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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과학으로 접근해달라”] [땅은 도망가지 않는다]

뚝섬 2024. 2. 8. 10:09

[“제발 과학으로 접근해달라”] 

[땅은 도망가지 않는다] 

 

 

 

“제발 과학으로 접근해달라”

 

정부 지원금 120억원으로 제초제 견디는 잔디 만들었더니 주무 부처 20년 끌다가 ‘부적합’
“제발 시민단체 눈치 보지 말라”

 

약 5,000천평 GMO 포장에서 재배되고 있는 제초제 내성 제주그린 잔디./이효연 교수 제공

 

제주대 생명공학부 이효연(63) 교수의 대표 연구작은 잔디다. 이름은 ‘제주 그린’. 제초제를 뿌려도 잡초만 죽고 버틸 수 있는 잔디다. 연간 국내만 1조원, 글로벌 40조원 이상인 잔디 시장에서 ‘혁명적’ 품종으로 평가받아 국내외 특허만 12건이 등록돼 있다.

 

일본 도호쿠대에서 생명공학 석·박사를 딴 그가 잔디와 인연을 맺은 건 1996년. 고(故) 박성용 금호그룹 회장이 “앞으로는 바이오 시대’라며 설립한 ‘금호생명과학연구소’의 초대 소장으로 미국서 영입된 송필순 박사를 만나면서다. 송 박사는 이 교수에게 “미국 잔디 대부분이 한국 잔디를 품종 개량한 것이니 우리가 한번 연구해 보자”고 제안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2000년 제초제에 견디는 잔디를 만들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제초제를 뿌리면 농약도 많이 칠 필요가 없는 친환경 품종이었다. 정작 기구한 시련은 이때부터였다.

 

품종특허는 재배 허가를 받아내는 심사가 최종 관문이다. 주무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 여기에 질병관리청, 농림부, 해양부, 환경부 등과 협의해야 한다. GMO(유전자변형작물)인 만큼 꼼꼼한 심사는 필수란 걸 그도 충분히 인정한다. 2003년 심사를 신청하고 11년 만인 2014년 위해성 평가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이로부터 작년 6월까지 9년 가까이 무려 23가지 보완 요청을 받았다. 여기엔 믿기지 않는 내용도 많다. 해양부는 “품종 개량한 잔디가 해양에 영향이 없다는 걸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무슨 방법으로 입증할까부터 난감했다. 결국 잔디를 갈아서 물고기에게 1년간 먹인 뒤 심장박동수 등을 측정해 무해성을 입증했다. 이런 식으로 23건을 입증했더니 작년 6월 30일 “부적합’ 결론을 통보했다. 이유가 기가 막혔다. “국내 환경에 위해성이 없음을 인정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란 것이다.

 

GMO가 위험할 수 있으니 이런 결정은 일리가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전 세계 GMO 농작물 수입에서 일본에 이어 2위 국가란 점을 감안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대부분 콩, 옥수수 등이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GMO 작물 수입은 허가하면서 잔디 재배는 불허하는 논리는 무엇인가. 이 교수는 “미국 등에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GMO 작물 수입을 요청할 때는 ‘통상 마찰’을 우려한 관료들이 필사적으로 통과시키지만, 정작 우리가 개발한 품종 허가엔 환경시민단체 눈치를 보느라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약 5,000천평 GMO 포장에서 재배되고 있는 제주그린 잔디 사진./이효연 교수 제공

 

제주 그린 개발에 투입된 120억원은 농림부, 교육부 등 정부에서 지원한 돈이다. 돈을 줘가며 GMO 개발을 독려한 정부가 결실을 눈앞에 두고 20년 넘게 끌다가 부적합 결론을 냈다. GMO 연구는 이 교수팀만 한 게 아니다. 30년간 우리 정부는 GMO개발에 수조원 이상을 투자해 81개 품종을 선정했다. 어느 누구도 상업화는 못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건 과학적 접근이 아니다. 정치에 오염된 것이다. 제발 과학을 과학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지금 한국엔 ‘제2의 제주 그린’ 같은 일들이 부지기수로 있을 것이다. 관료들과 기관장들이 일부 목소리 큰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는 사이 한국 과학은 이렇게 위기를 맞고, 쇠락하고 있다.

 

이 교수는 최근 글로벌 작물 회사들로부터 제주 그린을 미국에서 통과시켜 세계 시장으로 가자고 설득받고 있다. 그럴 경우 이 품종은 미국 기업의 것이 되고 만다. 이 교수는 “국내에서 허가만 난다면 사회에 공짜로 내놓을 테니 제발 우리나라에 유익하게 써달라”고 말했다.

 

-이인열 기자, 조선일보(2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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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택 초심자를 가장 괴롭히는 이것.. 

 

“전원주택을 왜 찾느냐”고 물으면 파란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어서라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5년간 공들여 가꾼 잔디마당을 갈아엎었던 경험담을 들려주면 “정말이냐?”며 기가 팍 죽는다.

20여년 전 처음 전원주택을 지어 시골로 내려갔을 때 필자도 제일 먼저 마당에 잔디를 깔았다. 처음에는 요령을 잘 몰라 촘촘하게 심다가 이웃의 훈수를 받아 띄엄띄엄 심는 등 중구난방으로 심은 탓에 잔디가 고르게 나지 않아서 그 사이로 잡초가 먼저 올라왔다. 급한 마음에 마당을 잘 고르지도 않아서 잔디 심는 일보다 잔돌을 골라내는 일이 더 힘들었다.

