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승복'과 自重으로 대한민국 지켜야]
[제2의 6·29를 열망한다]
[탄핵 심판 선고 날 떠오른 북 송전탑]
'위대한 승복'과 自重으로 대한민국 지켜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 경찰 차벽이 설치돼 있다./뉴시스
헌법재판소가 오늘 오전 11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선고한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넉 달 동안 지속한 분열과 혼란, 불확실성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탄핵 찬성과 반대라는 어제를 지우고, 벼랑 끝에 선 대한민국을 살리는 내일의 길에 함께 서야 한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도 우리 사회는 지금처럼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보수·진보 상관 없이 정치권과 종교계·학계 원로와 지도자들이 앞장서 정치인들과 국민을 향해 승복을 주문하는 호소문을 냈다. 당시 대선을 준비하던 정치인들도 처음에는 거리에서 “혁명밖에 없다”는 등으로 선동을 했지만, 선고 직전에는 “결과에 상관없이 승복하겠다”며 지지층을 자제시켰다. 탄핵 찬반 시위가 거셌지만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헌재의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승복 여론이 70%에 달했다. 그런데도 탄핵 선고 이후 충돌로 4명이 사망하고 63명이 부상당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헌재에 대한 불신과 불복 여론이 우려할 수준으로 높다. 선고 직전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헌재 결정 승복은 50%, 불복은 44%였다. 헌재에 대한 신뢰와 불신 여론은 46%로 같았다. 정치인들은 선고 직전까지 헌재 주변과 광화문에서 탄핵 찬반 집회나 시위를 벌였다. 작은 불씨 하나가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번질 수 있는 일촉즉발 상황이다. 경찰이 선고 당일 경찰력 100% 동원이 가능한 가장 높은 단계의 비상근무 체제를 발령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치인들과 시위 국민들이 절제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공권력이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헌재의 선고가 혼란의 연장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려면 윤석열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승복 선언’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선고 전날까지 윤 대통령은 침묵했고, 이 대표는 근거 제시 없이 “12·3 쿠데타 계획에는 5000명에서 1만명의 국민을 학살하려던 계획이 들어 있다”며 지지층을 자극했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불복 시위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말과 행동을 절제하고 자중해야 한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으로 나라에 위기가 겹쳤다. 위기에서 역사의 법정은 나라를 먼저 생각한 ‘위대한 승복’ 세력과 자신의 정치적 이익만 계산하는 ‘비열한 불복’ 세력을 냉엄하게 기록할 것이다.
-조선일보(2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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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 오늘 선고…. ‘기각’과 ‘인용’, 진영 따라 각자 기대치 높아 심각한 후유증 우려.
○8년 전 朴 탄핵 선고 때 4명 사망 63명 부상. 오늘은 단 한 사람도 다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팔면봉, 조선일보(2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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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6·29를 열망한다
[朝鮮칼럼]
국민을 속인 정치쇼? 하지만 권력이란 절대 반지를 순순히 내놓은 역사는 없다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타협'이라는 정치를 통해 1987년 대한민국이 거듭났다
그 위대한 유산을 살리고 새로운 기적의 역사를 쓰자
오늘은 운명의 날이다. 12·3 비상계엄 이후 지난 122일 동안, 하나의 질문이 끝없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 민주주의가 이토록 취약했나! 하지만 상황은 날로 악화되어, 이제 국회의 대화는 완전히 실종되고, 정부는 겨우 숨만 쉬고 있다. 사법부는 신뢰를 잃고, 군의 명예가 무너졌다. 거리는 서로에 대한 적의와 증오의 고함으로 뒤덮였다. 한국 사회는 두 쪽으로 갈려, 무기를 들고 서로 노려보는 검투사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국가가 해체되면 홉스적 자연 상태, 곧 전쟁 상태로 나아간다. 그때 우리의 삶은 “외롭고 불쌍하고 불쾌하고 짐승 같고 짧다.”
