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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비싼 개·고양이 진료비] [독일의 합리적 애완견 세금]

뚝섬 2023. 8. 5. 07:05

[사람보다 비싼 개·고양이 진료비]

[독일의 합리적 애완견 세금]

[버려진 개의 상처를 아시나요]

[개를 키운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 마을에선 거의 모든 집에서 개를 기른다]

 

 

 

사람보다 비싼 개·고양이 진료비 

 

지난해 경기도의 한 유료 주차장에서 바닥에 엎드려 있던 대형견 골든 리트리버가 진입하던 승용차에 치여 부상을 입었다. 갈비뼈 8대 골절, 기흉에 양쪽 대퇴골이 다 빠지고 금이 간 중상이어서 5차례 수술 받느라 치료비가 4000만원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해 차량 보험사가 몇 백만 원밖에 보상을 못 해준다고 하자 견주가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사연이 알려지면서 반려견 치료비 4000만원을 놓고 네티즌들 사이에서 “운전자 책임이 크다”는 주장과 “개를 방치한 견주 책임이 크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소형견 몰티즈 3마리를 14년간 키워온 지인은 각각 방광암, 심장판막 비대증 등을 앓던 반려견들 병원비로 그간 지출한 돈이 1억원을 훌쩍 넘는다고 했다. 방광암 수술 받고 중환자실에 열흘간 입원한 비용이 1000만원, 빈혈로 수혈받는 데 1회 90만원 등 동물 병원 진료비가 생각 외로 비싸기 때문이다. 통장이 그야말로 ‘텅장’(텅빈 통장)이 됐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가장 큰 부담이 동물 병원 진료비다. 지난해 기준 한 마리 월평균 양육 비용이 약 15만원인데 그중 71.8%가 동물 병원 진료비로 나갔다는 통계도 있다. 반려동물의 동물 병원 방문 횟수가 연평균 4.6회다. 암, 심장병, 결석, 치매 등 반려동물도 나이 들면 병치레가 잦아져 병원 갈 일이 많아진다. 개나 고양이는 증상을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도 없으니 진단하느라 갖은 검사를 하다 보면 1회 진료비가 수십만 원 나오기는 예사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전국의 동물 병원 1008곳 진료비를 조사했더니 ‘엿장수 맘대로’ 가격이었다. 지역별로 편차도 커서 세종시 초진료는 7280원, 충남은 2배 가까이 되는 1만3772원이었다. 같은 지역에서도 초진 진찰료가 3300원인 곳이 있는가 하면 5만5000원으로 16배 넘게 비싼 곳도 있었다. 입원비는 고양이가 최고 50만원, 대형견은 35만5000원인 곳도 있었다. 서울의 주요 대학 병원 1인실이 하루 45만~46만원인데 그보다도 고양이 입원비가 더 비싸다.

 

▶우리나라는 서너 가구에 한 집꼴로 개나 고양이를 키워 반려견·반려묘가 800만마리쯤 된다. 이 중 100마리에 1~2마리꼴로 주인에게 버림받아 연간 유기 동물 숫자가 12만마리나 된다. 진료비 표준화 등을 통해 동물 병원의 황당한 바가지 요금이 사라지고, 펫 보험 가입이 늘어나는 등 반려동물을 책임 있게 키울 환경이 정착되어야만 병들고 나이 들었다고 반려동물을 무책임하게 버리는 행태도 줄어들 것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3-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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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합리적 애완견 세금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 들개가 된 유기견들이 공포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야생 노루를 잡아먹거나 인근 농가나 목장에서 키우는 닭, 염소 같은 가축을 잡아먹는다. 지난해 제주대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실태 조사를 했더니 산림지와 초지가 접한 해발 300~600m 중산간에 들개가 2000마리가량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섬이나 다른 시골 마을도 들개 떼가 있다. 이사 가면서 키우던 개를 버리고 가거나, 휴가 때 섬이나 해변에 개를 버리고 가면 그 유기견들이 동네를 떠돌다 산속으로 들어가 들개로 야생화되고 번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반려견·반려묘는 800만마리쯤 된다. 100마리당 1.5마리꼴로 주인에게 버림받거나 주인을 잃어버려 연간 유기동물 숫자가 12만마리나 된다고 한다. 보호소에서 새로 입양되기도 하지만 절반가량은 안락사나 병사한다.

