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餘暇-City Life]

[10년 전 빗물 새던 그 식당, 미쉐린 3스타로 떠올랐다] ....

뚝섬 2025. 3. 9. 05:45

[10년 전 빗물 새던 그 식당, 미쉐린 3스타로 떠올랐다] 

[‘미쉐린 스타’ 美食 상업주의] 

[음식의 가치에 등급을 매길 수 있을까]

 

 

 

10년 전 빗물 새던 그 식당, 미쉐린 3스타로 떠올랐다

 

[김성윤 기자의 공복]
국내에 유일한 미쉐린 3스타
한식당 '밍글스' 강민구 셰프
 

 

지난달 27일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 서울 & 부산 2025′에서 3스타를 획득한 강민구 ‘밍글스’ 셰프는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는 게 목표였다”며 “한식을 재해석해 세계에 알리는 데 미쉐린 3스타가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한식당 ‘밍글스(mingles)’는 2014년 서울 청담동에서 문을 열었다. 돈이 없어 지하 1층에서 출발했다. 그해 가 보니 식당에 물이 새서 수도관을 고치고 있었다. 시작은 그렇게 미미했다.

 

‘밍글스’가 미식계 가장 높은 자리에 새로운 별로 떠올랐다. 지난주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 서울 & 부산 2025’에서 최고 등급인 별 셋을 받았다. 한국에 하나뿐인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다. 밍글스를 이끌어 온 강민구(41) 오너셰프는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는 게 목표였다”고 말하던 사람이다.

 

“요리를 처음 시작할 때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밥만 먹어도 행복했어요. 그런데 내 식당이 3스타에 오르다니,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영광스럽고 기뻐요. 밍글스는 ‘서로 다른 것의 조화’라는 뜻입니다. 전통 음식의 뼈대를 지키면서 한식을 재해석해 세계에 알리는 데 미쉐린 3스타가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별 3개를 딴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였다. 경기대 외식조리학과를 졸업한 강민구 셰프는 자신을 “요리 천재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대학 다니면서 실전 경험을 쌓으려고 와인바에서 일할 때 이런 평을 들었다. “요리는 타고난 재능과 센스가 필요한데 너한테는 재능도 없고 답도 없어.”

 

하지만 주눅 들지 않았다. 꾸준히 노력하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요리는 남들보다 더 많이, 더 오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나 대한민국이 발전을 이루며 파인다이닝(고급 외식)이 생겨날 때 자랐다”며 “앞으로도 항상 도전하고 기본에 충실하며 노력하는 밍글스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 부산 2025년 셀렉션 공개 행사에서 미쉐린 3스타로 승급된 한식당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가 제롬 뱅송 미쉐린 코리아 대표로부터 상패를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바하마에서 확인한 한식의 가능성

 

국내 3스타 레스토랑은 광주요그룹이 운영하는 ‘가온’과 안성재 셰프의 ‘모수’ 2곳이 있었지만 가온은 2년 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고 지난해 모수마저 휴업했다. 올해는 3스타 레스토랑이 하나도 없을지, 아니면 새로운 3스타가 등장할지에 관심이 쏠렸다.

 

-별 셋을 받고 나니 뭐가 달라지던가요?

 

매달 1일에 두 달 뒤 예약을 받아요. 지난달 27일 미쉐린 발표가 나고 3월 1일에 5월 한 달치 예약이 꽉 찼습니다. 전에는 오픈하면 평일 예약이 마감되기까지 며칠 걸렸거든요. 이게 미쉐린의 힘인가 싶어요.”

 

-3스타로 선정되고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라면.

 

“뜻밖에 축하한다’보다 ‘울었다예요. 같이 기뻐하고 뿌듯해해서 뭉클했어요.”

 

-요리 솜씨만으로는 파인다이닝 세계에서 성공할 수 없을 텐데.

 

“‘맛없다’보다 ‘어디서 먹어본 음식 같다’는 반응이 더 끔찍해요. 손님을 접대하는 홀 서비스도 음식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오너셰프는 레스토랑 전체를 관장하면서 홀과 주방의 조화와 팀워크를 이뤄내야 해요.”

 

-요리에 인생을 걸게 된 계기가 뭔가요.

 

“일가친척 중에 음식 관련한 일을 하는 분은 없었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똑같은 걸 반복하기를 싫어했어요. 학원에서 푸는 국어·수학·영어 문제들은 답이 늘 같았거든요. 그런데 요리는 재료를 넣고 빼면 새로운 결과물이 나와서 좋았지요.”

