙원이 온다." 성제가 맞장구를 쳤다. ", 우리는 죽지 못해 사는데. 벼 열 가마 거두면 자본가들이 세금 가져가 끼니도 못 때운다. 그런 나라, 우리도 살고 싶네." 소위가 유식한 척 말했다. "그게 바로 현물세라는 거다."

우성제가 말했다. "나무하러 갔으니, 옷도 구멍 뚫린 작업복이었고 시골에서 세수는 무슨, 머리도 안 감고 갔으니 우리 말을 다 믿더라." 그때 집에 내려갔던 맏형 희제와 경제가 도로 올라왔다. ", 너희 토끼 잡냐." 네 형제 몽땅 잡혔다.

밤이 왔다. 투표에 의해 형제들 운명이 결정됐다. 딱 반반씩 살리고 죽이자고 나왔다. 대장이 살린다고 결정했다. "땅이 얼어붙어서 죽여도 묻을 수 없다"는 의견이 이겼다. 우성제가 말했다. "선물이라면서 조잡한 일제 시계를 줬다. 물론 나무할 때는 당연히 차지 않았지만, 우리는 날짜랑 요일이 나오는 세이코 시계가 있었는데." 그러고 집으로 내려와 종갓집 어르신 우종하의 집에서 전화로 신고하고 파출소로 가니 오후 9시였다. 척척 죽이 맞는 형제들 기지에 완전히 속아 넘어간 공비들은 '해병대도 이해 못 할 초고속으로' 능선을 질주해 서울로 들어가 난리를 피웠다.

초리골은 이후 3년 동안 군부대가 주둔했다. 단양 우씨들은 초리골을 알뜰하게 지켰다. 종갓집 장손 우능제는 대학을 나와 초리골을 생태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20년 전 그가 말했다. "여기는 2층 이상으로는 개발 금지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리되었다. 공비들 침투로는 왕복 6시간짜리 등산로로 변했다. 땔감으로 벌거벗었던 산은 온갖 나무들이 밀림을 이뤘다. 풀이 무성해 조금만 걸어도 풀독이 올랐던 계곡 아래 풀밭에는 아담한 펜션과 식당이 군데군데 들어섰다. 목사가 된 김신조는 가끔 초리골에 찾아와 우씨들과 만난다. 막내 나무꾼 우성제는 이후 경찰관으로 일하다가 은퇴했다.

김신조와 동파리와 조봉연

임진강에는 좁은 여울이 두 군데 있다. 김신조 부대가 원래 건너려던 여울은 동파리 초평도 여울이었다. 동파리에 사는 조봉연(59)이 말했다. "물이 빠질 때면 초평도 여울이 아주 거세다. 그래서 고랑포로 갔다."

조봉연이 사는 동파리는 동녘 동(
)에 언덕 파() 자를 쓴다. 뜻은 아름다운데 발음이 억센지라, 훗날 이장이 된 조봉연은 마을을 해마루촌으로 개명했다. 해마루촌은 민통선 북쪽에 있다. 출입하려면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공간이다. 정식 주소는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다. 김신조 부대는 마을에서 30분 거리 철책을 뚫고 고랑포로 틈입했다.

조봉연 집안은 대대로 진남면 합포리에 살았다. 해방이 되고 진남면은 이북 땅이 됐다. 전쟁이 끝나고도 진남면은 민통선으로 묶였다. 1952 11월 미군에 의해 주민이 남쪽으로 소개된 뒤 주민들은 고향으로 가지 못했다. 인민군 탱크부대가 주둔했던 동파리는 지뢰밭이 됐고 합포리는 미군 사격장이 됐다. 조봉연의 아버지 조남희는 고향에서 죽는 게 평생 소원이었다.

  

1997년 조남희가 하늘로 갔다. 1년 뒤 파주시는 동파리 지뢰를 제거하고 마을을 건설하겠다고 결정했다. 복잡한 행정절차와 민··군 갈등을 거쳐 2003년 동파리 마을이 재건됐다. 인터넷 구글 어스에서 보니, 동파리 구조가 음악 높은음자리 기호와 똑같았다. 지금 마을 중앙통 이름도 '높은음자리길'이다.

-구글 어스로 본 해마루촌 모습. 높은음자리표와 닮았다.

