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山野(草·木·花)]

[변산바람꽃] [노루귀-얼레지-처녀치마, 반갑다.. 초봄 멋쟁이]

뚝섬 2024. 2. 5. 14:13

[변산바람꽃] 

[노루귀-얼레지-처녀치마, 반갑다.. 초봄 멋쟁이]

 

 

 

변산바람꽃

 

새해 가장 먼저 피는 우리꽃… 연두색, 보라색 꽃술이 예뻐

 

이른 봄 변산반도에 만개한 변산바람꽃. 꽃잎처럼 보이는 하얀 잎은 사실 꽃받침이랍니다. /김민철 기자

 

설 연휴가 지나면 곧 변산바람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올라올 겁니다. 양지바른 어딘가엔 이미 피었을지도 모릅니다. 해마다 2월 중순이면 전남 여수 향일암 근처에서 어여쁜 변산바람꽃이 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향일암은 내륙에서 가장 먼저 변산바람꽃이 피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변산바람꽃은 복수초와 함께 봄이 오는 것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입니다. 찬 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2~3월에 핍니다. 새해 꽃다운 꽃으로는 맨 처음 피는 야생화라 첫아이 출산 때처럼 큰 관심과 사랑을 받는 편입니다.

변산바람꽃은 꽃대 높이가 10㎝가량인데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가냘프게 흔들립니다. 비교적 단순한 다른 바람꽃들과 달리 연두색 암술, 연한 보라색 수술에다 초록색 깔때기처럼 생긴 기관 등 볼거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꽃 구조도 특이합니다. 꽃잎처럼 보이는 하얀 잎 다섯 장은 사실 꽃받침잎이고, 꽃술 주변을 둘러싼 깔때기 모양 기관은 꽃잎이 퇴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깔때기 모양 기관은 꿀샘 역할을 합니다.

변산바람꽃은 1993년에야 세상에 새롭게 알려진 신종(新種)입니다. 그 전엔 이 꽃을 보고도 비슷하게 생긴 너도바람꽃의 변종이겠거니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꽃이 신종이라는 발표가 나오자 "아차!" 하며 아쉬워한 학자가 한둘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옛날엔 전문가들이 식물 조사를 4월 정도에야 시작했기 때문에 2월에 피기 시작해 3월이면 다 져버리는 변산바람꽃은 잘 몰랐다고 합니다.

꽃 이름은 전북 변산반도에서 처음 발견한 바람꽃 종류라는 뜻으로 붙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설악산, 한라산, 마이산, 내장산 등 거의 전국 산에서 이 꽃이 피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이달 말이나 3월 초부터는 수리산(경기도 군포) 등 수도권 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산종으로 알려졌으나 일본에도 같은 꽃이 있다고 합니다.

변산바람꽃 등 바람꽃 종류는 대개 이른 봄에 꽃을 피워 번식을 마친 다음, 주변 나무들의 잎이 나기 전에 광합성을 해서 땅속 덩이줄기에 영양분을 가득 저장합니다. 여름이면 땅 위에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가는 부지런한 식물인 것입니다. 구(球)형으로 지름 약 1.5㎝ 정도인 덩이줄기만 땅속에 남기고 다음 겨울을 기다립니다.

변산바람꽃은 생긴 것도 예쁘고 개성 만점인 데다 낭만적 이름까지 가져 어느새 초봄을 대표하는 꽃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야생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초봄에 꼭 만나고 싶어 하는 야생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변산바람꽃 말고도 10여 종의 바람꽃이 있는데, 변산바람꽃이 제일 예쁘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변산바람꽃을 시작으로 올해도 피어날 우리 야생화에 관심을 가져보기 바랍니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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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얼레지-처녀치마, 반갑다.. 초봄 멋쟁이

 

솜털 많은 잎, 노루 귀 닮아 노루귀
자주색 꽃잎 확 젖힌 파격의 얼레지
아가씨 미니스커트 같은 처녀치마

언 땅 녹여 꽃대 올리는 장한 삼총사
개성있는 색깔·모양에 진한 여운…

올 봄 산행길에 그 매력 느껴보세요 


나뭇가지를 헤치며 30여분 헤매는데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귀여운 노루귀 서너 송이가 막 꽃봉오리를 열고 있었다. 연분홍색 화피 사이로 미색의 수술들이 다투듯 나오고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솜털이 많이 난 줄기가 약한 바람에도 흔들렸다.

 

열흘 전쯤 여수 향일암에 갔다. 제주도를 제외하면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봄꽃 소식을 전하는 곳이다. 야생화 사이트와 SNS 등을 통해 전해오는 남녘 꽃 소식에 안달이 나서 혼자 꽃 마중을 간 것이다. 한 번 보이자 그 주변에 노루귀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두세 송이, 서너 송이씩 묶음으로 또는 줄지어 피어 있다. 꽃이 활짝 피어 진한 노란색 암술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도 많다.

 

노루귀는 잎이 나기 전에 먼저 꽃줄기가 올라와 한 송이씩 하늘을 향해 핀다. 꽃색은 흰색·분홍색·보라색 등이다. 귀여운 이름은 나중에 깔때기처럼 말려서 나오는 잎 모양이 노루의 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꽃싸개잎과 줄기에 솜털이 많이 난 모양도 노루의 귀를 닮았다.