 

▶애견인들 사이에 ‘개들의 지상 낙원’으로 꼽히는 나라가 독일이다. 반려견 관리가 철저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무조건 국가에 등록하고 등록번호를 발급받아야 한다. 독일 개는 엄연한 ‘납세견’이다. 주인과 산책 나갈 훈데스토이어( 세금) 인식표를 달고 나간다. 개 세금은 지자체별로 걷는데 견종, 무게 따라 다르다. 마리당 1년에 최소 100유로( 14만원) 된다. 맹견은 중과세된다. 안내견, 구조견 등으로 사회에 이바지한 개는 세금을 감면받는다. 개만 세금을 내고, 주로 집에만 있는 고양이는 세금을 안 낸다. 개는 심지어 버스도 요금 내고 탄다. 한 마리까지는 무료 탑승, 두 마리부터 요금 낸다. 단 캐리어나 가방에 담겨 있으면 무료다.

 

▶개 세금은 유럽에서 광견병 피해가 커지자 1796년 영국에서 도입했는데 영국에선 없어졌고, 독일, 네덜란드 등에는 남아있다. 개를 안 키우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개가 여러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만큼, 개 주인에게 세금을 매기는 것은 합리적이다. 세금 걷어 독일은 ‘티어하임’이라는 공공 동물 보호소를 운영한다. 시설이 쾌적하다. 유기견 안락사도 안 시킨다. 동물을 사고파는 펫숍이 없는 독일에선 전문 브리더에게 분양받으려면 거액을 들여야 한다. 반면 티어하임에서 개를 입양하면 훨씬 싸고 예방 접종과 국가 등록도 마친 상태여서 입양률이 높다.

 

농식품부가 반려동물 전담 조직을 만들고 관리해서 연간 12만마리의 유기동물 숫자를 2027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고, 2100건의 개물림 사고도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고 한다. 개를 물건 만들듯 마구 생산하고, 너무 쉽게 사고팔고 버리는 문화는 다 바뀌어야 한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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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개의 상처를 아시나요

 

[동물과 발맞춰 걷기]

 

수의대 4학년때 지자체가 운영하는 유기동물보호소에서 한 달간 실습을 했다. 지금도 수의학 의료봉사 단체 소속으로 봄·가을에 매달 유기동물보호소를 찾아 봉사하고 있다. 유기견 보호소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버려진 개의 비율이 높다.

 

2014년에 반려견 등록이 의무화되었기 때문에 많은 반려견은 내장형 마이크로칩이 양쪽 어깨뼈 사이 피하에 주입돼 있다. 등록을 하지 않으면 1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 때문에 실수로 보호자를 잃어버린 반려견도 내장칩을 통해 빠르게 보호자를 찾을 수 있다.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실습할 때 지켜본 반려견들의 운명은 둘로 엇갈렸다. 내장칩이 있는 반려견은 스캔 기기를 통해 전산상으로 등록된 보호자를 손쉽게 추적할 있다. 험난한 여정을 거쳐 반려견을 만난 보호자들은 대부분 눈물을 터트리며 감사를 표한다. 덩달아 코끝이 시큰해지며 가슴이 뭉클한 기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국내 한 한 동물보호소에서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유기견들. /동물자유연대 제공

 

반려견의 관리 상태를 보면 보호자를 실수로 잃어버린 것인지 혹은 버려진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칩을 내장하고 있지 않은 개들은 대부분 외관상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보호자로부터 버려져 반려견에서 유기견이 된 것이다.

