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흔드는 행동주의 투자자… 하이에나인가, 창조적 파괴자인가]
[구글의 ‘구조조정 살생부’ 인공지능이 만들었나?]
자본시장 흔드는 행동주의 투자자… 하이에나인가, 창조적 파괴자인가
스타일 다른 행동주의 펀드들
‘아다니에 답한다: 사기가 국가주의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공매도 행동주의 투자자인 ‘힌덴버그 리서치’ 홈페이지 첫 화면엔 23일 이런 경고문이 큼직하게 올라 있었다. 물류·에너지 재벌인 아다니는 인도 최대 기업으로, 힌덴버그는 아다니가 모리셔스 등에 유령 회사를 세우고 주가 조작을 했다고 지난 1월 폭로했다. 이후 한 주 사이 아다니 주가는 반 토막이 났고 계열사 시가총액은 1000억달러(130조원)가 사라졌다. 행동주의 투자자의 문제 제기로 촉발된 이 사건은 그동안 이를 묵인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에 대한 반정부 시위로 확산하고 있다.
최근 문화 산업계를 뒤흔드는 SM엔터테인먼트(SM)의 지분 갈등도 시작은 행동주의 펀드였다. 30대 기업 투자 전문가 이창환이 이끄는 얼라인파트너스가 SM의 지분 약 1%를 획득하고 나서 주주에게 분배되어야 할 수익이 자회사(라이크기획)를 통해 창업자 이수만에게 흘러들어 간다는 문제 제기를 지난해 시작했다. 이후 주주를 결집해 감사를 바꾸는 데 성공했고 올해 초 이수만 창업자가 물러났다. BTS 소속사인 하이브가 이수만의 지분을 인수한 데 이어 주식 공개 매수를 통해 SM과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지각 변동이 예고된 상황이다.
한때 산업계의 괴짜로 여겨졌던 행동주의 투자자가 최근 자본시장의 가장 뜨거운 플레이어로 떠오르고 있다. 행동주의 투자자란 지분 확보를 통해 직접 경영에 개입하고 기업의 미래 실적과 주주 환원 정책을 바꿈으로써 수익을 올리는 투자자를 뜻한다. 금리 인상 여파로 글로벌 시장이 침체한 가운데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면서 이들이 사나운 기업사냥꾼인지, 아니면 자본시장을 정화할 숨은 영웅인지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행동주의 활동 635건 사상 최대
행동주의 투자는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투자의 한 유형이다. 이들의 지향점은 깔끔한 사무실에서 기업 재무제표를 들여다보거나 그래프를 분석하다가 매수·매도 버튼을 누르는 전형적인 기관 투자자와 다르다. 주식을 산 다음 그 지분을 지렛대로 삼아 이사·감사를 파견하거나 경영진을 바꾸고, 세를 결집해 주주의 이익을 늘리는 쪽으로 경영 관행을 개선하라고 압박해 수익을 낸다. 이들이 전략을 홍보하면 이 ‘과실’을 나눠 먹으려는 투자자들이 주식을 따라 사기 때문에 그 자체로 주가가 오르기도 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행동주의 투자자의 활동 건수는 10년 전 한 해 160건에서 지난해 635건으로 크게 늘었다. 사상 최다 건수다. 실제로 최근 산업계 굵직한 뉴스의 배경엔 행동주의 투자자가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최근엔 특히 코로나 팬데믹 당시 초저금리와 시장 호황에 힘입어 방만한 경영을 했던 실리콘밸리의 IT(정보기술) 기업들이 표적이 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IT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서 행동주의 투자자가 지분을 확대할 길이 넓어진 것도 이들의 활동이 늘어난 이유”라고 전했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이 잇달아 대규모 인력 감축을 한 것도 행동주의 투자자의 압박이 작용한 결과였다. 지난해 10월 메타(페이스북) 지분을 인수한 ‘얼티미터 캐피털’은 공개 주주 서한을 통해 “구글·메타·트위터·우버 같은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훨씬 적은 인력으로도 비슷한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은 이 동네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비난했다. 지난해 주가 폭락으로 안 그래도 투자자 불만이 커진 가운데 이런 지적이 나오자 메타는 버티지 못했다. 전체 인력의 13%인 1만1000명을 줄이고 비용도 5%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알파벳(구글)도 비슷한 길을 밟았다. 지분 0.3%를 보유한 행동주의 펀드 TCI가 지난해 11월 “과도한 보수로 인해 지나친 인건비가 나가고 있다”고 공격하자 지난 1월 직원을 1만2000명(6%) 줄이기로 결정했다. ‘스타보드밸류’로부터 비용 절감 압박을 받은 세일스포스는 지난 1월 인력의 10%인 8000명을 감축했다.
