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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惑)] [불편한 대통령] [선거 철마다 등장하는 역술]

뚝섬 2023. 7. 27. 08:06

[혹(惑)]

[불편한 대통령] 

[선거 철마다 등장하는 역술]

 

 

 

혹(惑)

 

이한우의 간신열전

 

지난해 대통령 관저 선정 과정에 다녀간 인물이 천공이 아니라 풍수 전문가 백재권 교수임이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고 한다. 곧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하니 그건 기다려볼 일이다. 여야는 이미 이를 둘러싸고 공방이 한창이다.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 이 공방은 더욱 격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이 싸움은 이치상 보나마나 대통령실이 완패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문제는 처음 불거졌을 때 대통령실에서 "관저 이전 과정에 마지막 점검 차원에서 풍수상 문제는 없는지 짚어보기 위해 백재권 교수를 불러 의견을 들었다"고 밝히면 끝날 문제였다. 각종 신도시 건설에도 종종 풍수 전문가들이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고발했다가 대통령실은 기껏 "역술인 천공이 아니라 풍수지리학자"라는 허무한 결론만 얻어낸 셈이다. 역술인이나 풍수지리학자나? 그게 그거다. 둘 다 재미 삼아 보면 오락이지만 거기에 목숨 걸면 혹(惑), 즉 미혹되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국민의힘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낸 논평은 가관이다. "민주당 주장과 달리 지난 3월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방문했던 이는 역술인이 아닌 풍수지리학 전문가인 백재권 교수였음이 밝혀졌다." 이것만 해도 해명이 아니라 구차한 변명인데 이어진 논평은 눈뜨고 못 볼 수준이다.

"백 교수는 풍수지리학 석사, 미래예측학 박사로서 풍수지리학의 최고 권위자로 불리며 그간 풍수지리학에 대한 다수의 자문을 해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뿐만 아니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도 만나 풍수지리에 대한 조언을 한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김 여사나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는 관상 상담을 해준 것이다.

혹(惑)의 반대말은 지(知)이다. 공자는 늘 혹하던 제자 자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 앎[知]이다." 역술이고 풍수고 사(私)에 머물러야지 공(公)으로 들어오는 순간 혹(惑)이 된다.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조선일보(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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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대통령

 

[송평인 칼럼]

육참총장 공관 수염 날리며 다녀간 사람
천공은 아니었지만 관상쟁이 풍수가
손바닥 王자에서 관저 吉凶 보기까지
왕조 때도 드문 일이 공화국에서 벌어져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손바닥에 왕(王)자를 새기고 토론회에 나왔을 때만 해도 예상치 못한 이질적인 행태에 께름칙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지나갔다. 그러나 청와대 이전에 이어 대통령 관저 선택에까지 주술이 개입한 증거가 나왔다. 조선 왕조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주술에 사로잡힌 국가 지도자를 근대 공화국에서 보고 있다.

구한말의 민비는 국(國)무당을 세우고 내외치(內外治)의 만사를 의논한다고 해서 지탄을 받았다. 민비 이전에도 주술에 빠진 왕비와 후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세자 시절부터 경연 등을 통해 유교 교육을 받은 왕들은 왕비나 후궁이 무속에 빠지면 별궁에 가둬 버릇을 고치고, 심하면 폐하여 사가(私家)로 내쫓고, 더 심하면 사약을 내리기도 했다.

김건희 여사의 한 녹취록에는 스스로를 비범한 무속인으로 자처하면서 청와대는 터가 좋지 않아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취지로 단호히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당선된 뒤 대통령 집무실이 채 마련되지 않았음에도 임시로라도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았다. 터가 나쁜 곳에서는 불안해서 하루도 살 수 없는 심리가 상궤를 벗어난 고집으로 드러났다.

 

대통령 관저는 본래 예정된 육군참모 총장 공관에서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바뀌었다. 남산 하얏트 호텔 쪽에서 외교부 장관 공관이 들여다보여 차단 공사를 해야 함에도 그렇게 바뀌었다. 수염을 날리며 육참 총장 공관을 찾은 사람은 천공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수염을 날리며 누군가 다녀갔고 그 사람이 백재권이라는 관상·풍수가로 드러났다.

