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월나라 구천이 쓸개 핥으며 고민한 ‘저출생’] ['私교육 고통'] ....

뚝섬 2024. 1. 15. 11:21

[월나라 구천이 쓸개 핥으며 고민한 ‘저출생’] 

['私교육 고통 줄이기'] 

[중산층 재건, 최우선 과제는?] 

[大卒이라는 이름의 환상] 

[운명 다한 한국 교육]

 

 

 

월나라 구천이 쓸개 핥으며 고민한 ‘저출생’

 

와신상담’의 구천, 다자녀면 감세 야만족도 받아들여 인구 늘려
인구, 국력 앞서자 오나라에 복수… 지금 우리는 월나라보다 다급

 

오나라 부차는 월나라 구천이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한을 잊지 않으려고 장작더미에서 잤다. 기원전 494년 부차는 월나라를 공격해 구천을 사로잡았다. 구천은 오나라에서 부차의 노예 생활을 하다가 겨우 풀려났다. 구천은 쓸개를 핥으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 기원전 473년 구천은 부차의 오나라를 멸망시킨다.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다.

올해 서울 초등학교 신입생 수가 지난해보다 10% 이상 급감하며 사상 처음으로 5만명대로 떨어진 가운데 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한 초등학생이 등교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구천의 복수는 20년간 쓸개를 맛봐서 이뤄낸 것이 아니다. 구사일생 돌아온 구천은 월나라 인구를 적극적으로 늘렸다. 자녀를 많이 낳은 가구에는 세금을 깎아주거나 면제해줬다. 출산 직전 임산부에겐 국가가 의사도 보냈다. 영유아 복지에 투자했다.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젊은 남녀 간 결혼을 적극 지원했다. 중국 남부인 월나라 땅에는 야만족으로 불리는 소수민족이 많았다. 구천은 이들도 월나라 백성으로 받아들였다. 경제활동 인구와 병력 자원이 늘면서 월나라 국력이 오나라를 앞섰다.

 

2000년 전 로마 제국도 출산율 문제로 머리를 싸맸다. 60세까지 모든 남성은 반드시 결혼하게 했고, 노총각에겐 벌금(일종의 독신세)을 물렸다는 기록도 있다. 50세까지 여성은 남편이 사망하면 2년 내 재혼하도록 했다. 자녀 셋을 낳은 여성은 세금을 면제해줬고, 관리를 채용할 때도 자녀가 많으면 우대했다.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으면 재산 상속에서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로마는 인구 부족으로 고민했다. 상류층일수록 결혼과 출산을 기피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제국의 인구는 전성기 7000만명에서 서로마 제국 멸망 때는 5000만명 정도로 줄었다고 한다.

 

인구와 국가 존립의 상관관계는 21세기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는 5100만명이고 북한 인구는 2500만명 정도다. 유엔경제사회국에 따르면 2022년 북한에서 태어난 신생아 수는 34만명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같은 해 우리나라 신생아는 25만명을 밑돌았다. 인구는 한국이 두 배인데 태어난 아기는 북한보다 26% 적은 것이다. 중국도 저출생으로 고민하고 있지만 한 해 1000만명이 태어난다. 현재 한국군은 50만명, 북한군은 110만명이다. 북한은 핵무기도 있다. 최첨단 AI 무기가 아무리 발달해도 군사력의 기본은 병력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 남성은 군대를 두 번 가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이미 바닥부터 무너지고 있다. 예식장이 없어지고, 산부인과가 문을 닫고, 산후조리원이 사라지고 있다. 유치원이 노인 시설로 바뀌고, 서울 초등학교 신입생이 5만명대로 추락했다. 곧이어 중·고교가 급감하고 대학은 줄줄이 문을 닫을 것이다. 세계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저출생 재앙’이 코앞이다.

