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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 귀신도 놀랄 망우리 공동묘지의 변신, 납량괴담 무대서 휴식공간으로... 사람들 몰려 야간에도 불 밝혀

뚝섬 2017. 6. 29. 08:04

조선 태조 이성계가 반한 명당… 1933년 일제가 공동묘지 만들어
1998
년 산책로, 2005년 공원 조성… 서울 최고 해돋이 명소로 각광

가난한 필부필부(匹夫匹婦)가 마지막으로 누웠던 곳,

달도 없는 밤 뼛속까지 휘몰아치는 찬 바람을 맞으며 담력 훈련을 하던 곳,

귀신을 봤다는 행인이 '사람 살류!' 소리치며 지나던 곳.

1970
년대까지 '공포의 공동묘지'였던 서울 중랑구 망우리 묘지공원이 밤에도 불을 밝힌 휴식 공간으로 시민의 곁에 다가온다. 서울시는 묘지 인근에 조성된 산책로에 가로등을 설치한다고 28일 밝혔다. 날이 더워지며 밤 산책을 즐기는 시민이 늘었기 때문이다. 다음 달부터 날마다 해 질 녘부터 오후 11시까지 환하게 불을 켠다.


명품 전망대-망우리 묘지공원 사잇길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한강변의 모습. 구리암사대교 건너편 강동구 암사동과 고덕동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1990년대 이후 공원으로 탈바꿈한 망우리 묘지공원은 하루 3000명이 넘게 찾는 산책 명소가 됐다. /서울시설공단

 

서울 중랑구 산57번지 일대 망우리 묘지는 1933년 들어섰다. 일제가 서민의 공동묘지로 조성했다. 1973년 매장이 금지될 때까지 묘소 28500기가 자리 잡았다. 이후 이장(移葬)이 꾸준히 진행돼 현재 8424기만 남았다. 망우라는 이름은 경기도 구리시와 서울시 경계에 망우고개가 있어 붙여졌다. 망우고개는 자연경관과 형세가 빼어났다. 이승의 온갖 시름을 잊게 할 만한 곳이라 하여 '망우(忘憂)'였다. "우리나라에서 한양만큼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이 없고, 한양 인근에 망우리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신후지지(身後之地)를 구리시 동구릉으로 정한 태조 이성계가 망우고개에서 쉬다 "이제는 모든 걱정을 잊겠구나"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시대의 어둠을 촛불처럼 밝혔던 선인들이 이곳에 묻혔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한용운, '조선학운동'을 펼친 민족사학자 문일평, 독립운동가 오세창, 종두학자 지석영, 아동문학가 방정환,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등 애국지사와 선각자, 문인·예술가들이 묻혔다. 저항과 수난의 민족사를 온몸으로 헤쳐간 선인의 자취가 살아있는 역사 교육장이다. 공원 산책로 곳곳에 세워진 기념비는 민족정신과 예술혼을 느끼게 한다.

서울에 하나뿐인 대형 공동묘지였기 때문에 각종 납량 괴담의 단골 무대였다. 기피시설로만 여겨지던 망우동 묘지를 프랑스 파리의 정원묘지인 페르라셰즈나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가 묻힌 오스트리아 빈 중앙묘지처럼 가꾸자는 움직임이 1990년대 후반 시작됐다.

서울시는 1998 5월 묘지 인근에 산책로인 '사색의 길'을 만들었다. 걷기 좋게 4.7㎞ 길을 내고 주변을 단장해 음침한 분위기를 없앴다. 2005년에는 나들이 공원으로 조성했다. 주민들은 산책·등산로로 즐겨 찾고 아마추어 마라토너나 주변 학교 학생들은 달리기 코스로 이용한다. 서울 동쪽 경계에 자리해 서울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시내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라고 입소문을 탔다. 주중에는 하루 평균 1600, 휴일에는 3400명이 찾는다. 서울시와 중랑구는 유명 인사 묘역을 둘러보며 역사와 인문학, 예술을 배우는 '추모 힐링 투어', 초·중·고 학생을 위한 '묘역 따라 역사여행' 등 여러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신정선 기자, 조선일보(17-06-29)-




용마-망우산(龍馬-忘憂山)(서울): 서울 주변산의 중심-망자(亡者)의 유택.. http://blog.daum.net/cgan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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