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나비’와 ‘앗싸! 호랑나비’는 다르다]
[경기 침체 막는 길은 투자뿐, 기업 발목 잡는 입법 횡포 멈춰야]
[석유 부자 ‘빈 살만’도 미래 걱정하는데]
[새 정부 정책 펴기도 전에 발목부터 잡는 거대 야당]
[이재용 “기술 기술 기술” 성장 아닌 생존 걱정하는 기업 현실]
[용산에 ‘실패 연구팀’은 있나]
‘호랑나비’와 ‘앗싸! 호랑나비’는 다르다
파격적 추임새가 히트곡 만들어… 경제 정책에도 ‘앗싸!’ 붙여보라
금융위기 때 규제 300건 완화… 빠르고 과감해야 기업이 춤춘다
1989년 가요 판을 뒤집었던 ‘호랑나비’는 다른 가수들이 두 번이나 불렀던 노래였다. 4년 전과 2년 전 같은 제목, 같은 가사로 나왔는데 반응이 없었다. 김흥국의 호랑나비는 달랐다. 난데없는 추임새들이 튀어나온다. ‘아싸!’ ‘헛, 예에~’. 비속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앨범마다 건전 가요를 한 곡씩 집어넣어야 했던 그 시절에는 파격적이었다. 쓰러질 듯 우스꽝스러운 춤도 인기몰이를 했지만, 껄쭉하고 강력한 추임새들이 노래의 팔자를 바꿨다고들 한다. 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 한 기업인이 “왜 김흥국의 호랑나비만 히트를 쳤는지 아느냐”면서 들려준 얘기다. 그는 “정부 정책에도 ‘앗싸!’가 붙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경제 부처 캐비닛마다 과거 정부가 시행했거나 검토한 정책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정부가 바뀌면서 햇빛을 보기도 한다. 몇 마디 보태고, 포장을 달리해서 발표된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책임질 일 없도록 요리조리 깎아서 밋밋해진 정책,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면서 필요한 때 맞춰내지 못하고 한 박자 늦은 정책으로는 시장과 기업을 춤추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수출이 어렵다더니 결국 지난 1분기 11년 만에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했다. 드문 일이 벌어지는 것은 정신 차리라는 신호다. 올해 성장률은 1%대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954년 이후 연간 경제성장률이 2%에 못 미친 건 4번뿐이다. 1956년(0.6%), 1980년(-1.7%), 1998년(-5.5%), 2009년(0.8%)이다. 묘하게도 마이너스나 0%대 성장률은 있었지만, 1%대는 없었다. 70년 만에 처음이다.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경제가 서서히 주저앉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세금 덜어주고, 규제 줄이고, 나랏돈 푸는 익숙한 정책들이 등장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국민과 기업 부담 최소화를 위해 부과 타당성이 약화된 부담금 23개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90개에 달하는 부담금 가운데 20년 이상 된 것이 74%에 달하는데 손질하겠다고 했다. 총리가 단장을 맡은 규제혁신추진단도 생겼다.
부족하다. 시장이 놀랄 정도로 과감해져야 한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규제를 푸는 것이다. 대기업 총수들 불러 모아 격려하고 사진 찍는 일이 아니다. 정부는 돈과 말로 일한다. 급하다고 돈을 풀면 후유증이 남는다. 성장이든 복지든 마찬가지다. 규제를 풀어야 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정부는 규제 약 1000건을 개혁 대상으로 선정해 300건 정도를 한시적으로 완화했다. 한국이 위기 탈출 우등생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공장 증설 건폐율과 용적률 규제도 포함됐다. 기업들이 원하는 대로 공장을 늘릴 수 있도록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법률 위반 아니냐”고 했을 정도였다. 당시 규제개혁위원장이었던 최병선 서울대 명예교수는 “놀랍게도, 아니 고맙게도 누구도 시비를 건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움직여야 할 시간이 또 닥쳤다.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서 못 한다는 말, 내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고 나면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은 얼마 전 “강 위에서 배를 타고 가는데 배의 속도가 너무 느리면 물에 떠 있는 건지, (배가) 가는 건지 모른다”고 했다. “속도가 더 나야 한다”고 했다. 기업들이 속도를 내서 물살을 가르게 하려면 그보다 빨리 규제를 풀면 된다.
-이진석 경제부 선임기자, 조선일보(2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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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 막는 길은 투자뿐, 기업 발목 잡는 입법 횡포 멈춰야
고물가 충격에 이어 경기 침체 공포가 몰려 오고 있다. 내년 경제 성장률이 1%대로 꺾이고 수출이 4%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다. 기업의 96%가 내년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고 했고, 대기업의 48%가 내년 채용 규모를 올해보다 줄이거나 중단하겠다고 응답했다. 수출이 두 달 연속 전년 대비 마이너스다. 모든 지표에서 침체 징후가 뚜렷하다.