1987년 6월도 그랬다. 그러나 극적인 반전에 성공했다. 6·10 항쟁에 이어 6·29 선언이 전격 선언되었다. 대한민국은 불과 한 세대 전 하루 두 끼 먹기도 힘든, 세계 최빈국이었다. 하지만 6·29 선언으로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강물이 하나가 되어 흐르자, 대한민국은 일약 선진국으로 날아 올랐다. ‘정치의 실패’가 ‘정치의 힘’으로 바뀌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6·29의 기적’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6·29 선언은 6·10항쟁에 비해 평가가 낮다. 국민의 거센 저항에 놀란 정권의 항복 선언이고, 국민을 속인 정치 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 면이 있다. 당시 군부 정권의 통치력은 한계에 달했다. 6·29 선언은 그 현실을 인정한 타협이자, 다가올 대선의 명분을 선점한 고도의 정치 공학이었다.
하지만 권력이란 절대 반지를 순순히 내놓는 역사는 없다. 6·29 선언도 그랬다. 전두환 대통령은 7년 단임을 약속했다. 그러나 1987년 6·10 항쟁 때 위수령을 내리고 군대를 출동시키려 했다. 이걸 막은 가장 중요한 인물이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였다. 전 대통령은 그에게 군 출동을 통지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상을 알아챈 노 대표는 “나의 모든 직위를 걸고서라도 군 출동을 막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젊은 장군들, 영관급 일선 지휘관 중 일부도 반대했다. 노 대표는 즉각 이기백 국방장관, 안무혁 안기부장, 권복경 치안본부장에게 연락해 “어떤 일이 있어도 군의 출동만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군 출동에 반대한 레이건 미 대통령의 친서가 전 대통령에게 가까스로 전달되면서, 군 출동은 마지막 순간 취소되었다.
한국은 유혈 사태 없이 민주화에 성공했다. 군부의 롤백도 일어나지 않았다. 제3세계에서 드문 사례다. 1987년에 이르러, 한국 군부가 비로소 ‘정치’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군부는 놀라운 ‘통치’ 능력을 발휘했다. 치안과 안보를 확보하고, 한강의 기적을 일궜다. 전후 후진국에서는 전무후무한 사례였다. 하지만 군부는 민주주의를 이해하지 못했고, ‘정치’에는 더더욱 미숙했다. 그래서 강압적 통치로 일관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국가의 출발은 “서로 상대방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두 사람의 결합”이다. 즉, 둘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둘은 달라야 한다. 그래야 단순한 하나가 아닌, 서로를 보완하며 더 큰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통치란 이 둘의 ‘생존’을 위한 질서와 능률을 추구한다. 정치는 서로 다른 둘의 ‘공존’을 위한 대화와 정의를 추구한다. 통치가 볼 때 정치는 낭비다. 하는 일 없이 말만 많고, 늘 다투기 때문이다. 물론 생존 없이는 공존도 없다. 하지만 공존 없이는 생존도 지속 불가능하다. 그 자각이 인류의 지혜다.
대화와 타협은 정치의 수단이 아니라 정치 자체이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이념, 또는 경제나 안보 같은 ‘쓸모’는 본질적으로 정치가 아니다. 정치란 서로 다른 인간들이 폭력 없이, 말을 통해 함께 살기 위한 활동일 뿐이다. 그래서 아무 쓸모 없는 정치의 대지 위에서만 안전과 자유가 자라고, 문명의 꽃이 핀다.
