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대통령실 개편 한 달 만에 실장 교체, 무슨 일인가] ....

뚝섬 2023. 12. 29. 08:05

[대통령실 개편 한 달 만에 실장 교체, 무슨 일인가]

[김대기 교체… 쓴소리할 수 있는 비서실장]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은 다 그렇다고?]

[정실인사도 부패다]

[지지율 떨어뜨린 말… “이전 정부보단 낫지 않습니까?”]

[대통령에게 쓴소리하는 티타임을 만들라]

[尹 앞길 막는 구태 윤핵관과 보신주의 비서실장·총리]

[지금은 ‘낮은 자세’가 답이다]

 

 

 

대통령실 개편 한 달 만에 실장 교체, 무슨 일인가

 

김대기 비서실장, 신임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이관섭 정책실장, 성태윤 신임 정책실장, 장호진 신임 국가안보실장이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물러나고 이관섭 정책실장이 후임으로 임명됐다. 새 정책실장은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맡게 된다. 조태용 국정원장 지명에 따라 공석이 된 안보실장에는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이 임명되면서 대통령실 3실장이 모두 교체된다. 여권 관계자는 “새해를 맞아 정부·여당과 함께 대통령실 참모진도 일신하자는 차원”이라고 했다. 여당 한동훈 비상대책위 체제가 출범한 만큼 대통령실도 이에 맞춰 새 진용을 갖췄다는 뜻이다. 비서실장은 격무에 시달리는 자리여서 역대 정권에서도 5년 임기 동안 실장은 두 번가량 바뀌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3실장 전원 교체 인사는 상궤를 벗어났다는 인상을 준다. 지난달 30일 대통령실을 2실장 체제에서 3실장 체제로 조직 개편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인 데다, 그때 신설된 정책실장에 “정책 조율의 최적임자”라는 배경까지 설명하며 임명했던 이관섭 실장을 한 달도 안 돼 비서실장으로 이동시킨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비서실장을 교체할 계획이었다면 대통령실 조직 자체를 뜯어고치는 수술을 했던 그 시점에 새 인물로 바꾸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또 대통령 마음속 새 비서실장이 이관섭 실장이었다면 정책실장을 맡을 사람을 따로 찾는 것이 합당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인사가 급작스럽게 이뤄지게 된 다른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궁금증을 낳게 되는 것이다.

 

지난 3월 초대 김성한 안보실장 교체도 전 세계에 나가 있는 해외 공관장들이 1년에 한 번 서울에 모여 회의를 갖는 시점에, 의전비서관, 외교비서관의 사퇴에 이어 뚜렷한 설명도 없이 이뤄지면서 여러 가지 뒷말을 낳았다. 대통령실 인사는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목표를 향해 어떤 방식으로 국정을 이끌고 가겠다는 대국민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선 내각 장관 인사보다 더 중요하다. 그런 중요한 인사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상식적이어야 하고 안정감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선일보(23-12-29)-

_______________

 

 

김대기 교체… 쓴소리할 수 있는 비서실장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어제 교체됐다. 유임될 듯했던 김 실장의 갑작스러운 교체 배경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본래 정부 개각과 새해 예산안 처리, 국민의힘 지도부 교체가 일단락된 뒤 비서실장 교체를 통해 쇄신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는 게 대통령실 측 설명이다.

장관 등의 인사 검증 실패나 정책 혼선이 빚어질 때마다 김 실장 교체설이 제기됐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고비마다 김 실장에 대한 신뢰를 표시하면서 1년 8개월을 끌어왔다. 대통령실이 이관섭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을 신설한 정책실장에 임명하면서 대통령실을 비서실장 정책실장 안보실장 3실장 체제로 개편한 것이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김 실장 교체로 공백이 된 자리에는 이 실장이 옮겨가고 새 정책실장에는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임명됐다. 한 달 만에 다시 자리를 바꾸는 교체를 할 바에야 비서실장도 한 달 전 개편 때 교체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나 하는 반응도 있다.

김 실장은 과거 기획예산처와 청와대 정책실장 출신으로 각 부처의 일을 두루 알고 있기 때문에 외교와 안보를 뺀 제반 분야에 대한 조언을 했을 것이나 연금 노동 교육 등 주요 개혁의 추진이나 금리인상기의 부동산이나 물가 정책이 그리 성공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는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논란성 발언을 제어하지 못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어스테핑을 없앤 후 제대로 된 기자회견 한번 주선하지 못해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유지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부산 엑스포 유치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오판이 끝까지 이어진 것은 외교라인의 책임만으로 보기 어렵고 최측근에서 시중의 상식적인 판단을 가감없이 전달하지 못한 비서실장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실장은 1년 전 국정기획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이후 ‘왕수석’으로 불리며 김 실장을 보좌해 왔기 때문에 김 실장의 갑작스러운 교체로 인한 업무의 공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회전문 인사가 늘 그렇듯이 그가 선임인 김 실장의 실패까지도 답습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대통령실이 예스맨과 충성파들로만 가득 차 있다는 비판이 나온 지 오래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에 머물고 있다. 국정의 혁신을 위해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비서실장이다.

