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世界-人文地理]

[“콜레라 확산 방지 영웅”… 세계 유일의 韓 중소 백신업체] ....

뚝섬 2024. 4. 13. 06:27

[“콜레라 확산 방지 영웅”… 세계 유일의 韓 중소 백신업체] 

[천연두와 전염병] 

[전염병과 인류 역사]

 [小國 모리셔스가 한 일]

 

 

 

“콜레라 확산 방지 영웅”… 세계 유일의 韓 중소 백신업체

 

“그저 책상 앞에 앉아서 이런 대화를 할 수밖에 없어요. ‘(콜레라 백신을) 아이티로 보낼까요, 시리아로 보낼까요? 아니면 짐바브웨?’”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전한 국경없는의사회 국제의료 코디네이터의 한탄이다. 최근 수년간 아프리카 등에서 콜레라가 대규모로 확산한 가운데 국제 의료구호 단체들이 모진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예방 백신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에서 수천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지원처 선별을 해야 하는 탓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1년 22만여 명까지 감소했던 세계 콜레라 감염자가 이듬해 47만여 명으로 늘었다. 콜레라는 카리브해 연안과 중동, 남아시아 등에서 급속히 확산했다. 케냐의 소말리아 난민촌 어린이들 사이에서, 내전으로 기반 시설이 파괴돼 강물을 마셔야 하는 시리아에서, 무정부 상태가 된 아이티에서 창궐했다. 특히 최근 2년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맹위를 떨쳐 7개국에서 집계된 것만 4000여 명이 숨졌다. 백신도 동이 났다. 전쟁으로 콜레라 발생 소지가 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공급할 백신마저 없는 실정이다.

현재 콜레라 백신을 생산하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기업이 한국의 유바이오로직스다. 인도의 회사가 한 곳 더 있었는데, 지난해 생산을 중단했다. NYT에 따르면 유바이오로직스는 최근 생산 단계와 성분을 간소화하는 한편 제2공장 가동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올해부터 백신 수천만 회분을 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엔의 지원을 받는 국제백신연구소(IVI)의 줄리아 린치 박사는 이 회사를 두고 “(콜레라 대응의) 숨은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뒤늦게 인도와 남아공의 회사 세 곳이 백신 제조에 뛰어들었지만 빨라야 내년 말부터 제품이 나온다.

 

▷지난해 매출이 약 700억 원인 중소기업 유바이오로직스는 서울대 수의대 출신 백영옥 대표가 2010년 설립했다. 국제백신연구소와 기술이전 계약을 맺은 뒤 2015년 WHO 인증을 받고 이듬해부터 콜레라 백신을 수출하며 자리를 잡았다. 질병 퇴치를 목표로 하는 게이츠재단의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수출용 코로나19 백신도 개발했고, 해마다 연구개발에 적지 않은 돈을 쓰면서 다른 백신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중이라고 한다.

수인성 질병인 콜레라는 부유한 나라에선 거의 유행하지 않는다. 빈국의 전염병이다. 최근 극단 기후 탓에 가난한 나라의 국민은 홍수로 상하수도 시설이 파괴되거나 가뭄이 들어 깨끗한 마실 물도 모자란 상황이다. 콜레라 백신은 당분간 공급이 달릴 것으로 전망되지만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은 별 관심이 없다. 개당 수 달러에 이문도 적은 탓이다. 그 결과 콜레라와의 전투에서 승부가 사실상 한국의 한 중소기업에 달린 형국이다.