 

가족으로부터 버려진 아픔을 갖고 있는 유기견들의 행동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사람을 두려워해 봉사 참여자들을 매우 경계하거나 무서워하는 부류, 또 하나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음에도 마치 자신을 입양해달라는 것처럼 봉사자들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부류다. 가족이나 보호자에게 학대받고 버려진 개는 덜덜 떨면서 꼬리를 숨기고 짖거나 입질을 한다. 학대를 저지른 이의 성별에 해당하는 사람을 지나치게 경계해서 수의사가 진료하기 어려운 일도 잦다.

 

반려견이 엄연한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이들을 지칭하는 이름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동물병원에서도 과거엔 아픈 개를 ‘환축’으로, 키우는 사람을 ‘주인’으로 표현했지만, 이제는 각각환자’ ‘보호자라고 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입양이 늘어난 만큼 파양하거나 유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파트 생활이 많은 우리나라 특성상 무턱대고 대형견을 입양했다가 키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개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또 반려동물에게 쓰이는 돈이 결코 적지 않음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입양했다가 감당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현재 개 또는 고양이의 마리당 사료 및 용품 지출 금액은 연평균 약 50만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동물병원 진료비를 제외한 금액이다. 일부 보험회사에서 출시한 반려동물 보험이 있기는 하나, 반려동물은 사람과는 달리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동물병원 진료비는 상대적으로 매우 높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TV 프로그램에서 특정 품종견이 화제가 되면 한동안 해당 품종의 입양이 유행처럼 늘어난다. 그러나 품종견은 고유한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유행이 지나면 버려지는 확률도 높다는 점이 매우 크게 우려가 되는 문제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버려지는 반려동물은 들개 또는 길고양이가 되거나 유기동물보호소로 가기 마련이다. 대다수 보호소는 생각보다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유기동물 보호 기간은 10일로 정해져 있다. 기간 안에 입양되지 못하면 안락사를 당할 있다.

 

최대한 안락사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보호소에서도 입소하는 유기동물의 숫자가 많아지면 이를 감당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안락사를 시행한다. 소수의 후원으로 유기동물을 보호하는 사설 보호소는 구체적인 정보를 알리지 않는다. 안락사를 시행하지 않는 보호소로 알려지면 파양하려는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 버리고 떠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곁에 두고 즐거워한다는 뜻의 ‘애완동물’이라는 단어 대신 삶을 함께하는 가족이라는 의미의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문화가 널리 정착됐다. 반려동물을 맞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가족 구성원으로서 생명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새로운 생명이자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만날 때의 설렘과 비례해 마지막까지 함께하겠다는 책임감이 필요한 이유다.

 

-김민은 수의사, 조선일보(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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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운다는 것에 대하여

 

[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사람과 교감하고, 나이 들고 덩치 커져도 어리광개가가족 이유
키우는 생애 전체를 책임지는 , 시간·비용 희생 각오해야
있어야 키운다면 주인 자격 없어파양견, 마음 좋은 주인 찾길

 

개를 키우는 것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몸집이 커져도 행동은 어릴 때와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영리한 개라 해도 먹을 것 앞에서는 코를 벌름거리며 침을 흘린다. 구르는 공이나 오토바이처럼 빨리 움직이는 것은 모두 쫓아가려고 한다. 늙은 개가 점잖아지고 덜 짖는 것은 기력이나 호기심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개는 어른스러워지지 않는다.

 

개를 훈련시키면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 똥오줌도 가린다. 주인 옷차림을 보고 산책 나갈 것 같으면 펄쩍펄쩍 뛴다. 외출하는 낌새면 본 척도 하지 않는다. 분명히 제 집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는데 라면 봉지 뜯다가 돌아보면 차렷 자세로 앉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어떨 때는 하도 신통해서 개가 말을 할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많은 사람이 이런 이유로 개를 키운다. 개를 가족이라고 하는 건 실제 가족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암부터 치매까지 개도 사람처럼 병을 앓는다. 동물 병원에서 그런 개를 만난 적이 있다. 한쪽 눈이 멀고 털이 절반이나 빠졌으며 피부엔 진물이 나 있었다. 주사를 놓고 약을 먹여야 하는데 개는 약을 모조리 뱉어내고 주인 손을 물어 피를 냈다. 개와 15년을 살았다는 주인은 눈물을 글썽였다. 약을 먹어야 하루라도 더 산다는데 송곳니를 드러내며 반항하는 개가 답답하고 불쌍하다고 했다.