 

-어린 시절 음식과 관련된 가장 강렬한 기억이라면.

 

“초등학교 때 ‘음식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더니 엄마가 ‘해보라’고 하셨어요. 김치볶음밥과 계란말이를 만들어 대접했습니다. 흡족한 엄마·아빠의 표정을 보면서 길을 발견한 것 같아요(웃음).”

 

-다른 꿈은 없었나요.

 

“요리사가 되지 않았다면 스포츠 기자가 됐을 거예요. 운동을 좋아했어요. 공부는 반에서 5등 정도. 그런데 공부하는 시간은 제일 길었어요. 어릴 때부터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분야건 특출난 재능이 있진 않다는 걸. 하지만 목표를 향한 인내심과 지구력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어요.”

 

-대학 졸업하기 전 23세에 미국으로 간 이유는 뭐였습니까.

 

“세계 미식의 최전선에서 배우며 경험을 쌓고 싶었어요. 1년짜리 비자를 받아 마이애미 인근 리츠칼튼 호텔 주방에서 일했지요. 저녁에만 일하고 오전은 휴무였지만, 오전에도 나가서 생선·고기 다듬는 걸 도왔어요. 그때 번 돈으로 휴가 때 미식 강국으로 떠오른 스페인, 덴마크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무급 견습생으로 일했고요.”

 

-무보수로 일할 만큼 값진 배움이 있던가요.

 

“조리 기술을 배울 건 없었어요. 그보다는 셰프가 자국의 식문화로 어떻게 자신만의 오트퀴진(haute cuisine·고급 외식)을 창조하는지 목격했습니다. 한식을 새롭게 재해석해 나만의 요리 세계를 만들고 싶어졌지요.” 

 

밍글스 대표 메뉴인 ‘장 트리오’. 된장을 넣은 크렘 브륄레에 아이스크림을 올리고 간장에 졸인 피칸과 고추장 물에 삶은 잡곡 튀밥, 고추장 파우더와 위스키 폼이 올라간다. /밍글스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공동 소유주인 미국 유명 일식당 ‘노부(Nobu)’에서도 경험을 쌓았는데.

 

“노부 마이애미 지점에 2010년 입사했고, 1년 뒤 부총괄 셰프가 ‘바하마 지점 총괄 셰프로 가게 됐다’며 같이 가자는 거예요. 거기서 1년 반 일하면 유럽에 다시 가서 무급으로 버틸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출발 일주일 전 부총괄 셰프가 ‘연봉이 맞지 않아서 안 간다’는 거예요. 그를 대신해 제가 총괄 셰프로 발령 났어요.”

 

뉴욕타임스가 세계 10대 레스토랑으로 선정한 노부는 일식 세계화의 주역이다. 노부유키 마쓰히사 셰프가 생선회에 페루식 조리법을 가미한 퓨전 일식당. 198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해 세계 50여 지점을 거느린 외식 제국이다.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가수 비욘세 등 명사들의 단골 식당이다.

 

-바하마에서 개발한 ‘된장 푸아그라(거위 간)’ 요리가 히트 쳤죠.

 

“푸아그라는 서양 향신료와 술 등을 넣어 묵처럼 굳힌 테린(terrine)으로 많이 먹어요. 저는 한국에서 가져간 된장과 매실주를 넣었습니다. 구수한 된장과 새콤달콤한 매실주가 기름진 푸아그라와 잘 어울렸지요. 테린을 얇게 썰어 백김치로 감싸 깔끔한 맛을 더했습니다. 비빔밥과 김치 정도만 알던 외국인들이 ‘이런 한식도 있었느냐’며 호평했어요.”

 

-된장 푸아그라를 맛본 유명 인사라면.

 

“테니스 스타 마리아 샤라포바, 배우 니컬러스 케이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노부 바하마 단골이었어요. 된장 푸아그라를 드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추장 소스를 곁들인 생선회나 김치·고추장으로 맛을 낸 생선구이 등 제가 개발한 요리를 맛있게 드신 건 확실해요.”

 

-그때 어떤 확신이 들었나요?

 

“당시 노부에서 ‘와규 비프 비빔밥’을 12만원쯤 받았어요. 국내에서 비빔밥이 5000원이 되지 않던 시절이니 20배가 넘는 거죠. 어떻게 브랜딩 하느냐에 따라 한식의 가치가 달라지겠구나 깨달았어요.” 

