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들의 독서]
[경제정책 작명]
대통령들의 독서
[송평인 칼럼]
文, 대통령이 읽어야 할 책은 안 읽고 대통령에겐 너무 한가한 책 많이 읽어
尹, 대선 때 입이 닳도록 거론한 책.. 실제 정책은 책 내용과는 거꾸로 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 책방을 연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책 추천은 좀 신중히 했으면 한다. 그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훌륭한 독서가가 아닌 듯해서 하는 말이다.
암살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회고록이 얼마 전 일본에서 출간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 “호전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군사 행동에 소극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한다.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낸 ‘불구가 된 미국’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을 읽어봤다면 트럼프가 돈이 아까워서라도 전쟁하지 못할 ‘위인’임을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문 정부의 청와대는 2017년 미국이 당장이라도 북한을 폭격해 전쟁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해 10월쯤 청와대 어느 수석과 저녁을 했다. 내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너무 유화 일변도라고 비판하자 술이 들어간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당장 한반도에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는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버럭 화를 냈다. 외교나 안보와는 관련 없는 수석인데도 그래서 놀랐다. 청와대 분위기가 그랬던 모양이다.
트럼프의 책에는 군사력은 실제 사용해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보다 군사력의 압도적 우세를 과시함으로써 상대방이 지레 겁먹게 하는 게 돈이 덜 든다는 대목이 곳곳에 나온다. 문 전 대통령이 이 책을 읽어봤다면 ‘6·25전쟁 이후 최대 위기’ 운운하며 스스로를 기망하면서 전 세계의 비웃음을 산 평화 쇼를 벌이진 않았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이 책에 각별한 애정을 표시하지 않았다면 ‘트럼프의 책 좀 읽어볼 것이지’라는 주문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으로 꼭 읽어야 할 책은 읽지 않고 대통령으로서는 참으로 한가한 책들을 많이도 읽고 권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과는 달리 거의 혼밥을 하지 않는 타입이다.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니 책 읽을 시간도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책을 꼭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사람을 만나서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유학 갈 때 아버지로부터 책 읽지 말고 사람 만나 살아 있는 지식을 배우라는 가르침을 받고 유럽통합의 아버지가 된 장 모네 같은 위인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아는 게 많아 말귀를 알아먹을 때의 얘기다.
윤 대통령이 대선 때 거론한 책이 한 권 있으니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다. 하도 이 책을 자주 거론해서 읽은 게 이 책밖에 없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책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통찰로 가득 차 있다. 프리드먼은 5% 정도의 물가 인상은 가볍게 여긴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과 달리 1%의 인플레는 1%의 ‘입법 없는 과세’라며 그 폐해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물가를 잡을 때는 물가를 잡는 데 전념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은 물가를 잡는 것과 동시에 공공요금 현실화, 의무보험료 징수 확대 등 오만 것을 다 하겠다고 덤비다가 난방비 폭등으로 비로소 책 속의 인플레가 아닌 실제 인플레가 뭔지 알게 된 듯 이번에는 방향을 완전히 바꿔 공공요금은 물론이고 소주 등 사기업의 물가까지 통제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프리드먼이 하지 말라고 경고한 바로 그것을 하고 있다.
미국과의 금리차로 인한 환율 문제도 있고 해서 정부로서는 한국은행의 금리 결정에 왈가불가하기 어려워졌다. 그러자 2선에서 은행을 다그쳐 예금금리를 낮추게 하더니 다시 대출금리까지 낮추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인플레는 언제나 어디서나(always and everywhere) 통화적 현상’이며 통화량 조절이 인플레 대책의 핵심이라는 ‘선택할 자유’의 내용에 정면으로 어긋난 것이다.
대부분의 정부는 인플레에 필요한 대책을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대책을 밀고 가는 정부의 의지다. 프리드먼은 낮은 경제성장과 평시보다 높은 실업기간을 거치지 않고 인플레가 종식된 사례는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단언한다. 정부의 역할은 인내심을 갖고 대처하면서 그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다. 윤 정부에 부족한 것이 바로 그런 인내심이다. 윤 대통령이 얼마 전 스스로 강조한 괴테의 문구가 있지 않나. ‘서두르지 말고 그러나 쉬지 말고(ohne Hast, aber ohne Rast).’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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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작명
Y노믹스, 윤노믹스, SY노믹스, 윤석열노믹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20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가 추진할 경제정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아직 차기 정부 정책의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나지 않아 공식화된 이름도 없지만 세간에선 예전 작명법에 준해 다양한 이름을 만들어 붙이기 시작했다.
▷국가 수장의 성(姓), 이니셜에 이코노믹스(경제학)를 결합한 ‘∼노믹스’의 원조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다. 레이건 정부는 2차 오일쇼크로 침체에 빠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정부 역할을 축소하고, 세금을 낮추는 레이거노믹스를 1980년대에 추진했다. 조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제품을 자국 내에서 생산하도록 유도하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대폭 늘리는 바이드노믹스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일본에선 아베 신조 총리 때 아베노믹스부터 총리 이름을 경제정책 작명에 쓰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김대중 정부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강조하며 사용한 DJ노믹스가 처음이다. 노무현 정부는 7% 성장론, 균형발전 등이 담긴 노(盧)노믹스, 이명박 정부는 세금 인하와 규제 완화를 핵심으로 한 MB노믹스를 추진했다. 지하경제 양성화 및 재정·세제 구조조정을 통한 복지 확대를 추진한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근혜노믹스 또는 박근혜노믹스로 불렸다. 하지만 출범 이듬해 세월호 참사 후 경기가 가라앉자 최경환 경제부총리 주도의 종합 경기부양책이 나왔고, 그때부터 초이노믹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임기 초 J노믹스로 명명됐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확대 등으로 근로자 소득을 높여 경제를 키운다는 소득주도성장이 핵심이다. J노믹스란 이름은 현 정부 첫 대통령경제보좌관을 지낸 김현철 서울대 국제경제학부 교수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J’는 대통령 이름 첫 자의 이니셜일 뿐 아니라 글자 모양처럼 처음엔 잠깐 경제가 주저앉더라도 잠시 뒤 빠르게 우상향하며 살아날 것이란 기대가 담긴 작명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윤 당선인은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미국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꼽을 만큼 자유시장 경제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그의 공약 대부분은 실패한 현 정부 부동산, 일자리, 탈원전 정책에 대한 반작용 성격이 강하다. 경쟁적으로 쏟아낸 포퓰리즘 공약까지 뒤섞여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과 비전이 아직 뚜렷하지 않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걸러낼 건 걸러내고, 더할 건 더해 전체 그림을 완성한 뒤 작명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동아일보(2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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