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막걸리 등급을 허하라 ]
[젊고 유능해진 막걸리처럼… 전통에 새 활력 불어넣는 한국의 힘]
[혼술의 '고개']
[혼자 술 마시기]
막걸리
농민부터 왕까지 즐겨… 정약용은 "소주 멀리하게 됐다"
조선 시대 화가 김홍도의 ‘점심’. 일꾼들이 식사를 하며 막걸리를 따라 마시고 있어요. /국립중앙박물관
“막걸리가 한 동이 가득 있습니다. 내일이 바로 중양절인데 함께 어디로 갈까요?”
때는 고려 말, 고려의 충신 이숭인이 정몽주에게 보낸 시입니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에 산과 같은 높은 곳에 올라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이 고려의 풍습이었습니다. 그렇게 정몽주와 이숭인, 그리고 다른 친구들인 정도전, 염흥방 등은 함께 모여 즐겁게 막걸리를 마시며 놀았습니다. 고려의 충신도, 간신도, 그리고 조선의 개국공신도 함께 마실 수 있었던 술이 바로 막걸리였습니다.
최근 ‘K푸드’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며 우리나라의 전통주 막걸리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막걸리는 아주 역사가 오래된 술입니다. ‘마구 거른 술’이란 의미에서 막걸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곡식을 발효시켜 술을 만든 뒤 맑은 부분은 청주라 부르지만 찌꺼기가 많이 들어간 것은 뿌옇고 탁하다고 해서 탁주라고 했으며, 이 탁한 부분이 곧 막걸리였습니다.
막걸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술이었습니다. 맑은 부분만 떠낸 청주와 달리 색은 뿌옇고, 맛은 시고 털털했기 때문이었지요. 막걸리의 다른 이름은 농주(農酒)였으니, 농사일을 하면서 마시는 술이란 뜻이었지요. 김홍도의 민화 ‘점심’에서 그린 그대로, 또 농촌의 풍속을 노래한 농가월령가에서 말하는 대로 힘들게 농사일하던 사람들에게 막걸리는 절대로 빠질 수 없었습니다. 고려 시대 문인 이규보는 자기가 출세 전에는 막걸리를 마시다가 출세하면서 청주를 마셨는데, 벼슬에서 물러나면서 또 막걸리를 마시게 됐다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막걸리를 좋아해서 마시는 사람도 많았으니, 어떤 사람은 친구와 즐겁게 놀기 위해, 또 어떤 사람은 시름을 잊기 위해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전라남도 강진에서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던 다산 정약용은 ‘막걸리를 마시게 되면서 소주를 멀리하게 되었네’라고 할 만큼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효종의 장인 장유와 실학자 이수광은 막걸리에 황태 안주를 곁들여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무너져가는 조선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유학자 최익현, 그리고 황현도 친구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마음을 달랬지요. 이뿐만 아니라 폭군 연산군도 막걸리를 좋아해 시를 남기기도 했으니,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더냐. 한 잔으로 천 가지 근심을 잊어버리네”라는 구절입니다.
이제는 사라진 풍경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집집마다 술 익는 냄새가 흘러나왔습니다. 오가는 손님들이 막걸리 한 잔 얻어 마시며 새로운 이야기를 자아내곤 했습니다. 고려 때도 조선 때도 좋은 사람과 만나 막걸리를 마시며 즐거움을 느끼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한 작가·'한잔 술에 담긴 조선’ 저자, 조선일보(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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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등급을 허하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막걸리들이 진열돼 있다./뉴스1
정부가 내놓은 주세법 개정안을 놓고 전통주업계에서 의견 대립이 팽팽하다. 핵심은 ‘막걸리에 향료와 색소 첨가를 허용한다’는 내용. 첨가물로 인정받지 못했던 향료와 색소를 제조 원료로 인정해 주세 부담을 줄이고, 신제품 개발을 장려한다는 취지다. 그동안은 향료나 색소가 들어가면 막걸리라 부르거나 라벨에 표기할 수 없었고, ‘기타주류’로 분류돼 일반 막걸리보다 8~10배 높은 세금을 내야 했다.