-조종엽 논설위원, 동아일보(24-04-13)-

_______________

 

 

천연두와 전염병

 

3000년 전 람세스 5세 미라에서도 천연두 흔적
16
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이 남아메리카 대륙 정복하며 확산돼
종두법은 에드워드 제너가 개발
 

천연두가 언제 처음 발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하지만 기원전 12세기 이집트를 통치했던 람세스 5세 미라의 얼굴과 몸에서 천연두의 증상인 종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약 3000년 전에도 존재한 것으로 추정돼요. 사진은 벨기에 출신 화가인 미힐 스위츠가 그린 유화 ‘고대도시의 전염병’. 전염병 창궐을 표현했어요. /위키피디아

 

주로 서아프리카에서 유행하던 풍토병인 '원숭이두창'이 최근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어요. 원숭이두창은 1958년 실험실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됐어요. 천연두(두창·痘瘡)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1970년 아프리카 콩고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감염된 사례가 확인됐고, 이후 중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감염 사례가 꾸준히 보고됐죠. 그러다 지난 5월부터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번처럼 짧은 기간에 50국 이상에서 원숭이두창 환자가 쏟아진 건 처음이라고 해요. 원숭이두창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천연두의 원인인 '두창바이러스(variola virus)'와 같은 과(科)에 속한대요. 그래서 천연두 백신을 맞으면 원숭이두창에 대해 85%의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천연두는 수 세기 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질병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선언했어요. 천연두는 인류가 박멸한 최초의 감염병이죠. 하지만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프랑스의 왕 루이 15세, 러시아의 황제 표트르 2세, 청나라의 세 번째 황제 순치제 등 수많은 사람이 천연두로 사망했어요. 천연두, 홍역 등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역사 속 전염병에 대해 알아볼게요.

고대 역사 속 두창

천연두가 언제 처음 발생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아요. 하지만 기원전 12세기 이집트를 통치했던 람세스 5세 미라의 얼굴과 몸에서 천연두의 증상인 종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약 3000년 전에도 존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천연두는 오랜 시간에 걸쳐 무역로를 따라 아시아·유럽 등지로 퍼졌는데요. 바이러스 감염자의 30%는 사망에 이르렀어요. 살아남더라도 눈이 멀거나 깊은 흉터가 생기는 등 후유증이 남았죠.

천연두 확산으로 문명이 파괴된 경우도 있어요.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남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면서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이 없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천연두 바이러스에 노출됐어요. 잠복기가 열흘 이상이었는데, 한 마을에 병이 퍼지면 원주민들이 이웃 마을로 피신해서 그곳에 병균을 퍼뜨리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해요. 이에 원주민 인구는 급속히 감소했고요. 지금의 멕시코 중앙고원에서 세력을 떨쳤던 아스테카 제국은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곳에 도착한 지 2년 만에 몰락했는데요. 천연두의 전파가 결정적 요인이었어요. 아스테카 제국의 쿠이틀라우악 왕은 즉위한 지 몇 달 만에 천연두로 죽기도 했고요.

남아메리카가 유럽의 식민지였던 기간 원주민 사망자의 약 90%는 천연두·홍역 등 다른 대륙에서 온 각종 전염병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잉카제국의 우아나카팍 황제도 육로로 퍼진 천연두 때문에 죽어 잉카 제국의 멸망을 앞당겼죠.

천연두 바이러스를 무기로 사용하려고 한 사례도 있습니다. 1763년 영국이 미국과 캐나다에 걸쳐 있는 오대호(五大湖) 지방을 다스리는 것에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저항하면서 폰티액 전쟁이 발발했어요. 영국 장교들은 원주민들을 제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천연두 치료 병원에서 가져온 담요와 손수건 등을 원주민 대표에게 나눠줬어요. 이런 방식이 천연두 확산에 실제로 얼마만큼의 영향을 줬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당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천연두에 면역력이 약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이죠. 천연두로 아메리카 주민 2000만명 이상이 숨지고, 1500년대 한 세기 동안 전 세계 인구 1억명이 죽었다고 추산됩니다.

종두법의 개발

영국의 의사였던 에드워드 제너(1749~1823)는 "낙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소의 젖을 짜다가 우두(소의 두창)에 걸리고 나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최초의 백신을 고안해 냅니다. 그는 1796년 우두 고름을 건강한 8세 소년의 팔에 삽입하고 6주 후 천연두 고름을 접종했어요. 그러자 이 소년은 약한 증상만 앓고 천연두에는 걸리지 않았어요. 제너가 바이러스를 이용해 면역력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죠.