“우리는 땀으로 수익을 추구한다”
행동주의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투자 기법이다. 기업의 단순한 재무 상태를 가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업의 약점을 찾아내고 이를 개선할 전략이나 적임자를 찾아 기업이 실행하도록 만들어야 돈을 벌 수 있다. 아다니와 맞붙은 힌덴버그리서치의 경우 아다니 주가 조작 의혹을 폭로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 2년이었다. 행동주의 투자자의 대부(代父)라 불리는 넬슨 펠츠 트라이언펀드 CEO는 한 인터뷰에서 행동주의 투자를 이렇게 정의했다. “우리는 주가가 어떻게 움직일지 가늠하는 대신 주식을 산 뒤 기업이 주주의 이익을 최대로 늘리기 위해 무언가를 하도록 만든다.”
SM엔터테인먼트의 변화를 이끌어낸 얼라인의 이창환 대표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행동주의 투자를 “땀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일”이라고 묘사했다. “좋은 성장주는 이미 매우 비싸고, 기업의 가치 대비 싼 가치주는 발 빠른 가치투자자들이 금방 사서 올려버립니다. 저희는 지배구조나 자본 배치 등이 잘못되어서 회사의 실제 가치보다 가격이 싼 주식을 찾아낸 다음, 많은 노력을 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치를 올립니다. 고생을 하지 않으면 수익도 없는 투자 기법이죠. 사회 정의 구현을 위해서는 아니고 수익, 더 정확히는 펀드의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하는 일입니다.”
한국에선 행동주의 투자자가 기업을 뒤흔들고 수익을 챙겨 ‘먹튀’하는 하이에나와 다름 없다는 부정적 인식도 적지 않다. 하지만 미국 등 선진국에선 기업의 고질적 문제를 수술해 주주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자경단(自警團)으로 이들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넷플릭스, 버거킹 등 미국의 대다수 주요 기업은 행동주의 투자자의 ‘공습’을 경험했다. 순이익의 대부분을 배당이나 투자가 아닌, 현금으로 잔뜩 쌓아두던 애플은 2013년 원조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의 공격을 받고 자사주 매입을 시행했다. 행동주의 투자 펀드 ‘밸류액트’의 메이슨 모핏 회장은 2013년 아예 MS 이사회에 들어가 스티브 발머 당시 CEO의 후임에 사티야 나델라를 선임하는 데 역할을 했다. 모핏이 이사회에서 활동하는 동안 MS 주가는 150% 상승했다.
‘막말형’서 ‘소통형’으로 트렌드 변화… 비행선·손자병법에서 따온 이름도
‘행동주의 투자자’라고 통칭하긴 하지만 투자자별 전략과 방식은 큰 차이가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지배구조를 바꾼 얼라인파트너스처럼 기업 경영 활동 개선으로 주식이 올라야 수익을 올리는 이들도 있지만, 아다니를 공략 중인 힌덴버그리서치 등 주가가 하락해야 돈을 버는 공매도 행동주의 투자자도 있다. 행동주의 투자자의 여러 계파는 같은 기업을 두고 충돌하거나 힘을 합치기도 한다.
지금까지 한국 투자자들에게 깊이 각인된 행동주의 투자자는 칼 아이칸, 폴 싱어(엘리엇 회장) 등 비교적 공격적 부류들인 경우가 많다. 아이칸은 2006년 한국의 KT&G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한국인삼공사 분리, 부동산 매각, 자사주 소각 등을 압박했다. 결국 2조8000억원에 달하는 자사주 소각과 배당 약속을 받아냈고 10개월 만에 1500억원 정도를 챙겼다.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강한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알려졌다.
