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중국은 여전히 낯설고 먼 이웃] [中과 같은 구조물 中쪽에 설치해야]

뚝섬 2025. 4. 4. 09:41

[중국은 여전히 낯설고 먼 이웃]

[中과 같은 구조물 中 쪽에 설치해야]

[핵추진잠수함을 서둘러 건조해야 하는 이유]

[중국의 西海 강점, 지금 막아야 한다]

['중국적 질서'로 복귀하길 원하나?]

[그대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중국은 여전히 낯설고 먼 이웃

 

중국 속언에 “먼 곳의 물은 가까이에 난 불을 끄기 어렵다(遠水難救近火)”는 말이 있다. 다음에 한 구절이 더 이어진다. “먼 곳의 친척은 가까이 있는 이웃보다 못하다(遠親不如近隣)”는 말이다. 멀고 가깝다는 뜻의 ‘원근(遠近)’이 키워드다.

 

불이 났을 때는 가까운 물, 어려울 때는 옆의 이웃이 더 소용에 닿는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삶의 경험에서 추려낸 즉물적인 격언이다. 아예 “멀리서 들은 내용은 가까이서 본 것만 못하다(遠聞不如近見)”는 말도 만들었다.

 

그러나 대상이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 실체를 알기 힘들 수도 있다. 북송(北宋) 시대 시인이었던 소식(蘇軾)은 커다란 산의 경치를 보면서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가 없으니, 몸이 그 안에 갇혀 있기 때문(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이라고 읊었다.

 

따라서 가까이 있다고 꼭 좋지는 않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멀리 있는 곳과 연대해 가까운 곳을 공격한다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성어도 만들었다. 이 모두는 멀고 가까움을 따지는 중국 특유의 오래된 ‘원근법’이다.

 

최근 한·중·일 3국 외교부 수장이 만난 자리에서 중국 왕이(王毅) 부장이 위의 “먼 곳의 친척은 가까이 있는 이웃만 못하다”는 말을 꺼냈다. 한국과 일본의 대미(對美) 동맹 관계에 균열의 씨앗을 심으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중국은 일본 해역에 자국의 군함을 파견해 도발했고, 한국 서해바다 근역에는 인공 구조물을 만들어 영해권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당근과 채찍’을 버무린 고도의 책략이다. 음험한 욕망과 권모술수가 늘 느껴지는 중국이다.

 

그런 중국의 원근법은 아직 평면적이며 산술적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일찌감치 가치 체계를 중심으로 한 입체적이며 기하학적인 원근법을 채택했다. 그에 따르자면 중국은 여전히 낯설고 먼 이웃이다. 중국의 단순한 ‘이웃’ 논리가 한미 동맹을 흔들게 할 수는 없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조선일보(2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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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과 같은 구조물 中 쪽에 설치해야

 

중국이 지난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에 무단 설치한 구조물에 대해 우리 정부가 조사에 나섰지만 중국 방해로 양측 해경이 대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26일 우리 해양조사선이 이어도 인근 중국 구조물에 대한 점검을 시도했다. 그러자 중국 해경과 민간 고무보트 3대가 우리 조사선을 위협적으로 막았고 한국 해경이 급파되며 양측 대치는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중국 측은 ‘양식장이니 돌아가라’고 했고 우리 측은 ‘정당한 조사’라고 맞섰다.

 

한중은 서해 경계선을 획정하지 못한 상태다. 중간 지역에 잠정조치수역을 설정하고 어업을 제외한 다른 행위는 일절 안 하기로 했다. 그런데 중국은 작년 4~5월 ‘어업 보조 시설’이라며 철골 구조물 2개를 설치했다. 2022년엔 콘크리트 구조물도 박았다. 대형 부표(浮標)들도 띄우고 있다. 경계선 협상을 하면 이런 구조물들을 근거로 해당 수역을 ‘중국 바다’라고 우기려는 뻔한 속셈이다.

 

이미 남중국해에서 같은 수법을 썼다. 지난 2013~2016년 동남아 국가와 영유권이 충돌하는 남중국해에 인공섬 7개를 차례로 만든 뒤 ‘중국 영해’라고 선포했다. 썰물 때만 드러나는 암초에 시멘트를 쏟아부어 군사 시설과 비행장 등을 만들었다.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가 남중국해 영유권 재판에서 중국 패소 판결을 했지만 무시하고 각종 구조물을 늘리고 있다. 남중국해의 85% 이상이 중국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조물 설치 10여 년 만에 지중해보다 1.5배 넓은 남중국해를 ‘내해(內海)’라고 하는 것이다. 국제법을 완전히 무시하는 깡패식 행태다.