 

-동아일보(23-12-29)-

_______________

 

 

 ○  73년생 여당 대표, 70년생 용산 정책실장. 물리적 나이보다 중요한 건 미래를 개척할 투지와 비전.

 

-팔면봉, 조선일보(23-12-29)-

_______________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은 다 그렇다고?

 

[김순덕의 도발]

 

아무래도 길게 못 살 것 같다. 독한 글 쓰고 험한 욕 먹으면서 제 명대로 살 리 없다. 26일자 신문에다 ‘정실인사는 부패다’ 칼럼을 쓰고 나서도 나는 속이 쓰렸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알고 보면 ‘김명수가 망친 대법원’을 개혁할 적임자라는 중학교 동창 카톡을 보니 장이 더 꼬이는 듯했다(그는 같은 서울대 법대 80학번이다). 그럼 국회에서 임명동의안 부결당하지 말아야 할 게 아니냐고!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증여와 관련한 국회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왼쪽). 오른쪽은 이달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행사에서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동아일보DB,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또 다른 변호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사법정상화를 시킬 수 있는 정통 법관이라고 했다. 그들은 공직자 재산등록 누락이나 세금 탈루 같은, 민간인에게 예민한 문제엔 관심도 없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알겠다. 윤석열 정부에서 왜 국민 억장 무너지게 만드는 인사가 자꾸 이어지는지. ‘그들 눈높이’에선 그런 게 문제로 안 뵈는 거다.

왜 재산신고 누락, 부동산 보유, 증여세, 이해충돌, ‘부모 찬스’ 문제가 장관 후보자들한테서 계속 나오느냐는 야당 질의에 11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을 주요 보직에 쓸 때는 대개 비슷한 문제가 나오게 돼 있다고.

 

● 상류층엔 그 정도 부패가 보통인가

 

가히 핵폭탄급이다. 털지를 않아서 그렇지, 이 정도 문제 있는 고위공무원은 수두룩하다는 얘기가 아닌가 말이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고위공직자의 등록재산을 심사해야 하고 거짓 기재한 경우, 빠트리거나 잘못 기재하는 경우엔 해임까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균용처럼 10년 이상 재산등록을 빠트리는 게 별일 아니라고?

 

검찰 출신 장관이 그리 본다면 검찰 출신 수두룩한 공직기강비서관실, 심지어 윤 대통령도 같은 사고일 게 분명하다. 어쩌면 일만 잘하면 되지, 그까짓 법률 위반이 뭔 문제냐고 생각할지 모른다(같은 ‘패밀리’끼리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러고 보면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이면서도(2022년엔 13등으로 떨어지긴 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 부패인식지수가 OECD 38개국 중 22등, 하위권에서 맴도는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경제적 성공이 강조되는 물질주의 문화, 불평등한 사회 속에 부패가 창궐하는데 폐쇄적 사회연결망, 가족주의, 연고주의가 부패의 기회구조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신동준 국민대 교수 2023년 ‘부패의 원인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 그러고 보니 그려지지 않는가. “우리가 남이가” 같은, ‘아는 형님’ 있어 끈끈하고 든든한, 우씨 그들끼리는 살기 좋은 더러운 세상.

● 애들 볼까 겁나는 인사청문회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이달 11일 국회에서 열린 법무부 국정감사에 출석한 모습. 이훈구 기자

 

그러나 평범한 국민들은 그렇게 간이 크지 않다. 한동훈 발언은 정직하게 세금 내며 살아온, 그러면서도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다. 또 다른 원로 법조인도 사람을 안 찾아서 그렇지 다 그렇진 않다고 했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은 대통령실 인사기획관실에서 추천 후보를 지명하면 1차 검증 자료를 제공할 뿐이라고 했다. 이 말은 즉, 대통령실에서 ‘문제 있는 사람들’만 쓰려 한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이 최고의 인재들을 폭넓게,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라도 찾아 쓸 생각은 않고 그저 ‘아는 사람’ 속에서만 지명하니(이것이 정실인사이고 부패의 일종이다), 또각또각 말 잘하는 한동훈이 ‘싸가지 없는’ 소리를 한 건 아닌가.

