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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에 처한 남자들] [“실버타운은 노인지옥이었다”... ]

뚝섬 2024. 4. 25. 08:38

[멸종 위기에 처한 남자들] 

[“실버타운은 노인지옥이었다”... ]

 

 

 

멸종 위기에 처한 남자들

 

은퇴한 남편들, 집 밖에도 집 안에도 일이 없어… ‘끝난 사람’이 된 느낌
TV에서 남편이 지은 밥 맛본 아내들 눈물 흘려… 아내들의 세월이 읽혀
부엌에 들어가 밥하는 건 혼자서도 건강하게 사는 능력 갖추는 것

 

요리를 쉽게 잘하는 연예인이 평범한 남편들에게 밥과 찌개 끓이는 법을 가르치는 TV 프로그램을 뒤늦게 봤다. 아내와 함께 출연한 남편들은 61세에서 70세까지 다양했는데 평생 가족을 위해 요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이유는 이랬다. “할 줄 알아야 하죠.”

 

그들 인생은 할 줄 모르던 일을 잘할 수 있게끔 애쓴 세월이었을 것이다. 잘하는 일이 많다는 것은 유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음식만은 잘하려 하지 않고 아내에게 도맡겼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가계(家計)가 돌아갔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이들은 이제 평생 잘해온 일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 집안일이라도 해야겠는데 손이 둔하고 투박해 잘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서툰 가장의 모습을 아내와 자식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 자연히 싱크대와 세탁기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은퇴한 남편들은 집 밖에도 일이 없고 집 안에도 일이 없다. 무용(無用)한 사람이 된 느낌이다. 남은 일은 숨거나(隱) 물러나는(退) 것뿐이다. 은퇴한 남자 얘기를 다룬 일본 소설 제목처럼 ‘끝난 사람(終わった人)’이 된 것 같다. “할 줄 알아야 하죠”라는 말은 끝난 사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몇 년 전 은퇴한 선배 K는 멋진 사람이었다. 셔츠 깃은 늘 황새 부리처럼 빳빳했고 바지 주름은 산맥처럼 솟아있었다. 은퇴 후 아내가 친구들과 여행 간 사이 찌개라도 끓여볼까 하고 난생 처음 채소를 썰다가 손가락을 썰었다. 그는 말했다. “피가 철철 나는 손가락에 휴지를 둘둘 말아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다시는 부엌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내 없는 그는 더 이상 멋지지 않았다.

 

‘부엌에 들어간다’는 말은 부엌을 별개의 공간에 뒀던 한옥 시대 사고방식이다. 아궁이가 있던 부엌은 집의 다른 곳보다 낮았고 신발 신은 채 들어가는 곳이었다. 그 시절 남편들은 부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만 했지 알지 못했다. 남편들은 논밭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지붕을 고치고 외양간의 소를 살피고 새끼줄을 꼬았다.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을 나름의 명분이 있었다.

 

아파트 부엌은 거실과 이어져 있어 들고 나는 공간이 아니다. 남편들은 퇴근해서 집에 와도 딱히 고치거나 손볼 일이 없다. 기껏해야 껌뻑이는 전구를 갈아 끼우거나 TV가 먹통 되면 셋톱박스 전원을 껐다 켜는 정도의 노동을 한다. 아내가 부엌일로 바쁠 때 소파에 누워 TV 보는 남편들 심사가 편할 리 없다. 그러나 이런 남편들에게 부엌은 여전히 ‘들어가는’ 공간이고 (돌아가신 어머니 당부대로)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다.

 

TV에서 남편이 지은 밥과 된장찌개를 맛본 아내들은 눈물을 흘렸다. 너무 맛있어서 감격스럽다고 했다. 도구와 재료 다 준비해 놓은 스튜디오에서 시키는 대로 만든 음식인데도 그랬다. 그 눈물에서 아내들의 세월이 읽혔다. 감격의 눈물만이 아니었다. 설움과 원망을 견딘 시간이 뒤섞인, 아주 복잡미묘한 감정이 체액의 형태로 흘러나온 것 같았다.

 

아침밥에 국이 없으면 안 되는 남편 때문에 아내는 새벽마다 황태를 다듬었다. 부부 싸움을 한 뒤에도 아내는 시금치를 데쳤다. 그러면서 혼잣말을 했을 것이다. 저 인간 내가 죽으면 필경 굶어 죽을 거야. TV에 나온 아내들 중 한 명은 남편의 음식을 맛본 뒤 말했다. “이제 아파서 드러누워도 될 것 같아요. 마음 놓고 놀러 다녀도 될 것 같아요.” 남편이 밥과 찌개만 끓일 줄 알아도 아내는 마음이 놓인다.

