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전라도]

[무등산(無等山)-규봉암(전남 광주)] 서석대-입석대를 품은 산인가..? 산정의 드넓은 초원인가..?

뚝섬 2016. 3. 22. 12:40

[무등산 정상(출입통제지역): 인왕봉-지왕봉-천왕봉]




서석대와 입석대를 품은 산인가..?

산정의 드넓은 초원인가..?

 

항상 마음속에 편안하고, 넉넉하고, 푸근하게 자리하고 있었던 무등산.

지난번 이후 6년 만에 다시 찾은 광주의 지붕-무등산은 여전히 그런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장불재에서 바라본 서석대(좌)-입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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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광주광역시 및 전라남도 화순군담양군에 걸쳐 있다(1187m).

1972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12 12 27,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 21번째 국립공원이며 1988년 변산반도·월출산 이후

24년 만의 신규 지정이었다.


[원효사 부근에서.. ]                               


정상은 천왕봉이나 1966년 공군부대가 주둔해서

정상 부근이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통제되고 있다.

 일반 등산객이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은 서석대(해발 1100m)이다.

천왕봉 남쪽의 지공너덜과 증심사 동쪽의 덕산너덜은

다른 산에서 볼 수 없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정상에서 한라산과 거제도가 보인다고 한다.

 

[무등산 정상: 인왕봉-지왕봉-천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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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옛 이름인 무진주에 있는 산이라 하여 무진악 또는 무악이라 불리웠고,

대개 큰 산이 그렇듯 무속과 연관하여 무덤산, 무당산이라고도 했다.

무등산은 대체로 바위가 아니라 흙으로 이루어진 산이지만,

정상 부근 서석대, 입석대, 규봉의 바위가 웅장하며 아름답다.

그래서 고려 시대에는 서석산이라고 불렀다.

불교 전래 후 부처가 세상 모든 중생과 견줄 수 없이 우뚝하다는 존칭으로

옛 이름과도 유사한 무등산(無等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다만, 이는 같은 우리말 이름에 대한 한자표기를 바꾸어 해석을 달리했을 뿐으로,

원지명은 광주의 고유지명인 무들 또는 무돌에서 비롯한다.

무진(武珍)에서 오늘날에는 한자음으로 진으로 읽으나,

과거에는 새김으로 읽어 들, 돌로 발음하였고,

무등(無等)또한 비슷한 음차표기이다.


[광석대(규봉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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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정상에서 서쪽으로 돌아가면 수십길이 되는 북모양의 석조 수십 개가

울을 둘러막은 듯 서 있는데 이것은 서석대(瑞石臺)이다.

산허리 남쪽에는 입석대가 있고 동쪽으로 가면 수백 척 되는 세 개의 거석이 서 있는데

이것이 바로 삼존석(三尊石)이다.

그 부근에는 송하, 광석, 풍혈, 장추, 청학, 송광, 능암, 법화, 설법, 은신 등 10개의 석대가 있는데,

그 중 광석, 풍혈은 강봉의 입석과 함께 절경으로 알려져 있다 


[서석대]                                                                    

 

산의 동서 두편 사이에는 바위돌을 깎아 세워놓은 듯 솟아 있는 석벽이 있고,

그 석벽 가운데는 지공(指空) 너널이라는 천작의 석실이 있는데

옛날 지공과 뇌공(懶空)이라는 두 선사의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원효, 증심, 규봉의 세 절이 있는데 모두 신라의 고찰이며,

규봉암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의 명장이었고 또 정충(精忠)으로 알려진

충장공 김덕령 장군이 여기서 무예를 닦았고, 산중도처에 유적이 많다. -자료취합-

 


[규봉암(좌)-지공너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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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16-03-20):

원효분소(10:10)-목교(11:44)-서석대(12:14)-입석대(12:38)-장불재(12:58)-규봉암(13:33)

-신선대억새평전(14:25)-꼬막재(14:44)-원효분소(15:26) [13.2 km: 5시간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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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여 만에 다시 찾은 무등산.. 이번에는 원효분소에서 산행시작..





 

-원효분소-서석대(옛길2구간).. 목교방향으로..






-어제에 이어 오늘도 무척 화창한 날씨..






-도심지 주변에 이런 깊은 숲과 아름드리 나무가..





 

-아름드리 메타스콰이어.. 그러고보니, 인구 100만 이상이 사는 도시를 끼고 있는 산중에 높이가 천미터가 넘는 산이 있는건 무등산이 세계 유일하다고 한다.

광주 시민들의 자랑이자 광주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무등산 오르내림 꽤 많은 지역에 분포되어있는 조릿대숲..





 

-무등산 정상부근..












-목교..





-(원효분소 10:10)-11:44.. 무척 완만한 오름길이었다..






-마음을 편하게하는 아주 정감어린 중봉..






-임도 바로 옆 길을 타고 서석대로..






-전망이 터지는 곳..






-직전에 1시간 30분 완만한 오름길을 타고 올라온 원효계곡.. (계속 좌측으로)





 

-한없이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중봉과 뒤로 광주시내.. (시야는 별로.. )






-증심사-중머리재에서 올라서는 장불재..






-무등산 정상부.. 천-지-인(왕봉) 중 인왕봉..