설령 대통령 주변에선 다 그렇게 산다 해도 그게 옳은 건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이미 공직재산신고 누락, 부동산 보유, 증여세 미납, 업무 관련 특혜와 이해충돌, 부모 찬스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면, 정말 입에 올리고 싶진 않지만 전 법무부 장관 조국은 왜 1심 유죄를 받았는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진짜 그런 문제가 있는데도 처벌은커녕 장관으로 출세하는 ‘윤석열 세상’이 옳다면, 애들 교과서를 바꿔야 할 판이다. 그런 청문회를 볼 때마다 보통 사람들이 얼마나 분노하는지, 부모 찬스 없는 청년들이 얼마나 절망하는지 밴댕이 소갈딱지만큼이라도 헤아려본다면,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은 다 그렇다”며 그따위 인사를 계속할 순 없다.

‘자녀 입시 비리·감찰 무마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18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반듯한 장관감’ 폭넓게 왜 못 찾나

 

만일 꼭 필요한 인재인데 국민 눈높이에선 문제 있을 것 같다면, 대통령실에서 쓰기 바란다. 그리고 청문회가 TV로 생중계되는 장관 자리엔 ‘반듯한’ 인물을 앉히는 거다. 그래야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고, 체제 정당성을 믿게 되고, 나도 성실하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 장관 후보자가 유능한 사람이면 더 고맙다. 공무원들은 정신을 번쩍 차릴 것이고 청년들 가치관도 달라질 것이다. 이 정부는 연고주의 아닌 능력주의라는 믿음이 생긴다면, 대통령 지지도는 자연히 올라간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북유럽 같은 부패 없는 선진국에서 살 수도 있다.

(잠깐 막말을 써도 된다면, 어차피 중요한 일은 대통령실에서 그리고 대통령이 내려보낸 실세 차관이 다 하는 윤 정부다. 장관한테 힘을 실어주지도 않으면서 굳이 문제 있는 인물을 임명해 ‘보수=부패’ 이미지를 부풀린 건 없지 않은가.)

신문 칼럼 끝에 나는 ‘차라리 국민들 속 뒤집히지 않게 인사청문회를 없애는 게 낫다’고 썼다. 인사청문회를 하는 나라는 대통령제인 미국, 필리핀, 우리밖에 없다. 모처럼 전임 대통령 호소를 받아들여 사전 인사검증과 공개청문 2단계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신문 공간이 모자라 못 썼지만 사실, 내가 그 뒤에 붙이고 싶었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아니면 반듯하고 유능한 장관감을 갖다 앉히든지!’


-김순덕 대기자, 동아일보(23-10-27)-

_____________

 

 

정실인사도 부패다

 

[김순덕 칼럼]

공직자윤리 안 보인 대법원장 청문회
‘아는 사람’ 찾는 윤 대통령 인사 특징
세금 탈루로 부자 된 그들 봐야 하나
이럴 바엔 인사청문회 차라리 없애길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9.20 뉴스1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한 달이 넘었다. 지난달 24일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임기가 끝나면서 지금껏 비어 있다. 6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35년 만에 국회에서 부결되자 대통령실은 “야당의 일방적 반대로 초유의 사법부 장기 공백 사태를 초래했다”고 야당을 비난했다. 1988년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때는 이러지 않았다. 그때도 여소야대였고 신문에 ‘정권의 사법부 지배 구태에 제동’, ‘다루기 편한 사람 내세운 것부터 잘못’ 제목이 나온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부결 이틀 만에 신망 있는 이일규 전 대법원 판사를 새 후보자로 지명해 사태를 수습했다.

이균용 사태 때는 내내 불편했다. 아니, 장관 인사 청문회를 할 때마다 보수 정부에서 출세하는 사람들의 민낯을 보는 듯해 낯 뜨겁고 민망했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엘리트 법관도 70억대 자산가가 될 순 있다. 그들은 개발독재 시절 정경유착 등으로 치부한 실력자나 재벌 일가도 아니다. 그런 시대는 지났다.

79학번 이균용은 공부 잘해 제 힘으로 출세했고, 결혼도 잘해 부를 일군 ‘특권 중산층’에 속한다. 특히 ‘사법’(시험 합격자 미혼 남성)들에게는 ‘노블레스’(상류층 미혼 여성)를 연결해주는 마담뚜가 숱하게 접근했다고 한다. 문제는 혼자 잘나서 그 자리에 올랐다고 믿는 대한민국 상위 10%의 ‘뉴 하이’ ‘뉴 리치’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공직자 윤리도, 준법의식이나 시민정신도 안 보였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균용은 국회 동의 없이는 임명될 수 없는 대법원장 후보자여서 거기서 끝났지만 윤석열 정부 내각엔 그 못지않은 장관들이 적지 않다.