 

세계 최악인 저출생 원인은 모두가 안다. 과도한 주거비와 사교육비가 대표적이다. 지금 부산 신공항을 짓는 데 14조원을 쓴다. 대구~광주를 잇는 ‘달빛 철도’ 건설엔 9조원이 든다. 지난해 다 못 쓴 교육재정교부금만 7조5000억원이다. 이것만 더해도 30조원이다. 신생아 1인당 1억원씩 준다고 해도 30조원이면 30만명에게 줄 수 있다. 신혼부부 10만쌍에게 3억원짜리 아파트를 공짜로 나눠줄 수도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가 23만5000명이다. 작년 출생신고 건수가 증가한 지역은 전국 17개 시·도 중 충북이 유일했는데, 출생아 1인당 1000만원을 5년간 나눠준다는 ‘현금 정책’이 유효했다는 분석이 많다.

 

2500년 전 월나라 구천은 소멸 위기의 나라를 구하려고 비상한 인구 정책을 썼다. 지금 우리가 처한 저출생 문제는 쓸개를 핥던 구천의 월나라보다 더 심각하지 않은가.

 

-안용현 사회정책부장, 조선일보(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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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고통 줄이기' 공약으로 승부를 

 

지난해 초·중·고교생 1인당 사()교육비가 월평균 256000원인 것으로 교육부가 집계했다. 1인당 사교육비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242000원에서 236000원으로 줄었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4년 동안은 계속 늘어왔다. 사회 전체 사교육비도 학령인구 감소 탓에 꾸준히 감소 추세였지만 지난해 7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 181000억원이 됐다. 월 소득 700만원 이상 가구의 사교육비(한 달 443000)는 소득 100만원 이하 가정(5만원) 8.8배로 나타났다.

어느 정권이든 '사교육비 대책'을 발표해왔다. 박근혜 정부는 수능을 쉽게 출제하고, 수능 영어 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꾸는 걸 추진해왔다. 선행(
先行) 학습 금지법도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에선 EBS-수능 연계 정책과 학원 시간 규제, 노무현 정부에선 수능 등급제 도입 등이 시행됐다. 그러나 대부분 효과가 없거나 미미했다. 잦은 교육제도 변경에 발 빠르게 대응한 사교육 업체만 돈을 벌었다. 이런 악순환이 수십 년 반복됐다.

사교육비 부담은 중산층의 재산 축적을 막고 이것이 노후 불안과 내수 위축으로 이어져 결국 저출산이란 악순환을 낳는다. 아이들을 암기식 문제 풀이 기계로 만들어 학문과 산업 발전, 국가 경쟁력 전체에 막대한 해악까지 끼치고 있다.

이번 대선에 나온 후보들도 다양한 사교육 대책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국공립대 공동 학위제, 안철수 후보는 교육부 폐지와 학제 개편, 남경필 후보는 사교육 전면 폐지 국민투표, 유승민 후보는 자사고·외고 폐지를 공약했다. 하지만 '이거면 되겠다' 싶은 정책이 있는 것 같지 않다.

사교육 과열은 몇 가지 소소한 정책으로 가라앉히기 힘든 문제다. 학벌 사회 풍토와 기업들 인재 충원 방식을 동시에 바꿔야만 없어진다. 사교육 문제 해결의 뚜렷한 비전을 제시해주는 후보가 있다면 지지해주겠다는 유권자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이번 대선은 어떤 교육정책으로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것인지를 놓고 후보들과 유권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결단을 내리는 선거가 돼야 한다.

 

-조선일보(1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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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재건, 최우선 과제는?

 

미국의 억만장자 투자자 빌 그로스는 "만약 몇 년간 외딴 섬에 격리된 채 단 한 가지 정보만 얻을 수 있다면, 인구 구조 변화에 관한 정보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경제 예측에서 인구 구조만큼 실효성 있는 지표를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가 20년 전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결정적 이유는 인구 구조가 과거 일본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4년에 인구 7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인 '고령 사회'가 됐다. 한국은 올해 이 지점을 통과한다. 일본은 2006년에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노인 파산'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것은 이 시점부터. 한국은 8년 뒤 초고령 사회로 들어선다.

