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이 된 1100억원짜리 공중 보행로]
[‘역사도시 서울’의 주인공은 현재 서울이어야 한다]
[을지면옥과 긴자식스]
계륵이 된 1100억원짜리 공중 보행로
슬럼화된 세운상가의 보행로 통행량 예상의 5~17% 불과
개통 2년 만에 철거 앞둔 박원순식 도심 재생의 실패작
“청계천 보고 충격받았는데 이후엔 아파트만 짓더라” 日 전문가 지적 뼈아파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공중보행교 전경.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 '다시 걷는 세운, 다시 찾는 세운, 다시 웃는 세운' 3가지를 목표로 건설됐다./뉴스1
얼마 전 서울 도심의 세운상가 공중 보행로에 가봤다. 이 보행로는 종묘 앞 세운상가에서 퇴계로 진양상가까지 7개 건물을 잇는 1km 구간이다.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가 1100억원을 쏟아부어 완성한 것이다. 흐린 날씨 탓인지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을 법한 점심시간대였는데도 인적이 드물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보행로 건설 당시 하루 통행량이 1만3000명에 이를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예상의 5~17%에 불과하다. 또 보행로를 받치는 각종 구조물 탓에 지상 도로와 인도의 동선(動線)이 꼬이고, 세운상가의 슬럼화로 전체 방문자 숫자도 보행로가 생기기 전에 비해 오히려 50%나 줄었다고 한다. 건축 문외한인 기자의 눈에도 1968년 완공한 세운상가와 주변의 낡은 ‘벌집’ 점포들 사이로 뻗은 새 보행로가 생뚱맞게 보였다.
박원순의 서울시는 이 보행로 건설을 할 때 세운상가 일대를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제조 신기술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내걸었다. 목표대로라면 보행로를 따라 설치된 30여 개 사무 공간에는 지금쯤 드론, 반도체 장비, 모빌리티, 스마트 의료 기기 등 첨단 제품의 개발실로 넘쳐나야 하지만 실제로는 텅 빈 공간뿐이었다. 스타트업과 대학의 창업 인큐베이터 시설이 입주하기로 했던 아세아 상가는 아예 재개발을 위해 철거돼 버렸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판교·분당 등 수도권에 새로 지은 창업센터가 즐비한데 낡은 건물에서 일을 하려는 젊은 직원들이 있겠느냐”면서 “쓰러져 가는 건물 앞에 새 육교가 생겼다고 해서 직원들이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혈세(血稅) 1100억원이 투입된 보행로가 ‘계륵’ 신세가 된 것이다.
게다가 이 보행로는 완전 개통된 지 2년 만에 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오세훈 현 시장의 서울시는 세운지구 일대 상가 7개동을 모두 허물고 30~40층짜리 고층 빌딩과 녹지가 들어서는 도심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대규모 개발을 못 하게 171구역으로 쪼갰던 세운지구를 39구역으로 다시 통합하고 고도 제한 등 규제 완화에도 시동을 걸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세운지구 전체(44만㎡)가 순탄하게 재개발된다면 수십 조원이 투자되는 역대 최대 규모의 도심 재개발 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건축 전문가들은 개발보다는 ‘보존’에 방점을 둔 박원순식 세운상가 재생 사업을 “하지 말았어야 했던 실패작”이라고 단언한다. 한국 1세대 대표 건축가인 김수근이 설계한 세운상가가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라는 상징성이 있긴 하지만 주변까지 급격히 슬럼화되는 것까지 방치하면서 보존해야 하느냐는 지적이다. 특히 낡은 건물 사이를 관통하는 공중 보행로 하나로 죽어가는 상권을 되살리는 ‘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유명 건축가는 “박원순 시장 시절엔 건설업체에 개발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는 좌파 논리가 회의를 지배했고 세운상가는 도심 개발을 막는 최악의 건축물이 됐다”고 말했다.
세계의 도시들은 지난 10여 년간 박원순의 서울시와는 정반대로 갔다. 골목 살리기 식의 도시 재생보다는 대규모 도심 개발을 통해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었다. 글로벌 금융 지구로 변신한 일본 황궁 앞 마루노우치, 철도 기지를 고급 주상복합 단지와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뉴욕 허드슨야드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이 대규모 개발을 통해 경제 활성화와 도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일본 마루노우치를 가보면 옛 건물의 전면부만 보존한 고층 빌딩, 100년 넘은 문화재를 둘러싼 빌딩 등 기발한 상상력이 넘쳐나는 건물들이 즐비하다.
잠실 롯데월드를 설계했던 일본의 원로 건축가는 취재차 일본을 방문했던 본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일본의 도시 전문가들은 청계천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도심을 흐르는 인공 하천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지요. 청계천은 일본 도심 개발의 모멘텀이 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은 이후 아파트를 짓는 것 외에는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더군요.” 뼈를 때리는 지적이다.