물론 보수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임 대법원장 김명수는 강남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아들 부부를 관사에 불러들여 살면서 ‘관사 테크’를 시킨 것이 드러나 뻔뻔함엔 좌우 없음을 보여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딸의 입시 비리 등의 혐의로 1심 유죄 선고를 받음으로써 도덕성을 코에 걸었던 문재인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다르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수 국민이 윤 대통령이 내건 공정과 상식에 환호한 게 아니었던가.

인사 검증을 책임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 모든 흠을 알고도 이균용을 인사청문회에 올린 것은 그가 대통령의 친구의 친구였기 때문일 터다. 윤 정부 인사의 또 다른 특징이 대통령의 초중고교 및 대학 동창, 검찰 특수통, 심지어 영부인의 측근 등 ‘아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문 정권이 좌파 이념으로 뭉친 이권 카르텔이었다면 윤 정부는 ‘윤석열과 친구들’이다. 첫 내각 19명 중 10명이 서울대, 그중 절반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었으니 말이다.

윤 대통령은 “그럼 전 정권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자부한 바 있다. 그럼 아는 사람을 쓰지 모르는 사람을 쓰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최근 ‘대통령 비서실장 791일’을 출간한 노태우의 비서실장 정해창은 노 대통령이 자기가 모르는 사람을 장관 등 요직에 많이 기용했다고 했다. 비서실에도 출신과 배경을 가리지 않고 한국 최고의 인재들을 썼다는 것이다. 36% 득표율로 취임한 그가 56.8%의 긍정 평가(미디어리서치)로 퇴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용인술 덕분이라고 했다.

올 8월 갤럽 정책 분야별 평가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가장 못한다고 평가받는 것이 공직자 인사다. 잘했다는 응답이 달랑 19%, 북한 문제(40%)나 복지(37%), 외교(36%)에 비해 한참 뒤진다. 더 큰 문제는 공직에 아는 사람을 앉히는 연고주의, 정실인사가 국제투명성기구(TI)에선 뇌물, 공적자금의 횡령, 공직의 사적 이용, 국가포획과 함께 ‘부패’로 분류된다는 사실이다. 올 1월 TI가 발표한 2022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한국은 63점으로 180개 국가 중 31위다. 전년 대비 점수와 국가순위는 1점, 1등급 올랐지만 공직사회와 관련된 정치 부패 점수가 내려간 것은 심각하다.

우리나라가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고도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대의 ‘완전한 선진국’이 못 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본다. 윤 대통령이 인사청문회에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사람들만 자꾸 세운다면 희망도, 체제 정당성도 주기 어렵다. 대한민국 상위 10%가 탈세, 탈루, 꼼수, 부모 찬스로 혼자 잘살겠다고 난리인데 어떤 청춘이 성실히 노력하며 살겠는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국민들 속 뒤집히지 않게 인사청문회를 없애는 게 낫다.

 

-김순덕 대기자, 동아일보(23-10-26)-

____________

 

 

지지율 떨어뜨린 말… “이전 정부보단 낫지 않습니까?”

 

[박성민의 정치 포커스]

이전보단 낫다는 尹 대통령 인식에 실망감.. 비판 인정 안 하고 반박 앞세운 文 정권 닮나
부정 평가가 55% 웃돌면 중도층 등돌린 것.. ‘매우 못함’이 ‘매우 잘함’의 3배로 민심 이반
대통령을 위기로 몰고 가는 참모 바꾸고 지지 기반 넓혀야 위기 벗어날 수 있어
 

 

“원인을 잘 알면 어느 정부나 잘 해결했겠죠.”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 수행 부정 평가가 높게 나오는 원인’을 묻는 취재진에게 내놓은 대답이다. 이런 말도 덧붙였다. “원인은 언론이 잘 알지 않습니까.” 언론 비판을 수긍할 수 없다는 태도가 읽힌다. 지난달 이 지면에서 민주당을 향해 한 말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그대로 돌려줘야 할 것 같다.

 

정치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자기 생각대로 세상을 바꿀 힘이 있거나, 아니면 현실에 맞춰 생각을 바꿔야 한다. 독재가 불가능한 시대니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보다 세상이 윤 대통령을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 대통령이 인정하든 안 하든 현재 지지율은 분명한 위기다.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가 35%를 밑돌고, 부정 평가가 55%를 웃돌면 스윙보터인 중도가 등을 돌린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만이 아니라 어떤 이슈든 35% 대 55%가 민심의 임계점이다. 최근 발표한 조사 모두 이 구간에 들어왔다.