 

중국은 서해도 내해로 만들려는 ‘서해 공정’을 진행 중이다. 바다 국경은 양국 연안에서 중간선으로 획정하는 것이 국제 관행이고 상식이다. 그러나 중국은 자기들 땅과 인구가 크다며 서해를 더 차지하겠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중국 경비함은 백령도 코앞인 동경 124도 해역에 출몰하며 한국 해군은 이 선을 넘어오지 말라고 위협하고 있다.

 

영유권을 지키려면 상대국이 도발한 만큼 비례해 돌려줘야만 한다. 중국이 만든 것과 같은 규모의 구조물을 중국과 가까운 잠정 수역에 설치해야 한다. 중국이 중간선을 넘어오면 그 반대편으로 중간선을 넘어가야 한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있어선 안 된다.

 

-조선일보(2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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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추진잠수함을 서둘러 건조해야 하는 이유

 

지난 8일 북한 김정은이 ‘핵동력 전략 유도탄 잠수함(핵추진 잠수함)’ 건조 현장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은 군사력 확장을 강조했다. 핵추진 잠수함이 임의의 목표를 공격할 무기란 점도 언급했다. 이 잠수함은 북한이 2023년 개발에 나섰다고 밝힌 전술핵 잠수함 ‘김군옥 영웅함’과는 개념이 다르다. 배수량도 훨씬 크고 핵추진 엔진을 장착한 전략급 공격용 잠수함이다. 만들고 작전 배치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러시아가 파병 대가로 원자로 관련 기술을 제공한다면 건조 기간은 크게 단축될 수 있다.

 

북한은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통해 국군과 한미 연합군의 재래식 전력에 대한 열세를 극복하고 핵전쟁 카드로 억제력을 삼는 전략적 효과를 노린다. 이를 김정은의 위업으로 선전해 대내적으로 민심 이반을 막고, 대외적으로는 강력한 협상용 카드로도 쓸 것이다. 미 본토를 위협해 확장억제 신뢰를 흔들려는 목표도 있다.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방어 능력과 전쟁 관여에 대한 신뢰 약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공공연히 ‘선제 타격’을 천명하고 재래식 무기 공격에 대응해서도 핵무기를 쓰겠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오랜 기간 ‘게임 체인저급’ 공격 무기 개발에 진력했다. 그중에서도 다탄두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을 다수 탑재한 핵추진 잠수함이 핵심이다. 은밀히 기동하는 잠수함은 탐지가 어려워 적의 공격을 피해 기습할 수 있어 매우 위협적이다. 핵추진 잠수함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더욱 확대하는 공격 자산으로서 한반도를 넘어 미 본토 전략타깃도 타격 목표로 위협할 수 있다. 유사시 미국의 본토 증원군뿐 아니라 전쟁 계획과 작전 영역 전반에 걸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 상태를 보면 북한은 핵무기의 다종화·소형화에도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은 러시아의 기술 지원을 받아 SLBM의 시거리 확장과 다탄두화, 그리고 발사 기지인 잠수함의 대형화와 기동 은밀성 확보에 진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기본적으로 국제사회와 연대해 유엔 결의안에 기초한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오판을 방지하기 위해 국군의 전비 태세 완비와 함께 굳건한 한미 동맹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체 실효화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한미일 3국의 실시간 정보 공유 체계가 긴밀하게 작동하도록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아가 핵추진 잠수함 전력화의 허들인 미국을 설득할 논리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핵추진잠수함 건조는 핵무장과 다르다는 점, 북한의 핵추진 잠수함은 대남용이기보다는 대미국용 기습 공격 전력이란 점을 상기시켜야 한다. 상시 감시하고 조기에 탐지하며 수중에서 파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군사적 대응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핵잠수함이 일차적 역할을 맡는 것은 미국 안보에 커다란 이익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해상 및 수중 전력에서 최근 급부상한 중국 해군에 맞서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의 해군력을 활용한다는 측면을 부각시켜야 한다. 한국 해군력의 첨단화가 연합 전력 운용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걸 이해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한국 해군력의 첨단화를 위해서는 원자력 추진 엔진이 필수다. 이건 핵추진 잠수함뿐만 아니라 차세대 대형함에도 장착할 수 있다.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의 조기 전력화가 절실함을 재차 강조하고자 한다.