개정안을 환영하는 막걸리 제조사들은 “높은 세율과 막걸리 표기 불가 때문에 다양한 맛과 향의 제품 개발이 제약받아 왔다”고 말한다. 해외 수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본다. 현재 수출되는 막걸리 절반 이상이 향과 색소를 첨가한 기타주류 막걸리. 지금까지 사용할 수 없었던 막걸리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쓸 수 있게 된다면 해외 수출이 날개를 달 거란 주장이다.
주세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막걸리 업체들은 “향료와 색소 첨가가 막걸리의 전통성과 정통성을 해칠 뿐 아니라, 과일 등 지역 농산물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지역특산주 제조면허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공 첨가물을 사용하면 향과 색이 훨씬 잘 우러나고 제조 원가도 크게 낮출 수 있는데, 누가 굳이 값비싼 지역 농산물을 힘들게 사용하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우리가 세계에 알리고픈 한국의 막걸리가 과연 인공적인 향과 색소를 넣은 막걸리냐”고 묻는다. 막걸리가 쌀과 누룩, 물로만 만드는 술이라고 알았던 해외 소비자들이 인공 첨가물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실망과 배신감은 막걸리는 물론 한국 전통주 수출 전반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주세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이들은 “이미 아스파탐·아세설판칼륨 등 인공 감미료가 첨가되고 있는데, 다른 인공 첨가물만 배제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주류업계 전문가들은 “이참에 전통주 등급과 구분을 명확히 하자”고 제안한다. 일본에서는 청주(사케)에 알코올·당류·유기산·아미노산 등 첨가물을 넣으면 ‘합성청주’라고 라벨에 표기한다. 소주(쇼추)의 경우 자국 농산물을 원재료로 발효·증류하면 ‘본격소주’, 주정을 섞은 소주는 ‘혼화소주(混和焼酎)’라고 표기하고 있다. 또 ‘일본 전통주’라는 의미의 ‘니혼슈(日本酒)’라는 항목을 신설했는데, 일본산 쌀을 사용해 일본 내에서 양조한 술만을 니혼슈로 인정하고 보호한다.
우리도 막걸리를 비롯한 전통주를 명확한 기준에 따라 등급을 나눈다면, 소비자 알권리와 선택권을 충족하는 동시에 전통주 고급화와 수출 촉진에 도움이 될 듯하다. 아스파탐·향료·색소를 사용해 맛있고 저렴하게 제조한 대중적인 막걸리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도, 전통 재료와 방식을 지켜서 빚기에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고급 막걸리를 마시고 싶은 소비자도 있다. 세상은 넓고 소비자 요구와 수요는 다양하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조선일보(24-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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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유능해진 막걸리처럼… 전통에 새 활력 불어넣는 한국의 힘
[에릭 존의 窓]
격변의 80년대, 술자리도 ‘과잉’…
90년대엔 TV서 막걸리 양조 체험도
이제 유능한 젊은이들이 전통주를
디지털·자동화해 놀라운 변신 이뤄내
한국을 세계 중심에 세운 그 힘 엿보여
오늘 저녁엔 막걸리 ‘원샷’을
한국의 음주 문화와 그 문화의 토대가 되는 술은 최근 극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1980년대에 한국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저녁 식사 자리는 당시 격변하고 있던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상황을 반영한 듯 모든 부분에서 넘쳐흘렀다. 지인들과 혹은 업무적으로 만난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는 것은 물론 최대한 많은 술을 마시곤 했다. 체면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 역시 이 같은 현상에 많은 영향을 줬다.