최근 한국 특파원을 역임한 일본의 경제 전문 기자가 쓴 책을 읽다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일본 노인들은 한국 노인과 비교하면 엄청난 부자들이라는 점이다. 일본 정부 자료를 보면, 일본 60대 노인들은 평균 저축액이 2484만엔(한화 약 25100만원)에 이른다. 빚은 213만엔(한화 2150만원)에 불과하다. 이런 물적 토대 덕분인지 일본 노인들은 대체로 행복하다. 일본 내각부가 만든 '고령 사회 백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경제적 형편'에 대해 물었더니, "걱정 없다"고 답한 사람이 71%에 달했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은 어떤가. 통계청 가계금융복지 조사(2016)를 보면 60세 이상 가구의 평균 저축액은 5608만원인 데 반해 부채는 4926만원에 이른다. 노인 2명 중 1명은 월소득 100만원 미만의 빈곤층이다.

한·일 노인 간 자산 격차는 왜 이렇게 큰 것일까.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병역 의무가 없는 일본 남성의 경우 대략 22~23세에 취직을 해서 40년 정도 일한 뒤, 63~65세에 은퇴한다. 반면 한국 남성들은 20대 후반에 취업해 25년 정도 일한 뒤 50대 초반에 은퇴한다. 더 짧게 일하고, 더 긴 노후를 버텨야 하니 우리나라 노년층의 재무 상태가 열악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결정적인 차이는 가계의 '비용 구조'에 있다. 원흉은 사교육비. 월급쟁이 생애 소득 사이클을 보면 40대에 가장 많은 자산을 축적해야 하는데, 한국의 40대 가장은 과도한 사교육비 탓에 자산 축적이 안 된다. 한국과 일본 40대 가구의 소비지출을 비교한 NH투자증권 보고서를 보면, 한국 40대 가장은 소비 지출 중 18%를 교육비로 쓴다. 반면 일본은 7%에 그친다. 한국의 40대 가장이 가처분소득을 사교육에 털어 넣을 때, 일본 40대 가장들은 해외투자 등 재테크에 올인한다. 그 결과가 한·일 노인 간 자산 격차다.

일본 단카이 세대(1947~49년생)의 은퇴 러시가 20년 장기 불황에 일조했듯이, 한국에선 베이비부머(1955~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노후 준비가 부실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대거 중산층에서 탈락하면서 내수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악순환 고리를 끊으려면 교육 개혁이 절실하다. 사교육비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 줘야 중산층의 구매력이 살아나고, 노후 파산도 피할 수 있다. 독자들께 차기 대선 주자들을 평가할 때, 교육 개혁 청사진부터 살펴보라고 권하고 싶다.


-김홍수 경제부장, 조선일보(17-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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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卒이라는 이름의 환상

 

빌 게이츠는 '하버드 사상 가장 성공한 중퇴자'로 불린다. 그 별명을 받을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역시 하버드를 다니다 그만둔 마크 저커버그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해 현재 세계 최고 부자(재산 약 99조원)가 된 게이츠는 10년 전 하버드 중퇴 32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다. 하버드대는 2007년 졸업식 연설자로 그를 초청하면서 법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아마도 그가 1학년 때 로스쿨 준비 과목들을 수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저커버그는 세계 5위 부자(재산 약 64조원). 그 역시 올해 5월 하버드 졸업식 연설자로 초청받았다. 하버드대가 8일 공개한 동영상에는 게이츠와 저커버그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대화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저커버그가 "방금 하버드에서 졸업식 연설을 해달라고 연락받았어요"라며 "그런데 그 사람들 우리가 졸업 못 한 것 알고 있겠죠?" 한다. 게이츠가 "그럼. 거기서 연설하면 학위를 준다고. 그게 아주 끝내줘. 이력서에다가 '대졸'이라고 쓸 수 있거든" 하고 말하며 웃는다.