 

다들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을 말하면서 밥을 누가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노인도 스마트폰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목청 높이지만 밥할 줄 알아야 한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밥을 한다는 것은 쌀을 끓여 먹을 수 있게끔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운전하고 산책하고 신문 읽는 것처럼 밥과 빨래와 청소를 할 줄 알아야 은퇴 후에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남편들은 “그러니까 내가 먼저 죽어야지” 같은 말을 농담이랍시고 하는데, 먼저 죽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어떤 이는 “사 먹으면 된다”고 말하지만 사 먹는 일의 즐거움만 알고 추레함을 모른다.

 

독립에 익숙하고 평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는 걱정할 일 없다. 그들은 오래도록 건강할 것이다. 중년 이후 남편들 가운데 여전히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 남자들이 문제다. 다른 이들도 모두 자신 같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고립되는 중이다. 논밭도 없고 꼴 먹일 소도 없는 아파트에서 이들은 고스란히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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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타운은 노인지옥이었다”... 아내와 별거한 77세 남성의 말로

 

실버타운 둘러싼 환상과 현실
인생 말년, 똑똑한 주거 선택법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면 좋을까. 고향에 작은 집 하나 마련해 책 읽고 텃밭 가꾸며 조용히 살까, 아니면 북적북적한 도시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지낼까. 어디서 살든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우아하게 마무리하고 싶은데 어떤 선택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까.’

 

60대가 되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보는 질문들이다. 물론 100세 시대의 은퇴 설계라고 하면, 아직까진 많은 사람들이 재정적인 준비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마지막 거처’에 대한 결정이야말로 최우선 순위에 놓고 준비해야 할 부분이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퇴직한 이후에도 살아야 할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현역 시절처럼 외출을 자주 하지 않다 보니 집에 오래 머물게 되며, 힘이 들어서 이사도 쉽게 다니지 못한다. ‘은퇴 후 주거지’는 처음부터 심사숙고해서 골라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겪은 선진국에선 ‘노후 준비는 집에서 시작해서 집에서 끝난다’고 말할 정도다.

 

노인 83% “내 집에서 늙고 싶다”

 

은퇴한 노인들은 어디에서 살기를 원할까. 2일 경희대 디지털뉴에이징연구소가 보건복지부·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실태조사(2020년)를 토대로 분석해 봤더니, 대다수 노인들은 ‘살던 집’에서 늙어가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건강한 노인은 86%, 기력이 떨어진 노쇠한 노인조차도 75%가 ‘현재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답했다.

 

‘거동이 불편하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55%가 ‘돌봄 서비스를 받으면서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답했다. 아무리 건강이 나빠져도 이미 오래 살아서 익숙해진 동네에서 벗어나는 건 원치 않는 것이다.

 

돌봄, 식사 등 서비스가 제공되는 노인요양시설에 들어가겠다’는 응답자 비중은 32%로 두 번째로 많았다. 다만 건강 상태에 따라 온도차는 있었다. 노쇠한 노인의 경우엔 ‘요양시설에 들어가겠다’는 응답자 비중이 36%로, 건강한 노인(31%)보다는 높았다.

 

신혜리 경희대 노인학과 교수는 “지역 사회에 계속 거주하는 이른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공통 트렌드”라며 “노인들은 대부분 살던 집에서 계속 살기 원하며, 건강이 좋지 않아 원래 집에서 살기 어려워졌다면 그때 일상생활 지원 서비스가 제공되는 주택 입주를 고려한다”고 말했다. 시설에 들어가게 되면, 그 동안 맺어왔던 지역 사회 혹은 이웃 관계망과 단절되기 때문에 불편해도 살던 집에서 계속 살고 싶어한다는 설명이다.

 

태평양이 한 눈에 보이는 럭셔리 실버타운 18층 베란다에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히라노씨./사진=분슌(文春)온라인,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황혼 별거한 70대 男이 고른 새집

 

그런데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는 식사·청소 등 각종 서비스가 제공되는 ‘럭셔리 실버타운’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과연 고급 실버타운은 시니어들의 낙원일까? 최근 일본 언론(아베마TV, 야후뉴스, 분슌온라인 등)에서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77세 남성의 실버타운 2년살이 경험담을 소개한다.