음주 문화와 그 복잡성 그리고 변화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논의가 돼서, 이보다는 술의 발전과 취향의 변화에 더 많은 관심이 간다. 최근 한국에서 만나고 즐길 수 있는 술들은 양보다는 질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막걸리는 언제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술 중 하나였다. 1980년대에는 막걸리와 경쟁할 만한 술이 거의 없었다. 한국에서 양조된 맥주는 당시 불안정한 냉장 유통망에서도 품질을 유지하고자 첨가제를 더했기 때문에 인위적인 맛이 강했다. 수입 와인은 드물었고 한국 와인을 마신 사람들은 다시 맥주를 찾기 일쑤였다. 소주는 알코올 함량이 높고 풍미는 부족했으며, 특히 저렴한 소주에는 인위적인 화학품 향이 가득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소맥’은 소주와 맥주가 서로 보완하지 못하고 단점만 부각돼 입맛에 맞지 않는다. 술에 있어 나는 양보다는 맛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인들과 만나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기보다는 같은 공간에서 같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막걸리의 기억은 항상 맛과 경험과 관련이 있다. 부산 동래산성에서 먹은 막걸리를 곁들인 염소 고기는 친한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직접 기른 농작물을 식탁에 올리는 ‘Farm to Table(팜투테이블)’ 방식이 세계적인 각광을 받기 수십 년 전부터 이 식당은 마을에서 방목해 키운 염소를 식재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의 막걸리는 이런 ‘팜투테이블’ 방식을 따르고 있었던 것 같다.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것 같은 플라스틱 병, 대충 붙여놓은 저렴해 보이는 라벨 때문이었다. 교감도 필요했다. 침전물을 섞기 위해 병을 조심스레 흔들어야 했고, 방부제가 첨가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통 기한이 짧아 항상 신경을 써야 했다.
1990년대 ‘체험 삶의 현장’에 첫 외국인 출연자로 요청받았을 때 아주 기뻤다. 세 가지 직업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포천에 가서 막걸리를 빚는 것이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막걸리 제조 체험을 선택하고 1월의 추운 날씨에 아침 일찍 막걸리의 메카로 향했다. 그곳은 천국이자 열반이었다. 나는 흰색 작업복을 입고 (한국 옷은 늘 그렇듯이 소매 길이가 나에겐 약간 짧았다) 8시간 교대 근무를 통해 막걸리 제조의 모든 공정을 경험했다. 먼저 20㎏의 쌀을 들어 올려 산업용 밥솥에 하나씩 부었다. 밥이 다 되면 밥을 저어 효모와 섞은 후, 이를 거대한 사우나 통에 집어넣어 효모가 발효되고 밥의 겉면이 딱딱해지도록 했다. 이 공정 이후, 우리는 혼합물을 다른 방으로 옮겨 발효를 계속 진행시켰다. 발효 진행 정도가 제각각인 효모와 섞인 밥이 큰 통에 담겨 펼쳐져 있었다. 전통적인 막걸리 양조 방식을 계승한 대량생산 방식이었다. 완성되면 양조된 술을 걸러서 병에 담았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막걸리의 진가를 체험할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전통주를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받아들였다. 젊고 유능한 친구들이 막걸리 사업에 뛰어들어 전통을 유지하되 자동화 공정 도입 등 업계 전반에 걸친 디지털화에 앞장서고 있다. 1980~90년대 감성 가득했던 가내수공업 병과 저렴해 보이는 라벨도 이제 깔끔하고 멋진 병 위에 정확한 위치에 붙은 라벨로 교체됐다. 또한, 내가 가끔 방문하는 아늑한 동네 술집이 있는데, 엄청나게 다양한 수제 소주, 막걸리 및 기타 한국 술 수백 가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 술집의 주 고객층은 나처럼 추억에 잠긴 나이 든 사람들이 아니라 독특하고 어떻게 보면 새로운 전통의 맛을 즐기는 젊은이들이다. 전통을 받아들이고, 이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그 능력은 최근 몇 년간 한국을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서게 해주었다. 요즘은 서울로 돌아와 살기에 정말 좋은 시기이다.
이번 글은 막걸리 원샷하며 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전 주태국 미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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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의 '고개'
여럿이 마시는 술도 좋지만, 혼자 마시는 술에도 미덕은 있다. 가령 회식이 팀원들과의 소통을 위해 소주의 힘을 빌리는 의식이라고 정의한다면, 혼술은 스스로와의 속 깊은 대화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 가끔은 내 안의 복잡한 자아들과도 한 잔 마시며 툭 터놓고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그 대화를 누군가는 달리면서 하고, 누군가는 명상으로, 누군가는 술을 한 잔 앞에 두고 한다. 내 선택은 혼술이다. 때로는 내가 나를 더 아프게도 하고, 때로는 내가 나를 더 깊이 위로하기도 한다. 첫 혼술은 여행지에서 시작됐다.