 

밍글스 주방의 강민구 셰프. 한식을 기반으로 현대적 해석을 더해 새로운 메뉴를 창조한다.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는 게 목표였어요."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한식을 잘 안다고 착각했다

 

노부 바하마에서 일하던 강 셰프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 연락을 받는다. “프랜차이즈 개발에 참여하면 나중에 레스토랑을 열게 해 주겠다”는 제안. 치킨 프랜차이즈부터 캐주얼 한식당까지 개발했지만, 회사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그는 ‘더 늦기 전에 내 식당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퇴사해 밍글스를 열었다.

 

비가 내리면 천장에서 물이 새기 일쑤였지만 오픈하자마자 “새로운 한식 파인다이닝”이란 입소문이 났다. 된장 소스에 숙성해 비장탄에 구워 숯 향을 입힌 ‘된장에 재운 양갈비’가 인기였다. 간장·된장·고추장으로 서양 디저트 크렘 브륄레에 악센트를 준 밍글스 대표 메뉴 ‘장 트리오’도 그때 탄생했다.

 

-밍글스는 무슨 뜻인가요.

 

“밍글(mingle)이 영어로 ‘섞다, 어우러지다’는 뜻이잖아요. 고교 영어 시간에 배운 단어인데 제 이름과 비슷하기도 하고, 저희 음식 스타일과 어울려 식당 이름으로 정했어요.”

 

-식당이 잘됐지만 스트레스도 심했지요?

 

“이대로는 오래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노부에서 했던 것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한식에 외국의 경험을 올린 게 아니라, 외국의 경험에 한식이 고명처럼 얹힌 거였어요. 온전한 저의 음식이 아니었지요.”

 

-뭐가 문제였을까요.

 

“한식을 잘 안다고 착각했어요. 외식이라면 한식은 집밥과 달라야 했습니다. 한식을 더 깊게 알아야 했지요. 기초인 장(醬)부터 다시 공부했어요.”

 

한식을 배우려고 찾아낸 스승이 ‘아시아 최고 여성 요리사’로도 선정된 조희숙 셰프와 백양사 천진암 정관 스님이다. 조 셰프는 노보텔 앰버서더와 신라호텔을 거쳐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인 ‘한국의집’에서 조리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정관 스님은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하며 한국 사찰 음식 대표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레스토랑 가이드 ‘블루리본’ 김은조 편집장님이 조 셰프님이 진행하던 요리 수업에 데려가셨어요. ‘한식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충격받았습니다. 한식을 창의적으로 다루는 법을 배웠어요. 멸치볶음을 물엿과 조청을 묻혀 네모나게 굳혀서 강정처럼 만들어 식감을 살리셨지요.” 

 

강민구 셰프는 “재료를 넣거나 뺄 때마다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는 매력에 빠져 요리사를 꿈꾸게 됐다”고 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정관 스님께 배우려고 매주 토요일 영업을 마치고 천진암까지 갔다가 일요일 밤에 올라오기를 1년 반 동안 계속했다면서요.

 

재료 본연의 맛을 끌어올리는 법을 배웠어요. 사찰 음식은 오신채(마늘·부추·파·달래·아위)를 제외한 채소로만 요리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그 덕에 창조적인 음식을 만들어내요.”

 

-스님과 함께 담근 장을 쓰죠.

 

“담그면서 많이 배웠어요. 서울·경기 등 북쪽 지역 간장은 심심해요.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짜지죠. 밍글스는 음식에 따라 다른 간장을 써요. 고기를 재우거나 조릴 때는 일관된 품질의 대기업 양조간장을, 국 끓일 때는 재래식 조선간장을 써요. 양조간장은 단맛 때문에 국이 들큼해지거든요.”