2007년 하버드 졸업식에서 사회자는 게이츠를 이렇게 소개했다. "퍼스널 컴퓨터 혁명을 이뤄낸 사람,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명, 타임지가 꼽은 '올해의 인물 100'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연속으로 선정된 사람… 생각해 보세요, 이분이 학교를 2년 더 다녔더라면 얼마나 더 큰 인물이 됐을지. '빌 게이츠 박사'를 소개합니다." 하버드 2학년을 마치고 중퇴한 게이츠는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 "이 말을 하려고 30년 넘게 기다렸습니다. '아빠, 제가 말했잖아요. 언젠가는 학교에 돌아가서 꼭 학위를 받을 거라고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조선일보 DB·뉴시스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는 왜 2년만 더 다니면 딸 수 있었던 '하버드 졸업장'을 포기했을까. 그들에게 대학은 자신의 진로를 찾는 곳이었을 뿐, 진로를 보장해주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로를 찾은 그들에게 학위는 종이쪽지였을 따름이다.

한국 실업자 가운데 대졸자 비율은 45.1%로 절반에 가깝다. 이 비율은 2000 23.5%에서 거의 두 배로 늘었다. 20여 년 전만 해도 '대졸(
大卒)'이란 타이틀은 상당히 괜찮은 미래를 보장해줬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서 '대졸'은 거의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대졸자'를 우대하는 척한다. 만약 빌 게이츠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다면 끝끝내 졸업장을 받았을 것이다.

명문대를 졸업한 부모는 자기 자식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지 못한 부모는 자식이라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모두 아이가 걸음마 뗄 때부터 '대졸'을 염두에 두고 밀어붙인다. 그게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온 시간과 돈을 들여 아이를 '대졸자'로 만들어가는 것이 한국 사회다. '대졸자'가 취직 못 하고 놀고 있으면 사회를 탓한다. 그 사회를 우리 모두가 그렇게 만든 것인데도 말이다.

모두가 공부를 잘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모두가 대졸을 목표로 공부할 이유가 없다. 더 많은 전문대와 고졸 출신 부자와 스타가 나와야 한다. 이 나라의 교육과 경제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수정할 때가 됐다. '대졸'이란 이름은 이제 환상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한현우 주말뉴스부장, 조선일보(1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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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다한 한국 교육, 누가 어떻게 바꿀 건가

2010 3 10일 아침 교육부 출입기자들이 장관실로 황급히 향했다. 입시 관련 긴급 정책브리핑이 있었다. "올해부터 치르는 수능은 EBS 교재와 수업에서 70% 나옵니다." 정부는 '수능·EBS 연계 정책'을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일종의 사()교육 대책이었다. 이렇게 하면 학원 안 가도 되고 사교육비 부담이 줄어든다고 했다. 하지만 고교생 1인당 사교육비는 그 후에도 꾸준히 올랐다.

이 정책 효과는 엉뚱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을 암기왕으로 키웠다. EBS 교재에 나오는 문제와 지문을 통째로 외웠다. 영어 지문을 번역본으로 공부하는 편법이 생겼다. 그렇게 하면 수능에서 영어 문제를 빨리 풀 수 있다고 한다. 서울대 연구팀이 최근 고교 교사 200명과 학생 800명을 설문 조사했더니, 대다수 학생이 문제 푸는 기계가 됐다고 한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EBS 교재 풀이만 반복한다"고 응답했다. 나라 밖에서는 창의성 교육을 한다고 뜨거운데, 한국 교육은 정반대 지점에 있다.

해방 후 우리 입시제도는 3년에 한 번꼴로 바뀌었다. 최근엔 매년 바뀌다시피 한다. 1·2·3학년이 치르는 수능이 모두 다른 때도 있었다. 그래도 객관·주입·암기식 입시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지선다형 수능' 틀 안에 갇혀 있다. 그 수능 문제를 보고 포스텍(포항공대) 김도연 총장이 "화가 난다"고 했다. 문제를 이리저리 꼬고, 함정 만들고, 실수를 유도하는 것이 마치 국가가 학생 상대로 '꼼수'를 부리는 것 같다는 거다. '있는 대로 다 고르시오'라고 하면서 답이 하나인 것은 학생들에게 '골탕 한번 먹어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수학은 '50분에 25문항 풀기' 같은 속도 경쟁이 수십 년째 이어진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질문하는 학생은 살아남기 어렵다.

