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山野(草·木·花)]

[겨우살이] [얌체 같은 이 식물에 꽃쟁이들이 열광하는 까닭.. ]

뚝섬 2023. 11. 18. 05:46

 

[겨우살이] 

[얌체 같은 이 식물에 꽃쟁이들이 열광하는 까닭.. ]

 

 

 

겨우살이

 

나뭇가지에 뿌리 내리는 半기생 식물… 달짝지근한 열매는 새가 먹고 옮겨

 

겨우살이는 숙주 나무의 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철에 제 모습을 드러내요. /김민철 기자

 

늦가을인 요즘 꽃은 거의 다 졌습니다. 대신 산에서 열매를 관찰하기 좋습니다. 이맘때 관찰할 수 있는 열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것 중 하나가 겨우살이 열매입니다. 요즘 등산하다 보면 높은 나뭇가지에 새 둥지 같은 것이 달린 나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새 둥지가 아니고 초록색 식물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잎과 줄기는 초록색이고 콩알만 한 연노란색 열매가 다닥다닥 달려 있다면 겨우살이입니다.

겨우살이는 엽록소를 갖고 광합성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숙주 나무 가지에 뿌리를 내려 물이나 양분을 일부 빼앗는 반(半)기생식물입니다. 기본적으로 '얌체' 같은 식물입니다. 가지 속으로 뿌리를 내린 다음 관다발 조직을 연결시키는데, 연리지(두 나무가 엉켜 한 나무처럼 자라는 현상)가 만들어지거나 접목(接木)할 때 관다발이 연결되는 방식과 똑같다고 합니다.

겨우살이는 상록성이라 일년 내내 푸른 잎을 달고 있지만, 다른 계절엔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숙주 나무의 잎이 모두 떨어지면 제 모습이 드러납니다. 겨우살이라는 이름도 겨울에 돋보이는 나무여서 붙었을 것입니다. 특히 눈이 내린 직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겨우살이를 사진으로 담으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겨우살이 씨앗은 나무줄기에 정착해야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냥 땅에 떨어지면 버려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번식 방법이 필요하겠죠. 겨우살이 열매는 달짝지근하고 끈적끈적한 과육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달콤한 열매는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입니다. 열매는 지름 5㎜가 조금 넘는 둥근 모양이라 새가 한입에 먹기에 딱 좋습니다. 새들이 열매를 따 먹고 다른 나뭇가지로 날아가 배설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새가 열매를 먹고 배설할 때도 끈적거리는 성분이 남아 있습니다. 이 성분 때문에 씨앗은 나뭇가지에 달라붙을 수 있습니다. 나무와는 기생하는 악연이지만, 새와는 먹이를 주고 번식에서 도움을 받는 공생 관계인 셈입니다.

겨우살이는 항암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마구 채취해 웬만한 산에서는 찾기 힘듭니다. 지리산·덕유산·내장산·태백산 등 높은 산에나 가야 겨우 볼 수 있습니다. 겨울철 스키장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다 볼 수도 있습니다.

겨우살이는 열매가 연노란색인데, 가끔 열매가 붉은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열매가 붉은 것은 붉은겨우살이이고, 드물게 샛노란 열매를 꼬리처럼 늘어뜨리고 있는 꼬리겨우살이도 볼 수 있습니다. 꼬리겨우살이는 낙엽성이라 요즘엔 잎은 다 떨어지고 열매만 남아 있습니다.

서양에는 크리스마스 때 초록색 잎과 하얀 열매가 달린 겨우살이(미슬토)를 현관 안쪽 문 위에 걸어 놓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 겨우살이 아래 서 있는 이성에게는 키스를 해도 된다는 얘기가 있다고 합니다. 영화 '러브 액추얼리'에도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높은 산이나 스키장에 갈 기회가 있으면 혹시 주변에 겨우살이가 있는지 한번 살펴보기 바랍니다.

 

-김민철 기자, 조선일보(2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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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체 같은 이 식물에 꽃쟁이들이 열광하는 까닭.. 겨울 산의 보석, 겨우살이 찾기

활엽수에 기생하는 얌체 나무… 낙엽 지는 겨울에야 제모습
파란 하늘 아래 눈 덮인 잎과 영롱한 열매 보면 숨이 멎는 듯
새가 열매 먹고 퍼트리며 共生… 무분별한 채취로 멸종위기 처해

내장산에 들어서자 나뭇가지에 새 둥지 같은 것들이 달린 나무들이 보였다. 한 나무에 10여개 있는 경우도 있다. 가만히 보면 새 둥지가 아니고 초록색 식물이다. 망원렌즈로 당겨보면 잎과 줄기는 초록색이고 콩알만 한 연노랑색 열매가 다닥다닥 달려 있다. 겨우살이다.