 

 

7월 14일 발표한 NBS(전국지표조사) 조사와 15일 발표한 갤럽 조사를 보면 질적 지표는 더 안 좋다. 단순 수치는 NBS가 긍정 평가 33%, 부정 평가 53%, 갤럽은 긍정 평가 32%, 부정 평가 53%로 비슷했다. 하지만 4점 척도(보기가 4개)로 물은 NBS 조사 결과 ①매우 잘하고 있다 10% ②잘하는 편이다 23% ③잘못하는 편이다 22% ④매우 잘못하고 있다 30%로 매우 잘함과 매우 못함이 3배까지 벌어졌다. 갤럽 조사에서 주목할 지표는 중도층에서 긍정 평가 26%, 부정 평가 58%로 부정 평가가 2배 이상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모든 정권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열심히 하는데 홍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도 똑같다. 윤 대통령은 19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과 수석비서관들에게 “장관만 보이고 대통령이 안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좋습니다. 스타 장관과 원 팀이 돼 국정 운영을 합시다. 자신감을 갖고 언론에 자주 등장해서 국민에게 정책을 자주 설명해달라”며 적극적인 언론 소통과 정책 홍보를 주문했다.

 

헛다리를 짚었다. 대선에서 윤석열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지지를 철회한 이유가 정책 때문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기조와 정책 방향은 적어도 정권 교체를 지지했던 사람들 요구에는 대체로 부응하고 있다. 도어스테핑 때문에 대통령만 보인다는 비판도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그게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 기반은 원래 취약하다. 팬덤도 없고 지역 기반도 없다. 보수층과도 일체감이 약하다. ‘상대가 싫어서’ 마지못해 찍은 중도층도 꽤 된다. 문재인 정권 이후 극단적 진영으로 나뉜 터라 아무리 잘해도 지지율이 55%를 넘기가 쉽지 않다. 출범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지방선거가 있었고 경쟁자였던 이재명이 보궐선거에 이어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기 때문에 대선 연장전이 또 연장된 탓도 있다. 게다가 검찰총장에 임명된 순간부터 가장 강력한 뉴스메이커가 된 지 3년이나 됐기 때문에 피로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현실적 지지율 목표는 55% 정도일 것이고 실제로 6월 초에 거의 근접했다. 이 정도면 국정 동력으로 충분하다. 회복할 기회는 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했지만 그렇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그립다”거나 “이재명이 돼야 했나 봐” 하는 말이 들리는 것도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민주당의 비판은 대체로 옳은 얘기지만 “다 맞는 말인데 민주당이 할 말은 아니지”라는 말에 반박할 수도 없다.

 

지지율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세 번이나 승리를 가져온 ‘선거 연합’을 깬 것이다. 모든 정권이 같은 이유로 위기를 자초했다. “이준석 때문에 대선 질 뻔했다”거나 “이준석을 내쳐야 지지율이 오른다”는 말은 민주당 강경파가 “개혁을 밀어붙여야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주장만큼이나 무책임한 선동이다. 이준석 대표 리더십 평가는 별개로 하더라도 이준석 대표 체제를 ‘보수의 혁신’으로 받아들인 중도층과 2030 세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준석을 내치는 순간 이들도 등을 돌렸다. 지금 국민의힘에서 벌어지고 있는 당권 경쟁은 마치 지나가는 초등학생을 골목길로 불러 돈을 뺏은 후 서로 갖겠다고 다투는 불량 중학생들 싸움 같다.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나 말도 이준석 이슈 못지않은 지지율 급락 원인이다. 문재인 정권은 잘못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고 모든 것을 반박했다. 마치 ‘반박 강박증’에 걸린 듯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비판에 대해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럴 필요 없다. “그렇게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우려가 있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라며 원 바운드로 한 템포 늦춰 받은 뒤 “다만 그건 약간 오해가 있습니다” “몇 가지 사실만 바로 잡겠습니다” 하고 답하는 게 좋다.

 

‘촛불 정부’를 자처한 문재인 정권이 “박근혜 정권도 이렇게 했다”며 정권의 기준을 탄핵당한 박근혜 정권으로 낮추더니 윤석열 대통령도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그래도 ‘문재인 정권보다는 낫지 않습니까’라는 인식을 노골적으로 내비친다. 그토록 윤석열이 외쳤던 ‘공정과 상식의 나라’가 올 줄 알았던 지지자들은 실망을 넘어 절망하고 있다. 어느 정권, 어느 정당, 어느 정치인도 지지자를 부끄럽게 만들면 안 된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대선 경선과 본선 모두 잘해서 이긴 게 아니라 잘못해서 질 뻔했다. 그렇게 위기를 만든 생각과 태도가 지금도 지지율 급락의 원인이다. 대통령이 생각을 바꾸거나 대통령을 위기로 몰고 가는 참모를 바꾸지 않으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정치는 지지 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예외가 없다. 보수의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산’의 길로 가야 위기에서 벗어나고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아직 기회는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조선일보(22-07-22)-

____________

 

 

대통령에게 쓴소리하는 티타임을 만들라

 