최근 일부 학교에서 토론 수업, 프로젝트 수업을 활발히 한다. 정부가 도입한 자유학기제가 이런 교육에 씨를 뿌렸다. '지금 교육으론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입시 앞에선 모든 논쟁이 중단된다. 객관·주입·암기 교육의 결정판인 수능이 버티고 있는 한, 아래 학년에서 아무리 신선한 시도를 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와 형편이 비슷했던 일본은 2014년 교육개혁안을 발표하고 입시 개혁을 시작했다. 200개 고교에 우선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커리큘럼을 도입해 점차 확대하기로 했다. 토론식 면접으로 대학 정원의 30%까지 선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식 암기보다 사고력, 판단력을 중시해 학생을 뽑겠다는 선언이다.

수능이 도입된 지 25년째다. 이 시험은 초기에 통합적 사고를 평가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점점 암기형·함정 피하기 시험으로 변질됐다. 10년 안에 직업 절반이 사라진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사회 변화 속도는 산업혁명의 10, 규모는 100, 임팩트는 3000라 한다. 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생각의 유연성과 근력을 키워줘야 한다. 한국 교육 시스템은 산업화 시대 남 따라잡는 인재(fast follower) 키우는 데 최적화돼 있다. 그 역할은 끝났다. 지금 나라 안팎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누군가는 미래를 내다보고 교육을 어떻게 바꿀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안석배 논설위원, 조선일보(17-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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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고교 성적이나 시험 점수가 아니다... 합격 결정 과정은 藝術"

 

대입 수능을 '시험대'에 올리다김도연 포스텍 총장의 격정 토로

 

"일 잘하는 사람은 '중요한 일'부터 하고, 일 못하는 사람은 '급한 일'부터 합니다. 다들 탄핵이나 대선 같은 급한 일에 빠져 있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KTX에서 '급한 일이 많을 텐데 왜 저를 만나려나?'라고 혼자 생각하다가 '이번에는 중요한 일을 하려는구나'하고 여겼습니다."

인사차 농담을 한 것이고, 김도연(65) 포스텍 총장과는 좀 사소한 일로 만났다. 시국
과도 무관했다. 교육부 장관·울산대 총장·국가과학기술위원장 등을 지낸 큰 경력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대입 수능시험'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 '2017년 국어 영역 수능시험' 문제지를 실제로 풀어본 적이 있습니다. 45문항을 80분에 풀어야 합니다. 문제지는 16쪽입니다. 한 페이지를 5분 안에 부리나케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문(
地文)은 길고 복잡합니다. 뒤의 열 문항은 시간이 부족해 아예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모두 32문항을 풀었는데 21개 맞았습니다."

 

총장님의 전공이 이공계라 그런 게 아닐까요?

"그래서 일부러 시험문제지를 갖고 왔습니다. 최 기자님은 국문학을 전공했고, 수십년째 글 쓰고 독서를 해왔으니 한번 꼭 풀어보세요. 아마 분노가 치밀 겁니다."

 

왜 분노하게 됩니까?

"다섯 개 답 중에서 적절한 것 혹은 적절치 않은 것을 골라내는 방식입니다. 간혹 '적절한 것을 있는 대로 고르시오'라고 묻기도 합니다. '있는 대로'라면 답이 두 개 이상이라는 암시가 됩니다. 그런데 정답이 하나인 경우에도 그렇게 묻습니다. 정부가 학생들을 상대로 '꼼수'를 부리는 겁니다."

변별력과 난이도를 위해 그렇게 했겠지요?

"이건 사고력 측정도 아니고, 문제를 배배 꼬아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수능시험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경쟁'이지요. 올해 국어 영역 만점자가 4%, 1000명이 넘는다는 겁니다. 학생들이 그런 함정에 안 걸려들기 위해 얼마나 훈련을 했겠습니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런 수능을 잘 본 학생을 '인재'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난센스입니다."

우리 시절과 비교하면 요즘 학생들이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수들은 '옛날보다 학생 수준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똑똑한 학생들이 모두 서울대에 진학해 그런가 싶었습니다. 서울대 공대 교수들에게 물어보면 똑같은 답이 돌아옵니다. 요즘 학생들의 실력이 현격하게 떨어진다는 겁니다."