-조형래 부국장 겸 에디터, 조선일보(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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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시 서울’의 주인공은 현재 서울이어야 한다
[朝鮮칼럼]
서울 역사·문화 복원 위한 ‘역사도시 서울’ 프로젝트 유감
자유·경제·국제도시 서울은 20C 말에 월드 클래스로 도약
신분도시 한양에 비교할 순 없어
역사 오래됐다고 반드시 더 좋은 도시는 아냐
무조건 과거 재현은 피해야
얼마 전 서울시는 ‘제2기 역사 도시 서울 기본 계획(2023~2027년)’을 공개했다. 향후 5년간 1조2840억원을 들여 서울의 역사·문화를 복원·관리하겠다는 중·장기 프로그램이다. 제2기라 명명(命名)했듯, 이는 박원순 시장이 2016년에 발표한 ‘역사도시 서울 기본계획(2017~2021년)’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시정(市政) 전반에 걸쳐 전임자와 달라지고 싶어 하는 듯한 오세훈 시장도 역사 문화 도시 서울에 대한 인식에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2000년 역사 도시 서울’ 담론이다. 서울의 역사는 조선조 한양 500년은 물론이거니와, 고려 시대 남경을 거쳐 고대 백제 한성까지 소급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도심부 조선 시대 주요 유적 복원에 역사 도시 서울 계획의 주안점이 놓여있는 가운데, 종로구 일원에서는 고려사 자취 추적에, 송파구 일대에서는 백제사 흔적 발굴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그런데 조선 시대 한양이나 고려 시대 남경, 삼국 시대 한성이 오늘날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정체성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역사가 오랠수록 반드시 더 좋은 도시는 아니다. 역사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유산을 무조건 받들 필요도 없다. 현재 서울의 시공간적 모태라는 사실이 옛 한양을 반드시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비록 정치 이념은 거룩했으나 한양의 실상은 신분 도시이자 노비 도시였다. 국내적으로는 특권적 왕도(王都)였고 대외적으로는 중국을 따르고 섬겼다. 무엇보다 한양은 경제적으로 정체된 도시였는데, 이는 무역을 억제하고 상공업을 천시한 탓이다. ‘위대한 문명 뒤에는 위대한 도시가 있다’는 세계사적 법칙이 우리한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에 비해 20세기 서울은 대한민국을 순식간에 세계 굴지의 부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 배경에는 한양과 비교하여 확연히 달라진 서울의 자화상이 있었다. 무엇보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는 정의(定義)에 충실한 서울이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출범을 계기로 처음 등장했다. 도시를 국부(國富)의 원천이라 생각하는 중상주의 도시관(都市觀) 또한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과정에서 보편화되었다. 여기에 덧붙여 개방과 교류, 다양성이 새로운 도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동참하면서 도시 경쟁력이라는 개념도 자연스레 일상화되었다. 자유 도시, 경제 도시, 국제 도시 서울이 20세기 말에 이르러 월드 클래스 메트로폴리스로 천지개벽한 것은 결코 과거 한양의 은덕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한양에 대한 의식적 차별화의 개가다.
물론 서울의 역사를 길게 잡아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역사를 무작정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원래 모습대로 재현·보전하는 방식이 최선이자 능사는 아니다. 언필칭 역사 도시 서울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일부 국수주의 사학자나 귀족풍 문화재 애호가의 판단에 맡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들의 의고주의(擬古主義) 취향은 역사를 살아 숨 쉬는 그 무엇이 아닌, 전시나 관람의 대상으로 박제(剝製)시킬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작금의 역사 도시 기본 계획에 따라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가 정확히 기억되고 올바로 전승되는 것도 아니다. 가령 ‘자주적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대한제국기 한성의 유산 발굴 및 보존에 치중하는 모습은 근대 실증주의 역사학에 역행한다. 학계에 논란이 많은 만큼 객관적인 평가를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른바 ‘원형 복원’이라는 것 또한 많은 경우 허구 아니면 허사다. 이는 10여 년 전 숭례문 원형 복구의 실패가 웅변하는 바이다. 지난 5월 ‘덕수궁 제 모습 찾기’ 일환으로 ‘복원’이 마무리된 돈덕전 역시 문화재청 스스로 ‘재건’이라 밝힐 정도다. 자료 부족이 이유였다. 그럼에도 역사 도시 서울 기본 계획에는 돈의문이나 월대 등의 실물 복원 약속이 여전히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역사 도시를 말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과거에 대한 아련한 옛사랑 때문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역사의 교훈과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정한 역사 도시 서울의 주인공은 한양이나 남경, 한성이 아니라 20세기 후반 한반도의 운명을 통째 바꾼 대한민국 서울이 되어야 한다. 한양을 위한 서울이 아니라 서울을 위한 한양이 원칙인 것이다. 경복궁이 BTS 성지가 되고 전통 한옥이 럭셔리 브랜드 행사 장소로 애용되듯 말이다. 차제에 서대문 재건도 21세기 한국이 뽐낼 수 있는 최신 기법과 첨단 소재를 사용하면 어떨까. 무릇 선진국형 역사 도시란 현재와 미래를 위해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다.··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조선일보(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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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면옥과 긴자식스
"노포를 왜 없애나" 주장에 서울시 도심 재생 기회 날려
흥행과 돈, 표만 좇다간 세계 도시 경쟁서 계속 밀릴 것
13년간 추진돼 온 서울 세운3구역 재정비 사업이 을지면옥 보존 논란에 휩싸이면서 또다시 중단됐다. 을지면옥은 수많은 단골이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평양냉면 맛집이다. 없어진다면 서운해할 사람이 많겠지만 대체 무엇을 보존할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을지면옥의 맛과 정취는 이어가야겠지만 칙칙한 을지로 뒷골목 낡은 건물까지 굳이 지켜야 할까. 보존해야 할 것은 문화적 소프트웨어인데 엉뚱하게 조형적 가치도 없는 하드웨어만 부각되고 있다.