대통령 언행이 꼬일 때 참모가 쓴소리해야 하지만

듣기 좋아하는 ‘윗분’ 없어.. 매주 정례화하면 어떨까 

 

어떤 정권을 막론하고 대통령에게 쓴소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무성했다. 대통령의 언행이 꼬일 때 쓴소리를 하는 참모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쓴소리 좋아하는 ‘윗분’은 없다. ‘기분 상하지 않게 쓴소리하는 법’은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보다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보스에게 충고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일이다. 쓴소리를 시도했다가 눈총을 받고 입을 다물기도 한다. 프랑스에선 “금지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는 말을 곧잘 하지만, 그러나 “충고하지 말라는 충고”도 유효하다. 쓴소리를 한 덕에 영전하는 일은 드물다. “허심탄회하게 말해보라”는 상사 말을 곧이듣고 허심탄회하게 말했다가 인생이 허심탄회해진 경우는 더러 봤다.

 

처세의 달인, 정권에 관계없이 양지(陽地)만 딛고 살아온 인물을 보면 윗사람에게 쓴소리를 삼가면서도 할 일을 할 줄 아는 비법을 아는 사람들이다. 이런 말도 있다. “항상 넥타이를 매라. 술에 취해서도 쓴소리는 하지 말라. 그러면 넘버2 위치까진 올라갈 것이다.” 쓴소리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현 정권도 ‘쓴소리 부재(不在)’ 상황은 비슷하다. 노동부 장관이 주 52시간제를 개선하는 방안을 내놓자 이튿날 대통령은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실이 코로나 확진자가 많아서 도어스테핑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는데, 이튿날 출근길 대통령은 보란 듯이 기자들과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런 일이 있자 장관도 참모도 쓴소리 대신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 대통령의 심기 경호가 ‘1호 임무’가 돼버렸다.

 

진부하게 반복되는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 ‘사나운 고양이’인 대통령의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 당신 같으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쓴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반문(反問)이다. 둘째는 대통령이 쓴소리를 들을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이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 했다. 백성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민심을 얻는다는 뜻이다. 본인 말만 내세우면 국민 마음은 멀어진다.

 

윤 대통령은 장관들에게 “발로 뛰라” “스타 장관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는 안 보여도 좋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우조선 하청 노조의 불법 파업과 관련, 다섯 장관이 내놓은 “영혼 없는” 합동 담화문을 들으며 참 불편했다. 파업이 두 달째 이어지고, 수천 억 손실이 나고 있는데, 장관들이 정말 생각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겠나. 대통령 지시가 떨어지자 부랴부랴 담화문 내고 헬기 타고 현장에 갔다.

 

“대통령실이 사적 채용 정실 인사로 가득 찼다”는 말이 나올 때, 야당 쪽에서 “김건희 여사의 입김이 제일 셌다더라” “장제원이 다 주물렀다더라”고 비아냥거릴 때, 그리고 도어스테핑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대통령이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은 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을 때, 신문 사설·칼럼 말고는 쓴소리하는 데가 없었다. 대통령실 수석들, 국민의힘 지도부, 여당 의원 중 누가 입을 열었는가.

 

명심해야 한다. 쓴약을 거부하면 국민이 사약을 내린다. 국민이 정권에 표를 준 이유를 늘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쓴 약 먹는 시간’을 아예 따로 만들라고 제안하고 싶다. 조선 시대에 임금에게 쓴소리 하기를 전담했던 사헌부·사간원·홍문관 같은 언론삼사(言論三司)까지는 아닐지라도 뭔가를 해야 한다. 20~30대에 많이 했던 ‘야자 타임’의 추억이라도 살려서 차담, 커피 타임, 뭐라도 좋다. 일주일에 한 번, 오로지 쓴소리만 하고 쓴소리만 듣는 시간을 “제도적으로” 만들면 어떨까. 대통령이 ‘쓴소리상(賞)’을 뽑아 금일봉을 주면 더 좋겠다. 쓴소리 많다고 국정 운영이 더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김광일 논설위원, 조선일보(22-07-22)-

_____________ 

 

 

尹 앞길 막는 구태 윤핵관과 보신주의 비서실장·총리

 

[이기홍 칼럼]

기고만장했던 與가 작은 빌미만 줘도 野는 침소봉대하며 악의적 선전선동
인사 총괄한 장제원, 몸 사린 총리, 추한 당권 다툼 윤핵관… 모두 책임 느껴야

 

요즘 야당의 행태는 ‘침소봉대’의 극한을 보여준다.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부적절하다” “국민 눈높이에 못 미친다” 정도의 비판이면 타당할 대통령실 직원 채용 논란을 국정농단, 국기문란으로 규정하고 탄핵 운운한다. 객관적 사실관계에는 눈을 감은 채 조직적으로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는 반지성적인 선전선동 행태다. 그런데 국민을 더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그런 질 낮은 선전선동에 빌미를 제공하는 대통령실과 여당, 그리고 기름까지 부어주는 권성동 원내대표 같은 경박한 행태다.

