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山野(草·木·花)]

[고마리] [여뀌-고마리-며느리밑씻개]

뚝섬 2023. 10. 16. 10:47

[고마리] 

[여뀌] 

 

 

 

고마리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물을 맑게 정화하는 고마운 식물

 

고마리 꽃은 맑은 흰색부터 진한 붉은색, 끝부분만 붉은색을 칠한 듯한 흰색까지 색이 다양해요. /국립생물자원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지만 수질 정화 능력이 뛰어난 고마운 식물이 있어요. 우리나라 전국에서 햇볕이 잘 드는 개울가나 물웅덩이 주변에 수북하게 모여 자라는 고마리예요. 고마리는 줄기가 땅에 닿는 마디마다 뿌리가 내려 군락을 이뤄 자라요. 수많은 뿌리를 통해 오염 물질을 흡수해 물을 맑게 하고 꽃까지 피면 주변을 화사하게 만들죠.

고마리는 마디풀과(科)에 속하는 한해살이풀로 덩굴 식물처럼 엉키거나 아래쪽 줄기가 옆으로 자라 높이를 가늠하기 어려워요. 보통 1m까지 자라고 줄기에는 능선을 따라 아래로 향한 짧고 연한 가시가 있어요. 가시가 날카롭지 않아 손으로 만져도 그리 따갑지는 않아요. 그래도 맨살에 쓸리면 아프니 조심해야 해요.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가 있으나 윗부분에 나는 잎에는 잎자루가 거의 없어요. 잎자루가 붙은 부분에는 통 모양 턱잎이 있어요. 턱잎은 잎자루 밑에 붙은 작은 잎을 말하는데, 어린 눈이나 잎을 보호해 줘요. 줄기를 둘러싸고 있는데, 윗부분은 작은 녹색 잎처럼 생겼고 가장자리에는 가는 실 같은 털이 있어요.

고마리 잎은 정말 특이하게 생겼어요. 길이 5~9㎝ 정도인데, 끝은 뾰족하고 중간은 달걀 모양이면서 밑 부분은 양쪽으로 벌어진 귀가 있어요. 꼭 창검처럼 보이죠. 잎 가운데 부분에는 검은 반점이 있어 눈에 띄어요. 검은 반점은 어렸을 때는 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흐려지기도 해요.

꽃은 무더운 여름이 끝나는 시점부터 가을 끝까지 계속 피며 줄기 끝에 7~20개씩 모여 피어요. 맑은 흰색부터 분홍색, 진한 붉은색, 끝부분만 붉은색을 칠한 듯한 흰색까지 정말 환상적이죠. 활짝 핀 꽃 크기가 5㎜ 정도로 새끼손톱보다 작지만, 8개 수술과 3갈래로 갈라진 암술대가 어우러진 앙증맞은 꽃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죠.

꽃잎 5장처럼 보이는 부분은 사실 꽃받침이 변형된 거예요. 꽃잎에 붙어 있는 수술대 아랫부분을 보면 수술대 사이마다 노란색 꿀샘(밀선)이 있어요. 꿀을 먹기 위해 곤충들이 모여드는 걸 쉽게 볼 수 있죠. 고마리는 가을에 접어드는 시기 곤충들에게 꿀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밀원식물이라고 해요. 10~11월에 메밀과 비슷한 삼각형의 황갈색 열매가 익어요. 씨를 방출하기 위해 쪼개지는 틈이 없고, 한 개의 씨로만 이루어져 있는 마른 열매(여윈 열매)예요.

흔하게 고마리를 볼 수 있는 것은 뛰어난 번식 전략 때문이에요. 땅에 닿는 줄기 마디에서 뿌리가 내리고 새로운 줄기가 돋아나 금세 군락을 이루죠. 씨앗도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 퍼뜨려요. 지상부 꽃은 곤충들의 도움으로 열매를 맺고 지상부가 잘리거나 물에 휩쓸려도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땅속줄기 끝 부분에도 닫힌꽃(폐쇄화)이 피어 바로 열매가 달린다고 해요.

 

-김민하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 조선일보(2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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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뀌-고마리-며느리밑씻개

 

요즘 냇가·공터는 여뀌들 세상…
이삭 모양 꽃대에 붉은 꽃 촘촘 수수한 시골 아낙네 같은 꽃
'매운맛' 이용해 물고기 잡기도
개여뀌 흔하고 기생여뀌는 화려…
고마리·쪽이 비슷한 형제 식물  

요즘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꽃을 꼽으라면 여뀌를 빼놓을 수 없다. 6~10월 이삭 모양 꽃대에 붉은색 꽃이 좁쌀처럼 촘촘히 달려 있는 것이 여뀌 무리다. 냇가 등 습지는 단연 여뀌들 세상이고, 산기슭이나 도심 공터에서도 여뀌 종류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래서 가을은 여뀌의 계절이라는 말도 있다.

