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호칭의 조(祖)와 종(宗), 알고보니 아첨의 결과였다고?]
[선조(宣祖), 사극을 지배하다]
[“무능한 왕?]
조선 왕 호칭의 조(祖)와 종(宗), 알고보니 아첨의 결과였다고?
사실상 원칙 같은 건 없었다, 그때마다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을 뿐
조선 21대 왕 영조(英祖·왼쪽)와 25대 왕 철종(哲宗). 왜 영조는 '조(祖)'인데 철종은 '종(宗)'인지, 이 글을 읽으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조선시대 27명의 임금 중에서 어떤 이는 ‘조(祖)’, 또 어떤 이들에겐 ‘종(宗)’이라는 칭호가 붙습니다. 도대체 무슨 차이이고, 또 왜 그런 칭호가 붙는 것인가? 이것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학교 선생님과 전문가 등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봤습니다만 번번이 만족스런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야 속시원히 그 의문이 풀리게 됐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연구편찬실장과 사료조사실장을 역임하고 한국고지도연구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상태 박사의 신간 ‘여기가 서울 거기야’를 통해서였습니다. 이 책에서 영감을 얻어 조금 더 조사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나라를 세우거나 거기에 준하는 업적을 쌓은 사람은 ‘조’, 그렇지 않은 다른 임금은 ‘종’이라 불리는 것으로 막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태조(太祖)는 나라를 세웠으니 당연히 ‘조’가 되겠죠. 그런데 7대 세조(世祖)는 왜 ‘조’인 거지? 그래서 ‘나라에 큰 변란이 있었거나 변란 수준의 일을 자기가 벌인 왕’에 ‘조’자를 붙인다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14대 선조(宣祖)가 ‘조’인 것은 그런대로 이해가 갔습니다.
그런데 16대 인조(仁祖)는 왜 또 ‘조’인가요? 병자호란을 극복했으니 ‘조’인가요? 만약 광해군을 내쫓아 망할 뻔한 나라를 재건했다는 논리라면 11대 중종(中宗)이 ‘종’인 것과는 형평성이 어긋난 것이 아닙니까. 뭐, 인조도 그런대로 이해를 하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1대 영조(英祖)와 22대 정조(正祖), 23대 순조(純祖)가 잇달아 ‘조’인 것은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영조는 자기 아들을 죽인 변란이 있어서라고 누군가는 말했는데, 그러면 정조는? 그리고 그 아들 순조는? 영·정조는 그렇다고 쳐도 순조는 대체 뭘 했기에 나라를 재건하는 수준의 업적을 쌓았다는 말인지?
정리를 해 보자면 고려의 경우에는 34명의 왕 중에서 초대 태조(왕건) 말고는 ‘조’자를 붙인 예가 없지만, 조선은 27명의 왕 중에서 태조(이성계) 말고도 세조(7대), 선조(14대), 인조(16대), 영조(21대), 정조(22대), 순조(23대)까지 ‘조’를 붙인 임금이 6명이나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실제로 왕노릇을 한 적이 없는 추존왕 중 장조(사도세자), 문조(효명세자)에게도 ‘조’가 붙습니다.
자, 알고보니 사실은 이랬습니다.
원칙대로 하자면 고려와 같이 하는 것이 맞습니다. 창업 개국한 임금과 (실제로는 왕위에 오른 적이 없는) 그의 4대조까지만 ‘조’자를 붙이는 게 원칙이었다는 겁니다. 따라서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이안사는 목조(穆祖), 증조부 이행리는 익조(翼祖), 할아버지 이춘은 도조(度祖), 아버지 이자춘은 환조(桓祖)로 추존됐습니다. 이 네 명에 이성계를 포함해 ‘조’가 다섯 명. 여기에 세종 때 지은 ‘용비어천가’는 세종의 아버지 태종까지 여섯 명을 칭송하며 첫 문장을 리드미컬하게도 ‘해동 육룡이 나르샤’로 썼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후의 임금은 쫓겨나서 ‘군(君)’으로 격하되지 않는 한 모두 ‘종’자를 붙이는 게 맞을 터겠죠. 그러나 또 다른 원칙이 있었습니다. ‘유공왈조(有功曰朝) 유덕왈종(有德曰宗)’이라는 것이죠. 나라에 공이 많으면 ‘조’, 나라에 덕이 많으면 ‘종’자를 붙인다는 겁니다. 이것을 줄여서 ‘조공종덕(祖功宗德)’이라고도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죠. 돌아가신 전하께서 공이 있었던가 덕이 있었던가? 이것은 대단히 애매하고 주관적인 기준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문제는 ‘조’가 ‘종’보다 좀더 명예로운 호칭이라고 여겨졌다는 데 있습니다.
