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회복” 전망 OECD, 한국 성장률만 하향 조정]
[두 달여 무역 적자가 작년 전체의 절반, 정말 괜찮은가]
[탈원전 족쇄 벗고도 뛰지 못하는 중소기업]
[사상 최대 무역 적자에 빛바랜 '세계 6위 수출국']
[경제 위기, 이제 터널 입구일 뿐이다]
[고금리에 허리 휘는데 대출 빨리 갚아도 벌금 매기는 은행들]
“세계 경제 회복” 전망 OECD, 한국 성장률만 하향 조정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고금리와 대출 부담, 공공 요금 상승 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가운데 12일 오전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서 작업자들이 중고 주방기구를 정리하고 있다. 중기부는 고물가와 소비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현장에서 수렴한 건의사항을 검토해 3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수립하는 '제2차 소상공인 지원 기본계획(2023~2025)'에 반영할 계획이다. 2023.3.12/뉴스1
OECD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1.8%에서 1.6%로 넉 달 만에 더 낮췄다. 반면 세계 경제성장률은 당초 전망 2.2%보다 0.4%포인트 높은 2.6%로 상향 조정했다. 아직 불안한 요소가 있기는 해도 세계 경제가 차츰 회복세로 접어든다고 판단한 것이다.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경제 심리가 개선되고, 중국의 경제활동 재개로 세계 시장의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는 등 악재들이 해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내 경기는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어두운 터널로 접어들고 있다.
경제 지표는 예측하기 힘든 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올 들어 이달 10일까지 무역수지 적자가 227억7800만달러로, 석 달도 안 돼 지난해 연간 적자(477억8500만달러)의 48%에 달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가 올 1분기에 수조원대 적자를 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왔다. 메모리 반도체의 업황이 나빠 1위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이 좀처럼 회복되질 못하고 있다. 수출 부진에, 내수 둔화까지 겹쳐 1월 소매 판매는 전달보다 2.1% 줄어 석 달째 감소세다.
이런 와중에 국제 금융시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유럽 크레디스위스은행의 부실 등으로 요동치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다. 1800조원 넘는 가계부채로 빚 많은 가계는 고금리에 쪼들리고, 빚내서 코로나 불황을 버텨온 자영업자는 또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물가는 급등해 국민들 살림살이는 퍽퍽해졌다. 재정적자가 5년째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올 1월 경상수지가 42년의 최대 적자를 내면서 ‘쌍둥이 적자’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금리를 내리거나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OECD는 경고했다. 우리는 저출산 고령화로 경제 활력이 저하되면서 2030년부터 1%대 저성장이 고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머뭇대다가는 2030년 이전에 1%대 저성장에 눌러앉고 말 것이다. 결국 경기 침체를 견디면서 노동 개혁 및 구조 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혁신 기업에 진로를 열어주면서 새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정공법 외에는 달리 길이 없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겠다는 절박함이 경제 회생의 유일한 출구다.
-조선일보(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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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여 무역 적자가 작년 전체의 절반, 정말 괜찮은가
새해들어 해외여행객이 폭증하며 여행수지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1월 중 여행수지가 15억달러 적자를 기록하며 1년 전에 비해 3배나 늘었다. 여행수지 악화는 경상수지 적자폭을 키워 1월 중 경상수지가 45억달러 적자를 내며 월단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사진은 3월 초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에서 수속을 기다리는 여행객 모습./뉴스1
올 들어 3월 10일까지 무역 적자가 228억달러를 기록, 69일 만에 지난해 연간 적자액 478억달러의 절반에 육박했다.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데 따른 것이다.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실적이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락 여파로 40% 이상 줄었다. 중국의 성장세 둔화로 대중 수출은 작년부터 30% 이상 격감 추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적자 기조가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지금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사상 최악 무역 적자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 예사롭지 않은 것은 작년과 달리 상품·서비스·투자 등 모든 대외 거래를 합친 경상수지에도 적신호가 켜진 점이다. 1월 경상수지가 45억달러 적자를 내 월별로는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해외여행이 폭증해 1월 여행 수지 적자가 1년 전의 3배인 15억달러에 이른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 추세로 가면 연간 여행 수지 적자가 작년의 3배인 240억달러 수준까지 폭증할 수 있다. 정부는 연간 경상수지는 올해도 흑자를 낼 것으로 전망하지만, 여행 수지의 급격한 악화 탓에 경상수지 방어가 힘겨운 지경에 빠졌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전기차의 대미 수출, 반도체의 대중 수출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등 수출 여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유럽연합도 역내 생산 원자재를 쓴 제품에만 보조금 혜택을 주는 법을 만드는 등 세계적으로 보호무역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세계 경제성장률도 지난해 3.2%에서 올해는 2.4%로 떨어져 수출 수요 자체가 급감할 전망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경상수지 흑자는 경제의 최후 보루나 마찬가지다. 경상수지에서 적자를 내 외화 조달에 약점을 드러낼 때마다 외환 위기(1997년), 글로벌 금융 위기(2008년)가 덮쳐왔다. 외환 보유액이 4000억달러가 넘어 외환 위기 재발 가능성은 낮다고 하지만, 작년 한 해 동안 환율 방어로 외환 보유액이 400억달러나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 안심할 수 없다.
