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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패 볼까 두려운 ‘세컨드 홈’] [전원 생활의 ‘공포’] ....

뚝섬 2024. 4. 16. 06:12

 

[낭패 볼까 두려운 ‘세컨드 홈’]

[전원 생활의 ‘공포’] 

[귀농-귀촌 좋은 터] 

 

 

 

낭패 볼까 두려운 ‘세컨드 홈’ 

 

선사시대 라스코 동굴벽화로 유명한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 지방엔 영국인 마을 ‘에이메’가 있다. 영국 은퇴자 300명이 따뜻한 날씨와 싼 물가를 찾아 이곳에 ‘세컨드 홈’을 마련했다. 저가 항공 덕에 수시로 영국을 오간다. 10년 전 갔을 때 거리에 영어 간판을 단 수퍼마켓, 펍(pub), 부동산 중개 업소들이 즐비했다. 부동산 중개 업자가 “중국인들의 주택 구입이 늘고 있다”고 말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유럽에선 세컨드 홈 소유자가 흔하다. 파리에 살 때 이웃은 알프스 몽블랑 부근에 세컨드 홈이 있어 스키 철엔 그곳에서 살았다. 코로나 사태 후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세컨드 홈 인기가 급상승했다. 풍광 좋은 영국 남서부 해안에선 신축 주택의 30%가 세컨드 홈 용도이다. 영국 정부는 주택 신축에 따른 일자리 창출, 지역 소비 촉진 등 경제 활성화 효과가 좋다고 보고 세컨드 홈 소유자에게 주민세 50% 감면 등 다양한 장려책을 쓰고 있다. 이탈리아에선 외국인에게 1유로만 받고 시골 빈집을 파는 ‘1유로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주민을 늘리려 애쓰고 있다.

 

갖고는 싶지만 갖자마자 후회하는 3가지가 별장, 요트, 애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가끔 쓰는 데 비해 비용과 품이 너무 많이 드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귀농·귀촌 바람이 불면서 속초, 제주 등지에 세컨드 하우스 구입 붐이 일었었다. 가격도 급등해 투자로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금리 상승이 촉발한 부동산 침체와 더불어 세컨드 홈 거품도 꺼졌다. 요즘 속초, 제주엔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난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한 지인은 시골 기와집을 전원주택 삼아 5도 2촌(닷새는 도시, 이틀은 농촌) 생활을 즐겼다. 그러다 별안간 다주택자로 취급돼 종합부동산세가 수천만원씩 나오자 화가 나 기와집을 부셔버렸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막고, 시골 주택 구입을 장려하기 위해 인구 감소 지역에 4억원 이하(공시가격 기준) 주택을 사면 ‘1주택자’로 대우하고, 재산세·종부세·양도세 감면 혜택까지 주는 ‘세컨드 홈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정부 말 믿었다가 나중에 낭패를 보는 거 아니냐’고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문 정부 시절, 세제 혜택에 혹해 ‘주택 임대 사업자’로 등록했다가 다주택자들이 뒤통수를 맞았고, 종부세도 정권에 따라 춤을 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세컨드 홈 정책도 입법이 필요한데, 야당이 “무주택자가 수두룩한데”라며 딴지를 걸 수 있다. ‘세컨드 홈’ 정책 역시 총선 후폭풍을 비켜가기 어려울 듯하다.

 

-김홍수 논설위원, 조선일보(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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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생활의 ‘공포’

 

발 노릇 해주던 노인용 전동차를 열린 대문 앞에 쓸쓸히 남겨둔 채, 혼자 사시던 98세의 이웃 어른이 얼마 전 이승을 뜨셨다. 80을 넘기신 어떤 할머니는 노인 보행기에 의지해 가끔씩 끙끙대며 언덕길을 오르시고, 같은 연배의 다른 어른도 지팡이를 짚고 위태롭게 소로를 걸어 다니신다. 유치원 아닌 ‘노치원’(老稚園) 차는 아침저녁으로 노인들을 모셔 갔다가 모셔 온다.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온갖 숲새 소리 등을 빼면, 하루 종일 이곳은 적막하기 그지없는 ‘인영불견(人影不見)’의 마을이 된다.

 

정년 후 전원생활을 시작한 지 만 2년째, 적지 않은 상념들이 교차한다. 그간 그림 같은 산촌의 자연 속에서 동식물과 공존하며 황홀경에 빠져 지냈는데, 도회 생활의 때가 빠지고 전원의 삶에 적응하게 되자 문득 ‘현타’가 찾아왔다. 어쩌면 문명 혹은 이데올로기의 충돌보다 인적 끊어져 가는 전원의 고요함으로부터 ‘소멸의 카운트다운’은 먼저 시작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엄습하는 공포를 헛된 망상의 소치로 돌릴 수만은 없다.

 

두어 해 전 이사 준비 중에 면장을 만났다. 자신이 부임한 뒤 세 가구가 들어왔으나 그 사이에 아홉 분의 노인이 사망함으로써 오히려 주민 수가 줄었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는 그 말이 실감나지 않았으나, 지금은 분명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동네 노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두 떠난 뒤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면, 나는 끝내 빈 집들에 포위당하고 말 것이다. 지금은 아무 때나 차를 몰고 시내의 마트에도 병원에도 모임들에도 가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전원생활의 지속 가능한 시간은 과연 얼마쯤일까.