흔히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주된 요인으로 인사 문제를 꼽는데 보다 정교하게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장관 후보자들이 발표된 4, 5월 윤 대통령 지지율은 정호영 논란 등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조금씩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다 한국갤럽 기준으로 6월 7~9일 조사 때 53%로 고점을 찍은 뒤 14~16일 조사에서 49%로 하강세에 들어섰다.

당시 어떤 일이 있었을까. 금감원장에 부장검사 출신을 임명했고(6월7일), “민변 도배” 발언이 있었고(8일),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갑자기 이준석 대표를 공격하고 나섰다(6일). 이후 지지율은 매주 2~6%씩 계속 떨어졌다. 사실 후보자 낙마 및 부실검증 논란은 전임 정부들에서 훨씬 심했고, 국민은 어떤 정권이든 인사 때마다 지도층의 한심한 실체에 한숨을 내쉬어 왔지만 그 자체로 지지를 철회하는 건 아니다. 결국은 인사권자가 국민의 실망 찻잔에 물이 넘치게 더 붓느냐, 국민 눈높이를 존중하느냐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윤 대통령은 검찰 출신이 너무 많이 기용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수 주째 이어졌는데도 총리비서실장 국정원기조실장에 이어 금감원장까지 검찰 출신을 임명해버리는 화룡점정을 찍었고, 국민은 이를 오만으로 느낀 것이다. 이와 더불어 △비선 동반 논란 등이 빚은 주변 관리 부실과 공정 이미지의 훼손 △국민의힘 내분이 환기시킨 구태 정당 이미지 △위기 상황에 절박감이 안 느껴지는 정부 이미지가 지지율 하락 요인이다. 이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을 뽑는다면 장제원 권성동 의원과 김대기 비서실장, 한덕수 총리.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대통령실과 내각의 인선을 총괄한 장 의원, 그리고 4월 13일 일찌감치 임명됐는데도 온갖 논란거리들을 예방·통제하지 못한 김 실장은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인사 논란보다 더 고약한 건 윤핵관들의 당권 빼앗기 시도다. 이준석 대표는 성상납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정계에서 사라지는 게 마땅하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그릇에 못 미치는 성정을 드러낸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는 국민과 당원이 뽑은 대표로 임기가 1년 남아 있다. 이걸 당장 빼앗아 당권→총선 공천권→차기 대선 영향력을 쥐려는 윤핵관들과 중진들의 탐욕이 사태의 본질이다. 대선, 보선 승리로 기고만장해져 당권까지 마음대로 하려는 욕심을 낸 것이다.

그런데 막상 권성동과 장제원의 이해득실이 엇갈렸다. 윤핵관들은 당장 이준석을 내치고 장제원을 중심으로 같은 부산 출신인 안철수 또는 자신들이 컨트롤할 수 있는 기존 중진을 대표로 밀어 맹주 역할을 하는 그림을 꿈꿨을 것이다. 친윤 그룹의 맏형 격인 정진석이 보선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이준석 공격에 나선 것도 그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반면 권성동은 이준석의 임기를 보장해서 원내대표로서 세력을 확장하고 내년에 당권을 노려볼 심산이었을 것이다.

이준석이 아무리 큰 의혹에 휘말려 있고 설령 자질이 부족하다해도 경찰수사가 이뤄진 다음에 결정하는 게 정도고 상식이다. 당 지도부 정상화가 정 시급하면 수사를 신속히 하도록 촉구했어야 했다. 권 원내대표는 경박한 언행으로 정권에 큰 피해를 줬다. 게다가 지역구에서는 옛 구태 정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장 의원과 권 대표는 ‘후보 윤석열’과의 인연이 아니라면 지도자급으로 인정받을 별다른 스토리가 없던 의원들이었다. 과거 YS, DJ 등의 최측근들이 야인시절 ‘주군’을 위해 숱한 옥고를 치르고 평생을 바쳤던 것에 비해 이들은 남들보다 조금 먼저 윤 후보에게 다가와서 1년 남짓 바짝 뛴 게 개국공신 공적의 전부다.

한덕수 총리는 책임총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지금까지 소신 있게 한 게 뭐가 있는지 찾기 어려울 정도다. 한 달 넘게 이어져온 대우조선 사태 같은 난제에 대통령이 나서기 훨씬 이전에 틀어쥐고 욕을 먹을 각오로 대책을 주도했어야 마땅했다. 김 실장과 한 총리의 현재는 나서지 않고 책임질 도전을 하지 않으려 하는 관료주의와 보신주의 처신 그 자체를 보여준다.