상황이 예사롭지 않은데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적자 폭이 커지면 환율 급등, 외국인 투자금 탈출 등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정부는 수출 활성화 대책은 물론이고 외국 관광객 유치, 외국인 직접투자, 주식·채권 투자 활성화 등 경상수지를 개선할 모든 방안을 강구해 경상수지를 방어해야 한다.
-조선일보(2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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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족쇄 벗고도 뛰지 못하는 중소기업
튀르키예 첫 원전에 진출한 中企, 대기업과 분쟁으로 존립 흔들
세계시장 도전 발목 잡지 않도록 정부가 빠른 결정 내려야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남쪽으로 약 600㎞ 지점에 원자력발전소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올여름 시운전에 들어가는 튀르키예의 첫 원전 ‘아쿠유 원전’이다. 각각 1200메가와트(MW)급 규모의 원전 1~4호기가 올해부터 연차적으로 가동돼 향후 튀르키예 전력 수요의 약 10%를 맡게 된다. 이 원전에 터빈 냉각장치, 열교환기 등 각종 설비를 공급하는 회사는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A다. 이 회사는 지난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자 필사적으로 해외 원전에 문을 두드렸다. 튀르키예 원전에 들어가는 800억원 상당의 설비를 납품하게 된 것도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 5년간 탈원전으로 굉장히 힘들었다”며 “우리나라 원전 생태계가 얼어붙은 당시에 러시아 원전기업 로사톰을 비롯해 해외 기업들을 일일이 찾아가 판로를 열었다”고 했다. 지난해 A사는 매출의 80%를 해외 수출로 올렸다.
탈원전 한파를 버텨온 이 회사는 창사 약 3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시가총액이 수조원에 이르는 국내 대기업과 분쟁이 발단이다. A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화력발전소 건설을 수주한 대기업 B사에 급수가열기 44기를 243억원에 공급하는 계약을 2014년에 맺고 이듬해 납품을 끝냈다. 그런데 2021년 B사가 급수가열기 4기에서 균열이 생겼다며 당시 3200만달러(약 350억원)를 A사에 청구했다. 44기 전체 급수가열기 공급액보다 100억원이 많은 액수이고, A사 연간 매출의 절반에 달한다.
A사는 “가열기 균열은 현지 발전소의 운전 부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계약서에 명시된 하자보증기간(납품일로부터 4년)도 지났는데 대기업이 책임을 과도하게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B사는 계약 당시 교부·서명한 구매 계약 일반 조건에 잠재적 하자(숨겨진 결함) 조항이 있어 장기간 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 이 다툼은 영국 런던에 있는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에서 살펴보고 있다. 대기업인 B사가 계약 준거법을 영국법으로 정하고 1850만달러(약 200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중재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A사는 “국제 중재 대응에 서툰 중소기업의 약점을 노리고 압박하는 대기업의 횡포”라며 대한상사중재원에서 처리하자고 B사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항공·숙박과 법률 자문, 중재 비용 등이 국내보다 많이 드는 국제 중재는 중소기업 입장에선 큰 부담이다.