 

대지 70평. 건물면적 30평의 아담한 전원주택. 마당에 대한 욕심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여야 한다.


■“1년은 황토마당을 밟고 견뎌보라”

어쨌든 100평 가까운 넓은 마당에 잔디를 다 깔기는 했는데 고생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첫해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오자마자 잡초들의 역습이 시작된 것. 본래 논이었던 땅인지라 잡초씨가 깊이 박혀 있었던 데다 초기에 잡초를 제거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좀 과장하자면, 뽑아내고 돌아서면 다시 올라오는 잡초들의 역습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마당을 갈아엎고 재정비하기로 했다. 잡초씨가 박혀 있는 땅에는 깨끗한 산흙을 트럭으로 수십대 실어와 복토(
覆土)를 하고 처음부터 잡초가 올라올 틈을 주지 않고 잔디를 촘촘하게 심었다. 무엇보다 잔디 마당을 절반으로 줄이고 대문 쪽은 자갈로 깔았다. 5년을 살아 보고 나서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잔디마당이 어느 정도인지 분수를 알게 된 것이다. 150평 대지가 잠실운동장보다 더 버겁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전원주택 취재를 하러 다니면서 초심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고생담도 ‘잔디의 역습’이었다. 그 중에는 마당을 아예 시멘트로 덮은 경우도 꽤 있었다. 콘크리트가 싫어서 전원으로 내려와서 그게 무슨 짓이냐고 하겠지만,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잔디 관리가 어려워 판석과 자갈로 마당을 꾸민 집. 파란 잔디가 깔린 그림같은 집이 좋기는 하지만 현실은 그림이 아니다.


잔디 가꾸는 일을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전원주택지로 얼마만한 땅을 확보할 것인지 욕심내기 전에 먼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알고 나서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남이 지어주는 아파트에 몸만 옮겨 다니다가 생전 처음 내손으로 집을 짓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가꾸고 싶어서 몸이 달아 있다.

그러나 자연은 도망가지 않는다. 1년 동안은 황토마당을 그대로 밟고 견뎌라. 잔디 때문만은 아니다. 나무를 심는 일도 그렇다. 맨땅으로 사계절을 지내보면 내 집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들의 나무와 풀들이 연출하는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 파노라마가 조경의 교과서다.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지 결정하기 전에 주변에 어떤 꽃들이 피고 지는지 알아야 한다. 사계절을 지내봐야 가장 잘 자라는 나무가 어떤 것이고 어떤 꽃을 심어야 주변과 조화가 되는지 가늠이 된다. 잡초도 어느 구석에서 어떤 놈이 잘 올라오는지 알게 된다. 땅은 그때까지 기다려준다. 사람이 기다리지 못할 뿐이다.\

 

시골 전원주택은 울타리 넘어 야산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도 내집을 받쳐주는 훌륭한 조경이다.

 

■“이웃과 고립되면 전원생활도 실패”

마당을 가꾸는 일보다 더 급한 일은 시골 문화를 이해하고 시골 생활에 적응하는 일이다. 적어도 집 바깥의 일은 시청에서 해결해 주는 도시생활과 담장 안팎의 일을 모두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전원생활은 문화적으로 완전히 이질적인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에 부풀어 전원생활에 도전했다가 좌절하고 다시 돌아온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시골생활에 대한 적응 실패가 대부분이다. 특히 현지 주민과의 갈등으로 전원 생활을 포기한 사람들은 “순박한 줄 알았더니 시골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이런 전제 자체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종종 겪는 일이지만, 전원주택에 살다보면 도시사람들의 몰상식한 행동에 어이없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주인이 버젓이 마당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무 양해도 구하지 않고 불쑥 대문 안으로 들어서거나, 현관까지 바로 쳐들어오기도 한다. 엄연히 사유지인 마당을 아무나 발을 들여놓는 공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정색하고 나무라면 ‘시골 인심이 더 무섭네’라고 눈을 흘긴다. 서울 한복판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하면서 ‘시골이니까…’라고 가볍게 생각한다. 이런 사소한 일을 통해서 시골사람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다. 시골이 순박하기를 바란다면 스스로도 먼저 순박해야 한다.

 

뒷산에 무더기로 피는 진달래꽃을 참고삼아 개화 시기가 다른 철쭉을 조경한 경우. 적어도 4계절은 지내봐야 산과 들의 풍경과 겹치지 않는 나만의 조경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다.


최근에 은퇴하고 과수원을 사서 시골로 내려갔던 친구는 마을에서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돈다는 얘기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낯도 설고, 처음 접한 과수원 일에 치여서 이웃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고 몇 달을 지냈더니 ‘사람을 보고도 인사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마을 어른들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오해를 풀고 나서야 사면을 받고, 과수원일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훈수를 받을 수 있었다.

시골은 열린 공간이면서 동시에 닫힌 공간이다. 안보는 것 같아도 모두가 보고 있다. 그 시선을 외면하면 고립된다. 이웃으로부터의 고립이 도시에서는 일상이지만, 시골에서는 생활 자체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피곤해진다. 그 출발점은 땅과 집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마을 사람들은 땅과 집을 가꾸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의 마음을 본다. 땅 앞에서 겸손하면 마을 사람들의 보는 눈도 달라진다.
 

 

-이광훈 드림사이트코리아 CEO, 조선닷컴(17-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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