착시(
錯視)현상이랄까, 교수 입장에서는 지금 학생들과의 나이 차가 벌어지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전반적으로 실력 하향이 뚜렷합니다. 학생들이 교수가 제시하는 답에서 벗어난 생각을 못합니다. 대학에서 창의성 교육을 하라,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라고 주문받지만, 들어오는 학생들은 이미 중학교에서부터 점수 따는 훈련만 돼 있습니다. 그런 사고 습관으로 머리가 딴딴해져 있습니다. 무슨 창의성 교육이 되겠습니까."

그런 시험 습관이 머리에 박혀서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겁니까?

"수능시험 공부는 창의력을 죽이는 훈련인 셈입니다. 창의성은 정답을 고르는 과정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찾고 답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길러집니다. 우리 교육에는 숱한 문제가 있지만 우선 해결해야 하는 게 수능입니다."

대입 수능시험은 나름대로 합의를 본 객관적 평가가 아닙니까?

"하루 종일 다섯 개 답안 중에 정답 하나를 골라내고, 이를 컴퓨터로 채점해 60여만명의 학생을 한 줄로 세우는 게 수능입니다.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 대사가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혹독한 경쟁 사회다. 한국에서 수능시험을 보는 날에는 순찰차도 시험장까지 데려다 주고, 듣기 평가를 보면 30분 동안 비행기 이착륙이 금지된다. 거의 인생을 건 싸움이 하루에 결정된다'고 썼습니다. 수능 당일에 감기 걸리거나 컨디션이 나쁘면 실제 인생을 망치게 되죠."


어차피 시험이란 경쟁이고 순위와 당락을 정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경쟁은 있어야 하지만 쓸데없는 경쟁을 시키지 말자는 겁니다. 다른 선진국에서도 다들 경쟁하지만, 우리처럼 점수로 쓸데없이 경쟁하지는 않습니다."

수능 방식 외에는 다른 대안이 별로 없는 것도 현실 아닙니까?

"프랑스에서는 고교 졸업 자격 시험(바칼로레아)을 일주일간 치릅니다. 매우 우수, 우수, 양호의 3개 등급으로 부여하지 우리처럼 점수로 줄 세우지 않습니다. 점수 93점이나 94점은 다 잘한 거지, 무슨 실력 차이가 있습니까.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1점 차로 대학 당락을 결정합니다."

그게 뒷말이 없고 공정하다고 인식하니까요?

"올해 바칼로레아의 철학 문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노동을 덜 하는 게 더 잘사는 것인가'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아는가' '욕망은 본래 무한한 것인가' '우리의 도덕적 확신은 경험에 기초하는 것인가'. 수험생이 이 중 하나를 택해 4시간 동안 에세이를 작성하면 됩니다."

 

이런 에세이 문제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어떻게 채점이 이뤄집니까?

"채점관 두 명이 각각 채점해 평균을 냅니다. 의견차가 많이 나면 제3의 의견을 듣습니다."

우리 현실에서 이런 채점관의 주관적 평가를 승복하겠습니까?

"우리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보기에 계속 '오지선다형' 수능으로 갑니다. 나라가 망해 가는데 젊은이들이 죽어가는데도 말입니다. 우리 입시제도는 일본을 모방한 겁니다. 그런 일본에서도 내년부터 200여개 학교에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대학 진학 때 학력자격시험(SAT) 점수가 필요하지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는 학생 선발에 대해 이렇게 밝혀놓았습니다. '합격 결정은 과학보다는 예술에 가깝다. 단순히 시험 성적을 컴퓨터에 넣어 그 값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각자의 원서와 에세이를 검토해서 지원자 개개인을 파악한다. 당신은 고교 시절의 평균 성적이나 시험 점수가 아니다'라고요."

포스텍도 수능 성적이 아닌 '입학사정관제(학생부종합전형)'로 전원 선발합니다. 수능 성적으로 뽑았을 때보다 더 창의적인 학생들이 들어옵니까?