 

-고성윤 한국군사과학포럼 대표, 조선일보(2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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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西海 강점, 지금 막아야 한다

 

[朝鮮칼럼]

6국 이해관계 걸려 있는데도 90% 소유 주장하는 남중국해처럼
中의 불법적 해양 영토 확장은 한반도 서해에서도 진행 중
동경 124도선 일방적으로 긋고 중간선 넘어와 빈번한 군사훈련
침묵·순응으로 방치하면 큰일… 서해 수호 의지 행동으로 보여야
 

 

지난 8월 22일 영유권 분쟁지역인 남중국해에서 중국 해안경비정이 필리핀 군용 물자 보급선 한 대를 막아서는 모습. 필리핀은 이날 중국 해경의 방해를 뚫고 스프래틀리 군도 세컨드 토마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에 정박 중인 군함에 물자를 재보급했다고 밝혔으나, 중국은 인도적 차원에서 배려한 것이라고 응수했다./AFP 연합뉴스

 

동남아시아에는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중국 등 6국으로 둘러싸인 남중국해라는 커다란 바다가 있다. 남유럽과 북아프리카로 둘러싸인 지중해와 같은 형상의 이 바다는 면적이 한반도의 15배, 지중해의 1.5배에 이를 만큼 광활하다. 이곳에는 동남아 국가들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주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나, 기본적으로 어느 나라 소유도 아닌 국제법상 공해 지역이며, 동아시아와 중동유럽을 연결하는 유일한 해상 통로다. 이는 한국행 유조선과 LNG 운반선의 90% 이상이 통과하는 에너지 생명선이기도 하다.

 

그런데 1970년대 이래 중국이 남중국해 전체의 90%에 이르는 방대한 해역의 독점적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군사적 강점(占)을 확대해 가고 있다. 2014년부터는 이 해역에 인공섬을 약 30곳 만들어 군사 기지화하면서 이곳을 통과하는 선박들에 통행 허가를 받으라 요구하고 있다. 중국이 주장하는 영해 범위는 중국의 최남단 영토인 하이난섬에서 무려 1800km 떨어진 보르네오섬의 말레이시아 영해 북단까지 이르고 있다. 한마디로 황당하다. 중국이 영해권을 주장하는 유일한 근거는 조상들이 그 해역에서 수백 년간 어업에 종사하는 등 역사적 주권을 갖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마치 이탈리아가 옛 로마제국이 지배하던 지중해 전체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다.

 

이에 항거하는 필리핀 정부의 법적 제소에 대해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2016년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이 근거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현존하는 국제해양법 체계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중국은 판결 불복을 선언했다.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 강점을 막고 통항 자유를 지키고자 2015년부터 아태 지역 동맹국들과 더불어 매년 3-10차례 ‘항행의 자유 작전’이라 부르는 다국적 해상 시위를 시행 중이다. 이 작전에는 역내 미국 동맹국이 거의 모두 참여하고, 때로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 함대까지 합류한다. 미국의 역내 동맹국 중 불참국은 한국 한 나라뿐이다.

 

이러한 중국의 불법적 해양 영토 확장 기도는 남중국해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 근해에서도 진행 중이다. 국제해양법에 따르면 국가 사이의 중첩된 영해나 경제수역의 경계는 등거리 원칙에 따라 중간선을 택하는 것이 상식이나, 중국은 대국이 훨씬 넓은 면적을 차지해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한·중 서해 경계선은 합의하지 못했고, 양국 영해 사이에는 남한 면적과 비슷한 크기의 잠정조치수역이 설정되어 있다. 이론상으로는 그 수역의 중간선이 우리 배타적경제수역의 경계선이다.

 

그런데 중국은 10여 년 전부터 백령도 서측 해상을 통과하는 동경 124도선을 일방적으로 중국군 작전 경계선으로 선포하고 빈번한 해상 군사훈련을 실시 중이다. 중국은 한국 해군이 그 선 너머에서 작전을 실시하지 못하도록 위협하면서 막무가내로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남중국해 불법 점거와 유사한 방식으로 동경 124도선을 한·중 해상 경계선으로 굳히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런 중국의 의도가 성공한다면 서해의 70%와 한·중 잠정조치수역의 거의 90%가 중국의 바다가 된다. 중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과 방공식별구역(CADIZ)에 이어도를 포함해 숨겨진 야심을 드러냈다. 만일 이어도에 한국 해양 과학 기지가 없었다면 중국 군사 시설이 이미 그곳에 들어섰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에 대한 우리 정부와 군의 대응은 불투명하고 미적지근하다. 중국의 부당한 서해 강점에 대한 정부의 반대 논리는 명확하고 강력한지 몰라도 그 논리를 행동에 옮겨 해양 주권을 수호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항행 자유를 수호하려 중국 해군과 잦은 갈등을 빚고 있듯이 한국 해군이 서해 해양 주권 수호를 위해 중국 해군과 충돌을 빚는다는 얘기는 들은 기억이 없다. 중국과 군사적으로 맞서기가 부담스러워 중국의 부당한 서해 강점을 침묵과 순응으로 방치하다 보면 이는 곧 익숙한 선례와 관행이 되고 언젠가는 실효적 지배의 증거로 굳어지게 된다. 그때 가서 대세를 뒤엎으려면 훨씬 큰 갈등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만일 우리 정부와 군에 서해를 지키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때가 아니라 바로 지금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조선일보(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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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적 질서'로 복귀하길 원하나?


