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마지막 문자 ‘여보 사랑해’] [아내라는 사람] [아! 아내.. ]

뚝섬 2024. 3. 23. 09:33

[마지막 문자 ‘여보 사랑해’]

[아내라는 사람] 

[아! 아내.. ]

 

 

 

마지막 문자 ‘여보 사랑해’

 

마종기 시인의 대표작 ‘바람의 말’에는 사별한 부부의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병상의 남자가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이 시를 쪽지에 적어 아내 손에 쥐여 주었다.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지 마    --(중략)--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바람이 되어 아내 곁에 머물겠다는 맹세를 읽은 아내는 남편을 떠나보낸 뒤 시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가 그리울 때면 늘 이 시를 읽습니다. 그러면 어디에 있다가도 내 남편은 내 옆에 다시 와 줍니다. 이 시가 내게 살아갈 힘을 줍니다.’

 

▶숱한 사고 현장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사랑한다’는 문자를 남긴다. 미국에서 9·11 테러 때 무너지는 쌍둥이 빌딩 안에 있던 이들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와 세월호 침몰로 생환하지 못한 이들도 마지막 순간에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급박한 순간 가족에게 전할 마지막 단어는 ‘사랑’일 수밖에 없다.

 

사랑 중에 남녀의 사랑은 지속 시간이 고작해야 18개월에 불과하다는 연구가 있다. 문정희 시인은 부부가 남녀의 짧은 사랑 이후 오래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서로를 묶는 것이 거미줄인지

쇠사슬인지 알지 못하지만

서로 묶여 있는 것만은 확실하게 느끼며

오도가도 못하는’

 

사이이기 때문이라고 시 ‘부부‘에 썼다. 부부 사이를 ‘웬수’로 표현하기도 한다.

 

원수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지만

웬수는 한 이불 덮고 잔다’

 

는 말도 있다.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사는 게 부부라는 뜻이다.

 

▶일본 시모노세키 앞바다에서 화학 제품 운반선이 뒤집히는 사고로 안타까운 생명들이 희생됐다. 그 사고로 사망한 선장도 아내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긴박한 순간, ‘여보 사랑해’ 단 한 문장에 모든 것을 다 담아야 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던 아내는 ‘응, 사랑해요’ ‘오늘 노래 교실 간다’ 같은 일상 대화로 답했다. 사고 전에도 이런 사소하지만 소중한 문자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어느 조사에서 중년 남자들에게 ‘세상을 떠나게 되면 아내에게 무슨 유언을 남기겠냐’고 물었더니 ‘사랑한다’와 ‘미안하다’가 가장 많이 나왔다. 평생을 두고 사랑과 미움, 고마움과 미안함이 중첩되는 관계가 부부 사이 말고 또 있을까. 어떤 인연을 만나 살든 그 끝엔 이별이 있다. 그날이 언제 올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니 ‘사랑한다’는 말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겠다. 유명을 달리한 분들과 유족을 위해 기도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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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라는 사람

 

‘굉장한 적을 만났다. 아내다. 너 같은 적은 생전 처음이다.’
―영국 시인 조지 바이런


동명 창작 뮤지컬을 기반으로 한 소설 ‘김종욱 찾기’는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첫사랑의 추억을 다루고 있다. 김종욱과 동명인 나는 십수 년 전 ‘김종욱과 동반 1인 뮤지컬 무료 관람’ 이벤트 덕택에 공연 관람 후 수십 명의 ‘김종욱’들과 무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 경험이 있다. 당시 쑥스럽다며 무대로 나오지 않고 객석을 지켰던 여자친구는, 지금 내 반려자가 되어 세 남매 엄마로서 씩씩한 삶을 살고 있다.

 

위 바이런의 명언은 소설의 로맨틱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굉장한 적’에 맞서기 위한 남편들의 노력은 얼마나 가상하던가. 함께 쇼핑 나온 아내가 거울 앞에서 보라색과 분홍색 옷을 들고 “여보, 나 어떤 색이 어울려?” 물어보면 무심한 남편들은 “둘 다 괜찮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아내들이 원하는 답이 아니다.

 

소통 강사로 유명한 김창옥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보라색은 어려 보이고, 분홍색은 날씬해 보이네!”라고 답해야 한다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단함을 피하는 동시에, ‘적’의 추가 공세를 차단하는 기막힌 처세술에 남편들은 열광했다. 나 역시 ‘보라색은 어려 보이고…’를 틈틈이 외우고 있다. 아내가 물어보면 구구단처럼 튀어나올 수 있도록.

지루했던 장마가 끝나고 뙤약볕이 한참이던 어느 날, 점심 먹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내 앞에 한 노년 부부가 걸어가고 있었다. 무심코 지나치려던 내 시선에 들어온 할머니의 앙증맞은 꽃무늬 양산과 두 분의 승강이. ‘나는 괜찮다’는 할아버지를, 할머니가 타박하며 작은 양산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도망가려는 할아버지 옷깃을 꽉 붙잡고 양산을 씌우느라 할머니 머리 위로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지만, 정작 당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잠시 후 할아버지는 체념한 듯 슬며시 꽃무늬 양산 아래로 들어오더니 할머니와 나란히 걷는다. 참으로 굉장한 적이 아닐 수 없다.

 

-김종욱 제우스투자일임사 대표, 동아일보(23-08-07)-

___________

 

 

아! 아내..

 

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있어.”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고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릅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 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조심조심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 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서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 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는,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집 갈 테니깐.”

 

큰소리 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 주길 바랬었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 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이 많이 피어 있는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좋은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같이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찾아 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저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은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께.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 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 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로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떤 때는 그런 소리도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말이야, 연말까지 미룰꺼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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