정작 A사가 말하는 대기업 못지않게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정부의 늑장 행정이다. A사는 B사가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삼고 국제 중재로 끌고가는 이유가 우리나라 하도급법과 공정거래법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난해 2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B사의 잠재적 하자 보증 기간이 표준 하도급 계약서에 비해 지나치게 길어 부당 특약이고,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라는 주장이다. 또 다른 중소기업들도 같은 피해를 당하고도 굴복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B사가 체결한 하도급 계약을 전수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신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정위 판단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그사이 A사는 국제 중재에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고 있다는 점이 악재로 작용해 해외 기업과의 신규 계약이 막히고, 투자 유치와 은행 대출 채무 연장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다리다 못해 A사는 지난달 1만1000여 명의 탄원서를 받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 A사 측은 “탈원전이라는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중소기업을 향한 일부 대기업의 갑질과 정부의 복지부동은 여전해 씁쓸하다”고 했다. 탈원전의 족쇄에서 벗어난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향해 힘껏 내달릴 수 있도록 관련 정부 부처가 세심하게 살펴봐야 할 때다.
-곽수근 기자, 조선일보(2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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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무역 적자에 빛바랜 '세계 6위 수출국'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9회 무역의날 기념식에서 세계 수출 5강 도약을 위한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2.12.05.
올해 수출액이 작년보다 5% 늘어나 68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연간 수출액 순위도 작년 세계 7위에서 6위로 한 단계 더 올라갈 전망이다. 반도체·자동차·석유제품 세 품목과 아세안·미국·유럽연합(EU)·인도 네 시장에서 역대 최고 수출액을 달성했다. 대미 수출은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돌파했고, 아세안 수출은 2년 연속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전 세계를 누비며 경제 전쟁터에서 시장을 개척한 수출 기업과 기업인들이 이룬 업적이다.
5일은 제59회 '무역의 날'이었다. 수출 1억달러를 돌파한 1964년 12월 5일을 기념일로 제정한 지 58년 만에 세계 6위 수출 대국이 됐다. 수출·수입을 합친 무역 규모도 세계 6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어제 무역협회 주최로 열린 '무역의 날' 기념식은 자축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사상 최대 수출에도 불구하고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 수입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바람에 올 들어 11월까지 무역수지 적자가 역대 최대인 426억달러에 달했다. 제품을 수출해서 벌어들인 흑자를 에너지 수입에 다 쓰고도 부족해 기록적 적자를 낸 것이다.
사상 최대 수출도 그 구조가 좋지만은 않다. 글로벌 경기 침체 영향으로 수출이 두 달 연속 전년 대비 감소했다. 11월 수출은 작년보다 무려 14%나 줄었다. 수출이 줄고 에너지 수입이 늘어나는 현상은 독일·일본 등 제조업 강국 공통 현상이지만 한국이 유독 심하다. 전체 수출의 23%를 의존하는 대중국 수출이 코로나 봉쇄로 큰 타격을 입었고,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의 글로벌 경기가 하강했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과 반도체 한 품목의 의존도가 과도했던 한국 경제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상황은 앞으로도 녹록지 않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수출 기업 10곳 가운데 9곳이 6개월 안에 자금 사정이 나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경제의 주력 엔진인 수출이 꺾이면 경제 전체가 침체에 빠져들 수 있다. 한국은행과 국제기구들은 내년 한국 경제가 1%대 저성장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한다. 성장률을 올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기업 활력을 회복하는 것이지만, 경쟁국보다 불리한 각종 규제가 개선될 전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반(反)기업 입법에만 골몰하고 있다. 심지어 반도체를 지원하는 법안까지 넉 달째 국회에 발목 잡혀 있다. 경제와 수출이 살아나길 바라는 일부터 허망할 뿐이다.