 

전원생활의 로망이 ‘홀로 남겨지는’ 적막강산의 끔찍함으로 변하는 건 개인에게도 국가에도 재앙이다. 산업화 시대부터 시작된 인구의 도시 집중과 농촌 공동화 현상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돼 조만간 사람 대신 동물들이 전원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도시에 남느냐, 전원으로 가느냐’. 2010년대 후반부터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떠오른 ‘갈림길 담론’도 머지않아 ‘도시에 남아야 산다’는 ‘외길 담론’으로 바뀌지나 않을까.

 

-조규익 숭실대 명예교수·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장, 조선닷컴(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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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좋은 터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조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전원생활을 꿈꿔본다. 귀농과 귀촌은 우리 시대의 솔깃한 관심사다. 필자가 일주일에 절반을 머무는 산촌에도 최근 귀촌으로 두 집이 더 늘었다. 700만명으로 추산되는 베이비붐 세대 인구 가운데 10%만 도시에서 빠져나가도 농촌 살리기와 도시 주택, 청년 실업 문제 해결에 숨통이 틜 수 있다.

귀농·귀촌·주말 전원생활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귀농은 기존의 직업을 버리고 농사를 짓는 것이며, 귀촌이란 농촌으로 내려가 사는 것을 말한다. 주말 전원생활이란 도시에 집을 두고 가끔씩 내려가 취미 삼아 텃밭 정도 가꾸는 '반농반도(半農半都)'를 말한다. 그런데 귀농·귀촌·전원 생활 모두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있다.

첫째, 기존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한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도연명은 '귀거래사'에서 이를 "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로 표현했다. "지금(시골 생활)이 옳고 어제(도시 생활)가 틀렸음을 깨닫는 것"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농촌 생활은 도시 생활보다 훨씬 어렵다. 많은 사람이 "산 너머 행복이 있다"고 믿어 농촌으로 가지만 실망과 원망만 안고 회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가장인 경우 자기 혼자 결정할 수 없다. 필자도 지방 대학에 임용될 당시 도시 생활이 아닌 시골 삶을 꿈꾸었다. 하지만 아내의 동의가 없어 지금의 '반농반도' 삶이 되고 있다.

둘째, 터를 잡는 문제다. '똑똑한 새는 좋은 나무를 골라 깃든다'고 했다. 한번 터를 잘못 잡으면 말년을 망친다. 터에는 크게 4가지가 있다. "그냥 지나칠 곳(可行者), 한번 바라볼 만한 곳(可望者·명승지 등), 자적(自適)할 만한 곳(可遊者), 살 만한 곳(可居者)이 있다"(중국 북송 시대의 산수화론인 '임천고치' 중). 자적할 만한 곳은 주변에 정자를 짓고 전원생활을 즐길 만하고, 살 만한 곳은 귀농이 가능한 곳이다. 그런데 자적할 만한 곳과 살 만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풍수적으로 터를 보는 방법은 많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이미 검증된 터를 활용하는 것이다. 농촌의 빈집(빈터)을 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새로 땅을 사서 인·허가를 얻어 집을 지으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빈집을 구하거나 빈터에 농막(農幕·컨테이너 등)을 놓고 살다가 터에 대한 확신이 들 때 리모델링 혹은 신축을 하면 된다. 그렇다고 빈집(빈터)이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다. 터마다 나름의 무늬(터무니)가 있고 그 위에 살다간 사람들의 내력이 있다. 이전에 살았던 주인들의 행불행(幸不幸)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압선·축사·대규모 비닐하우스 등이 있는 곳을 피함은 당연한 일). 터가 좋으면 이웃과의 관계도 편안해진다.

필자가 처음 어느 산 아래 빈집을 발견하였을 때(1990년대 중반) 이웃들이 그 집터를 "제비집터(연소혈·燕巢穴)로 훈김 도는 곳"이라고 하였다. 또 집 바로 뒤에 작은 샘이 있었다. 자적할 만한 곳이었다. 그 집을 빌려 일주일에 절반가량 5년 넘게 살았다.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서울로 떠난 집주인이 다시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즈음 인근에 또 한 채의 빈집이 매물로 나왔다. 1970년에 지어진 민가인데 보존 상태가 좋았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내력을 물으니 거기서 태어난 자녀들이 무탈하게 자란 뒤 대처로 나가 잘 산다고 하였다. 이곳을 구입하여 10년 넘게 살고 있다. 역시 자적의 땅으로 텃밭 가꾸기에 알맞다. 그렇지만 몇 년 후 퇴직을 하면 새로운 곳으로 옮길 생각이다. 이번에는 "살 만한 곳"을 구할 것이다. 집 앞뒤로 300평의 논과 50평의 밭이 있는 곳을 꿈꾼다. 그 정도면 홀로 농사를 지어 식량 자급을 할 수 있다. 이렇듯 풍수는 삶의 형태에 따라 터 잡기가 달라짐을 전제한다. 사람의 뜻(意)과 터의 정()이 부합함을 중시한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조선일보(1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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