중국사를 가르치는 대학교수와 최근 '사드' 문제로 토론했다. 사드의 성능, 미·중의 입장 등 다양한 쟁점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사드 반대론자인 그에게 물었다. "사드 문제는 한국의 미래 진로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이 다시 '중국적 질서'로 들어가도 좋다고 생각하나?" 그의 대답이 놀라웠다. "중국적 질서로 복귀하는 것이 뭐가 문젠가? 과거 우리 민족이 1000년 이상 그렇게 살지 않았나?" 우리 사회의 사드 갈등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것은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관점 차이였다.

한국에서 사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중국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한·미가 "사드는 북한 견제용"이라 아무리 설명해도, 이들은 "중국 견제용"이란 중국 말만 듣는다. 자국 레이더로 한반도를 샅샅이 보는 중국이 사드를 트집 잡는 데는 한·미 동맹을 금 가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지적에 이들은 귀를 막는다. 반미(反美) 의식과 박근혜 정부 혐오감이 뒤섞인 '사드 반대론'은 미래 한국이 손잡아야 할 나라로 '미국보다 중국'을 꼽는다. 한국이 중국적 질서로 복귀하는 것이 국익에도 이롭다고 본다. 통일을 위해 협력해야 할 중국을 사드로 화나게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이들은 한·미 동맹이 깨지기 전까지 중국이 한반도 통일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중국적 질서'를 수용하려는 사드 반대파들이 자신에게 던져야 할 근본적 질문이 있다. '그 길이 자녀의 삶에도 최선인가' 하는 물음이다. 중국은 민주주의를 해본 적 없는 사회주의 대국이다. 그런 나라가 지배하는 질서 속에서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인권, 사상과 언론의 자유, 직접선거 같은 가치가 계속 보장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한국은 엄연한 독립국가인데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중국이 추구하는 아시아 국제 질서는 주변국과의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중국 전문가 마틴 자크가 저서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에서 지적했듯, 중국은 21세기에도 '조공 책봉 관계' 같은 상하(上下) 관계를 추구한다.

한국이 중국 질서 속으로 들어갔을 때 중국이 한국을 어떻게 다룰지는 홍콩·대만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1997년 중국 복귀 이후 홍콩인들은 심각한 인권 후퇴를 경험하고 있다. 공산당 파워게임에 관한 책을 판 홍콩 서점 주인들이 가족도 모르게 중국 기관에 납치돼 반년 이상 구금당하는 일이 최근 벌어졌다. 중국은 올 초 반중파인 차이잉원의 총통 당선을 막으려고 대만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다. 한국의 위상은 '하나의 중국'인 대만·홍콩과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중국이 그렇게 대우해주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한국은 중국과 우호협력 관계를 원한다. 문제는 사드처럼 중국이 한국에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고, 힘과 돈으로 무릎 꿇리려 할 때이다. 이럴 때 우리는 단호히 국가주권과 민주주의,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장차 강대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자주자강(自主自强)의 길을 가야 하지만, 스스로 그 길을 감당할 때까지 당분간 한·미 동맹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사드 반대론자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중국적 질서로 복귀하길 원하나?'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조선일보(1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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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가 


중국에 고자질하듯 달려가거나 그 앞잡이처럼
"중국이 가만 안 있을 것" 엄포를 놓는 광경은 슬픈 코미디를 보는 듯   

'진보 인사'나 야당 의원들에게 꼭 듣고 싶은 답변이 있다. 중국 앞에만 서면 왜 작아지는지…. 중국에 고자질하듯 달려가거나 그 앞잡이처럼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당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는 광경은 슬픈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중국이 시켜서 그런 게 아니고 스스로 알아서 그렇게 하니 더욱 기막힌 노릇이다.

