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불행과 다행] [학폭 줄이는 ‘0교시 아침 운동’]

뚝섬 2024. 4. 13. 08:30

[불행과 다행]

[학폭 줄이는 ‘0교시 아침 운동’]

 

 

 

불행과 다행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는, 편의점 리테일 본부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자기가 관리하는 알짜 점포를 가로챈 선배 일로 부아가 나 있는데, ATM 기계를 독차지한 남자 때문에 분을 삭이는 장면이 나온다. 설상가상 뒤에 서 있던 아저씨가 버스 시간을 놓칠 것 같다며 양보를 부탁하자 주인공은 짜증을 누르고 양보하는데 그가 사라진 후 반전이 펼쳐진다.

 

“잔액이 부족해 5만원을 인출할 수 없습니다!” 계약금 3억을 구할 수 없어 월 순이익 천만원짜리 점포를 놓치고 억울한 마음뿐이었는데 5만원, 단돈 5만원이 없는 사람이 자기 앞에 있다는 걸 깨달은 주인공은 그 순간 구겨진 마음이 펴졌다고 고백한다. 가뜩이나 힘들었을 아저씨가 자신의 양보로 버스를 놓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말이다.

 

최근 20·30대의 우울증 증가 원인을 SNS에서 찾는 기사를 보며 나는 이 장면을 떠올렸다. 내 할머니는 평생 고향에 머물며 고작 이웃들이 비교 대상이었다. 하지만 국제화한 요즘 세대는 세계 최고와 비교하며 스스로 초라해지는 순간을 수시로 경험한다. 그런 이유로 평범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내면화했다. 야근에 찌든 내가 발리를 여행하는 친구의 SNS를 보는 건 부러움을 넘어 자기 비하의 원인이 된다. 내면의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좁고 지저분한 내 방 대신 5성급 호텔의 침대를 찍어 올리는 것이다. 이런 경쟁적 상향식 비교는 우리 안의 불안을 자극해 이 시대 평범함의 기준을 높여 놓았다. 우리 사회는 실제 바쁜 것과 무관한 바빠 보이는 이미지에 더 열광한 지 오래다.

 

세상에서 가장 끈끈한 공동체는 뭘까. 환우회다. 나만 환자 같았는데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아는 순간, 나만의 불행이 보편적 불행으로 변한다. 먼저 아팠던 사람이 새로 아프기 시작한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세계. 위만 존재할 것 같은 세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우리는 비로소 앞과 옆을 함께 볼 수 있다. 우리의 불행이 다행으로 바뀜을 감사하면서.

 

-백영옥 소설가, 조선일보(2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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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줄이는 ‘0교시 아침 운동’

 

4월 8일 오전 서울 강북구 번동중학교 체육관에서 농구 동아리 소속 학생들이 몸을 풀고 있다. 이 학교에서 0교시 시간에 축구, 농구, 배드민턴, 골프 등 여러 체육 동아리를 통해 학생들의 건강을 챙기고 있다. / 장련성 기자

 

서울 강북구 번동중에선 매일 아침 ‘0교시 수업’이 열린다. 해도 다 뜨지 않은 오전 7시, 하나 둘씩 교문을 통과한 학생들이 향하는 곳은 교실이 아닌 체육관이었다. 요일별로 열리는 농구·축구·줄넘기 동아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7시 30분부터 50분간 운동을 한 뒤, 교과 수업을 들으러 간다. 모든 운동은 자율 참석인데도 출석 도장 찍는 학생만 100여 명. 5년째 계속되고 있는 아침 풍경이다.

 

아침 운동 시작 이후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학교폭력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매년 수십 건씩 발생하던 크고 작은 학폭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반복적으로 친구들을 괴롭히는 ‘문제 학생’도 줄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 학교 교사들은 운동 시간이 늘어난 것을 꼽았다. 학생들이 운동에 에너지를 발산하니 남을 괴롭히지 않고, 사소한 충돌은 참고 넘길 수 있는 인내심도 생겼다는 것이다. 아침 운동은 점점 참여자가 늘어나 최근엔 방과 후 배구·육상 동아리도 만들었다. 이곳 학생 4명 중 1명이 적어도 한 개 이상 운동을 한다.

 

체육 활동이 학생들의 대인 관계 역량을 키워준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운동시키는 정신과 의사’ 존 레이티 하버드대 교수는 운동을 할 때 나오는 호르몬이 뇌의 통제력을 길러줘 불안감과 폭력성을 줄인다고 설명했다.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모르나 사실은 사실. 그런데도 그동안 체육 활동이 외면됐던 것은 ‘입시 공부’에 전력투구를 하려면 운동 시간도 아껴야 한다는 인식 탓도 있었다. 번동중에서 아침 체육을 만든 이유도 방과 후엔 학생들이 학원에 가느라 바쁘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학생들의 건강은 점차 나빠졌다. 교육부에 따르면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학생(초·중·고) 비율은 2017년 23.9%에서 점점 올라 2021년 30.8%로 정점을 찍었다. 코로나 이후인 지금도 비슷한 수준이다. ‘저체력’ 학생도 늘어 작년 기준 15.9%다. 같은 기간 우울·불안감을 호소하는 10대는 크게 늘었는데, 많은 전문가가 신체 건강이 나빠진 것과 떼어서 볼 수 없다고 설명한다.

 

최근 들어 전국 교육청에선 체육 시설과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늘리고 아침 운동도 권고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일부 ‘운동 마니아’ 학생뿐 아니라 모든 학생이 운동을 할 수 있게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번동중은 학년과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공평하게 운동장을 쓸 수 있도록 점심 시간마다 학년별 농구·축구 반대항 리그를 연다. 그랬더니 ‘골 때리는 여학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운동 동아리원 약 3분의 1이 여학생이다. 이 학교에 긍정적 변화가 생길 수 있었던 배경엔 학생 대부분이 ‘운동 습관이 인생의 기초 체력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 많은 학생이 운동의 기쁨과 성취를 맛볼 수 있어야 한다.

 

-윤상진 기자, 조선일보(2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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