대통령의 사람들은 천공을 무속인 대신 역술인이라 부르더니 백 씨에 대해서는 관상은 빼버리고 풍수전문가라고 지칭했다. 주역에 담긴 지혜, 풍수에 담긴 지혜를 논리적 용어로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학자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런 학자들은 관상 따위는 보지 않고 길흉(吉凶)을 점치지도 않는다. 주술적인 역술인이나 풍수가가 관상도 보고 점도 친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면서 청와대 터는 왜 흉하고 용산은 왜 길한지 설득력 있는 설명은 없다. 풍수로 따져도 애매하다. 주술의 눈에만 길흉이 명확하다. 외교부 장관 공관이 육참 총장 공관보다 왜 적합한지도 알 수 없다. 육참 총장 공관이 낡아서라면 왜 관상쟁이 풍수가가 등장하는지 해명해야 한다. 해명할 수 없으니 숨기려 한 것이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근대(modern)를 ‘주술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근대는 공적(公的) 영역과 사적(私的) 영역의 구별 위에 서 있기도 하다. 여의도 정치인들, 정부 고위 관료들, 대기업 임원들, 전문직 종사자들이나 그 부인들이 점을 보러 다니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적 영역에서야 뭘 하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점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고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데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주술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나 대통령 관저의 선택 같은 공적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국민이 낸 세금이 주술적 결정을 이행하는 데 쓰이는 것으로 근대 국가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집무실과 관저를 옮기는 것은 왕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주술에 집착해 궁을 이곳저곳으로 옮기다 쫓겨난 왕이 광해군이다.

언론에 공개적으로 등장한 이름만 천공, 건진, 무정에 이어 백재권이다. 처음에는 김 여사만 주술에 진심이고 윤 대통령은 마지못해 끌려다니는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그가 주술로부터 얻는 심리적 안정은 공사의 구분을 뛰어넘게 만드는 정도인 듯하다. 누구나 주술에 빠지면 공사의 구분을 반드시 뛰어넘게 돼 있다.

지난해 지리산 둘레길을 돌다 산속 무속기도원 앞을 지나는데 건물이 현대식으로 말끔히 지어졌음에도 기분이 으스스해져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그런 느낌을 ‘언캐니(uncanny·독일어로는 unheimlich)’라고 불렀다. 낯익은 대상에서 이질적인 것을 접했을 때 그것이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이질감이 아니라 기분이 으스스해져서 피하고 싶은 이질감일 때의 느낌이다. 우리 대부분은 어쩔 수 없는 근대인이라 점집 앞을 지날 때 그런 느낌을 갖는다. 대통령이 지금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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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철마다 등장하는 역술

 

국민의힘 경선 후보 TV 토론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손바닥에 ‘王’(왕) 자가 그려진 것을 두고 네티즌들의 공방이 한창이다. 한쪽에선 “정상이 아니다” “21세기에 웬 미신”이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다른 쪽에선 “국민을 왕처럼 정중히 모신다는 뜻” “단순한 이모티콘에 무속 주술이라는 허깨비를 씌운다”고 두둔했다.

 

▶큰 선거가 다가오면 정가(政街)에선 미신과 관련된 온갖 소문이 떠돈다. 풍수가나 호사가들 입에서 나오는 대표적 메뉴가 조상 묘지 이장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고향 신안의 아버지 묘와 포천 천주교 공원묘지에 있던 어머니 묘를 용인으로 옮겨 합장한 후 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세 차례 대권 도전 실패 끝에 마지막 수단으로 묘지를 이장했는데 이것이 적중했다고 일부 풍수가는 말한다. 김종필, 이회창, 한화갑, 김덕룡, 이인제씨 등의 조상 묘 이장도 대망론과 무관치 않다는 말이 많았다.

 

▶무속인을 전속으로 ‘고용’해 정치활동 일거수일투족을 의존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의원은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동쪽으로 가라는 무속인의 말을 듣고 대문이 없는 동쪽 벽을 사다리를 타고 넘어갔다는 일화가 있다. 해외출장 날인데 “비행기를 타면 안된다”는 점쟁이의 만류에 일정을 연기한 사람도 있다. 풍수가를 데려와 사무실 문이나 책상위치를 바꾸기도 했다. 집권당 사무총장이 점을 보고 선거일을 잡은 시절도 있었다.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도 이따금 미신이 등장한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 후 트라우마에 시달린 낸시 여사는 남편의 일정과 안전을 점성술사에게 의지했고, 그 점성술사가 백악관의 막후 실력자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일 밤 호텔 파티 계획을 막판에 갑자기 취소하고 측근 3인방과 함께 개표 방송을 지켜봤는데, 뉴욕타임스는 “그가 미신을 믿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년 전 선거 당일 똑같은 3인방만 곁에 뒀다는 것이다.

 

윤석열 전 총장의 손바닥 ‘王’을 공격한 홍준표 경선 후보도 ‘레드 홍’ ‘레드 준표’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빨간색을 애용했다. 마스크, 넥타이는 물론이고 속옷까지 붉은 색을 입는데, 역술인의 충고 때문이라는 소문에 시달렸다.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처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운’에 미래를 맡겨야 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미신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하지만 AI 시대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지도자 선택 과정에 미신이나 역술이 개입한다는 것은 개운치 않은 일이다.

 

-윤영신 논설위원, 조선일보(2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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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손바닥의 王 두고 “지지자가 써준 것 못 지워.” 이마에 써줬어도 같은 해명 하려나.

 

-팔면봉, 조선일보(2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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