이것이 바이러스를 사람 몸에 주입해 질병을 예방하는 우두 접종법(종두법)입니다. 제너는 이 천연두 예방법을 'Vaccination'이라고 불렀는데, 소를 뜻하는 라틴어 'Vacca'에서 유래했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바이러스를 사람 몸에 직접 주입시키는 이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고 해요.

제너는 수차례의 실험을 실시해 결과를 영국 왕립 학회에 보고했어요. 이후 프랑스에서 종두법을 받아들이면서 전 세계에 종두법이 널리 퍼졌어요. 미국, 스웨덴, 독일 등의 왕립 학회는 이 공을 높게 평가해 그를 명예 회원으로 우대했습니다.

1967년에는 천연두를 완전히 박멸하는 것을 목표로 세계적인 예방접종 캠페인이 시작됐는데요. 세계보건기구는 그해 천연두 환자를 1000만~1500만명, 사망자를 200만명으로 추산했어요. 이후 10년 뒤인 1977년 소말리아 병원의 직원이 감염된 사례 이후 자연적으로 천연두에 걸린 사람은 없다고 알려져 있어요. 감염자가 0명이 된 거지요.

어린아이들이 많이 걸린 홍역

홍역 역시 강력한 전염력을 가진 전염병이었어요. 감기와 같은 증상으로 시작해 몸에 붉은 발진이 돋는데, 주로 어린아이들이 많이 걸렸죠. 10세기 페르시아의 의사였던 무함마드 이븐 자카리야 알라지는 '천연두와 홍역에 대한 고찰'이라는 책을 남겼는데요. 홍역을 "천연두보다 더 무서운 질병"으로 설명했어요. 천연두처럼 홍역도 아메리카 대륙에는 노출된 적이 없던 질병이어서 16세기 아메리카의 인구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지요. 1529년 쿠바에 홍역이 대유행했을 때, 천연두 창궐에도 살아남았던 원주민의 3분의 2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홍역 백신이 개발되기 전에는 대략 2~3년마다 홍역이 유행했고 이로 인해 매년 약 260만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후 1963년 미국에서 홍역 백신이 개발됐고, 백신이 보급되며 발병률이 급격하게 감소하게 돼요. 홍역은 백신 접종을 할 경우 97% 이상의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천연두 걸린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영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29세였던 1562년 천연두에 걸려 사경을 헤맸어요. 다행히 병마에서 벗어났지만, 얼굴에는 수포 흉터가 남았지요. 그녀는 흉터를 가리기 위해 얼굴을 하얗게 화장했는데요. 화장품에 납 성분이 있어 말년에는 납중독으로 머리카락과 치아가 빠져 매우 고통스러워했다고 합니다. 결국 자신의 방에 거울을 두는 것도 거부했대요.

 

영국의 의사였던 에드워드 제너(왼쪽)는 우두접종법(종두법)을 개발했어요.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오른쪽). /위키피디아

 

-윤서원 단대부고 역사 교사/기획·구성=조유미 기자, 조선일보(22-07-06)-

_______________

 

 

전염병과 인류 역사

 

입항 못해 떠돌던 페스트 감염船 받아준 마르세유, 죽음의 도시로

1347년 11월, 흑해서 온 배 입항… 마을 폐허되고 유럽·러시아로 번져
"우물에 독 뿌려" 유대인을 범인 지목… 수천명 산채로 태워

-1차대전보다 많이 죽은 스페인 독감
 1918년 창궐, 2000만명 목숨 앗아… 南美 퍼진 천연두도 2000만 희생
 1817년 콜레라는 조선까지 번져
-몽골군, 시체 투척… 최초의 세균전
 14세기 페스트 중국에서 시작한 듯… 교역로 타고 몽골군과 함께 西로
 1346년 흑해 도착… 세균전 기록

 

 

 

 