"이 학생들이 당초 포스텍에만 들어오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수능 공부를 다 한 학생들입니다. 오지선다형(
)의 사고에 매여 있다는 뜻입니다."

어쨌든 그런 선발 방식의 결과에 이의를 제기해오는 경우는 없었습니까?

"10년째 해오면서 정착됐습니다. 몇 년 전 카이스트에서 입학사정관제로 내신 10등 하던 학생은 붙고 5등 하던 학생이 떨어지자 그 부모가 총장실까지 찾아와 소동을 벌였습니다. 시험 점수가 아니면 신뢰를 못하는 사회입니다. 하지만 대학이 이를 견뎌내야 합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학부모와 학생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직업윤리의 부재(
不在)에서 비롯됩니다. 사정관들도 예외가 아니겠지요?

"'정유라 사건을 봐라. 대학이 이렇지 않은가'라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진통을 겪으면서도 해야 합니다. 그걸 우려해서 판을 못 바꾸다 보니 20년 넘게 이런 수능을 계속해 오는 겁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수능 점수 차이로 학생들을 줄 세우고 합격·불합격시키면 정말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어집니다."

우리 사회에는 '점수'가 공정한 평가 기준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노래방에서도 한 곡 부르면 점수를 주지 않습니까. 완전히 '점수 사회'입니다. 그런 수능 점수를 받고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별로 바뀌지 않습니다. 포스텍 신입생 중에는 고등학교에서 이미 대학 물리를 마스터한 친구들이 꽤 됩니다. 그런데도 A학점을 받기 위해 그 물리 과목을 수강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 시기에는 소설책도 읽고 B학점을 받아도 되는데 말이지요."


학점은 졸업 후 취직과 관계되니까요.

"점수로 한 인간을 평가하려는 나라는 거의 한국이 유일할 겁니다. 제가 대학에서 '앞으로 ABCD 학점을 매기지 말고 '패스 앤 페일(통과와 낙제)'로 하자'고 제안하자 교수들은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행정 실무자가 '국가장학재단에서 이공계 장학금을 받으려면 학생 성적을 제출해야 한다'고 해서 불발됐습니다. 점수가 늘 신뢰할 만한가에 대해 더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과학 연구 과제를 평가할 때 통상 심사위원 다섯 명이 각자 점수를 줍니다. 그런 뒤 가장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를 빼고 중간의 점수 셋을 평균해 결정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게 공정하지 않습니까? 양극단은 편견이나 개인감정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과학기술 분야가 워낙 넓어 자기 전공이 아니면 심사위원들도 잘 모릅니다. 사실 극단의 점수를 준 사람은 뭔가 내용을 알기 때문에 그런 점수를 준 겁니다. 잘 모르면 그냥 중간 점수를 줍니다. 결국 내용을 아는 사람은 빠지고 모르는 사람 세 명이 앉아서 결론을 내는 격입니다."

안철수 의원은 초·· 6-3-3년을 5-5-2(·중등 이후 2년 과정의 진로탐색학교나 직업학교) 학제로의 개편을 내놓았습니다.

"국제적인 학제 기준이라는 게 있는데 거기에 안 맞아요. 실제로 저항이 있고 혼란만 낳을 겁니다. 가령 한 학년이 줄어드는 초등학교에서 잉여(
剩餘)교사 문제가 발생하잖아요. 학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키느냐 입니다. 현재와 같이 수능시험이 지속되는 한 초··고등 교육은 거기에 인질로 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바꿀 수 있습니까?

"교육부 장관이 해보겠다고 나서면 경질될 겁니다. 이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대학들입니다.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의 총장들이 의견을 모아 '이런 식의 수능 성적은 무시하겠다'고 하면 바뀝니다. 정말 대학은 이런 문제에 고민을 좀 해야 합니다."

이틀 뒤 나는 국어 수능문제지를 풀어봤다. 16~20번에 주어진 지문은 문장이 엉망이라 독해가 안 됐다. 더 해볼 의욕이 떨어졌다. 시험 시간의 절반인 40분 만에 손을 들었을 때는 겨우 15문항을 풀었다. 할 말이 없게도 다섯 개나 틀렸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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