-조선일보(2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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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 이제 터널 입구일 뿐이다
[강경희 칼럼]
경기 침체가 다 경제 위기는 아니야
'경제 무능' 프레임에 민심 이반이 진짜 위기
대통령의 겨울은 춥고도 길 것이다
한국 경제에 10년 위기설이 제기되곤 했다.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경험하면서 10년 주기설이 정설처럼 굳어졌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닥치자 메가톤급 위기가 닥친 것으로 보고 시중에 금과 달러 사모으기가 유행했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전 세계가 경험한 초유의 사태였다. 자영업자들에게는 국가 부도급 재앙이었지만 경제에 미친 충격은 우려했던 것보다는 양호했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엄청나게 돈을 풀어 추락을 막았다. 되레 집값, 주가, 가상 화폐 같은 자산 시장이 펄펄 끓었다. 수해(水害)가 휩쓸고 간 뒤 전염병이 창궐하듯 돈의 힘으로 떠받친 청구서가 이제서야 날아들고 있다.
그럼 풀린 돈을 거둬들이며 경기가 수축하는 지금이 진짜 경제 위기인가. IMF 외환 위기 같은 고강도 경제 위기가 닥쳐올 건가. 위험 요인은 도처에 널려 있고 언제 어떤 상황으로 악화할지 모른다. 그래서 위기설도 넘쳐난다. 하지만 위기는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경제 곳곳이 살얼음판인 건 맞지만 경기 침체와 경제 위기를 구분해서 대응할 필요는 있다. 예측할 수 있는 위기는 위기도 아니라는 말도 있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실력은 없어도 운이 좋았다. 세계 경제 호황에, 역대 정부가 허리띠 졸라매고 나라 살림을 알뜰하게 꾸린 덕에 물려받은 나라 곳간이 두둑했다. 집권 초반, 최저 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제 등 경제에 부담을 안기는 정책을 겁 없이 시행했다. 세계 각국이 투자 촉진책을 쓰고 일자리를 늘려 사상 최저 실업률을 구가할 때 청개구리처럼 거꾸로 갔다. 정부 실책으로 성장률이 2% 밑으로 떨어질 지경에 이르자 돈 풀어 성장률을 2%로 겨우 끌어올렸다. 그 모든 실책을 계속 남 탓만 했었는데 진짜 남 탓이 생겼다. 코로나 쇼크는 문 정부에는 온갖 실책을 덮어준 축복이었다. 엄청나게 풀린 돈 때문에 집값도, 주가도 올랐다. 노골적인 매표(買票) 국정에도 재집권을 못한 건 알리바이가 너무나도 명백한 부동산 실책 때문이다.
경기 침체 국면에 출발한 윤석열 정부는 그런 운은 없다. 경제 지표는 무엇 하나 좋은 수치를 찾기가 힘들다. 올해 수출이 사상 최고치로 세계 6위 수출 국가가 됐다지만 사상 최대 무역 수지 적자로 생색을 낼 수도 없다. IMF는 세계 경제 전망치를 계속 낮춘다. 금리 인상으로 시중에 풀린 돈을 빨아들이니 부동산도, 주가도 급락해 소비 진작은 기대 못 한다. 국제 경기 침체로 수출이 꺾이니 생산과 투자도 줄고 있다. 기업들이 내년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채용도 줄이겠다고 한다.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리니 빚 많은 가구의 고통이 가중된다. 물가 오르는데 월급은 안 오르고 경기가 빠르게 식으니 민생은 퍽퍽해질 수밖에 없다.
민심의 핵심은 경제다. 사실 경제는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며 사이클을 그리기 때문에 침체가 영원히 계속되는 건 아니다. 다만 이번 경기 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는 있다. '고난의 2년'을 보내고 2024년 이후에나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2024년 4월 총선 무렵 경제 상황이 결코 윤 대통령 편이 아닐 수 있다. 푸틴 탓도 있고, 바이든과 시진핑 탓도 있고, 전임 정부의 실정 탓도 있고, 그 누구 탓도 아닌 경기 사이클 요인도 있지만 대통령이 '글로벌 복합 위기' 운운하며 참아달라는 호소는 잘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도전적인 상황이 한꺼번에 여럿 닥친 건 맞지만 그렇다고 IMF 외환 위기나 코로나 팬데믹처럼 모두에게 동시에 와닿는 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국민이 느끼는 경기는 높은 물가, 일자리 부족 같은 피부로 와닿는 하루하루 삶의 고통이다.