인류 역사는 전염병과 함께 진행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상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든 대유행병(pandemic) 사례도 많이 있다. 1918년에 창궐한 스페인 독감의 희생자 수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견해가 엇갈리지만 대체로 2000만명 이상이었으리라고 추산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에 이 병이 유행했는데, 세계대전으로 죽은 사람보다 이 병에 당한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1817년에는 콜레라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이 병은 인도에서 창궐한 후 동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되어 조선까지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그 후 증기선의 발달에 힘입어 5~6차례 세계적으로 콜레라가 유행하여 각지에서 엄청난 공포를 일으켰다. 19세기의 콜레라는 현재보다 훨씬 병세(탈수 증상)가 심해서, 심지어 감염 하루 만에 피부가 시커멓게 변하고 온몸이 쪼그라든 채 사망하는 수도 있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520년에 코르테스가 이끄는 소수의 스페인인 부대가 남미 대륙에 퍼뜨린 두창(천연두)을 들 수 있다. 잠복기가 열흘 이상이었던 당시 이 병의 특성 때문에 피해가 더 컸다. 한 마을에 병이 퍼지면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디오들이 이웃 마을로 피신해서 그곳에 병균을 퍼뜨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의학사가(醫學史家)들은 천연두로 아메리카 주민 2000만명 이상이 숨지고 한 세기 동안 전 세계 인구 1억명이 죽었으리라고 추산한다.

페스트가 유럽에 창궐했던 1349년 2월 스트라스부르 유대인 대학살. 당시 유대인 2000여 명이 불에 타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위키피디아 

 

페스트, 역사상 가장 큰 공포의 전염병

인류 역사에 가장 큰 공포를 각인한 전염병으로는 14세기에 유라시아 대륙을 강타한 페스트를 들 수 있다. 페스트를 일으키는 박테리아(Yersinia pestis)는 1894년에 가서야 알렉상드르 예르생이 정체를 밝혀냈다. 그렇지만 페스트·흑사병·괴질 등이라 부른 과거의 병이 모두 이 병원균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 분명 병원균 자체가 계속 변이(mutation)를 일으키면서 질병도 변화했음이 틀림없다. 사실 이 병은 14세기에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아마도 2만년 전부터 인류가 알고 있던 오래된 질병이었다. 서기 6~7세기에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을 때에는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이 병에 걸렸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특히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라고도 부른다.

그렇다면 14세기의 페스트는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아마도 중국에서 처음 발생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당시 중국에서는 말로 형언하기 힘든 피해를 보았다. 학자들은 1331년부터 1393년까지 중국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사망해서, 1억2500만이던 인구가 9000만명으로 줄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이후 이 병은 중앙아시아 교역로를 통해 서쪽으로 전파되었다. 페스트의 빠른 전파는 몽골 제국 건설과 관련이 깊다. 몽골 전사들이 유라시아 대륙의 광범위한 지역을 정복하고 그 후 제국 질서 아래서 원거리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이 병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페스트는 사람의 이동 경로를 따라서 사마르칸트 같은 카라반 중간 지점을 거쳐 1346년에 흑해에 도착했다. 이때 전설적 '세균전' 이야기가 나온다.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이 1562년에 그린 '죽음의 승리'는 중세에 만연했던 흑사병으로 해골의 군대(죽음)가 살아 있는 인간을 학살하는 지옥 같은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게티이미지코리아 

 