최근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국가 방향성이나 정책 실패 같은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게 아니다. 구체적인 국정 목표와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만 아직 부처 업무보고도 끝나지 않은 상태니 판단은 이르다.

윤 대통령은 침소봉대 공격에 발목이 잡히면서도 외교·안보와 노동·연금개혁 등에서 진로를 정상화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공영방송을 비롯해 사회 기간 부문을 정상화시키고 좌파 기득권 카르텔을 해체하는 작업도 늦출 수 없다. 윤핵관을 손절하고 내각에 도전정신을 불어넣고, 주변 관리를 엄격히 하면서 대선 때 지지자들이 위임한 개혁과제의 실천에 나서면 의외로 빠른 시간에 지지율 회복이 가능할 것이다.

-이기홍 대기자, 동아일보(22-07-22)-

_____________

 

 

지금은 ‘낮은 자세’가 답이다

 

尹, 약체 정권 인정하고 ‘심적 쇄신’ 나서길
정권 망쳤다간 2년 후 黨 간판 내려야 할 수도

 

윤석열 정권이 심각한 난관에 처한 것 같다. 진짜 위기는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은 내심 답답해하는 듯하다. 망가진 한미 동맹을 빠르게 복원했고, 한일 관계 재정립에도 나섰다. 대북 안보 태세도 강화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을 천명했다. 나라의 기본(基本)을 바로 세우려 나름 애를 쓴 거 같은데…. 지지율은 머리가 하얘질 만큼 추락하고 있다.

정치 영역에선 뭘 하느냐와 함께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경제 위기의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데 뭔가 미덥지 않다. 지금 당장, 또 향후 5년 뭘 어떻게 해서 국민을 먹고살게 하겠다는 건지의 비전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검찰 출신이나 지인 인사만 잔상에 남았다. 노동계에 틈을 보이면서 특유의 강단 이미지가 훼손됐다. 법과 원칙, 능력주의를 내세운 정권의 아이러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윤 대통령은 ‘톤앤매너’, 즉 말투와 태도에서 쓸데없이 점수를 까먹었다. 정제되지 않은 발언, “그게 뭐 어때서?” 하는 식의 반문 화법은 솔직하다기보다는 진중하지 않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요즘엔 도어스테핑 실수를 줄이려 하는 것 같다. 김건희 여사도 2주일째 언론 노출을 피하고 있다.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겠지만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 그런 변화가 단기 처방일지는 모르나 지지율을 반등시키고 정국을 주도해 나갈 방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물론 용산 참모진과 당, 내각이 다 함께 심기일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이다. 현 대통령실 인적 구성이 ‘드림팀’인지에 대해 갸웃하는 이들이 많다. 비서실장과 5수석이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동지애를 공유하고 팀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국정 메시지를 정교하게 다듬고 여당 및 국회와의 관계도 주도해 나가야 한다.

국민의힘은 탄핵 정당이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듯하다. 윤핵관들은 원톱이니 투톱이니, 형님이니 동생이니 하며 싸우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잘들 해봐라” 하는 듯한 태도다. 정권 망쳤다간 2년 후 총선에서 당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는데 눈앞의 당권 내전에 여념이 없다. 대권 욕심이 없는 현역 중진이든, 대통령과 소통이 가능하고 정치력도 검증된 외부 인사든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는 게 현실적 시나리오일 순 있지만 다들 각자도생에 바쁘니…. 이 대표는 ‘통 큰 결단’을 내리고 윤핵관도 백의종군 태도를 보여야 한다. 어차피 ‘파생 권력’ 아닌가.

꽉 막혔다. 윤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쓸 수 있는 묘책은 별다른 게 없어 보인다. 인적 쇄신이 어려우면 ‘심적(心的) 쇄신’으로 가야 한다. 그 출발은 대외 환경이든 지지 기반이든 국회 의석 분포든 역대 최약체 정권임을 인정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서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집권 초 기세등등했던 이명박 정권 사례를 보라. 둑이 한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다. 공권력도 무용지물이었다. 모종의 사태라도 벌어지면 어쩔 건가. 집권세력이 혼연일체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장관은 발에 땀이 나게 현장을 뛰고, 의원들도 윤핵관 눈치만 볼 게 아니라 국민의 가려운 곳을 파고드는 절박감을 보일 때다. 윤 대통령은 “지지율 0%, 1%가 나와도 바로잡아야 할 것은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지금은 99% 민생 챙기기에 나서는 모습을 먼저 보일 때다. 취임 100일에 즈음한 8·15 경축사를 제2의 취임사라 여기고 윤석열 정부의 새 출발을 알려야 한다. 그게 윤 대통령이 성공의 길로 가는 좁은 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용관 논설위원, 동아일보(22-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