경기 부양을 위해선 정부 지출을 늘리거나 금리를 내려 통화를 푸는 방법을 쓴다. 하지만 지금은 물가를 잡기 위해 오히려 돈줄을 조이고 있다. 재정·금융 완화 카드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경기 부양 방법은 기업 투자뿐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늘려야 일자리가 생기고 소비가 촉진돼 경제 활성화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경기 부양의 견인차가 되어야 할 기업들이 내년 투자 계획을 급속하게 줄일 움직임이다. 한국은행이 내년 설비 투자 증가율을 마이너스 2.8%로 예상하는 등 대부분 기관들이 투자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무라증권은 한국의 설비 투자 감소 폭이 8.2%에 달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전경련이 매출 500대 기업을 조사한 결과 48%가 내년 투자 계획이 “없다”거나 “계획조차 세우지 못했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공급망 재편’에 호응해 미국에는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대기업들도 국내 투자는 꺼리고 있다. 미국 반도체 공장 건설에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하고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국내에선 내년 시설 투자액으로 올해보다 11조원(16.6%) 감소한 금액을 책정했다. 현대오일뱅크는 3600억원 규모의 정제 설비 투자를 중단했다. 글로벌 침체에 대비해 수비형 축소 경영을 하겠다는 것이다.
기업들을 투자하도록 독려해도 모자랄 상황에서 거대 야당은 기업 활동을 더욱 위축시킬 입법 횡포를 계속하고 있다. 법인세 최고 세율을 경쟁국 수준에 맞춰 낮추자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고, 영세 기업의 주 52시간 근로제를 완화하는 법안의 연장을 거부하고 있다. 경쟁국들은 반도체 산업 육성에 총력전을 펴는데 인허가를 간소화하고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려주는 반도체 특별법도 4개월째 발목 잡고 있다. 반면 민노총 과격 노조의 불법·폭력을 조장할 ‘노란봉투법’을 밀어붙이며 기업 사기를 꺾으려 한다.
보다 못한 민주당 출신의 김진표 국회의장이 “국가 경쟁력이 달린 일”이라며 법인세법과 반도체법을 통과해달라고 중재안까지 내놓고 야당 설득에 나섰다. 반도체 경쟁국인 대만의 법인세·지방세율이 20%인 반면 한국은 27.5%에 달해 이대로면 반도체 먹거리를 대만에 빼앗기게 된다는 것이 김 의장 생각이라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야당의 법인세 반대로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이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임시국회로 넘어갔다. 아무리 여야가 싸워도 기업 투자를 가로막고 미래 먹거리를 죽이는 국가적 자해만은 멈춰야 한다.
-조선일보(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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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준생들, 취업·창업난에 高物價 생활고까지.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이지만 봄을 확신하지 못하는 현실.
-팔면봉, 조선일보(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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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부자 ‘빈 살만’도 미래 걱정하는데
[오늘과 내일]
중동 산유국도 ‘석유 없는 경제’ 대비
한국, 과거 덕 보며 미래 준비는 소홀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으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17일 한국에서 약 20시간 머물며 40조 원 규모의 ‘투자 보따리’를 꺼냈다. 37세 사우디 왕세자가 멀리까지 찾아온 건 그가 원하는 게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우디 비전 2030의 실현을 위해 한국과 협력을 강화해 나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왕세자가 언급한 ‘사우디 비전 2030’은 석유 생산이 꼭짓점을 찍고 급감하는 ‘피크오일(peak oil)’을 대비한 미래 프로젝트다. 670조 원을 투자해 사우디 북서부에 스마트시티를 건설하고 자본, 인재,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는 ‘네옴시티’ 사업이 핵심 프로젝트다. 네옴은 ‘새로운 미래(Neo+Mustapbal·아랍어로 미래)’를 뜻한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이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석유가 사라지면 국가 경제가 일순간 붕괴하고 왕국의 존립 기반도 무너진다. 하루 16시간을 일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이끈 윈스턴 처칠 총리와 손자병법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젊은 사우디 왕세자가 이 ‘예정된 미래’를 모를 리 없다.