흑해 연안의 카파(Caffa·오늘날 우크라이나의 페오도시야)는 이탈리아 제노바 상인들의 동방 무역 거점이었는데, 이해에 몽골 군대에 포위당해 있었다. 그런데 몽골군 내에서 페스트가 발병하여 더 이상 전투가 어려워지자 투석기를 이용하여 페스트 환자 시체를 성 안에 던져 넣었다고 한다. 데 무르시스(de Mursis)라는 이탈리아인 연대기 작가가 기록한 이 내용이 과연 사실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이 시기 흑해 연안에서 페스트가 창궐했고, 이탈리아 무역선들을 매개로 유럽에 이 병이 유입된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흑해 연안을 떠난 배들이 터키와 그리스, 이집트의 항구들, 지중해의 여러 섬에 균을 뿌렸다. 공포에 싸인 제노아가 카파에서 출발한 선박 입항을 거부하자, 이 선박들은 할 수 없이 마르세유로 갔다. 1347년 11월에 이 도시는 입항을 허락해 주었다. 이 부주의한 행위의 결과는 참혹했다. 마르세유 일부 지역은 주민이 몰살당했다. 남부 프랑스와 이탈리아 도시들을 황폐화한 다음 프랑스 중심부를 거쳐 영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급기야 스칸디나비아와 모스크바까지 병이 확산되었다. 교역로를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맹렬하게 퍼져 간 것이다. 그 피해는 실로 엄청났다. 실증 연구에 따르면 노르망디 지방에서는 1340년부터 1460년까지 인구 70%가 사라졌다. 독일 지역에서는 페스트 이전에 17만 마을이 존재했지만 1500년에는 13만 곳만 남았다. 마을 전체가 통째로 사라지는 폐촌(廢村) 현상이 극심하게 벌어졌던 것이다.
 

 

1918년 3월 미국 캔자스주 포트 라일리의 캠프 펀스턴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스페인 독감 환자들. /위키피디아

 

전염병은 정신까지 황폐화한다

전염병은 사람 신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황폐하게 만든다. 질병을 하느님의 징벌로 생각하고 신의 분노를 풀기 위해 자기 몸을 채찍질하며 행진하는 고행자들(flagellant)이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크게 확산되었다.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는 차라리 낫지만, 다른 사람에게서 신의 응징을 찾기 시작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유대인, 이방인, 유랑 걸인, 순례자, 이교도, 나병 환자 등에 대한 공격이 급증했다. 특히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어서 병이 퍼졌다는 유언비어가 번지면서 가혹한 유대인 학살 사건들이 일어났다. 1348년 스트라스부르에서는 900명 가까운 유대인을 살해하거나 산 채로 불태워 죽였다. "유대인 여인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기독교 세례를 받게 하느니 차라리 불 속에 던져 넣었고, 그다음에는 자기 몸을 던져서 남편과 아이 뒤를 따랐다"고 당대 기록은 전한다. 카라반이 페스트를, 증기선이 콜레라를 전파하는 이상으로 현대사회에서는 비행기 여행이 각종 전염병을 신속하게 퍼뜨릴 수 있다. 세계적 질병 확산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신종 플루, 메르스, 사스 그리고 현재의 코로나19와 유사한 사태는 언제든 터질 수 있다. 이런 사태를 겪으면서 의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더욱 철저한 준비를 갖추어 가는 수밖에 없다.

["회개와 눈물을 버무려 고약을 만들어라"]

페스트의 발병 원인을 조사하라는 국왕 필리프 6세의 지시를 받은 파리대학 의대 교수들은 이렇게 답했다. "1345년 3월 20일 정오 지나서 한 시간이 지난 뒤 세 별이 물병자리에 들어갔다. 이것이 우리 주변 공기를 치명적으로 오염시켜서 죽음을 초래했다. 목성은 습하면서 뜨거우므로 땅의 사악한 수증기를 불러일으키고, 화성은 극히 뜨겁고 건조하므로 이 수증기를 불태워서 그 결과 번개가 치고 사악한 증기와 불이 공기 중에 가득하게 되었다." 당시 한 의학 논문에서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걸고 거짓된 맹세를 많이 한 것이 원인"이라고도 주장했다.

병의 원인 분석이 이 수준이니 올바른 대응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의사들은 "매일 공복 상태에서 토하고, 일주일에 최소 두 번씩 따뜻한 침대에서 이불을 잘 덮고 따뜻한 음료수를 마셔서 땀을 흠뻑 내라"고 처방했다. 분명 방의 환기를 막아서 역효과를 냈을 것이다. 교회 또한 막연하기 짝이 없는 대책을 내놓았다. "자신이 행한 죄에 대한 통렬한 혐오감과 또 같은 양의 회개를 모아서 그 둘을 눈물로 잘 버무려 고약을 만든다. 그러고 꾸밈없이 정직한 고백을 토하면 죄의 치명적 독성에서 벗어나고 악덕의 종기가 완전히 녹아서 사라지게 되리라."