1987년은 한국 역사에서 단순히 ‘민주화’ 원년이 아니다. ‘정치’ 원년이기도 하다.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타협’이라는 정치를 통해 새 헌법을 만들고,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고, 대한민국이 거듭났기 때문이다. 혹자는 87년 민주화를 ‘보수적 민주화’(conservative democratization)라고 폄하한다. 그런 인식이 제2건국이나 촛불 혁명, 문재인 정부 때 대대적인 적폐 청산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1987년 탄생한 ‘정치’가 요절했다. 12·3 비상계엄과 오늘의 파국은 그것이 빚은 참극일 뿐이다. 위기를 기적으로 바꾼 87년, 그 위대한 정치의 유산을 살리는 제2의 6·29를 열망한다. 오늘 대한민국이 살고, 세계 선진 강국으로 우뚝 설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조선일보(2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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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심판 선고 날 떠오른 북 송전탑
김정은 "남북 적대적 두 국가" 선언… 그 한마디에 '통일' 포기한 사람들
탄핵 심판 결과 어떻게 나오든 종북 세력 존재는 망상 아닌 현실

2024년 11월 30일 북한 개성공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지어줬던 송전탑이 붕괴되는 모습이 포착됐다. 북한 인부가 안전 장비 없이 전선 제거 작업을 하다 10m 높이에서 추락하는 장면도 우리 군 방범카메라에 잡혔다. /국방부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묻힌 뉴스가 있었다. 이날 낮 정부가 공개한 북한 지역 사진과 영상이다. 군사분계선(MDL)과 개성공단 사이 경의선 도로 근처에 있는 송전탑들이 균형을 잃고 무너지는 모습이 우리 군 감시 카메라에 잡혔다. 북한 군인이 안전 장비 없이 전선 제거 작업을 하다 10m 높이에서 추락하는 장면도 담겼다. 아마 그 군인은 숨졌을 것이다. 이 송전탑들은 과거 우리가 개성공단에 전기를 공급하던 시설이다. 우리 돈과 기술로 북에 지어준 것이다. ‘햇볕 정책’에 종언을 고한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 계엄 선포 계획을 알고 있던 김용현 국방장관이 북한이 벌인 이 어처구니 없는 일을 국민에게 알리고 싶어 영상 공개를 결정한 것 아닌가 싶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밤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송전탑 철거는 김정은의 남북 관계 단절 선언에 따른 것이다. 김정은은 “북남 관계는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며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고서 경의선과 동해선 등 남북을 잇는 모든 시설물을 차단 또는 봉쇄했다. 남쪽에 철벽을 두른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전장에 북한 젊은이 1만여 명을 보냈다. 국지적이 아닌 국제적 도발을 감행한 것이다. 이 중 4000명이 숨지거나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단절 선언 이후 남쪽에선 입만 열면 ‘통일’을 외치던 사람들이 ‘남북 두 국가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35년간 ‘조국 통일 투쟁’을 해온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은 자진 해산했다. 1997년 대법원에서 이적 단체 판결을 받고도 27년간 버틴 사람들이 김정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달 만에 단체 이름을 ‘한국자주화운동연합’으로 바꿨다. 이들은 구성원을 그대로 두고, 국가보안법 철폐와 주한 미군 철수 등 종전 주장을 유지한 채 ‘조국 통일’ 주장만 뺐다. 그러면서 “반미·반윤에 동의하는 단체·인사와 적극 연대하겠다”고 했다. 김정은 말 한마디에 표변한 사람들을 종북이 아니면 뭐라고 불러야 하나.
오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가 나온다. 헌법재판소가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 군 투입 등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판단할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있다.
북한의 대남 전술은 변화무쌍하지만 변치 않는 것이 남남 갈등 조장이다. 이를 위해 국내에 종북 세력을 심고, 키워왔다. 남측 내부가 분열하면 북한 도발에 용이한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탄핵 사태로 우리 안의 균열이 이미 극심하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국민끼리 다투고, 공권력이 여기에 집중하는 틈을 타 북한이 어떤 도발을 감행할지 모른다. 이에 대한 만반의 대비를 갖춰야 한다.
다음으로 종북 세력이다. 김정은 정권은 주민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북을 추종하는 세력이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 함은 윤 대통령의 ‘망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각종 간첩단이 공공연히 종북 활동을 하며 우리 수사기관과 법원을 조롱하고 있다. 탄핵 심판 결과와 관계없이 윤 대통령이 지적한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종북 세력 문제는 대한민국의 과제로 남을 것이다.
-황대진 사회부장, 조선일보(2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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