전례도 있다. 산유국 노르웨이는 경제 다각화로 석유 의존에서 벗어났다. 1966년 유전을 발견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도 항만, 공항 등에 투자하고 시장을 개방해 ‘석유 없는 미래’를 대비했다. 이제는 두바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석유 비중이 1% 미만이다. 카타르는 21일 월드컵 개최에 성공하며 국가 이미지를 새로 만들고 있다. 사우디도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한국을 찾아 “수교 이래 한국 기업들이 사우디의 국가 인프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1970, 80년대 중동에서 땀을 흘린 ‘한강의 기적’ 세대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 것이다. 당시 중동에서 한국 건설 노동자들은 ‘코리안 아미(Korean Army)’로 불렸다. 집단체조로 하루를 시작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며 공기를 앞당기는 그들이 중동 사람들에겐 일사불란하고 신속한 군대처럼 보였다. 그들의 땀과 눈물이 오늘날 빈 살만을 한국으로 이끈 셈이다.
한국은 과거 덕분에 먹고살면서도 정작 후손들에게 물려줄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데는 소홀하다. 주력산업인 반도체가 미국 대만의 견제와 중국과 일본의 맹추격을 받고 있는데도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법안들은 ‘대기업 특혜’라는 낙인이 찍혀 석 달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120조 원이 투자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물을 끌어오는 시설 인허가에 1년 6개월이 걸린다. 정부가 서비스업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며 발의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11년째 ‘재추진’만 반복하고 있다.
올해 무역적자가 400억 달러를 넘고 1인당 GDP가 20년 만에 대만에 추월당할 판이다. 인구는 줄고 빠르게 늙고 있다. 내년엔 1%대 성장 전망도 나온다. 경제 전문가의 97%가 “한국 경제가 위기 상황”이라는데 국회는 정쟁으로 예산안 심사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
두바이 지도자였던 라시드 빈 사이드 알막툼은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낙타를 탔다. 나는 벤츠를 타지만 증손자는 다시 낙타를 탈 수 있다”며 석유 없는 미래를 대비했다. 덕분에 그들의 후손들은 아직 ‘벤츠’를 탄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교과서에도 실리는 ‘한강의 기적’ 과실을 먹고 자란 한국 정치 지도자들은 후손들에게 정쟁과 갈등만 물려줄 건가.
-박용 부국장, 동아일보(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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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정책 펴기도 전에 발목부터 잡는 거대 야당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당 회의에서 윤석열 정부의 법인세 인하 정책 등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이 감세 등 새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해 줄줄이 반대 입장을 밝혔다. 법인세 인하는 “대기업 특혜”, 보유세 경감은 “부자 감세”라고 했다. 삼성전자의 최대 경쟁자인 대만 TSMC가 부담하는 법인세율이 11% 정도다. 그런데 민주당은 2017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올려놓았다. 윤석열 정부가 그것을 원래 대로인 22%로 되돌리려는 데도 안 된다는 것이다. 민간 경제 활력을 위해 새 정부가 준비한 세금 및 규제 완화, 신산업 정책은 대부분 입법 사안이다. 국회 170석을 장악한 민주당이 반대하면 새 정책은 첫발도 떼기 어렵다.
민주당은 윤 정부의 경제 정책을 “이명박 정부 실패의 재탕”이라고 했다. 출발도 못 하게 막으면서 ‘실패’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발 빠른 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주요국 중 가장 빨리 위기 탈출에 성공했다. 반면 민주당 정권은 5년 내내 마차가 말을 끈다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 등으로 나랏빚만 400조원 늘리고 부동산 값을 폭등시켰다. 그 ‘실패’ 때문에 정권까지 내줬다. 그러고도 반성은 고사하고 새 경제 정책의 발목부터 잡고 있다.
민주당이 총리 인준을 미루는 바람에 새 정부는 총리와 주요 장관 없이 출범해야 했다. 대선 패배 직후엔 문재인 정권과 이재명 의원 관련 수사를 막으려고 국민 60% 이상이 반대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을 힘으로 통과시키기 대통령 집무실 이전까지 어깃장을 놓았다. 그것도 모자라 윤 정부의 행정 입법 권한을 통제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하더니 국회 예결위를 상설화하는 법안까지 내놨다. 새 정부의 행정 권한과 예산권마저 자신들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것이다. 횡포란 말이 틀리지 않다.
지금 국가적으로 심각한 경제·안보 위기를 겪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유가가 민생을 위협하고, 생산·소비·투자가 일제히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북한은 7차 핵실험을 예고했다. 정부가 경제와 민생 현안들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일단 일할 수 있는 기본적 조건은 마련해주는 것이 야당의 정치적 상례였다. 지금 민주당은 그 상식을 깨고 있다. 피해를 보는 건 국민이다.