 

밍글스는 한국을 대표하는 식당으로 차근차근 성장했다. 2015년 국내 최고 식당을 뽑는 ‘코릿(KorEat)’에서 1위를 차지하며 주목받았다. 예식장 건물 1층으로 옮긴 2016년에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선정됐고,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이 처음 발간된 2017년에 1스타를 받았다. 햇살도 전망도 좋은 2층 현 위치로 올라온 다음 해인 2019년부터는 2스타를 지켜왔다. 지난해 국내 식당 최초로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44위에 올랐고, 올해 마침내 셰프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미쉐린 3스타를 거머쥐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 부산 2025년 셀렉션 공개 행사에서 미쉐린 3스타로 승급된 한식당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 미쉐린 가이드 별 3개는 '요리가 매우 훌륭해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에 부여된다. /뉴시스

 

◇한식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

 

식당은 성공할수록 테이블을 늘린다. 손님을 더 받아야 이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 셰프는 거꾸로 테이블 숫자를 줄였다. 매출을 포기하고 여유를 늘렸다. 파인다이닝은 맛만큼 서비스가 중요하다. 테이블 간격을 넓혀 서버와 손님이 다니는 동선이 충돌하지 않게 했고, 옆 테이블 소리가 들리지 않게 했다.

 

-테이블을 몇 개나 뺐나요.

 

“7년 전 현재 자리로 옮길 때와 비교하면 다섯 개 줄었어요. 1층에서 2층으로 이전하면서 테이블 2개를 뺐고, 3년 전쯤 3개를 더 뺐어요.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손님이 34명에서 26명으로 4분의 1쯤 줄었죠.”

 

-테이블 뺄 생각은 왜 했습니까.

 

“2스타를 따고 유지한 지 몇 해 됐을 때였어요. 3스타에 도전해보고 싶더라고요. 회의를 했어요. 서비스팀에서 ‘테이블 수를 줄이면 안 되느냐’더군요. 주방에서는 ‘인력을 충원하고 싶다’고 하고. 21~22명이던 직원이 32명으로 10명가량 늘었죠.”

 

-수익은 줄고 인건비는 늘었겠네요.

 

“대신 고민 끝에 가격을 조금씩 올렸죠. 다행히 매출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어요. 손님들이 음식과 서비스가 향상됐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순위보다 매일 오시는 손님을 맞는 일이 더 중요해요.”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떨어질 수 있어 부담스러웠을 텐데.

 

“다행히 제가 반얀트리 호텔과 ‘페스타 바이 민구’도 하고 홍콩에서 ‘한식구’도 운영하면서 번 돈으로 밍글스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많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대기업이나 대자본의 후원을 받지요.

 

“저는 받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내걸고 하는 자영업인 만큼 저만의 색채와 자율성을 지키고 싶었고, 결정을 내리면 진취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오너셰프 레스토랑의 강점을 유지하고 싶었어요.”

 

미쉐린 스타를 획득하고 유지하려면 계속 투자해야 한다. 손님을 많이 받을 수도 없다. 테이블 수보다 종업원 숫자가 많다. 밍글스는 손님 대 종업원 비율이 1대1.2 수준. 세계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평균은 1대3이다.

 

식당 하나만으로는 이익을 내기 어렵다. 별 받은 식당을 플래그십으로 내세우고 더 저렴하고 대중적인 ‘세컨드 레스토랑’을 운영하거나 케이터링, 수퍼마켓용 HMR(가정간편식)·제품 개발, 기업 협찬으로 손실을 메워야 한다.

 

강 셰프가 반얀트리 호텔 내 업장을 운영하고, 홍콩 외식 기업 요청으로 비빔밥·떡갈비 등 전통 한식으로 미쉐린 1스타를 받은 ‘한식구’를 낸 이유다. 프랑스 파리에는 치킨·닭강정·누룽지 닭백숙 등을 기본으로 한 ‘세토파(SETOPA·Seoul to Paris)’를 열었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송하슬람 셰프와 함께 대중 식당 ‘마마리 마켓’과 ‘마마리 다이닝’도 운영한다. 

 

랑구스틴, 캐비아, 흑초 쌀밥, 누룩 소스가 어우러진 밍글스의 모던 한식 요리. 밍글스는 올해 국내 유일한 미쉐린 가이드 3스타 식당이 됐다. /미쉐린 가이드

 

-별을 따고도 망하는 ‘미쉐린의 저주’가 두렵진 않나요.

 

“3스타를 유지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큽니다. 하지만 저희는 지하에서부터 1층, 2층으로 다지며 올라왔잖아요. 그렇게 얻은 성취라서 두려움은 없어요. 저만 포기하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요.”

 

-긴장은 어떻게 푸나요.

 

“저도 복싱을 합니다. 안성재 셰프보다 1년 먼저 시작했어요(웃음). 요즘은 발을 다쳐 집에서 혼술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서 메뉴와 생각을 정리해요. 해외 매장에 보낸 젊은 셰프들을 만나면 에너지가 다시 생기고요.”