이런 침체가 깊어지면 민심은 급격히 악화한다. 169석의 거대 야당은 올해와 내년의 경기 침체를 초대형 경제 위기로 키우기 위해 전력할 것이다. 경제 위기가 야당에는 곧 집권 여당을 무력화하고 정권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법안 심사, 예산 심사 같은 국회 본연의 업무를 민노총의 막무가내 파업 수준으로 내팽개치거나 제멋대로 휘두르면서 국정 운영의 훼방꾼이 되는 데 총력전을 펴고 있다. 야당을 제대로 못 다루는 것도 궁극에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 책임이니 '경제 무능' 프레임을 작동해 정부 공격의 수위를 드높일 것이다. '경제 무능'은 민심을 잃고 정권의 실패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당장 경기 사이클을 반등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대신 정부는 경제 회복에 필요하고 민생에 필요한 정책을 때 놓치지 않고 실행해 국민 고통을 덜어주면서 문제 해결 능력이 있다는 걸 꾸준히 입증해야만 한다. 국정 과제 법안을 왕창 넘기고는 거대 야당이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고 야당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여론을 의식해 민주당도 마냥 뭉갤 수 없는 법안과 예산부터 얻어내는 것이 급선무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대응처럼, 윤석열 정부가 뭔가 작은 실마리라도 풀어간다는 기대를 심어주어야 한다. 손 놓고 있다간 작은 불씨가 언제 어디서 대형 경제 위기로 옮겨붙을지 모른다. 그건 있어서는 안 될 국가적 비극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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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에 허리 휘는데 대출 빨리 갚아도 벌금 매기는 은행들
은행 대출을 중도 상환할 때 물리는 '중도 상환 수수료' 면제에 대해 은행들이 '신(新)관치'라고 반발한다고 한다. 고금리 덕에 유례없는 수익을 올리는 은행들이 고객 부담을 덜어주라는 주문에 "경제 원리에 어긋난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중도 상환 수수료는 은행 입장에서 갑작스러운 대출 중단에 따른 이자 손실에 대한 배상과 계약 위반에 따른 위약금 성격을 갖고 있다. 법적으로 은행의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중도 상환 수수료가 소비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게 설계돼 있다는 점에서 개선할 여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가계·기업 대출, 장기·단기 대출 등의 대출 종류, 고객 신용 등급과 상관없이 중도 상환 수수료가 대출금 잔액의 1.2~1.5% 수준으로 일률적이다. 은행들이 소비자의 대출 갈아타기를 막기 위해 중도 상환 수수료율을 서로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하는 담합 의혹도 있다. 변동금리 대출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금리 변동 위험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측면도 있다. 미국에선 금리 변동 위험을 은행이 지는 고정금리 대출에만 중도 상환 수수료를 받는다. 스페인에선 0.25~0.5%의 수수료를 부과해 우리보다 훨씬 저렴하다. 국내 은행들은 높은 수수료율 덕에 중도 상환 수수료로만 매년 3000억~4000억원의 수익을 얻고 있다.
올 들어 금리 상승 덕에 은행들은 앉아서 돈벼락을 맞았다. 9월까지 예대금리차에 따른 이자 마진만 40조원대에 이른다. 손쉬운 이자 장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은행들은 지난 8월부터 취약계층, 고위험 다중 채무자에 한정해 중도 상환 수수료를 면제해 주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생색내기 수준이다. 1900조원대 빚을 지고 있는 가계 대부분은 중도 상환 수수료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반 대출자들에게도 한시적으로 중도 상환 수수료를 대폭 감면해줌으로써 가계의 빚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필요가 있다. 올 들어 11월까지 마이너스 통장 잔액이 5조원가량 줄었다. 마이너스 통장은 고금리인 데다 중도 상환 수수료가 없어 대출자들이 빚을 빨리 갚은 결과다. 중도 상환 수수료 감면은 가계 빚 조기 상환을 촉진할 수 있다. 대출 조기 상환은 은행에도 나쁘지 않다. 요즘 은행들은 자금이 부족해 고금리 예금을 유치하거나 고금리 은행채를 발행하고 있는데 조기 상환된 자금을 새 대출 재원으로 쓰면 자금의 효율적 배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2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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