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인력시장에서 본 절망
일용직 인력 사무소가 밀집한 서울 남구로역에선 매일 새벽에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다. 지난 11일에도 그랬다. 동이 트기도 전에 모인 조선족 수백 명 틈으로 일당을 외치는 인력 사무소 직원이 지나갔다. “11만원” “13만원”…. 젊은 축부터 뽑혀 나갔다. 최근 건설 경기 악화로 일할 곳이 줄어 6070 고령층은 한 달에 고작 한두 번 일감을 따낸다고 했다. 일할 수 있는 산술적 확률은 10%도 안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혹시나 오늘은”이라며 희망을 품은 채 매일 이곳을 찾고, 절반 이상은 빈손으로 귀가한다.
불경기가 외국인에게만 가혹한 건 아니다. 내국인 사정도 별 차이가 없다. 이달 초 택시 자격증 시험장을 방문했다. 중·노년층 사이에서 그 시험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인지 취재할 참이었다. 지난해 응시자는 3년 새 50% 가까이 늘어 5만명을 넘겼는데, 특히 50~70대 중·노년층의 증가율이 높았다. 시험장을 찾은 중·노년층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건설 현장에서 일자리를 잃었거나, 은퇴 후 일거리를 찾고 있거나. 20년 차 화물차 운전사도, 40년 경력의 베테랑 굴삭기 운전사도 건설 고용 한파를 피하지 못했다.
자영업도 은퇴 세대에게는 더 이상 탈출구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 “주변에서 식당을 하는 친구들을 봐도 수입은 적고 빚만 쌓여 고생하는 것 같다”며 “돈이 벌릴진 모르겠지만 법인 택시라도 하면 초기 비용이 필요 없고, 개인 택시를 하면 투자금(면허값)은 회수할 수 있으니 일단 도전해본다”고 했다. 가게를 접고 택시 기사로 새출발한 ‘사장님’도 적지 않다.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작년 1월 이후 지난달까지 일용직 근로자는 100만명 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택시 운전 자격시험 응시자만 치솟는 중이다.
‘경제의 벼랑 끝’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다. 회생·파산 절차를 밟는 임대인도 최근 늘고 있다고 한다. 갭 투자에 나섰다가 고(高)금리 장기화와 부동산 침체 등 경기 악화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경제성장률 0%대, IMF 이후 최대 폭의 공사 실적 감소 등 경제 지표는 냉혹한 현실임을 체감했다. 그래서 정부는 2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절반을 훌쩍 넘는 13조2000억원이 국민 1인당 15만~50만원씩 나눠주는 민생 지원금에 투입된다고 한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대통령이 바뀌니 이젠 좀 괜찮아지겠죠?”라고 물었다.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은 새로운 통치자가 보여 줄 문제 해결 능력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민생을 살피기 위해 시장이나 마트에만 가지 말고, 새벽 인력 시장에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때는 “추경 예산으로 돈을 썼으니 괜찮아질 겁니다”보다 더 구체적인 해법을 들려주기 바란다. ‘위기에 강한 유능한 경제 대통령’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강지은 기자, 조선일보(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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