[여뀌-고마리-며느리밑씻개]                                                             

 

그러나 여뀌는 흔하디 흔해서 사람들이 잘 눈길을 주지 않는 꽃이다. 그저 잡초려니 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야생화에 관심 있는 사람도 여뀌는 너무 흔하면서도 복잡하기만 하다며 그냥 패스하는 경우가 많다. 여뀌는 다른 꽃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예쁜 모습을 포착하면 담는 정도의 꽃이다. 다른 꽃들은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도 많고 얘깃거리도 많은데 여뀌는 그런 것도 거의 없다. 여뀌는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피고 지는 꽃이다. 더구나 소도 먹지 않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식물이라는 인식도 퍼져 있다. 논밭에도 무성하게 자라는 경우가 많아 농사꾼에게는 귀찮은 잡초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뀌도 잘 보면 수수한 시골 아낙네같이 예쁜 꽃이다. 꽃이 피기 전에는 빨간 좁쌀을 붙여 놓은 것 같다가 분홍빛의 작은 꽃들이 차례로 피는 것이 너무 곱다. 다만 꽃이 워낙 작기 때문에 자세히 보아야 볼 수 있다. 황대권은 '야생초 편지'에서 여뀌는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참 예쁜 꽃이라고 했다. 그런데 워낙 무더기로 나니까 그저 귀찮은 풀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고마리·부레옥잠 등과 함께 수질을 정화하는 고마운 식물이기도 하다.

여뀌의 가장 큰 특징은 잎과 줄기에 '매운맛'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 이름도 'Water pepper'다. 이 성질을 이용해 예전 아이들은 물고기를 잡을 때 여뀌를 짓찧어서 냇물에 풀었다. 그러면 물고기들이 맥을 못 추고 천천히 움직이는데 이때 빨리 건져올리곤 했다. 김주영의 소설 '홍어'에도 짓이긴 여뀌를 개울에 풀어 붕어와 피라미들을 잡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뀌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꽃이 붉고 그 맛도 매워서 귀신을 쫓는다는 뜻의 역귀(逆鬼)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견해, 꽃대에 작은 꽃이 줄줄이 얽혀 있는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견해 등이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맵다고 '맵쟁이'라고 부른다.

여뀌 종류는 개여뀌, 이삭여뀌, 기생여뀌, 흰꽃여뀌 등 30가지가 넘는 데다, 구분 포인트도 모호해 정확한 이름을 알기가 쉽지 않다. 야생화 고수들도 여뀌 분류에는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개여뀌다. 밭가나 숲에서 군락을 이룬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대개 '개' 자가 붙으면 본래 것보다 쓸모가 없거나 볼품이 없다는 뜻인데, 개여뀌는 여뀌의 매운맛이 나지 않는다. 그냥 여뀌는 끝부분에 분홍색을 띠는 연녹색 꽃이 꽃대에 성글게 달리는데 개여뀌는 붉은색 꽃이 촘촘히 달린다.

여뀌 중 가장 화려한 것은 단연 기생여뀌다. 꽃 색깔도 진한 붉은색인 데다 아주 향긋한 냄새가 나서 기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자잘한 붉은 꽃이 드문드문 달리는 이삭여뀌, 붉은 가시 같은 털이 많은 가시여뀌, 꽃이 제법 커서 여뀌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 흰꽃여뀌 등도 그나마 특징이 뚜렷해 구분하기 쉬운 여뀌들이다.

여뀌와 비슷하게 생긴 형제 식물로 고마리와 쪽이 있다. 고마리는 잎이 서양 방패 모양으로 생겨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가지 끝에 연분홍색 또는 흰색 꽃이 뭉쳐서 피는 것이 귀엽다. 쪽은 잎을 쪽빛 물감을 들이는 원료로 사용하기 위해 재배하는 식물이다. 쪽은 여뀌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는데, 여뀌 잎은 매끈한 반면 쪽잎은 주름이 져 약간 울퉁불퉁한 점이 다르다.

여뀌를 얘기하면서 최명희 대하소설 '혼불'을 빠뜨릴 수 없겠다. '혼불'에는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가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2권에는 '강실이에게는 그 목소리조차 아득하게 들렸다. 그러면서 등을 찌르던 명아주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가 아우성처럼 귀에 찔려왔다'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왜 많은 식물 중에서 하필 여뀌일까. 이 소설의 배경은 전북 남원의 노봉마을이다. 남원을 가로지르는 강은 요천(蓼川)이고, '요'자가 '여뀌 요'자라는 것을 알면서 그 궁금증이 풀렸다. 요천은 여뀌꽃이 만발한 모습이 아름답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얼마나 여뀌꽃이 만발했으면 이런 이름까지 얻었을까. 요천에 여뀌가 만발하니 요천 주변에 있는 소설 배경 마을도 당연히 여뀌가 흔했을 것이다. 요천은 광한루 앞 등 남원 시내를 가로질러 섬진강에 합류하는 샛강이다. 남원 사람들은 '요천수'라고 부른다.

남원시는 소설의 배경인 노봉마을을 '혼불마을'로 지정하고, 이곳에 '혼불문학관'을 지었다. 지난 주말 혼불문학관에 다녀오는 길에 요천에 내려가 보았다. 강변 정비사업을 대규모로 한 데다 달뿌리풀 등이 번성해 여뀌가 자랄 공간은 많이 줄어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곳곳에서 전체가 붉게 물든 채 열매를 맺어가는 여뀌 무리를 볼 수 있었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1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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