과거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공격적인 언사로 악명을 날렸다. “너무 많은 멍청이(moron)가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는 아이칸의 2014년 인터뷰 발언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엔 경영진과 합리적으로 소통하며 대안을 찾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3~4년에 걸친 장기 투자를 지향하고 수십 개 회사에 이사를 파견해 경영 활동에 동참하는 ‘밸류액트’, 지난해 세일즈포스 지분 매입 후 비용 절감안을 요구한 ‘스타보드밸류’ 등이 경영 참여형 행동주의 투자자에 속한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류는 힌덴버그 같은 공매도 행동주의 투자자다. 기업의 주가가 하락해야 돈을 버는 공매도를 활용하기 때문에 일반 주주들에겐 ‘하이에나 같은 존재’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들은 직원 수도 적고 회사 이름도 특이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힌덴버그는 잘못된 연료를 주입해 발생한 1937년 힌덴버그 비행선 폭발 사고에서 이름을 따왔다. ‘인재(人災)는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신념이라고 한다. 또 다른 유명 공매도 투자사인 ‘머디워터스(Muddy Waters)’는 ‘흙탕물’이란 뜻이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 ‘혼수모어(混水摸魚·혼탁한 물에서 고기를 찾는다)’에서 따온 이름이다.
-김신영 논설위원, 조선일보(2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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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구조조정 살생부’ 인공지능이 만들었나?
요즘 취업준비생들에게 ‘인공지능(AI)전형’ 대비는 필수다. 통상 서류전형에 이어 AI역량검사와 AI면접이 진행되는데, 사실상 1차 면접과 다름없다. 모니터를 보고 짧게 자기소개를 한 뒤 인·적성검사 같은 객관식 문답을 거쳐 분석력, 집중력, 순발력 등을 테스트하는 각종 게임을 해내야 한다. 뒤이은 심층대화에서는 표정·음성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지원자의 신뢰도, 자신감, 친화력 등을 평가한다. 국내 대기업, 금융사, 공공기관 800여 곳이 이런 전형을 도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취준생들 사이에선 ‘깜깜이 전형’이라는 불만이 높다. AI면접과 역량검사가 어떻게 이뤄지고, 어떤 기준으로 당락을 결정하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한 시민단체가 AI면접을 도입한 공기업을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냈더니, AI업체에 전형을 맡긴 탓에 해당 기업도 관련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AI가 뭔데 나를 떨어뜨리냐”는 하소연이 이어지고 ‘카메라와 시선을 맞춰 연습하라’, ‘조명을 밝게 하라’ 같은 온갖 팁이 쏟아진다.
▷채용부터 평가, 승진까지 기업 인사(人事)에 이미 AI가 깊숙이 개입했지만 공정성과 평가 기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마존은 일찌감치 AI 채용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가 여성보다 남성 지원자를 선호하는 오류를 발견하고 폐기한 적 있다. AI가 과거 채용 데이터에서 성차별 편견까지 학습한 결과였다. 이제 미국에서는 인사 발령의 최후로 꼽히는 해고 단계에서도 AI가 직원을 골라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구글이 직원 1만2000명을 내보냈는데, 전직 직원들 사이에서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AI 알고리즘이 해고자를 가려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물론 구글은 AI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하다. 채용, 승진 과정에서 AI가 우수 직원과 고성과자를 골라내는 현재의 시스템을 역이용하면 해고 명단을 만드는 게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한 설문조사에서 미국 기업의 인사담당자 98%는 올해 감원 직원을 정할 때 알고리즘을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 은행들이 영업점 직원 수천 명의 지점 배치와 인사에 AI 알고리즘을 도입했는데, 말 많고 탈 많던 학연·지연 논란이 사라져 직원들 만족도가 높아졌다. 이처럼 AI가 결정한 해고 커트라인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혼 없는 AI가 사람 일자리까지 박탈할 수 있다는 전망이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 많다. 편향된 데이터로 학습한 AI가 그릇된 해고 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 AI 인사의 공정성 시비를 없애고 제대로 인재를 가려내는 것도 결국 AI를 쓰는 인간의 몫이다.
-정임수 논설위원, 동아일보(2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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