 

[노루귀]

대표적인 초봄 야생화를 세 개만 고르라면 노루귀·얼레지·처녀치마를 꼽겠다. 일찍 피는 것으로 치면 복수초·개불알풀·변산바람꽃·너도바람꽃 등이 있다. 봄기운이 생기자마자 언 땅을 녹이고 꽃대를 올리는 것들이 장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개성 있는 모양과 색깔, 진한 여운까지 감안하면 이 세 가지 꽃에 가장 마음이 간다. 그중에서도 노루귀를 첫째로 꼽는 이유는 셋 중 제일 먼저 피고, 그래서 새봄 첫 꽃 산행의 목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위) 얼레지-처녀치마-복수초 (아래) 개불알풀-바람꽃]


야생화에 관심을 갖기 전에는 초봄에 피는 꽃 하면 매화와 벚꽃·개나리·진달래를 생각했다. 그런데 초봄에 산에 가보니 그보다 먼저 피는 꽃들이 있었다. 봄의 전령(
傳令)은 복수초·변산바람꽃 등과 함께 노루귀·얼레지 등인 것이다.

얼레지는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꽃이다. 야생의 얼레지를 처음 본 것은 2005 3월이었다. 이름도 특이한 데다 이른 봄에 꽃대가 올라오면서 자주색 꽃잎을 뒤로 확 젖히는 것이 파격적이다. 어느 정도 젖히느냐면 꽃잎이 뒤쪽에서 맞닿을 정도다.

'한국의 야생화' 저자 이유미는 이 모양을 '산골의 수줍은 처녀치고는 파격적인 개방'이라고 했고, '압구정동 지나는 아가씨 같은 꽃' '한쪽 다리를 들고 스파이럴을 선보이는 피겨 선수 같은 꽃'이라는 표현도 있다. 이처럼 꽃잎을 뒤로 젖히는 이유는 벌레들에게 꿀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꽃잎을 뒤로 젖히면 삐죽삐죽한 꿀 안내선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얼레지라는 이름은 녹색 이파리 여기저기에 자줏빛 얼룩이 있어서 붙은 것이다.

처녀치마도 초봄에 피지만 노루귀와 얼레지보다는 좀 나중에 피는 꽃이다. 이 꽃도 이름이 특이해서 야생화 공부를 시작할 때 관심이 갔다. 수목원에서만 보다 북한산에 처녀치마가 있다는 말을 듣고 갈 때마다 찾아보았지만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05 4월 북한산 대남문 근처에서 처녀치마 꽃대가 올라온 것을 포착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아직 찬바람이 쌀쌀한 초봄에 수북한 낙엽 사이에 핀 연보라색 처녀치마는 신비로운 빛을 보는 것 같았다.

 

처녀치마는 전국 산지의 개울가 등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란다. 꽃은 자주색 또는 보라색으로 줄기 끝에서 3~10개 정도 꽃술이 비스듬히 아래로 뻗으면서 하나의 꽃 뭉치를 이룬다. 꽃잎 밖으로는 긴 암술대가 나와 있다.

처녀치마라는 이름처럼 꽃 모양과 색깔이 세련된 아가씨가 입는 치마같이 생겼다. 요즘 젊은 아가씨들이 입는 미니스커트 같기도 하고, 짧은 캉캉치마 같기도 하다. 로제트형으로 퍼진 잎도 치마 모양과 닮았다. 일본 이름을 오역(
誤譯)한 결과라는 견해도 있으나 나는 우리 조상이 이른 봄에 피는 이 꽃의 느낌을 잘 살려 지은 이름이라고 믿고 싶다.

서울 양재동 꽃시장에서 처녀치마를 사온 적이 있는데 아파트 베란다에서 길러서인지 끝내 꽃은 피지 않았다. 그렇지만 푸른 잎을 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겨울에도 푸르죽죽한 잎을 볼 수 있는 반(
)상록성이다. 꽃이 필 때는 꽃대가 10cm 정도로 작지만 수정을 한 다음에는 꽃대 길이가 50㎝ 정도까지 훌쩍 크는 특이한 꽃이다. 꽃대를 높이는 것은 꽃씨를 조금이라도 멀리 퍼트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나도 시골 출신이지만 노루귀·얼레지·처녀치마 같은 꽃을 보지 못하고 자랐다. 아무 산에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아직 찬바람이 남아 있을 때 꽃을 피우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꽃들은 모두 이른 봄, 주변 식물에 잎이 달리기 전에 얼른 꽃을 피운 다음 새싹을 띄우는 전략을 쓴다. 그래서 부지런하지 않으면 보기 힘든 꽃이기도 하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올봄 야생의 노루귀·얼레지·처녀치마 중 하나라도 보는 것을 목표로 해 보면 어떨까. 이 꽃 중 하나라도 본다면 야생화의 매력에 푹 빠져들지도 모른다.

 

-사회정책부 차장 김민철, 조선일보(1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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