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決濟)와 결재(決裁)
[차현진의 돈과 세상]
3년 전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가 덮쳤을 때 박쥐가 바이러스의 숙주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박쥐 요리를 먹는 중국인들을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중국에서 박쥐 거부감이 작은 이유는, 박쥐를 뜻하는 편복(蝙蝠)이 ‘두루 복을 받는다’는 뜻의 편복(遍福)과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박쥐는 나무나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사니, 집 안 곳곳에 복(福)자를 거꾸로 써 붙여 놓고 복이 쏟아지기를 바라는 중국인들이 좋아할 만도 하다.
편복(蝙蝠)을 편복(遍福)과 연결하는 것을 ‘해음(諧音)’이라고 한다. 해음은 발음을 이용한 일종의 ‘아재 개그’지만,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중국에는 새우 그림이 흔하다. 긴 수염 때문에 새우의 별명이 ‘바다 늙은이’ 즉 해로(海老)인데, 해로(偕老)와 발음이 같다. 그래서 새우 그림은 부부 행복을 상징한다.
해음은 한국화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게가 갈대를 물고 가는 그림은 장원급제를 상징한다. 갑(甲)옷을 입은 게가 갈대를 옮기는 모습(傳蘆·전로)을 통해 과거 시험 일등(甲) 합격자가 임금이 내린 축하 음식(傳臚·전려)을 받아 가는 영광을 기원한다. 하지만 게는 갈대를 물지 않는다.
백로와 연꽃 열매를 그린 그림도 마찬가지다. 백로 한 마리(一鷺)와 연과(蓮果)는 ‘일로연과(一路連科)’ 즉 과거 시험 1, 2차를 한 번에 통과하라는 말과 발음이 같다. 하지만 백로와 연꽃 열매는 동시에 볼 수 없다. 백로는 여름 철새고, 연과는 늦가을에나 맺힌다. 현실은 상상과 다르다.
해음은 일상생활에서도 관찰된다. 식당이나 상점을 나올 때 종업원이 손님에게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높은 분이 결재(決裁)하듯 결제(決濟)해 달라는 말이다. 하지만 손님은 결제할 수 없다. 손님은 현찰이나 신용카드로 ‘지급’할 뿐이요, ‘결제’는 그 뒤에 은행이 알아서 진행한다. 현실은 상상과 다르다.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조선일보(2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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