 

-파인다이닝은 제외하고, 서울에서 추천하는 식당 세 곳을 꼽는다면.

 

“평양냉면과 돼지갈비로 유명한 ‘봉피양’, 논현동 ‘한성칼국수’, 신당동 ‘금돼지식당’에 자주 갑니다.”

 

그는 장에 대한 공부를 집대성한 영문 요리책 ‘장: 한식의 영혼(Jang: the Soul of Korean Cooking)’을 지난해 미국에서 펴냈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24년 최고의 요리책 16’ 중 하나. 오는 10일 한글판으로 나온다.

 

최종 목표는 뭘까. 강 셰프는 “밍글스 홈페이지에 있듯이 전통을 존중하되 현대의 감성을 더한 새로운 한식을 선보이는 것”이라며 “밍글스 강민구를 통해 한식의 영역이 확장됐다는 말은 듣고 싶다”고 답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조선일보(25-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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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스타’ 美食 상업주의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003년 2월 24일 숨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셰프 베르나르 루아조 (Bernard Loiseau)가 운영했던 레스토랑. 유명 식당에 별점 점수를 매겨 리스트를 만드는 '미쉐린 스타' 시스템은 평점 경쟁을 부추기고 레스토랑의 행복한 경험을 지나친 상업주의 경쟁에 휘말리게 하며 여러 비극을 낳았고, 지금은 점점 그 시효를 다해 가고 있다.

 

2003년 2월 24일, 18년 전 어제,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셰프 베르나르 루아조(Bernard Loiseau)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많이 알려진 그의 죽음은 지금도 회자된다. 몇 년째 미쉐린 3스타를 유지하던 그의 레스토랑이 2스타로 강등될 거라는 소문에 의한 스트레스, 그리고 몇 해 전 시작했던 식재료 사업의 부진이 원인이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버터플라이 로빈슨’이라는 영어 애칭으로 불렸던 베르나르는 그렇게 “나비처럼 날아갔다.” 10년 전, 그곳을 찾았을 때는 미망인 도미니크 루아조가 남편의 수제자와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었다<사진>. 여전히 미쉐린 3스타였다. “우리 집에 남한에서 온 손님은 처음이다”라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미식 평가의 방향을 안타까워했다.

 

1900년에 처음 발행된 미쉐린 가이드북은 레스토랑 평가의 바이블이 되었다. 이탈리아, 영국, 독일 등의 유럽 국가로 영역을 확장하던 미쉐린은 10여 년 전부터 미국과 아시아에도 상륙했다. 하지만 프랑스 요리와 같이 다소 정형화된 음식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평가 기준은 다른 대륙의 식문화를 포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최고 미식가들의 평가’라는 기준과 권위는 흔들렸고 그 한계를 드러냈다. 미쉐린 별을 받고도 거부하는 셰프들도 늘어났다. 체면을 구긴 미쉐린은 코로나 이전부터 여러 도시의 행사와 홍보를 대폭 축소했다.

 

실제로 근래에 많은 음식 전문가들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평가나 다른 정보들을 더 신뢰하고 있다. 별의 수가 가치 기준이 되고 마케팅 수단이 되면서 외식산업의 본질이 왜곡되는 것도 부정적 측면이다. 평점을 위해서 경쟁이 부추겨지고, 요리사 지망생들은 ‘훌륭한 셰프’가 아니라 ‘유명한 셰프’가 되고 싶어 한다.

 

음식을 먹고 지인들과 어울리는 행복한 경험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지나친 상업주의 경쟁에 휘말리는 일은 비극이다. 영화 ‘패튼’으로 1971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이 확정된 배우 조지 스콧이 수상을 거부하며 남긴 문장이 새삼 다가온다. “배우는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조선일보(2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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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가치에 등급을 매길 수 있을까

 

지명수배자 전단이 주방 벽에 붙어 있는 줄 알았다. 남반구에서 제일 크다는 호주 멜버른의 한 호텔에서 일할 때, 나는 그 '전단'을 처음 목격했다. "철저히 암기하라"는 주의사항과 함께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이 박힌 표는 주방 벽뿐만 아니라 사무실, 주방에서 홀(hall)로 나가는 통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붙어 있었다.

