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山野(草·木·花)]

[은행 열매와의 전쟁] [은행잎은 하나일까, 둘일까]

뚝섬 2023. 10. 16. 05:40

[은행 열매와의 전쟁] 

[은행잎은 하나일까, 둘일까

[은행나무]

 

 

 

은행 열매와의 전쟁 

 

한반도 가로수에 대한 공식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나온다. 1453년 단종 1년에 의정부 대신들이 ‘큰길 양편에 소나무 잣나무 배나무 밤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등 나무를 많이 심고 벌목을 금지할 것’을 논의했다고 썼다. 가로수는 심는 이유가 뚜렷한 나무다. 예전엔 이정표 기능이 컸다. 그 흔적이 나무 이름에도 남았다. 5리마다 한 그루씩 심은 나무를 오리나무라 했고, 20리마다 심는 나무는 스무나무였다가 지금은 시무나무로 바뀌었다는 견해도 있다.

 

일제강점기엔 빠르게 자라는 미루나무수양버들을 집중적으로 심었다. 광복 후 급속한 경제성장 여파로 오염 문제가 불거지며 플라타너스가 주목받았다. 넓은 잎 표면에 잔털이 돋아 있어 매연과 먼지 흡착 효율이 높아 1980년대 초까지 서울 가로수 절반을 차지했다. 그러나 나뭇가지와 잎이 교통 신호와 간판을 가린다며 점차 외면당했다. 거리에 차가 늘고 도시가 번화해지면서 가로수에 대한 취향이 바뀐 것이다.

 

서울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도시 미관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며 노란 단풍이 아름다운 은행나무가 주목받았다. 당시 시민 대상 설문조사에서 1위로 꼽혔다. 그 후 대대적으로 심었고 지금도 서울에서 가장 많은 게 은행나무다. 2020년 기준, 서울 가로수 30만 그루 중 은행나무가 10만 그루 이상이다. 이어 플라타너스가 6만 그루, 느티나무 3만6000 그루 순이다.kip 07 ..

 

▶은행나무는 열매에서 나는 악취가 치명적 약점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가을만 되면 풍기던 악취가 많이 줄었다. 서울의 각 구청이 9~10월이면 은행 열매를 대거 털어내며 수거해가는 덕분이다. 열매를 맺는 암나무를 캐내고 수나무로 교체해가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은행나무는 20년쯤 자라 열매를 맺어야 비로소 암수가 구별되지만 국립산림과학원이 2011년 DNA 성감별 법을 개발한 이후 수나무만 골라 심을 수 있게 됐다.

 

▶서울의 은행나무 가로수는 지난 10년 사이 1만 그루 이상 사라졌다. 대신 악취 없고 꽃이 예쁜 이팝나무회화나무가 증가 추세다. 은행나무가 가로수 왕좌를 내줄 날이 올 수 있다. 은행나무는 악취뿐 아니라 독성이 강해 새도 다람쥐도 얼씬 못한다. 수억 년 전엔 은행 독성에 내성을 지닌 짐승이 여럿 있어 씨를 먹고 퍼뜨렸지만 모두 멸종했다. 지금은 인간을 제외하면 어떤 동물도 은행 열매를 먹지 않기 때문에 인류가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면 함께 사라질 운명이라고 한다. 노란 가을빛을 후손들도 즐길 수 있도록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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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잎은 하나일까, 둘일까

 

[서광원의 자연과 삶]

 

가을이면 볼 수 있는 ‘노란 터널’이 있다. 직접 그 속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감흥을 알 수 없는, 은행나무들이 만드는 가을의 터널이다. 하늘도 땅도 모두 노랗다 보니 우주 어딘가로 가는 통로인가 싶을 때도 있다.

우리는 이런 감흥을 오래전부터 느껴 왔지만 유럽인들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데다 다른 곳으로 확산되지 않아 주로 동아시아에서만 자랐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1730년쯤 당시 세계를 휘젓고 다니던 네덜란드인들이 자기 나라에 처음으로 심었다는데, 동부 독일인들이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독일의 문호 괴테 덕분에 유명해졌는데, 특유의 시심(詩心)으로 절절한 연애편지를 썼던 까닭이다.

‘동방에서 건너와 내 정원에 뿌리 내린/이 나뭇잎엔/비밀스러운 의미가 담겨 있어 (중략) 둘로 나누어진 이 잎은/본래 한 몸인가/아니면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를/우리가 하나로 알고 있는 걸까?’

 

괴테는 두 장의 은행잎을 ‘증거’로 붙여 보내며 ‘하나이면서 둘’이라는, 다분히 ‘의도’가 넘치는 시구(詩句)로 시를 마무리했지만, 잎이 한 개인지 두 개인지는 지금까지 딱히 결론이 난 적이 없다. 마치 우리 엉덩이가 한 개인지 두 개인지 갑론을박 중인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이 나무엔 애매모호한 게 하나 더 있다. 우리는 보통 참나무처럼 잎이 넓으면 활엽수, 소나무처럼 잎이 날카로우면 침엽수라고 부른다. 이렇게 보면 은행나무는 말할 것도 없이 활엽수다. 하지만 한동안 침엽수로 분류되었다. 활엽수로 부르는 속씨식물에게 응당 있어야 할 씨방이 없어서다. 그렇다면 침엽수일까? 또 다른 학자들은 수정 방식이 침엽수와는 완전히 다르니 아니라고 한다. 그럼 뭘까? 요즘은 대체로 독립적인 식물로 본다.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의 중간 단계라는 것이다.

하긴, 잎이 하나면 어떻고, 둘이면 어떤가. 침엽수가 아니면 어떻고, 활엽수가 아니면 또 어떤가. 이 험난한 세상에서 잘 살면 그만이지. 실제로 은행나무는 그 어떤 나무보다 생명력이 강하다. 공룡이 출현하기 훨씬 전인 2억7000만∼2억8000만 년 전에 생겨나 지금까지 잘 살아오고 있어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릴 정도다. 물론 그냥저냥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2020년 중국과 미국 연구팀에 의하면, 수령이 600년 된 은행나무와 20년 된 은행나무는 기능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수백 살이 됐는데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었고 노화의 기미 역시 거의 없다시피 했다. 웬만해서는 늙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래된 은행나무들이 많은 게 이래서인데, 실제로 지금까지 연구 결과를 보면 늙어서 죽은 나무는 없다. 여러 다양한 사건 사고로 죽을 뿐이다. 비결은? 연구 중이다. 아직까지 모른다는 건데, 남모르는 나만의 비결이 있어야 오래 살 수 있다는 자연의 교훈이 아닐까 싶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동아일보(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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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노란 빛으로 물든 도심의 가로수 길을 걷다 보면 지뢰밭을 건너듯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바로 은행나무 열매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은행나무가 고약한 냄새를 품고 있는 건 새와 곤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까? 은행나무는 3억 5천 년 전에도 지구상에 존재했던 몇 안 되는 생물 가운데 하나로 바퀴벌레와 함께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조선닷컴(1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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