 

어렸을 때 마당에서 키운 개와 보낸 시간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몇 년 전 약간 충동적으로 강아지를 입양했다. 개는 데려온 첫날부터 나를 사랑해주었고 언제나 한결같이 달려와 품에 안겼다. 그러나 개의 사랑을 받는 대신 포기하고 희생해야 것이 많았다. 소파는 발톱에 긁히고 의자들은 이빨에 갉혔으며 오줌에 전 카펫을 들어내니 마루가 썩어 있었다. 여행을 맘대로 갈 수도 없었다. 돈 받고 개를 봐주는 사람에게 며칠 맡기고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다시 만난 개는 집에 오자마자 한참 물을 마셨다. 개를 산책시켜 주지도 않고 집 안에서 오줌 쌀까 봐 물을 거의 주지 않았을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 다시는 그런 곳에 맡기지 않겠다고 개에게 약속했다.

 

개를 키운다는 것은 언젠가 개와 이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 병원에서 마주치는 늙고 병든 개들을 보면서 나는 겁이 났다. 충분한 마음의 준비 없이 개를 키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와 헤어질 테지만, 개를 키움으로써 그런 관계를 하나 더 늘린 것이 잘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개를 사랑하면 할수록 이별은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개는 주인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밥과 물을 주고 함께 놀아줄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든 주인이 자신을 버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휴가철이면 시골에 유기견이 늘어난다. 휴가지에 개를 버리고 가는 사람이 많다. 자신을 길바닥에 내팽개친 뒤 차를 타고 달아나는 주인을 개는 이해할 수 없다. 개에게 주인과 하는 이별은 오직 어느 한쪽의 죽음뿐이다. 버려진 개들은 주인을 만나더라도 사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밤이 되면 개가 다가와 손등을 핥다가 나를 등지고 엎드려 잔다. 등을 보이는 것은 나를 믿는다는 뜻이다. 나는 아주 가끔, 개를 괜히 키우기 시작했나 하다가도 개의 눈과 등을 떠올리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나는 개를 배신할 수 없다. 개를 키운다는 것은 개의 생애 전체를 책임지는 것이다. 개를 위해 노심초사하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개를 돌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야 개를 키울 수 있다.

 

개를 키우느라 돈을 썼고 개에게 사랑을 쏟아준 것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말 때문에 시끄럽다. 사료 값, 인건비, 치료비, 데려오는 비용, 데려다 주는 비용, 무상으로 양육…. 그 글에서 돈 이야기가 유독 도드라지게 읽혔다. 더구나 개 키우느라 인건비를 썼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주고 누굴 시켜서 개를 키웠다면, 주인이 일은 무엇인가. 개를 예뻐하는 것과 개를 키우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그 개들은 어쩌면 동물원에 갈지도 모른다. 개는 가둬놓고 구경하는 동물이 아니기에 개들은 불행하다. 새로 주인을 만나게 해주는 게 최고의 선택이다. 누구의 선물인지 어디서 왔는지 같은 것은 개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개는 오로지 주인만을 바라보는 존재임을 아는 사람이면 된다. 늙고 병들어 주인을 물어도 불쌍해서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족한 것이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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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선 거의 모든 집에서 개를 기른다..

