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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엄한 수술실에서 요즘은 ‘네박자 뽕짝’도 튼다네요]

뚝섬 2023. 3. 12. 08:36

지엄한 수술실에서 요즘은 ‘네박자 뽕짝’도 튼다네요


[
김동규의 나는 꼰대로소이다]
생과 넘나드는 수술실
밝고 자유분방해진 사연

 

살아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에 설움이 복받쳐 눈시울이 붉어진다. 무심한 병원 직원은 서둘러 출입 금지 구역인 수술장 안으로 침대를 몰고 총총히 사라졌다. 한동안 목을 길게 빼고 멍하니 복도를 바라보다 옆에 마련된 대기실로 발길을 돌린다. 이제 얼마나 걸릴 줄 모르는 시간을 하염없이 마음 졸이며 기다려야 한다.

 

눈을 감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미동도 없는 어르신, 연신 묵주를 돌리며 기도문을 중얼거리는 아주머니, 모시고 온 여승의 손을 꼭 잡고 앞만 응시하는 할머니 등 대기실 분위기가 천근만근이다.

 

얼마나 흘렀을까, 수술이 끝난 환자의 친지는 하나둘 자리를 뜬다. 점점 더 초조해진다. 진행 상황을 알리는 모니터를 뚫어지도록 바라보면서 십 년은 감수하는 기분이다. 마침내 회복실로 옮겼다는 반가운 소식이 떴다. 뒤미처 담당 교수가 수술실 입구에서 잠깐 만나자는 전갈도 왔다. 동지섣달 꽃을 본 듯 얼굴이 활짝 펴지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환자의 가족이 속이 새까맣게 타는 동안 수술실의 풍경은 어떨까? 대기실과 마찬가지로 깊은 산속 절이나 성당같이 엄숙하고 조용할까? 함께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 보자.

 

전공의 시절에 아주 엄한 노(老)교수님이 계셨다. 면도날보다 날카로운 눈초리에 평소에도 얼굴을 대하면 오금이 저렸는데 특히 수술복을 입었을 때 카리스마는 대단하셨다. 수술하는 동안 본인 외에는 누구도 소리를 내면 안 됐다. 당신도 꼭 필요한 말씀 말고는 침묵 속에서 재빠르게 손을 놀리셨다. 숨소리조차 크게 내면 경을 치는 마당에 신입 전공의가 멋모르고 질문을 했다가 그 자리에서 쫓겨나는 불상사도 흔했다. 심지어 환자 상태를 알리려고 말을 거는 마취과 교수에게 불호령이 떨어지는 등 공기가 자못 살벌했다.

 

왜 무조건 말을 하면 안 되는지 궁금했으나 감히 여쭐 군번이 아니고 용기도 없었다. 이제는 고인이 되셔서 까닭이 영원히 오리무중이지만, 짐작하건대 스스로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본인도 감내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대단했으리라. 가부장적 사고에 일제강점기에 교육을 받았던 분들이 활동하던 시대의 수술실은 삑삑거리는 기계 소리뿐, 문자 그대로 적막강산이었다.

 

미국 의학이 들어오고 민주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수술실도 옛 분위기와 달리 많이 자유분방해졌다. 그래도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장소인 만큼 지금도 결코 가벼운 분위기는 아니다. 매일 되풀이하는 작업이지만 메스를 들면서 집도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수술자도 인간인지라 오랜 시간 극도의 긴장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온종일 수술현미경을 들여다보는 뇌수술의 경우는 특히 심신의 피로가 상상을 초월한다.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임해야 장시간을 견딜 수 있다.

 

과거에는 마취 기술이 부족해서 서둘러 수술을 마쳐야 했다. 집도의는 분초를 아껴야 하므로 내내 없이 몰아쳤다. 작은 절개로 빨리 수술을 마감하는 의사가 훌륭한 외과의로 통했다. 하지만 마취학의 발달로 오랜 시간 안정적인 마취 상태를 유지할 있어 이제는 수술을 빨리 끝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시야 확보를 위해서는 충분히 절개해도 무방하다. 진행이 여의치 않을 때는 잠시 숨을 돌리기도 하고, 힘들거나 허기가 지면 ‘브레이크 타임 갖고 우유 마시기도 한다. 반면에 수술이 예상한 대로 매끄러울 경우는 조수와 메이저 리그에서 터진 ‘추추 트레인’의 찌릿한 끝내기 홈런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분위기를 이어간다.

 

어떤 교수는 수술을 돕는 전공의나 간호사를 편하게 해주려고 실없는 농담을 건넨다. 일순간 웃음바다가 되고 수술실 밖으로 큰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기도 한다. 묵직한 클래식 음악이나 네 박자 ‘뽕짝’이 울려 퍼지는 수술실도 있다. 대부분 수술은 조용하게 진행되는데 수술자의 성격에 따라 수술실의 분위기가 이처럼 각양각색으로 바뀌기도 한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그날도 열 시간을 훌쩍 넘기고 기진맥진해서 수술을 마쳤다. 수술복이 땀범벅이고 입에서 단내가 난다. 뻑뻑한 눈을 비비면서 걸어 나오는데 옆 수술실에서 양희은이 불러 널리 알려진, 가라앉은 분위기의 ‘한계령’이 흘러나온다.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여느 때 같으면 긴 시간의 수술 후에도 탈의실에서 더운물로 한바탕 샤워를 마치면 거뜬했는데 유난히 온몸이 노곤하다. 새삼 기운이 예전 같지 않게 느껴진다. 수술실이 지친 어깨를 떠밀며 그만 오라는 신호를 보내는 듯하다. 하기야 꼬박 40년을 다람쥐처럼 쳇바퀴를 돌았으니 삐걱거릴 때도 됐지. 이제 제2의 인생은 바람처럼 구름처럼 훨훨 날아다니며 지낼 수 있을까.

 

옷을 갈아입고 수술장 입구에서 환자의 보호자를 만나 수술 내용과 결과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잘됐다는 말에 연신 고맙다며 허리를 굽히는 보호자를 뒤로하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긴다. 뒤통수에 환자 가족의 시선이 느껴졌다.

 

오늘도 할 일을 무사히 마쳤다는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뿐 애간장이 녹아내렸을 보호자의 심정은 왜 염두에 두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철들자 망령이라더니 수술 설명 끝에 손이라도 잡으며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를 붙이면 좋았겠다는 때늦은 후회의 마음이다.

 

-김동규 서울대 신경외과학 명예교수·'마음놓고 뀌는 방귀' 저자, 조선일보(23-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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