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經濟-家計]

[ .. 전경련은 ‘게이단렌’서 배워라] ['경제 단체'가 안 보인다]

뚝섬 2023. 3. 4. 09:04

[여성 기업인 발탁, 정치와 거리두기… 전경련은 ‘게이단렌’서 배워라]

['경제 단체'가 안 보인다]

 

 

 

여성 기업인 발탁, 정치와 거리두기… 전경련은 ‘게이단렌’서 배워라

 

정경유착으로 몰락하던 日게이단렌, 혁신 비결은? 

 

75년 역사의 일본 재계 단체 ‘게이단렌(經團蓮·일본경제단체연합회)’은 2021년 6월 처음으로 여성 기업인을 협회 부회장으로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발표했다. 일본 IT 기업 DeNA 창업자인 난바 도모코가 주인공. 게이단렌은 오는 2030년까지 일본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리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단추로 협회가 먼저 나서 여성 고위 임원을 발탁한 것이다. 전체 20명인 게이단렌 부회장단에서 여성 부회장은 아직 1명에 불과하지만 단순히 보여주기식 인사는 아니었다. 난바 부회장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스타트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등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역할로 꾸준히 나서고 있다. 대기업 그것도 전통 제조업 분야 출신의 남성 기업인들만 요직에 참여할 수 있었던 오랜 관행을 깬 것. 이 때문에 일본에선 ‘게이단렌이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 요구에 호응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반면 한국의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은 현재 부회장단 11명이 모두 남성으로만 꾸려져 있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대표 경제 단체 자리에서 밀려난 전경련이 여전히 변화에 더딘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경련 요직을 대기업 재벌 출신이 장악하고 있고, 한국 경제 위기를 진단하고 국가 미래 먹거리 발굴 등 비전을 내놓는 본연의 업무에서도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전경련은 정치인 출신인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이 회장 직무대행직을 맡았다. 처음으로 기업인이 아닌 외부 인사에게 수장을 맡겨 혁신을 하겠다는 생각. 하지만 김 직무대행 취임과 동시에 발표한 MZ세대를 대상으로 대기업 회장 전문경영인과 점심 식사를 하는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 경제인 명예의 전당 조성 등 혁신 방안들이 현재 전경련이 처한 현실을 타개할 근본적 개혁과는 거리가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과거 정경 유착으로 곤욕을 치렀는데도 정치인 출신을 개혁의 상징으로 앉힌 것부터가 자가당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로에 선 전경련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일본 게이단렌이 비(非)제조 분야 기업을 적극 영입하는 등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반면 전경련은 차기 회장을 구하지 못할 정도로 위상이 떨어져 있다. 왼쪽 사진은 일본 뉴스 플랫폼 업체 PR타임스가 게이단렌 가입을 기념하며 촬영하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지난달 전경련 등 국내 경제 단체들이 노조법 개정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PR타임즈, 이덕훈 기자

 

대기업 친목 모임 전경련

 

전경련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 이병철 회장이 1961 일본 게이단렌을 모델로 삼아 만든 단체다. 2차 대전 이후 일본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설립한 게이단렌을 벤치마킹해 박정희 정부의 산업화 정책에 기여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주요 기업 오너들이 돌아가며 회장직을 맡은 게이단렌처럼 전경련도 정주영·구자경·최종현 등 대기업 총수들이 회장에 올랐다. 전경련 회장은 곧 ‘경제 대통령’ ‘재계 총리’라 불릴 정도로 존경받았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현재 두 단체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다.

 

전경련은 현재 회장을 맡을 기업인을 구하기 어려울 만큼 위상이 추락했다. 2011년부터 허창수 GS 명예회장이 전경련을 이끌었는데 차기 회장을 구하지 못해 10년 넘게 연임하다 올 2월에야 겨우 물러났다. 국정 농단 사태로 삼성, SK, 현대차, LG 등 4대 기업이 탈퇴하고, 문재인 정권에서 패싱당하면서 존재감이 사라지다시피한 타격이 크다. 전경련이 회원 기업에서 걷는 회비 수익은 지난 2016년 408억원에서 2020년 78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달 UAE(아랍에미리트)와 다보스포럼 대통령 순방길엔 동행하지 못하는 등 친기업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에서도 외면받고 있다. 국내 재계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던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도 운영 비용이 대폭 줄어들면서 연구 성과의 질이 이전만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경련 출신 한 대기업 임원은 “현재 경제 단체장 가운데 맏형 역할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대표 경제 단체 역할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수장으로 있는 대한상공회의소가 맡으면서 전경련의 역할이 모호해졌다”고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70~80년대엔 경제 성장 주역이었지만 국정 농단 이후 위상이 무너지면서 지금은 대기업 오너들의 친목 모임이 됐다”고 했다.

 

정경 유착 꼬리표 게이단렌

 

게이단렌도 한때 전경련 못지않은 시련의 시기가 있었다. 기업들의 정치헌금을 자민당 등 보수 정치권에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했는데 1990년대 수차례 대형 정치 비리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정경 유착 온상이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2000년대 들어 자민당 내각의 경제 정책 회의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과감한 혁신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 단체의 위상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일본에선 게이단렌 회장의 외부 강연과 주요 일정 등 일거수일투족이 거의 매일 언론에 보도된다. 총리 다음으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수준. 게이단렌 회장을 배출한 기업은 자사를 홍보할 재계 서열이나 시가총액 규모보다게이단렌 회장을 배출한 기업이라는 수식어를 앞세운다.

