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드라이빙' 세대]
[졸음운전]
'안티 드라이빙' 세대
필자가 대학 다니던 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은 ‘3저(低) 호황’으로 활기가 넘쳤다. 사회 분위기는 운전면허 취득 붐으로도 나타났다. 많은 청년이 학력고사 직후 또는 대입 후 방학을 이용해 운전면허를 땄다. 그런데 한 세대 만에 옛얘기가 됐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태어난 필자의 아들딸만 해도 운전에 관심이 없다. 아들은 속칭 장롱 면허이고 대학 졸업반인 딸은 면허가 아예 없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경찰청이 엊그제 내놓은 통계도 이런 변화를 뒷받침한다. 전국의 운전면허 학원 수가 2018년 383곳에서 지난해 344곳으로 줄었다고 한다. 2020년 106만여 명이던 연간 면허 발급자 수가 2022년부터 100만명 아래로 떨어졌고 2023년엔 87만여 명까지 줄면서 학원들이 잇달아 문을 닫고 있다.
▶면허를 따야 할 청년 인구가 줄어든 탓만은 아니다. 미성년에서 18세 이상 성년이 된 인구는 2020년 55만여 명에서 지난해엔 43만여 명으로 11만명 줄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신규 면허 취득자는 그 두 배 가까운 19만명 줄었고 그중 80%가 20대였다. 2023년도 신규 면허 취득자는 전년 대비 약 8만9000명 줄었는데 98%가 20대였다는 통계도 있다. 20대의 신차 등록 대수도 2014년 약 11만대에서 지난해 8만대로 주저앉으며 ‘안티 드라이빙’ 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많은 젊은이가 “굳이 면허를 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이 편리해졌다는 것이다. 인터넷 세대인 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외출도 덜 한다. 물건은 홈쇼핑으로 사고 영화는 노트북 등으로 내려받아 집에서 본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실속파여서 세금·보험료·기름값으로 연간 수백만원 쓰는 것도 아까워한다. 전기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처럼 저렴하고 요즘 말로 ‘힙’한 대체재도 있다.
▶‘안티 드라이빙’ 세대 등장의 이면엔 짙은 음영도 드리워져 있다. 전체 20대 일자리의 30%가 계약 기간 1년 미만 비정규직이다. 초단기 알바를 합하면 20대의 약 40%가 불안정한 일자리에 내몰려 있다. 이런 팍팍한 현실이 젊은이들에게 신차 소유는 고사하고 면허 따는 것조차 주저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 세대 전 TV 자동차 광고에선 20대 청년이 소형차를 몰고 예비 장인·장모에게 첫인사를 갔다. 요즘엔 그런 광고를 볼 수 없다. 청년들은 “취직도 안 되고 결혼할 돈도 부족한데 차는 언감생심”이라고 하소연한다.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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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운전
26년 미룬 ILO 제153호 비준해 과로 막고 처우도 대폭 개선해야
찾아보니 10년 전에 비슷한 곳에서 같은 사고가 있었다. 2007년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 앞에서 졸음운전 고속버스가 승합차들을 들이받아 10명이 사망했다. 지난 9일 경부고속도로 신양재나들목에서 7중 추돌로 50대 부부가 숨진 사고와 판박이다. 공통점은 한낮, 정체 시작 지점, 과로 버스 운전자의 졸음이다. 1년 전 이 무렵 봉평터널에서 20대 여성 넷의 목숨을 앗아간 관광버스도 마찬가지다. 누가 언제 졸음운전 피해자가 될지 알 수 없다.
졸음운전 사고는 통계도 부실하다. 경찰청은 한 해 전체 사고의 1%인 2500건, 사망은 2%인 100명 정도라는데, 스스로도 믿지 않는다. 운전자가 부인하면 모두 '안전운전 불이행'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보험사끼리만 처리한 사고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 전문가들은 경찰 통계의 10배는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영국은 도로교통 사고의 20%, 미국은 17%가 졸음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실태를 축소하면 대책도 소홀할 수밖에 없다.
봉평터널 사고 후 정부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개정, 퇴근 후 8시간 이상 쉬도록 했다. 하지만 졸음운전을 조장해온 악법으로 지목돼온 근로기준법 제59조 특례 조항은 손대지 않았다. 56년 전에 만든 것으로, 노사가 합의하면 얼마든지 초과 근무를 가능케 한 조항이다. 이번에 이 법이 새삼 조명받았다. "병원 당직의, 야간 당직자, 연구원은 이해되지만 다수의 목숨을 좌우하는 버스 운전자까지 포함한 것은 큰 잘못"이란 비판이다. 그러자 국토교통부는 운수업체 제외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개정 언급 자체가 처음이다. 이 법 탄생의 모델인 일본은 36년 전에 삭제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ILO(국제노동기구) 규약 준수이다. 우리나라는 1991년 ILO 가입 후 26년째 제153호를 비준하지 않고 있다. 제목은 '육상운송 근로시간과 휴식에 관한 협약'이고, 핵심은 하루 9시간, 주 48시간 초과 운전 금지이다. 요점은 '졸지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졸리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비준하면 근로기준법 제59조는 거론할 필요도 없어진다.
우리는 왜 이 규약에 동참하지 않은 걸까. 좀 거칠게 말하면 '국회와 정부와 운수업계의 직무유기이자 야합의 결과'이다. 국토부도 고용부도 국회에 비준을 요청한 적이 없다. 기획재정부가 "그러면 기사를 늘려야 하고, 그러면 운임을 올려야 하고, 그러면 물가가 오른다"며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어차피 안 될 일을 왜 거론해 예산권을 쥔 기재부 미움을 사겠느냐"고 했다. 운수업체의 노선·요금·차종 등에 관여하는 정부가 국민 생명과 직결된 운전자 노동 조건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봉평터널 사고 몇 달 후 국회 주최로 국회에서 '사업용 운전자 졸음운전 예방 심포지엄'이 열렸다. A의원은 "이제라도 강력 규제하자"고 했고, B 의원은 "안전 규제, 좋은 규제는 강화돼야 한다"고 했다. C의원은 "노동 착취로 인한 졸음운전 때문에 애먼 국민이 희생되고 있다"고 했다. ILO 제153호도 거론됐다. 하지만 그뿐이다. 국회는 행동하지 않았다.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고, 다시 대형 사고가 났다.
며칠 전에 전북 전주의 버스 운전자가 전화를 걸어와 하소연했다. "우리는 수입이 부족해 18시간씩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날에는 공사장에 간다. 회사도 알지만 별일 아닌 듯 여긴다." 이게 현실이다. 전국자동차노조연맹은 "8만3000명 조합원의 평균 나이가 51세다. 자식 때문에 한참 돈 들어갈 나이인데 최저임금 수준인 월급 갖고 되겠느냐"고 했다. 이제라도 대대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정부·국회·업계가 본질을 외면하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시내버스 준공영제 도입 이후 1일 2교대제가 정착되면서 사고가 크게 줄어든 서울과 대부분 광역시의 선례를 보자. 돈이 들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은 해야 한다.
-이충일 도시·교통 전문기자, 조선일보(17-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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