오션뷰 수영장, 노천욕탕, 휘트니스클럽, 가라오케, 극장, 마사지룸, 도서관, 마작룸, 당구장...

 

도쿄 토박이인 77세 히라노유우(平野悠)씨는 3년 전 치바현 카모가와시에 새로 생긴 럭셔리 실버타운(유료 노인요양시설)에 갔다가 한눈에 반했다. 태평양 바다 바로 앞에 위치한 근사한 22층짜리 신축 건물이었다. 1년 내내 기후도 온화해 도쿄보다 살기 좋을 것 같았다. 아내와는 1년 가까이 말 한 마디 안 하는 사실상 별거 상태였기에 결정도 빨랐다. “집사람과 사이도 안 좋은데, 이러다 내가 치매라도 걸리면 누가 나를 돌봐주겠나, 경치가 좋고 의료 서비스도 잘 되어 있는 여기서 여생을 홀로 보내야겠다.”

 

히라노씨가 2년 거주한 후 퇴소한 치바현의 고급 실버타운./파크웰스테이트

 

셰프 음식도 금방 질려 결국 ‘집밥’

 

히라노씨가 선택한 실버타운은 만 60세 이상만 입주 가능한 노인 전용 거주 시설이었다. 그는 방 2개, 화장실 1개, 거실로 이뤄진 20평형을 골랐다. 처음 입주할 때 일시금으로 6000만엔(약 5억3400만원)을 지불했고, 매달 식사와 관리비 등으로 19만엔(약 169만원)씩 냈다. 바다로, 산으로... 첫 1년은 마치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점점 일상의 무게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입주자들의 평균 나이는 75세. 전체 입주자의 3분의 1은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노쇠한 환자들이었고, 3분의 1은 지팡이나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 노인들이었다. 히라노씨처럼 70대이면서 건강한 노인은 많지 않았다.

 

부(富)와 연륜을 쌓으며 성공한 인생을 일군 엘리트들과의 지적인 대화를 기대했지만, 허무한 착각으로 끝나버렸다. 히라노씨는 도쿄 신주쿠에 있는 유명 라이브하우스인 ‘로프트(ロフト)’를 설립한 록 음악 전문가다. “록 음악, 들어보셨어요?”라고 물으면서 공통 화제나 관심사를 찾았지만, “엔카(한국의 트로트) 듣는데요”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내가 왕년에 해외 법인 사장이었는데 직원만 5만명이었어.” “아들이 둘인데, 도쿄대 의대랑 법대를 보냈지.” 끝없는 전직, 재산, 자식 자랑에 스트레스만 쌓여 갔다.

 

유명 셰프가 만든 삼시세끼가 제공됐지만, 진수성찬도 하루 이틀이지 질려서 매일 먹긴 힘들었다. 부엌에서 직접 요리해 간단히 먹는 날이 많아졌다. 태평양이 내다 보이는 노천욕탕에서 만난 한 80대 남성은 “1억3000만엔(약 11억6000만원)이나 내고 입주했는데, 집사람이 ‘도시에서 살겠다’며 혼자 가버렸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석양빛에 물든 태평양 바다가 보이는 실버타운 노천욕탕./사진=분슌(文春)온라인

 

감옥살이’에 우울해져 2년 만에 퇴소

 

실버타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히라노씨는 지역 커뮤니티에 눈을 돌려보기도 했다. 실버타운이 위치한 카모가와시는 도쿄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거리인 인구 3만명의 소도시다. 하지만 현지 커뮤니티에 진입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지역 주민들은 고급 실버타운에서 살고 있는 돈 많은 외지인에게 배타적이었다.

 

방에 틀어 박혀 외롭게 지내는 날이 늘었고, 우울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도쿄로 돌아가고 싶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만약 90세까지 산다고 하면 1억엔이 드는데, 이런 감옥살이를 하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긴 싫었다.

 

결국 히라노씨는 2년 동안의 실버타운 생활을 청산하고 작년 11월 도쿄로 유턴했다. 만기 전 퇴소이기 때문에 1000만엔(약 8900만원)에 가까운 수수료를 내야 했다. 비싼 수업료를 낸 셈이지만, 그는 현재의 도시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최근 일본 아베마TV 방송에 출연한 히라노씨는 “나이가 들어도 남녀노소가 모여 있는 지금의 주거 환경에서 계속 사는 것이 좋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면서 “두 다리가 성한 건강한 노인이 비싼 돈을 내면서 노인들만 모여 사는 실버타운에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경은 기자, 조선닷컴(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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