그것은 지명수배자 전단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이름뿐 아니라 그들의 직업도 적혀 있었다. 어디 어디 칼럼니스트, 평가단, 파워블로거, 호텔 관계자 등등. 이른바 식당의 요주의 인물, 좋은 말로 VIP 명단이었다. 하루에 한두 번쯤은 주방으로 날아드는 주문서에 'VIP'라는 주의사항이 찍혀 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덩치 큰 부주방장 마이클은 나에게 다가와 엄한 얼굴로 말했다.
 

프랑스의 세계적 레스토랑 가이드 ‘미쉐린’ 2018년 서울편이 지난 8일 발간됐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발간이다. 맛이 뛰어난 음식점에 주어지는 ‘스타(별)’는 24곳에서 획득했다./미쉐린

 

"조심해. VIP야."

그때마다 웃는 얼굴로 "예스(yes)"라고 말했으나 속으로는 '알게 뭐야'라고 투덜거렸다. VIP든 아니든 간에 음식은 똑같이 제대로 나간다는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관리자 마음은 다른 법이다. 마이클은 나를 유심히 지켜보다가 내 자리를 밀치고 들어왔다. 내가 영 못 미더웠던 것이다.

그래 봤자 나가야 할 음식은 감자와 양배추를 섞고 기름에 부친 영국의 부침개 격인 버블앤드스퀴크(bubble and squeak)였다. 나는 그 조그만 전 하나를 앞에 두고 노심초사 땀 흘리며 굽는 마이클 옆에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집중했다. 이윽고 여름 한 철을 보낸 해상구조대의 등바닥 피부처럼 갈색으로 곱게 구워진 버블앤드스퀴크가 탄생했다. 마이클은 나에게 그것을 보여주며 말했다. "보이지? 이렇게 하는 거야."

그런데 대략 한 달에 한 번 정도 VIP가 아닌 'VVIP'가 찍힌 주문표를 받을 때가 있었다. 그땐 부주방장이 아니라 사무실에서 예쁜 종업원과 농담 따먹기 하고 있던 주방장 존이 달려왔다. 덩달아 온 주방에 기말고사 성적표를 받기 직전과 비슷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별것 아닌 영국식 전 한 장에 런던과 뉴욕, 멜버른에서 경력을 쌓은 존이 땀을 흘렸다.

나중에 수군거리는 웨이터들의 뒷담화를 듣고 나서야 그 VVIP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는 호주의 레스토랑 가이드의 평가단 중 하나였고 그 지명수배 명단의 제일 윗자리를 차지한 이였다.

각 나라마다, 지역마다 대표 레스토랑 가이드가 있다. 프랑스에서 시작한 '미쉐린(Michelin) 가이드'를 필두로 미국의 '자갓(Zagat)', 호주 '더 굿 푸드 가이드(The Good Food Guide)', 북유럽 '화이트 가이드 노르딕(White Guide Nordic)', 영국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까지. 여기에 일본의 '타베로그(tabelog)' 같은 인터넷 사이트와 군소 레스토랑 가이드, 유명 블로그까지 가세하면 가이드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평가는 늘 비밀이라고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 누가 평가단인지는 공공연한 비밀이고, 그 평가 기준과 경향이 어떤지도 웬만한 경력의 요리사는 다 꿰뚫고 있다. 이를테면 미쉐린 가이드는 프랑스 음식에 유독 엄격하고 각 나라의 전통 음식에 대해서는 꽤 관대하다. 더불어 유럽과 미주, 아시아의 별 수준이 다르다는 것은 다수가 공감하며 그중에서도 본토 프랑스에서 별을 받는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인 것이다.

근래 한국에 다시 별이 떴다. 그 별들은 요리사들의 오랜 노력의 결과이기에 의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전부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레스토랑 가이드는 음식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는 신념과 더불어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가려내 소비자의 시간과 노력, 무엇보다 돈을 아껴주겠다는 목적을 품고 있다. 결국 모든 레스토랑 가이드의 끝에는 '음식은 돈'이란 답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음식이란 오직 돈으로 환원될 수 있는 무엇일까? 누가 누군가를 먹인다는 행위에 깃든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우리가 사랑에 순위를 매기지 않듯, 나를 살리고 숨 쉬게 만드는 음식에 등수를 붙일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돈이다. 하지만 우리가 돈에 지배당하며 산다는 것을 인정해버릴 때 삶은 초라해진다.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의 삶은 돈처럼 쇠 비린내가 난다그리고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돈이라고 여길 때 그 맛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동현 셰프, 조선일보(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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