-조선일보(2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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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기술 기술 기술” 성장 아닌 생존 걱정하는 기업 현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제 12일간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고 했다. 출장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저희가 할 일은 좋은 사람 모셔오고, 유연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핵심 인력과 기술 리더십 확보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길임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이 부회장이 유럽 출장길에 올랐던 7일은 부친 고 이건희 회장이 29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을 한 날이기도 하다.
요즘 삼성전자의 기술 초격차는 위기를 맞고 있다. 10만 원을 꿈꾸던 주가는 5만 원대로 추락했다. 세계 1위 메모리반도체는 후발주자와의 기술 격차가 급격히 좁혀지고 있다. 전체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비메모리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는 대만 TSMC에 큰 격차로 뒤처진다. 후발 주자인 미국 인텔까지 네덜란드 ASML과 초미세 공장에 필수적인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도입에 먼저 성공하며 삼성전자를 추격하고 있다. 외부 리스크도 그칠 날이 없어 러시아는 반도체 핵심 소재인 네온과 아르곤 등 희귀가스를 무기화하고 있다. 성장이 아니라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삼성은 향후 5년간 반도체·바이오·신성장 정보기술(IT)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45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마저도 새로운 성장산업을 찾아 최근 몇 년간 대대적인 인수합병 투자에 나선 해외 경쟁 기업들에 비해 많이 늦었다. 사법 리스크와 매주 재판 일정으로 발이 묶였던 이 부회장은 “목숨 걸고 하는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기업들이 기술 리더십 확보에 노심초사하고 있지만, 그동안 국내 정치권은 한가하다 못해 거꾸로 달려왔다. 기업들이 아무리 기술 인력 부족과 규제 올가미를 호소해도,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고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다. 그 사이에 해외 경쟁국들은 인력 확보부터 세제 지원까지 정부가 앞장서 기업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이제라도 신발 끈을 다시 매지 않으면 기술 초격차 시대에 순식간에 낙오할 수 있다.
-동아일보(2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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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실패 연구팀’은 있나
윤석열 대통령이 5월 3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대회의실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뉴시스
2020년 12월 30일,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2020년 10대 성과’ 보고서를 제출했다. ‘세계 표준이 된 K방역, 위기에 강한 경제, 총선 압승, 권력기관 개혁’ 등 10항목이다. 그는 “경제와 방역에서 성공한 사실상 유일한 나라” “역대 정권이 20년 걸릴 일을 우리 정부가 다 했다”고 보고했다. 문 대통령은 흐뭇했을 것이다. 그해 총선에서 압승했고 ‘야당복’이라는 말처럼 견제 세력은 지리멸렬했다. ‘20년 집권론’이 나올 법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는 민심의 뇌관이던 부동산,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갈등, 서해 공무원 총격 사건은 없었다. 노 실장은 “잘못한 것이야 야당과 언론이 도배를 하지 않느냐”며 “대통령은 인터넷 댓글까지 다 본다”고 했다. 이렇게 민심을 취사선택한 권력은 1년 3개월 뒤 정권을 잃었다. 180석으로 가득 채워졌던 권력의 술잔은 순식간에 텅 비었다. 권력 내부에서 부동산과 대북 정책, 권력의 오만함에 경고등을 켰다면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쓴소리를 좋아하는 권력자는 없다. 이 때문에 참모들은 대통령이 기뻐할 성과 홍보만 궁리할 뿐 실패를 연구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보좌했던 정치인들에게 왜 쓴소리를 못 했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당신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 같으냐”는 답이 돌아온다. 역사는 쓴소리하다 사약(賜藥)을 받는 신하를 충신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진정 유능한 신하는 옥쇄(玉碎)하는 대신 왕의 마음을 움직인다. 현대에는 쓴소리니 충신 같은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대통령과 참모가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레드팀(red team)’과 ‘실패 연구팀’이다.
레드팀은 조직 내에 두는 ‘가상 적군’이다. 적군의 눈으로 우리 약점을 짚어내 강한 아군을 만든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물론 아마존, 구글 같은 기업들은 레드팀을 뒀다. 실패 연구팀은 실패 책임을 묻기보다 실패 원인을 분석해 같은 오류를 예방한다. 레드팀과 실패 연구팀이 성공하려면 리더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지금 용산에 레드팀과 실패 연구팀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몸담았던 검찰은 ‘검사 동일체’라는 독특한 조직 문화를 갖고 있다. 단일성, 효율성은 있지만 다양성, 유연성이 부족하다. 여기에 대통령의 ‘화끈한’ 스타일 때문에 대선 과정에서 레드팀 역할을 했던 인사들은 마음고생이 컸다고 한다.
-정우상 정치부장, 조선일보(2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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