그럼 태조가 아니면서 가장 먼저 ‘조’자가 붙은 임금인 7대 세조는 왜 ‘조’라 불리게 됐나 살펴보겠습니다. 세조의 묘호는 당초 신종(神宗), 예종(睿宗), 성종(聖宗) 중에서 하나 골라 선택하기로 했었는데(지금 솔직히 저 神자와 聖자를 보니 대단히 역겨워집니다), 세조의 차남으로 임금이 된 예종이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대행 대왕께서 국가를 재조(再造)한 공덕은 일국의 신민으로 누가 알지 못하겠는가? 묘호를 세조라고 일컬을 수 없는가?”
신하들도 모두 찬성해 ‘세조’가 됐다는 것입니다. 아하, 불과 14개월 동안 왕위에 있었던 예종이란 임금이 한 일이라곤 남이를 죽인 일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하나 더 있었군요. 정말 기가 찬 일이라고밖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턴 별로 어렵지 않은 법입니다. 14대 선조는 임진왜란의 책임을 물어 오히려 군으로 강등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처음엔 선종(宣宗)이었다가 아들 광해군이 ‘선조’로 개칭했다는 것입니다. 왜? ‘나라를 빛내고 임진왜란을 평정해 전에 없던 큰 공을 세웠으므로 마땅히 조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망할.
16대 인조는 처음부터 ‘조’였습니다. 묘호를 열조(烈朝)라고 했는데 ‘덕을 지키고 업(業)을 높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중국 오대십국 중 남당(937~975)의 창업 군주의 시호가 열조여서 중복을 피하기 위해 ‘인조’로 바꿨다는 것입니다(그냥 자결해서 ‘열사’가 됐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가만히 보면 전란이 일어나 나라가 거의 멸망에 이를 뻔했던 임금들이 ‘그래도 나라가 망하지는 않았잖느냐’는 이유로 ‘조’가 된 셈이어서 실로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이렇게 따지자면 IMF 위기를 가져왔지만 나라가 망하지는 않았던 대통령은 ‘삼조(三祖)’라 부르고, 나라의 공산화 위기와 에너지 위기를 가져왔지만 그래도 나라가 아주 망하지는 않았던 대통령은 ‘인조(寅祖)’라 불러야 하는 것인지 원…
그러면 영조와 정조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두 임금은 원래 영종(英宗)과 정종(正宗)이었습니다. 이건 19세기 말까지도 계속 그렇게 불렸던 호칭이었는데, 영종은 1889년(고종 26년) 봉조하 김상현의 상소를 계기로 ‘영조’로 묘호를 바꿨습니다. 왕계(王系)의 정통성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정조는? 1897년 대한제국이 건립된 뒤 정종에서 정조로 바뀌었습니다.
대한제국이란 나라가 새로 세워진 셈이니 이번에도 위로 4대를 ‘조’로 격상시켜야 되겠죠? 그래서 고종이 의붓아버지로 삼은 효명세자(순조의 아들)는 당초 추존왕 묘호 익종(翼宗)에서 ‘문조(文祖)’로, 문조의 할아버지 정종은 ‘정조’로, 그 아버지 사도세자는 일단 ‘장종(莊宗)으로 추존됐다가 ‘장조(莊祖)’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고종 위로 4대까지 ‘조’로 바뀐 것입니다. 대한제국 수립 이전에 바뀐 영조까지 포함하면 고종 위로 5대까지 ‘조’가 됐습니다. 아래 조선 후기 왕실 가계도를 보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조선 후기 숙종에서부터 고종까지의 왕실 가계도. 철종은 순조의 의붓아들로, 고종은 문조(효명세자)의 의붓아들로 입적됐다. /위키백과 캡처
고종은 당연히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자신의 묘호에도 ‘조’가 붙으리라 여겼겠지만 죽기 전에 나라가 망해버렸으니… 그럼 24대 헌종과 25대 철종은 왜 그냥 ‘종’으로 남은 것일까요? 헌종은 문조(효명세자)의 친아들이었고, 철종은 순조의 의붓아들로 입적됐으므로 문조의 의붓동생이 된 것이었습니다. 고종은 문조의 의붓아들로 입적된 것이니 고종 입장에선 헌종은 형, 철종은 숙부가 됩니다. 직계 조상이 아니니 굳이 ‘조’로 격상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남은 사람은 23대 순조 한 명입니다. ‘아, 순조도 대한제국 때 순조로 격상됐나보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니었습니다.
순조는 그 이전부터 이미 순조였던 것입니다. 네? 뭐라고요? 아니, 순조라는 임금이 도대체 뭘 했다고…
순조의 묘호는 처음엔 분명 순종(純宗)이었습니다. 그런데 1857년(철종 8) 지돈녕 벼슬의 이학수란 사람이 이렇게 상소했습니다.