조봉연은 그 첫 입주자다. "고향이 뭐라고, 아버지가 왜 그리 고향 고향 했는지 내가 알아보려고" 입주했다고 했다. 진남면에 연고를 둔 실향민 출신에 민통선 안에 농경지가 있을 것 따위 조건을 갖춘 60가구가 입주했다. 실제로 어릴 적 동파리에 살던 노인 4명도 포함됐다. 조봉연이 말했다. "농사지으러 들어와 보니 군에 땅이 다 수용돼 쉽지 않았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 때 농촌체험마을을 만들고, 이명박 정부 때 생태체험마을을 만들었다. 먹고살려고." 조봉연은 마을에 이로운 일이면 서울로 나가서 데모도 하고 국방부에 시청이며 도청까지 들락거렸다. 연천 경순왕릉도 민통선에서 제외시키고 해마루촌 출입 규정도 완화시켰다. "간첩 나오면 신고도 못 한다"며 인터넷과 전화선도 끌어들였다.


-파주 진남면 민통선 안에 있는 허준 부부 묘. 왼쪽이 허준 묘고 위쪽은 모친 묘다.

수십 년 사람 손 안 탄 땅이니 식물부터 동물까지 온갖 생태가 보존돼 있다. 민통선을 넘는다는 호기심도 방문욕을 부른다. 남북관계가 좋으면 마을은 붐비고 나쁘면 한가하다. 해마루촌 부근에 있는 허준 묘가 개방되면서 방문객이 더 늘었다. 1993년 재미 고문서 연구가 이양재가 허준 후손들로부터 의뢰를 받아 찾아낸 묘소다. 진남면 하포리 언덕에서 '陽平' '聖功臣' ''이라는 여섯 글자가 새겨진 동강 난 비석이 나왔다. 허준 문중 기록과 일치하는 비석과 묘소 지형이었다. 2008년 해마루촌 주민들 요청에 의해 허준 묘 또한 관광 코스로 개방됐다. 마을에서 2㎞ 떨어진 덕진산성 또한 답사객이 잦다. 백제가 만들었고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사용했으며 6·25 이후 최근까지 국군 벙커가 있던 성채다.


-파주 진남면 덕진산성에서 바라본 초평도와 임진강 풍경. 수십년 사람 손을 타지 않아 순수한 자연이 보존돼 있다. /박종인 기자

덕진산성에서 내려다보이는 초평도 풍경은 근사하다. 농사도 짓지 않는 무공해 밀림과 초원이 펼쳐져 있다. 동파리와 초평도 사이 여울은 6·25 때 피란민들이 건넜던 길이요, 공비들이 포기했던 루트다.

아득한 옛날부터 전쟁터였던 곳들이 사람 살기 불편한 곳이 됐는가 하면 대한민국 대중음악을 잉태하기도 했다. 무장공비 부대에 뚫렸던 진격 루트들은 하나같이 관광지로 변신했다. 이 어찌 기이하지 않다 할 수 있는가. 하여, 여기 조선일보에 글과 사진으로 그 기이한 파주 역사를 기록해둔다.

 

[파주 여행수첩] 

 

1. 초리골: 김신조 루트(왕복 6시간) 등산로. 초호쉼터는 잔디구장과 카페, 방갈로, 회의실이 있는 종합시설이다. 단체만 받는다. 1 66000원에 숙박, 바비큐, 조식, , 음료 무한. www.chohopark.com, 법원읍 초리골길 134, (031)958-0029 초리골펜션은 초계탕, 막국수, 펜션 운영. www.초리골.kr, (031)958-5295.

2.
해마루촌: 40인 이상 단체에 한해 생태 및 농촌 체험 프로그램 운영. 예약 필수. www.haemaru.org, (010)5347-8963

3.
감악산: 법륜사 코스. 왕복 3시간. 백비와 군부대가 있는 정상과 임꺽정봉 두 곳 다 가볼 것.

4.
민통선 관광 상품: 임진각에 있는 DMZ매표소에서 셔틀버스로 출발. 허준묘~해마루촌~3땅굴~도라전망대 3시간30분 코스 등 2. 어른 9500, 학생 7300. 예약 불가. 신분증 필수. (031)954-0303. 월요일 휴무.

 

-박종인 여행문화 전문기자, 조선일보(1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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