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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꽃밥] [부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뚝섬 2023. 5. 15. 10:59

[진주의 꽃밥] 

[부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진주의 꽃밥

 

[조용헌 살롱] 

 

강호를 돌아다니면서 얻게 되는 가장 큰 즐거움은 그 분야의 고수를 만날 때이다. 고수를 만나보아야 안목이 트이고 겸손을 배우게 된다. 잘난 체하다가 고수를 만나 얻어터질 때 공부가 된다.

 

진주에 사는 지인의 소개로 만난 박미영(60) 선생. 진주 교방(敎坊) 음식의 전문가로서 아름다움에 반하고 맛에 취하다는 묵직한 인문 음식 책을 썼다. 교방은 고려 때부터 있었고, 조선 시대에도 이어졌던 기생 양성 기관을 가리킨다. 춤과 노래도 배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음식이었다. 당시 최고 수준의 음식은 교방에서 전문 요리 교육을 받았던 기생들이 내놓는 음식이었다.

 

기생을 거론할 때는 보통 ‘남진주 북평양’을 꼽는다. 남쪽의 진주가 그만큼 색향으로 유명했고, 비례해서 음식도 수준이 높았던 것이다. 식색동원(食色同源)이다. “진주는 지리산에서 나오는 각종 나물이 집결했고, 남해 바다의 생선도 풍부했습니다. 거기에다 주변에 들판도 넓었죠. 특히 지리산에서 공급되는 땔감나무가 풍부해서 화력이 좋았습니다. 우시장도 컸고, 소를 도살하는 백정들의 수도 가장 많아서 소고기가 풍부했죠. 이런 요소가 영향을 미쳤어요.” 박 선생이 꼽는 교방 음식의 최고는 바로 비빔밥이었다. ‘꽃밥’이라고도 불렀다. 화반(花飯). 색깔이 컬러풀해서이다. 음식도 일단 색깔이 좋아야 한다.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고 영양가도 풍부했다.

 

교방 비빔밥의 시작은 진주에 살았던 고려 귀족 집안의 영향이었다. 강감찬 장군과 함께 거란의 60만 대군을 물리쳤던 강민첨(姜民瞻·?~1021) 장군의 제사 음식이 육회 비빔밥의 원조였다. 강민첨 장군의 제사상에는 익히지 않은 생소고기가 올라갔다. 크기는 A4 용지만 하고, 두께는 대강 4~5센티 정도의 소고기가 날것으로 올라갔다. 제사가 끝나면 후손들이 생소고기를 잘게 잘라서 밥에다가 얹어 먹는 전통이 동안 이어졌다. 여기에서 진주 비빔밥(꽃밥)을 대표하는 ‘육회 비빔밥’이 시작되었다는 게 박 선생의 주장이다.

 

진주에는 조선 개국공신 하륜(河崙·1347~1416)의 후손들인 하씨들의 비빔밥도 있다. 7가지 나물 위에 육회 대신 육전을 올리는 게 특징이다. 탕국에는 반드시 피문어를 넣었다. 고려 말 문신 상촌 김자수(金子粹) 집안의 비빔밥도 화려하다. 18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육회, 송이버섯 그리고 각종 나물이 들어간다. 봄철 지리산의 온갖 나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봄을 먹는다’고 할 정도의 약밥이었다고 한다. 진주는 꽃밥의 도시였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조선일보(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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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옛 지수초등학교에 있는 재벌송. 연암 구인회와 호암 이병철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당초 3그루의 소나무가 있었는데, 한 그루는 죽고 남은 두 그루도 뿌리가 합쳐져 한 그루로 보인다.

 

‘투자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산다. 전 세계 투자자들은 좋은 기운을 받으려 오마하에 있는 그의 집 앞을 순례하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한다. 한국에도 그런 장소가 있다. 경남 진주의 지수초등학교다. 놀랍게도 이 시골 학교에서 한국 경제계의 큰 인물이 셋이나 배출됐다. 연암 구인회, 호암 이병철, 만우 조홍제는 각각 LG, 삼성, 효성 창업자로, 지수초등학교에서 동문수학했다. 운동장에는 부자 나무로 불리는 소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초석을 세운 연암과 호암이 이 작은 운동장에서 함께 뛰어놀았다고 생각하면 참 신기하다.

 

흥미로운 건 대한민국 정보화의 초석을 닦은 창업자들이 모두 86학번이라는 것이다. 네이버의 이해진, 다음의 이재웅, 카카오의 김범수, 넥슨의 김정주가 그렇다. 심지어 이해진은 이재웅과 강남의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자랐고, 김범수와는 사업 초창기 동업자였으며, 김정주와는 대학원 기숙사에서 한방을 썼다. 특정 세대가 한 분야에서 시대를 풍미하는 건 분명 개인의 능력만은 아니다. 그들은 한국 경제가 호황으로 접어들던 시기에 모두 청소년기를 보냈고, 또래보다 먼저 컴퓨터를 접하는 행운도 가졌다.

 

미국의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도 1955년생 동갑이다. 동갑내기 두 사람이 웹과 모바일 생태계의 지배자로 성장한 것 역시 시대가 준 선물이었다. 언젠가 빌 게이츠는 열두 살이 되던 1967년에 다니던 사립학교에 처음 컴퓨터 단말기가 설치되었고, 컴퓨터실에서 살다시피 하였다는 인터뷰를 했다. 만약 빌 게이츠가 공립학교에 다녔다면 개인 컴퓨터를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을까. 진취적인 열정주의자들도 나이가 들며 일정 부분 운명론자가 되지 않는 건 힘든 일이다. 작은 성공은 개인의 열정과 노력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거대한 성공은 시대의 도움 없이 결코 불가능하다.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2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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