 

[시골일기]

 

우리 마을에선 거의 모든 집에서 개를 기른다. 개 숫자와 사람 숫자가 서로 엇비슷하다. 조막만 한 발바리와 집채만 한 알래스카 썰매개도 볼 수 있지만 진돗개 피가 섞인 흰둥이가 가장 많다. 한때는 누렁이가 흔했는데 정력이 남다른 수컷 흰둥이 하나가 바삐 나다니며 씨를 퍼트리면서 흰둥이가 부쩍 늘어났다. 자기 집에 줄로 묶여 있지 않은 흰둥이들은 얼굴에 몇 개씩 흉터가 있다. 뻔질나게 산에 올라 돌아다니다가 가시나무에 긁히거나 멧돼지 같은 짐승과 한판 벌이다가 다쳐서 생긴 흉터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강아지가 겁쟁이나 응석받이로 밝혀지면 많이 힘들어한다. 그래서 좀 더 용감해지기를 바란다. 모두가 낯선 사람이 마당으로 들어서면 펄쩍펄쩍 뛰며 목이 터져라 짖어댄다. 덩치는 중간쯤이어서 밥을 알맞게 먹으며 아주 튼튼해서 잔병치레가 없다. 늘 문을 열어놓고 지내며 환경이 거친 시골에서 키우기에 딱 좋다. 게다가 귀소본능이 강해서 멀리 갔다가도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영영 되돌아오지 않는 개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지난 몇 해 사이에 우리 집 멍멍이도 두 녀석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산에서 짐승을 쫓다가 올무에 걸린 듯했다. 예전에 우리 마을 뒷산엔 금광이 있었다. 아직도 수직으로 내려가는 갱도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어쩌면 개들이 발을 헛디뎌 갱도 속으로 떨어졌을 수도 있었다. 한번은 장마가 끝난 뒤에 꼭두새벽부터 빗물에 쓸려 내려온 골짜기 흙더미를 뒤지고 개 이름을 목청껏 외치며 돌아다녔다. 또 한번은 온 산에 무릎 높이로 눈이 내린 겨울날 장화를 신고 겨우 걸음을 옮기며 해거름까지 개를 찾아 다녔다.

지금 우리 집엔 두 살짜리와 세 살짜리 진돗개가 있다. 돌돌이는 그렇지 않은데 꼬맹이는 잊을 만하면 말썽을 피운다. 다른 짐승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하려는 본능이 어찌나 강한지 모른다. 자기와 같은 집에 사는 동물들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우리 집 고양이와 새들은 꼬맹이가 걸핏하면 와락 덤벼드는 바람에 간이 바짝 오그라들었다.

돌돌이보다 반년 늦게 세상에 태어난 꼬맹이는 젖을 떼자마자 우리 집에 왔다. 돌돌이는 혀로 핥아 주고 앞발로 쓰다듬으며 동생을 무척 아끼고 예뻐했다. 꼬맹이는 무럭무럭 자라더니 돌돌이와 덩치가 비슷해졌다. 그 뒤로 이따금 느닷없이 돌돌이에게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면 돌돌이는 얼른 집 속으로 달아나선 몹시 당황한 얼굴로 눈을 끔벅거렸다. 갈수록 사나워진 꼬맹이는 지난해 여름에 닭장 밖으로 나온 중병아리를 해쳤다. 지금부터 보름 전엔 닭장 한쪽 철망을 뜯고 들어가 암탉들이 모두 두 다리를 쭉 뻗게 만들었다. 내가 그동안 암탉들을 정성껏 돌보는 모습을 코앞에서 지켜보아 놓고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눈에 불을 밝히며 막대기를 집어들고 꼬맹이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바로 그때 돌돌이가 꼬맹이 곁에 바짝 붙어서며 나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낑낑거렸다. 마치 꼬맹이를 때리지 말라고 애원하는 소리로 들렸다. 잠자코 서 있는 사이에 화가 풀리며 헛웃음이 나왔다. 막대기를 멀리 던져버리고 돌돌이와 꼬맹이 밥그릇에 사료를 가득 부어주었다. 마실 물을 깨끗하게 갈아준 뒤에 꼬맹이에게 한마디 던지고 돌아섰다. 이 녀석아, 닭들이 아무리 미워도 그러면 어떡하니.

-원재길 시인·소설가, '시골극장' 저자, 조선일보(1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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