이번에만 그런 것은 아니다. 8년 전 서울 도심에서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이 있었을 때다. 중국 정부의 인권(人權)문제를 제기하는 단체와 티베트 독립 지지자들이 피켓 시위를 벌였다. 우리 공권력의 통제하에 있었다. 난데없이 중국인들이 떼 지어 나타나 이들을 덮쳤다. 백주에 각목을 휘두르는 등 무법천지가 펼쳐졌다.

이 사태에 '진보 진영'은 침묵했다. 그 흔한 촛불시위 한번 조직하지 않았다. 일본인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그랬다면 '일왕(日王)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밤마다 촛불을 켰을 것이다. 우리 영해에서 불법 조업하던 중국 선원들이 낫과 몽둥이로 단속 해경을 살해했을 때도, 생존을 위해 두만강을 건너온 탈북자들을 붙잡아 북송시켰을 때도, 그쪽 진영에서는 입이 없었다.

역사적 사실을 놓고도 그렇다. 일제강점기 시절 위안부 문제에는 양국 정부 간의 외교적 합의 노력에도 '굴욕'이라며 참지 못하지만, 현재의 분단(分斷)고통으로 연결되는 6·25 때 중공군의 참전에 대해서는 '책임' 비슷한 말도 못 꺼낸다. 대신 이들 중에는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 장군을 '제국주의 악당 두목'이라고 떠들고 있다.   

'진보 진영'이 중국 앞에서만 콩알처럼 작아지는 것은 진정 배울 만하고 존경할 만한 대국(大國)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까. 중국은 자본주의 시장의 문을 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공산당 일당(一黨)체제다. 당 선전기관지들만 존재할 뿐, 민주주의의 기초인 자유 언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 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검열·통제되기 일쑤다. 이런 정치 체제가 자유·민주·인권을 떠들어온 '진보 진영'에 매력적으로 보였을까.

그게 아니면 뼛속까지 중국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중국과 사이가 틀어지면 북한 문제가 어려워지고, 우리의 최대 시장을 많이 잃어버릴 수는 있다. 아무리 그래도 해야 할 말까지 제대로 못 하는 것은 유독 진보 진영에만 조선 왕조 500년의 '속국(屬國)' 유전자가 더 많이 전해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중국이 이런 우리 마음속 두려움, 유구한 전통의 위계(位階)질서를 모를 리 없다. 국방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협상을 해보면 미국과는 수평적 대화가 되지만 중국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요구에 따르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우리 머리 위에 이런 나라를 이고 산다는 것은 좋든 싫든 지정학적 숙명이다. 하지만 중국의 고압적인 자세는 우리가 만든 측면도 크다. 그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두려움을 드러내고 순응해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름휴가로 중국의 명산(名山)에 갈 계획이었다. 관광비자 발급 과정에서 '취재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요구했다. 중국대사관 측은 '중앙정부의 규정'이라고 했다. 항공권과 숙박을 예약한 상태였지만 비상식적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치사한 길들이기에 굴복하면 중국은 이를 당연히 여긴다. '진보 진영'이나 야당에서는 "중국의 본격적인 보복이 시작될 것"이라고 선전한다. 중국과 무역하고 거래하는 이들은 실제 피곤해질 것이다. 국가 전체로 봐도 경제 타격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사는 서로 이익이 되기에 하는 거지 어느 한 쪽이 봐줘서 하는 게 아니다. 중국이 '자선사업가'로서 우리와 거래를 해온 것은 아니다. 우리가 불편하고 힘들면 마찬가지로 중국도 힘들 것이다. 우리가 전전긍긍할수록 영원한 중국의 '을(乙)' 신세로 굳어질 공산이 높다.   

이제 중국도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사드 배치 문제로 계속 압박하면 우리가 어디로 가서 손잡겠는가. 결국 한·미·일의 연대를 더욱 공고하게 해줄 뿐이다. 중국은 스스로 포위망에 갇히고, 국제사회에서 지탄받는 김정은 정권만 끌어안는 처지에 빠질 수 있다. 중국은 우리보다 여러 측면에서 훨씬 더 큰 손실을 입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중국 두려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얼마간 손해 볼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이 두려움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 '진보 진영'이 나 야당이 나서서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를 합창만 안 해도, 사드 배치 문제는 중국과의 정상적 관계 설정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 고전 맹자(孟子)에 '나 스스로 굽실거린 뒤에 다른 사람이 우습게 본다(自侮然後 人侮之)'라는 구절이 있다. 국민도 같은 것이다. 국민의 격(格)을 갖추고 있으면 다른 나라가 만만하게 대하지 않는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1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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