 

게이단렌은 시대 변화에 맞춰 조직을 유연하게 변화시켰다. 2000년대 들어 지방 경제 활성화 대책, 중소기업 인재 육성 보고서 등을 발표하며 ‘대기업 이익만 옹호한다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2018~2021년 게이단렌 회장을 역임한 나카니시 히로아키 히타치제작소 회장은 전통적으로 제조 분야 대기업 중심이던 게이단렌의 진입 문턱을 낮춰 IT 기업과 스타트업을 회원사로 영입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게이단렌은 지난 2009 정치자금 제공 중단을 선언한 이후 기업별로 후원금을 내는 방식으로 투명하게 운영하면서 정치권과 거리 두기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게이단렌은 사회보장·노동 문제 등 각종 정책 분야를 논의하는 위원회를 40여 개 운영하면서 정부 정책에 대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기업이나 사용자 입장만 대변하지 않는다. 게이단렌은 지난해 말 회원사들에 ‘물가 상승으로 근로자 고통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에 임금 인상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 게이단렌 회장인 도쿠라 마사카즈 스미토모화학 회장은 오는 2027년까지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 100개를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일본의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데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지평 한국외대 교수는 “게이단렌은 과거 정치자금 제공책이라는 오명을 벗고 지금은 일본 정부가 껄끄러워할 정도로 목소리를 높이는 단체로 탈바꿈했다”며 “다양한 분야에서 일본 사회에 필요한 어젠다(안건)를 선제적으로 제시하며 국가 경제를 이끄는 리더 단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제조·IT 외연 넓혀야

 

기업 전문가들은 전경련이 과거 위상을 되찾으려면 게이단렌의 위기 극복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진입 문턱을 낮춰 IT 등 제조업 외 분야 기업들을 적극 유치해야 한다는 것. 최근 4~5년 사이 VR(가상현실), 미디어 분야 스타트업을 집중 영입하는 게이단렌과 달리 전경련은 회원사 500곳 대부분이 대기업이다. 전경련이 대기업에만 친화적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스타트업들이 중소기업중앙회나 대한상공회의소로 향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조직을 통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규모를 키워 경제 단체로서 존재감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 경총은 원래 전경련 고용·노무 담당 부서였다가 1970 노사 관계 전담 사용자 단체로 분리됐다. 손경식 경총 회장도 최근 “지난 5년간 경총이 사실상의 경제 단체장 역할을 했는데 이런 단체가 2개씩 있을 필요가 있는가”라며 두 단체의 통합을 주장했다. 두 단체가 합쳐지면 경총 회원사인 4대 그룹이 자연스럽게 전경련 소속으로 복귀할 수도 있다. 게이단렌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우리의 경총 격인 닛케이렌(경영자단체연맹)과 조직을 통합하면서 일본 내에서 영향력을 크게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경영학부)는 “미국의 정책 연구 기관인 헤리티지 재단처럼 전경련이 가진 글로벌 네트워크와 산하 연구 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을 통해 축적한 정책·행정·법규 관련 연구 성과를 살려 민간 싱크탱크로서의 기능을 강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인준 기자, 조선일보(23-03-04)-

________________ 

 

 

'경제 단체'가 안 보인다

 

"우리가 다루던 분야는 아니지만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다.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7일 오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이사회가 열린 서울 시내 한 호텔 로비에서 경총의 고위 임원이 기자들에게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질문은 전날 정부와 여당이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에 합의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협력이익공유제에 대해 경영계 내부의 반발은 한마디로 "이게 말이 되느냐"는 수준일 정도로 심각하다.

그런데 이 현안에 대해 경총은 물론 모든 경제 단체가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 물으면 마지못해 답하고 그나마 강한 톤은 주저한다. '반대한다"는 입장문이나 성명서는 아예 전무(全無)하다. 그러면서 "속으로 부글부글 끓는다"는 비(非)보도 전제의 발언만 내놓는다.

이번 정권에서 적폐로 몰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아예 코멘트조차 손사래를 친다. 대신 산하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이 응할 뿐이다. 재계의 맏형격인 대한상의는 관련 임원 코멘트로 대신하고 입장문 등은 내놓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번 협력이익공유제는 입법화하겠다는 발상의 무모함은 차치하고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아 논란이 불가피하다. 개별 협력사나 개인의 기여도를 계산하는 게 매우 어려운 게 첫 번째다. 글로벌 소싱 시대인 요즘 외국 협력사가 많은데, 이들이 문제 제기를 하면 통상 이슈가 될 수 있다. 또 업종과 개별 기업, 프로젝트마다 개별 기업의 기여도를 산출하는 것이 너무 복잡하다. 이걸 노사 자율도 아닌 법으로 정해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제 단체들은 성명서 하나 못 낸다. 물론 여기에는 짐작되는 이유가 있다. 현 정권 초기 경총의 고위 임원이 "세금을 쏟아부어 일자리를 만드는 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했다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공개 면박을 당했다. 이어 여당과 국가기관인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까지 나서서 그 임원을 맹공했고, 그는 사퇴 후 재임 시절 개인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는 처지에 놓였다.

최악의 고용과 꺼져가는 투자·소비 같은 경제 상황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하는 게 주 임무인 경제 단체들이 통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와 기업인의 권익 대변은 각기 노동조합과 경제 단체의 몫이다. 어느 한쪽이 선(善)이고 다른 쪽이 악(惡)은 아니다. 새의 양 날개처럼 균형을 맞춰야 사회적, 경제적 균형점도 찾을 수 있고 조기 경보 기능도 가동된다.

하지만 지금 그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을 주도한 중소벤처기업부는 6일 보도 자료에서 "대·중소기업을 대상으로 64회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의견 수렴 방법도 궁금하지만 '경제 단체 패싱'이 뼈아프다. 경제 단체는 이럴 때 의견 수렴 창구라도 되라고 존재하는 게 아닌가.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조선일보(18-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