-카메라의 한 앵글에 들어가지 않아 파노라마로 촬영한 서석대..










































-정상부는 군부대 시설로 서석대까지만..












-직전에 왔을 때는 인왕봉까지는 올라갈 수 있었다.. !





-국립공원 직원 열명 정도가 살벌하게(?) 출입을 통제하니 여기서 멋진 정상부 감상.. !!





 

-국공직원의 처사에 특히 불만을 나타내는 산객은 없다..






  













-직전에 지나온 서석대의 뒷모습.. 그 앞으로 중봉과 광주시내.. 






-좀 더 선명한 시야였으면 좋았을텐데..






-동일 위치에서 다른 사진.. ('약수의 산행포토 에세이'에서.. )






-무언가 아쉬운.. 





 







-'아쉽다..!'는 표현..






-(어쩔수없지.. ~~ )






-화순의 안양산-낙타봉(백마능선)과 중머리재에서 올라서 만나는 장불재.. (조망은 계속해서 좌측으로.. )


장불재:

「대동지지」에 「장불치(獐佛峙)」로 기록되어 있으며, '긴골' 또는 '장골'을 한자로 「장불치(長佛峙)」로 표기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장불동에서 철이 생산되었고, 「유서석록」에 "장불천은 그 상류에서 쇠를 씻기 때문에

언제나 탁한 물이 흐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장골재’라 불렀는데, 노산 이은상은 기행문에서 장골이 긴 골이며

골 위의 고개라 하여 장골재라 불렀으리라 추정하였으며

이후 ‘장불사’라는 절이 생기면서 '장골치'로 쓰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약수의 산행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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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불재 좌측 컷.. 안양산--(백마능선)--낙타봉..






-안양산 산행기점인 화순의 무등산휴양림 방향..

(이 방향에서 백마능선을 타고 중봉으로 산행할 계획을 잡았다가 오늘 아침 차량회수 문제가 있어 원효계곡으로 변경했었다.. )

하산코스인 장불재-규봉암-신선대-꼬막재로 진행하는 방향..


 

-장불재로..













-승천암..












-입석대에 내려서기 전..






-입석대..






-아래는 정식(?) 전망대에서 촬영한 컷..
























-장불재에 내려섰다.. 좌측의 서석대와 우측의 입석대..





-장불재를 거쳐 규봉암 방향으로..






서석산이 무등산으로 바뀌게 된 야사:

조선 태조 이성계의 王師였던 무학대사는 전국의 산신령들을 모아놓고,

국토수호와 백성의 안전을 위해 힘쓸 것을 훈시하고,

그중의 4대 명산을 지정하여 각 방면의 대장으로 삼아 한층 더 중대한 임무를 맡겼다고 한다.

그중, <묘향>은 산세가 웅대, 장엄하기도 하려니와 수려하기도 하니 1등으로 하고,

<금강>은 아름답기로 천하제일 이라고는 하나 산세가 <묘향> 만은 못하니 2등으로 하며,

<지리>는 비록 수려함은 없으나 웅장함에 있어 그중에 제일이니 3등으로 하고,

西 <구월>은 수려함과 장대함이 타에 못 미치니 4등으로 하라고 정하고 있을 즈음에,

남쪽 다도해의 여러 섬들을 순시하고 뒤늦게 돌아온 <서석산> 신령이

위의 결정 사실을 듣고서 크게 노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결정을 번복하고, 새로 정하라고 대들자,

이에 난처해진 무학대사는 이미 결정이 된 일을 번복할 수는 없고,

<서석>을 서남 방향의 대장 산으로 정하고 그 등위를 5등으로 하자고 절충안을 제시하니,

이에 더욱 더 노한 <서석> "국토의 서남은 나라의 백성을 먹여 살리는 곡창이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가장 취약한 곳으로, 그곳 방비가 국가 보존의 첫째 시책일진대,

그곳의 수호를 맡은 <서석>이 마땅히 1등이 되어야 함에도 5등이라는 결정은 부당하다.

차라리 그 등수에 들지 않고 <無等>으로 하겠다."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그 후, <서석산>의 이름은 <무등산>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자료취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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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내림이 없는 거의 평지길..












-안양산-백마능선..






-지공너덜..





















-규봉암..


















-고요한 적막감에 쌓여있는 규봉암 경내..

































-걷는 자체가 수양.. 편안한 마음으로 걷고 또 걷는다..






-신선대억새평전



















-꼬막재..













-다시 메타스콰이어숲을 지난다..






-아주 좋은 숲인데, 즐기는 시민이 없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원효분소에 거의 다 내려왔다.. 의상봉..












-13.2 km, 5시간 16분의 산행.. !!

오르내림 내내 편안한 마음이었다.. 마지막으로 뒤 돌아보는 무등산 전체의 자태도 예의 바로 그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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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화순 안양산-낙타봉(백마능선)-장불재-입석대-서석대-중봉-토끼봉-동화사옛터 코스이었으나,

차량회수 문제가 복잡하여 원효계곡-목교-서석대-입석대-장불재-규봉암-꼬막재-원효분소 원점회귀로 변경.. ]--


(아래 사진은 백마능선 산행한 '약수의 포토산행에세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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