혼자 간 여행길, 미국 한인타운의 어느 식당이었다. 설렁탕을 주문하며 생각했다. '둘이 왔으면 녹두전도 시켰을 텐데.' 고쳐 생각했다. '혼자 왔다고 녹두전을 못 시킬 건 뭐람? 남기면 되지.' 녹두전을 시키며 생각했다. '둘이 왔으면 막걸리도 시켰을 텐데.' 또 생각했다. '혼자 왔다고 막걸리를 못 시킬 건 뭐람. 녹두전도 있는데.' 그리하여 어느 가을 이른 점심, 설렁탕과 녹두전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깨달았다. 이렇게 고개 하나를 넘는구나. 마음은 가벼웠다. 기분은 씁쓸했다. 넘고 싶어서 넘는 고개가 아니었다.
지난 주말 동네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 앞 중국집을 지나려는데 고량주가 당겼다. 들어갈까 말까 문 앞에서 한참 망설였다.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삼십 년 넘게 살고 있는 '동네' '중국집'이었기 때문에. '점잖은 직장에 다니는' '나이는 한참 먹은' 저 옆집 여자는 왜 혼자 술을 마시나, 집에 무슨 일이 있나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은 궁금해할지 모른다. '어쩐지 혼자 술 마시게 생겼더라니. 게다가 고량주라니.' 수군거릴지도 모른다. 늘어난 것이라고는 잔주름과 자기 검열뿐인 이 나이 든 여자는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몹시 신경 쓰였다. 여행지의 혼술보다 동네 중국집에서의 혼술 난도가 더 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와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핑계는 유효했고, 뜨끈한 군만두를 곁들인 고량주는 마시고 싶었다. 이 고개만 넘으면 이제 혼술은 어디든 두렵지 않을 거라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중국집 문을 힘차게 열었다.
-서희선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장, 조선일보(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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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술 마시기
1970년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9년 2개월 재직한 김정렴 전 실장은 술을 좋아했지만 재직 시절 술자리를 갖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무엇보다 잡음이 나오는 것을 우려했다. 술자리에서 중요한 기밀을 누설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신 그는 집에서 혼자 식사하면서 맥주를 반주로 마시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요즘 말로 치면 '혼밥'에 '혼술(혼자 술 마시기)'을 즐긴 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밥을 혼자 먹어도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 밥을 먹는 것을 넘어 혼자 술을 마시는 것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광고 회사 이노션 월드와이드는 최근 1년간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혼자 술 마시기에 '아쉽다·무섭다·심심하다' 같은 부정적 단어보다 '즐겁다·행복하다·재미있다·편안하다' 등 긍정적 단어 비중이 높았다고 밝혔다. '혼술'을 즐기는 사람을 외톨이가 아니라 낭만을 아는 사람으로 여기는 인식도 널리 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술 하면 젊은 시절의 실연(失戀) 정도가 떠올랐는데 이제는 낭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혼자 마시기 좋은 술집도 증가하는 추세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혼자 술 마시기 좋은 곳'을 소개하는 블로그나 기사가 적지 않다. 혼술족이 늘어난 것은 나홀로족이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가를 혼자 보내는 사람이 2007년 44.1%에서 지난해 56.8%로 늘어났다. 1인 가구 비중은 2000년 15.6%에서 2012년 25.3%로 증가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때로는 혼자 술을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대부분 저녁에 집에서 맥주나 와인 한잔하는 정도지만, 주변에 혼자 마시기 좋은 술집이 있다면 생각날 때 가보겠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혼술의 장점은 마시고 싶은 시간에 마시고 싶은 양만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직장 동료, 친구에게 끌려다니며 과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의사들은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알코올 의존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은 속상한 일이 있을 때가 많다. 그것을 조건반사식으로 반복하다 보면 알코올 의존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홀로 술을 마시려면 양과 시간을 미리 정해놓고, 물과 안주와 함께 천천히, 기분 좋을 정도까지만 마시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혼술은 자신과 벗하며 마시는 자기 위로다. 제동이 풀릴 수 있다는 위험은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1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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