“순종 대왕은 사교(邪敎)를 막고 홍경래 난을 평정하는 등 국가에 공이 많았으므로 ‘조공종덕’의 원칙에 따라 묘호를 순조로 바꿔야 합니다. 조는 공로(功勞)요 종은 덕화(德化)로서 두 가지가 모두 성대하고 아름다워서 조가 반드시 종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고 종이 반드시 조보다 깎이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당면한 시기에 의해 그 칭호를 달리했을 뿐입니다.”
이어서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리 세조 대왕과 인조 대왕께서는 계통을 이은 임금으로 조라고 일컬었으며, 선조 대왕은 종계를 바르게 밝혔고 왜란을 평정했기 때문에 조라고 일컬었으니, 이는 참으로 우리 선군들께서 이미 시행했던 전례였고 우리나라의 예제(禮制)에도 역시 마땅했습니다.”
참으로 ‘K사회생활’의 진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건 그냥 고도의 아첨일 뿐이었습니다. 당시 순조의 계비인 순원왕후가 대왕대비로서 생존해 있었을 때였으니 잘 보이기 위해 아첨을 했던 것입니다. 아무도 반대하는 신하가 없는 상황에서 묘호는 순조로 바뀌었습니다.
이학수의 상소 중에서 ‘사교’란 천주교를 말하고, ‘사교를 막았다’는 것은 즉위하자마자 일어난 1801년의 신유박해를 말합니다. 이 임금을 ‘순조’라고 부르는 것에는 천주교인들이 흘린 피도 함유돼 있는 셈입니다.
이제 조선시대의 ‘조’와 ‘종’은 과연 어떻게 다른가 정리해 보면, 한마디로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조를 제외하면, 별 원칙 없이 그때그때 정치적 상황에 의해 ‘종(宗)’이거나 종이었어야 할 임금 몇 명이 ‘조(祖)’로 바뀌었다.”
진상을 알고 나니 속이 좀 쓰라린 것 같기도 합니다. 세조, 선조, 순조의 경우엔 이미 조선시대에도 ‘조’로 바꾼 것이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됐다고 합니다. 결국 그런 식의 ‘묘호 인플레’는 아첨의 결과였다는 것이죠.
-유석재 기자, 조선닷컴(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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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宣祖), 사극을 지배하다
상반기만 3편…
왜? ①왜란·당쟁 등 격정의 시기 ②허약·카리스마 양면적 인물 ③현실 반영한 거대 정치극
선조(宣祖)가 올 상반기 사극 시장을 점령했다. 지난 2월 종영한 KBS '왕의 얼굴', 현재 방영 중인 KBS'징비록', 다음 달 방영 예정인 MBC '화정'까지 드라마를 400년 전 선조 대(代)의 이야기가 평정한 것.
시대 자체가 거대한 정치극이다. 선조 승하 하루 전부터 스토리가 전개되는 '화정'의 김이영 작가는 "16~17세기는 동아시아 지형이 재편되는 소용돌이의 중심이었다. 왜란과 당쟁 등 조선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격정의 시기여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난세는 영웅을 불러, 류성룡('징비록'), 이순신('불멸의 이순신'), 허준('구암 허준'), 허균('천둥소리') 등 걸출한 캐릭터도 많다. TV평론가 정석희씨는 "스토리가 풍성한 데다 임진왜란 전쟁 신으로 시청자 이목도 잡아끌 수 있다"고 했다.
선조는 직계가 아닌 방계(傍系)로 왕이 된 조선 최초의 임금이다. 정통성 문제로 왕권은 취약했다. 때문에 대개 드라마 속 선조는 우유부단하고 무능한 왕으로 그려져 왔다. 전쟁 때 백성과 도읍을 버리고 도망간 수치가 부각됐고, 아들(광해군)과 충신(이순신)까지 정적으로 삼은 히스테리의 결정체로 묘사된다.
반면 최근 사극은 선조를 왕좌에 대한 불안과 광기에 사로잡혔으나 결국 왕위와 나라를 지켜낸 카리스마적 군주로서의 양면적 캐릭터로 그려낸다. 이성재('왕의 얼굴'), 김태우('징비록'), 박영규('화정') 등 연기파 배우들이 배역을 맡는 이유다.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명예교수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후대 왕조는 선조를 나라를 되찾아 새로 재건한 왕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본래 심열(心熱) 증세로 고생한 허약 체질인 데다, 리더십을 행사키 어려웠던 정치적 여건을 참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왕의 이름에 붙는 '조(祖)' 자는 공이 탁월한 왕에게만 붙인다.