'밀어버리고 새로 짓는' 재건축, 재개발 사업은 우리 사회에서 이제 죄악시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훌륭한 노포(老鋪)를 밀어버리느냐'는 얘기가 부각되자 극적인 반전이 이뤄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을지면옥이 철거 대상에 들어 있었던 것을 "몰랐다"면서 사업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사업은 전임 시장들이 시작한 것이고 2011년 박 시장이 백지화하긴 했지만 2014년 계획을 바꿔 사업을 재개했다. 사업시행인가까지 내줘 일부 철거까지 시작됐는데 몰랐다고 하면 무능한 것이고 대선(大選) 주자로서 이미지 관리에 나섰다면 무책임한 것이다.
세운상가 주변 지역의 상징은 을지면옥, 양미옥(양·대창집) 같은 식당들이 아니다. 몇 대에 걸친 노포가 즐비한 일본에서도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닌 곳이 많은데 1985년 이 자리로 옮겨 온 을지면옥이 이 사업 때문에 명맥이 끊긴다는 주장 역시 무리다. 세운상가는 전쟁의 상흔을 딛고 곳곳에서 밀려든 장인(匠人)들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품으로 건설 장비, 음향기기, 조명, 자동차·항공기 공구 등을 뚝딱 만들어 낸 곳이다. 수도(首都) 도심에 이처럼 제조·판매 기능을 한꺼번에 갖춘 상가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기술도, 산업도 변변이 없던 한국이 어떻게 도깨비처럼 압축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런 산업 유산이 이 지역의 상징이다. 이런 유산은 제쳐두고 '식당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만 '흥행'에 성공하는 게 우리 사회다. 쇠락한 공구상을 찾는 사람은 드문 반면, 식당들은 오늘도 장사를 잘하고 있으니 사업을 서둘 이유도, 꼭 성공시켜야 할 이유도 없다. 이 식당의 '흥행'에 기대어 돈과 표를 노리는 사람들만 몰려들 뿐이다.
그러나 강력한 대규모 개발 형태의 도시 재생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성장 한계에 봉착한 세계 각국의 유력 도시들은 도시 재정비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2000년대 초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겠다며 '도시재생특별법'을 만든 일본은 일본답지 않은 유연한 아이디어와 황거(皇居) 앞 고도 제한까지 푸는 혁신적인 규제 개혁으로 스카이라인을 바꾸는 '도쿄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다. 도시를 어떻게 개발해 나가겠다는 청사진과, 도시의 상징과 정신을 살리는 전략과 지혜가 있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새 세운지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초고층 본사를 새로 지으면서 건물 앞쪽에 140여 년 전 창업 당시 본사 구조와 똑같은 저층 건물을 지어 박물관을 만든 미쓰비시, 건물 내부에 긴자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작은 길을 살린 긴자식스 같은 사례에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도시 재정비는 미래 산업이다. 그 도시와 국가의 지적 수준과 품위, 국격까지 보여 줄 수 있는 국가 경쟁력의 상징이다. 건축의 정신과 문화는 없고 돈만 좇는 천박함, 장기 운영 계획 없이 한탕 분양 성공에만 매달리는 사업 모델, 경직된 행정이 도시 재생을 망치고 있다. 그 사이 용산, 동대문 등 서울을 탈바꿈시킬 수 있었던 기회들은 다 날아가 버렸다. 서울은 세계 도시들과의 경쟁에서 계속 뒤처지고 있다.
-김덕한 산업1부장, 조선일보(1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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