주위 사람들이 가끔 "겨울에는 무슨 꽃을 보러 다녀?"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겨우살이"라고 말하고 있다. 겨울 산에서 멀리 나뭇가지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사람이 있으면 겨우살이 보러 온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특히 눈이 내린 직후이고 하늘도 파란 날에 겨우살이를 담는 것은 꽃쟁이들의 로망 중 하나다. 다만 겨우살이를 보려면 하늘을 보면서 다녀야 하기 때문에 고개 아픈 것은 감수해야 한다.

겨우살이는 엽록소를 갖고 광합성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숙주 나무에서 물이나 양분을 일부 빼앗는 반(半)기생식물이다. 기본적으로 얌체 같은 식물이다. 이런 겨우살이에 꽃쟁이들이 왜 열광하는 것일까. 겨우살이는 상록성이라 일년 내내 푸른 잎을 달고 있지만 다른 계절엔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숙주 나무의 잎이 모두 떨어지는 겨울에야 제 모습을 드러낸다. 겨우살이라는 이름도 겨울에 돋보이는 나무여서 생겼을 것이다. 꽃이 없는 겨울에 겨우살이가 유일하게 주목할 만한 식물인 셈이다.

겨우살이는 항암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마구 채취해 웬만한 산에서는 흔적도 찾기 힘들다. 국립공원이나 높은 산에나 가야 겨우 볼 수 있다. 심지어 겨우살이를 따기 위해 참나무를 베는 경우까지 있다고 하니 일부 사람들의 몰지각함은 한이 없는 것 같다. 국립공원에서도 눈높이에서는 볼 수 없고 높은 나뭇가지에만 남아 있다. 그래서 겨우살이를 보려면 망원경이나 망원렌즈가 필요하다. 이처럼 보기 어렵지만, 초점이 제대로 맞아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열매 사진을 보면 숨이 멎을 듯 기쁘다. 겨우살이는 사람들에게 좀처럼 거리를 주지 않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겨울 식물계의 팜파탈(femme fatale)이다.


내장산은 지리산, 덕유산과 함께 겨우살이가 많은 곳이다. 내장사에서 갈라지는 백련암 코스든 금선계곡 코스든 겨우살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내장산엔 겨우살이와 함께 열매가 빨간 붉은겨우살이(추천명은 붉은겨울살이)도 살고 있다. 좀 붉은 기가 있다 싶은 겨우살이를 망원렌즈로 당겨보면 어김없이 붉은겨우살이였다. 먼 길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붉은겨우살이는 주로 내장산 이남에서 볼 수 있다. 겨우살이와 붉은겨우살이가 함께 살고 있는 나무도 많았다. 1982년 발표한 윤후명 소설 '둔황의 사랑'에 '그녀(금옥)의 어머니는 두 눈이 겨우살이 열매처럼 빨갛게 익어 있었는데…'라는 대목이 있다. 윤후명 선생이 일찍이 1980년대 남쪽에서 붉은겨우살이 열매를 관찰했음이 분명하다.

높은 산에 가면 꼬리겨우살이도 있다. 지난달 태백산에 갔을 때였다. 산 입구에서 500m 정도 올라갔을 때 같이 간 일행이 갑자기 "와~" 하는 탄성을 터트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초봄 생강나무 꽃이 핀 듯 꼬리겨우살이 열매가 노랗게 노랗게 무리지어 달려 있었다. 꼬리겨우살이는 낙엽성이라 겨울에는 잎이 다 떨어지고 열매만 남아 있다. 겨우살이 열매는 연한 노란색이지만, 꼬리겨우살이는 샛노란 열매를 꼬리처럼 늘어뜨리고 있다. 꼬리겨우살이는 겨우살이에 비해 드문 편이다.

땅에 떨어진 겨우살이 열매를 먹어보니 달짝지근했다. 열매는 끈적끈적한 과육으로 채워져 있는데, 겨우살이 번식과 관련이 있다. 달콤한 겨우살이 열매는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다. 새가 열매를 먹고 배설할 때도 끈끈한 성분이 남아 있다. 이 성분 때문에 씨앗이 나뭇가지에 달라붙을 수 있다. 나무와는 기생하는 악연이지만, 새와는 먹이를 주고 번식에서 도움을 받는 공생관계인 셈이다.

서양에는 크리스마스 때 초록색 잎과 하얀 열매가 달린 겨우살이(미슬토)를 현관 안쪽 문 위에 걸어 놓는 풍습이 있다. 이 겨우살이 아래 서 있는 이성에게는 키스를 해도 된다고 한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도 이와 관련한 얘기가 나온다.

현기영 소설집에 '겨우살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 있었다. 겨우살이가 나오겠구나 싶어 읽어보니 식물 겨우살이와는 관련이 없었다. 중학교 영어 교사이자 작가 지망생인 화자가 유신 시절 한겨울 동안 학교에서 겪은 갈등을 그린 소설이었다. 제목은 겨울나기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일을 마치고 산사 찻집에서 차 한잔하면서, 겨우살이도 시절을 잘못 만나 참 혹독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김민철 사회정책부장, 조선일보(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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