드라마는 현실을 비춘다. 서강대 사학과 계승범 교수는 "전통의 강호 미국에 맞서는 중국의 출현, 북한과 일본이라는 위협이 400년 전 조선의 정세와 매우 유사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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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왕?
聖君 꿈꾼 그에게 연민 느껴”
['징비록' 선조로 好演 김태우]
내면 복잡한 役 많이 했지만 대하사극도 왕도 이번이 처음
왕으로서 한 선택들의 당위성 보여주고 싶어
할머니는 후궁이었다. 조선 최초의 방계(傍系) 출신 왕이었던 만큼 '정통성 콤플렉스'는 숙명이었다. 그걸 넘어서고자 필사적으로 성군(聖君)이 되려 했지만, 시대는 그에게 혹독한 시련만 안겨준다. KBS 대하사극 '징비록'은 조선 14대 왕인 선조(宣祖·1552~1608)의 이런 복잡한 내면을 잘 보여주는 드라마다. "백성도 임금을 버릴 수 있다"는 말에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미리 세자를 책봉하자는 말에 아끼던 신하도 내친다. "왕이지만 그 누구도 왕으로 보지 않는다"고 울부짖는 이 불안한, 그래서 불쌍하기까지 한 임금을 연기하는 배우 김태우(44)는 "선조도 참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경기도 수원의 KBS 촬영장에서 만난 그는 곤룡포를 입고 나타났다. 앉자마자 "이거라도 벗어야 좀 편하다"며 익선관(왕의 모자)을 벗었다.
"평소에도 이런 의관을 갖추고 흐트러짐 없이 살아야 하는 것도 힘들었을 거예요. '이 옷이 과연 내게 맞는 옷인가'라는 고민도 하지 않았을까요."
‘징비록’에서 김태우는 일부러 약간 멍한 눈빛으로 연기할 때가 많다. 당쟁과 불안한 국제정세에 흔들리는 선조의 내면을 표현하려는 것이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을 '동경'이 아니라 '동정'할 수 있는 것은 배우의 특권. 김태우는 "보통 사람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지만, 왕이라서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임진왜란이 나고 선조가 먼저 몽진(蒙塵)을 얘기하고 신하들이 반대하죠. 겁이 나서 도망가려는 것 같지만, 종묘사직을 보전하고 후일을 도모하겠단 판단도 있어요."
대하 사극도 처음, 왕 역할도 처음이라는 김태우는 "이틀 동안 집에서 대사 외우고 5일간 촬영하느라 정신없다"며 "대본이 조금이라도 늦게 나오면 바로 무너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선조의 성격을 잘 표현하기 위해 여러 아이디어도 짜냈다. 선조를 되살리기 위해 활용한 것은 디테일한 몸 연기. 신하들이 논쟁을 벌일 때면 몸을 용상에 기대고 멍한 눈빛을 하고 있거나, 미소를 지을 때도 상황에 따라 입꼬리 올라가는 모습을 미묘하게 조절하려고 했다. 신하의 충심에 감동하여 눈물 흘리는 척하면서도 속으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선조의 의뭉스러운 모습을 손가락 두드리는 간단한 몸짓만으로 표현한 것도 김태우의 아이디어다. "TV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중간부터 보는 분들도 많기 때문에 장면마다 그 캐릭터에 대해 많이 설명해줘야 하는 것 같아요. 시청자들에게 계속 선조의 성격에 대한 힌트를 주려고 하는 거죠."
사극의 꽃인 왕 역할이지만, '징비록'의 주인공은 신하인 류성룡(김상중)이다. 김상중 외에도 대부분 출연자가 그보다 연배가 높아 현장에선 "선조야, 이리 좀 와 봐라"는 말을 듣곤 한다. 선조를 키운 것도 8할이 신하였다. 이준경, 이황, 기대승, 이이, 류성룡 같은 신하들은 16세에 즉위한 선조를 유가적(儒家的) 이상 군주로 키우려 했다. "신하들은 선조를 바른 길로 이끌려 하지만, 성인(成人)이 된 선조가 보기엔 신하들도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죠." 류성룡과의 관계도 그렇다. "가장 정확하고 바른 판단을 내리는 신하라고 생각해서 그를 곁에 두는 것이라고 봐요. 하지만 완전히 믿진 않아요."
김태우는 1996년 데뷔한 뒤 20년간 활동하면서 선조처럼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을 자주 연기했지만, 50부작 대하 사극은 부담이다. "사극 촬영장은 일종의 전쟁터죠.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치는 게 목표예요. 선조도 공과(功過)는 있지만 결국 임진왜란을 극복하잖아요." 익선관을 다시 쓰자, 김태우는 불안하고 의뭉스러운 왕이 돼 '전쟁터'로 걸어 들어갔다.
-조선일보(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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