방역 대책도 향기 좋은 나무를 태워서 공기를 정화한다든지, 교회 종을 난타해서 성스러운 울림이 공기 중에 퍼져나가도록 하는 식이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페스트 치료에 영험하다는 로크 성인(Saint Roch)의 성상을 찾아 기도하거나 성지 순례를 떠났지만, 이것이 오히려 전염병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교황청에서 만류하기에 이르렀다.

전염병의 원인에 대해 하느님의 진노 혹은 '마귀의 시샘' 같은 것으로 돌리지 않고 세균·바이러스를 찾는 과학적 접근은 19세기 말에 가서야 시작되었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조선일보(20-02-16)-

_______________

 

 

小國 모리셔스가 한 일 

 

라면, 모기약, 마스크.

23일(현지 시각) 인도양 섬나라 모리셔스에서 입국을 보류당하고 격리 조치된 한국인 신혼부부들이 우리 측 현지 영사 협력관을 통해 받은 물품 전부다. 신혼의 단꿈을 안고 휴양지를 찾은 이 34명에겐 지난 두 밤이 '악몽'이었다. 이들이 격리된 임시 보호소에서는 쥐와 벌레가 들끓었고, 수건조차 없어 모리셔스 정부 측에서 부부 한 쌍당 1장만 줬다. 계획대로라면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을 이들은 사흘 내내 보호소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하염없이 우리 외교부의 연락을 기다려야 했다.

 

모리셔스 정부는 23일 오후 이들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의 여권을 뺏고 격리 조치했다. 우한 코로나가 확산한 한국에서 왔단 이유에서였다. 이튿날 관계장관 비상긴급대책회의를 열고 공식적으로 지난 14일 이내 한국 방문 이력이 있는 여행객을 입국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2일 중국에 대해 내린 조치와 같다.

모리셔스 교민인 현지 영사 협력관은 24일 신혼부부들에게 격리 이유를 설명하며 "이틀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증가한 한국 상황이 급격히 언론에 나오니까, 이 나라 정부가 굉장히 놀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는 보건부의 지시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 대통령이나 외교부 장관이 얘기해도 안 된다. 왜냐하면 이 나라는 자국민들의 건강,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리셔스는 작은 나라다. 면적은 우리나라의 50분의 1가량이고, 인구는 40분의 1 수준이다. 2019년 기준 모리셔스의 국내총생산(GDP)은 142억달러(세계 126위)로, GDP 세계 12위(1조6300억달러)인 우리나라에 견줄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자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대국(大國)이라고 느껴졌다. 사실 모리셔스뿐만이 아니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태평양 섬나라 키리바시는 어느 나라보다 먼저 한국을 포함해 중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베트남·태국·미국 등을 방문한 경우 코로나 미발생국에서 14일 체류하고 미감염 의료 확인서를 제출해야 자국에 들어올 수 있게 조치했다.

신혼부부들의 소식이 전해지자 안타깝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이들의 기사에 달린 한 댓글은 폐부를 찔렀다. '우리나라 사람은 저런 취급 받는데'란 짧은 이 댓글은 5000건 이상의 추천을 받았다.

임시 보호소에서 두 밤을 보낸 김모씨가 본 신혼여행에 걸맞은 풍경은 보호소 철조망 밖으로 살짝 본 바다가 전부였다. 김씨는 "많이 불편하지만, 한편으론 모리셔스 정부의 조치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작은 나라가 당연하게 하는 일을 우리나라는 못 한다는 게 지금 국민들이 가슴을 치는 이유일 것이다.

 

-이옥진 국제부 기자, 조선일보(20-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