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국내]

[밀양] 영남루(嶺南樓): 애잔한 추억의 그림자를 좇아..

뚝섬 2017. 10. 17. 07:34

               


말 그대로 "70-80", 70-80년대.. 10여 년을 서울-부산을 수없이 오르내렸었다. 한 달에 평균 2~4, 그것을 10년을 오르내렸으니, 족히 2~300회는 오르내린 경부선을 타고 영남지방의 산행을 나서니 가슴이 설렌다. 게다가, 운문산-가지산 산행의 중심지-밀양은 나름대로의 총각시절의 추억도 있는 곳..

 

일찌감치 요절한 성주 형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무척이나 따르고, 또 그 형도 나를 친동생 이상으로 아껴주었는데.. (..! 그래 한참이나 먼저 간 그곳은 이곳 이승보다 좋습니까..??)      -201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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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 광한루, 삼척에 죽서루가 있다면 밀양에는 영남루(嶺南樓)가 있다. 이들 누각의 공통점이라면 강을 끼고 있는 몇 안되는 도시들이 과거에 누렸던 영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각인되고 있는 도시의 얼굴이랄까.

영남루가 처음 지어진 것은 고려시대이다. 영남루가 있는 이 터에는 원래 신라시대에 창건된 영남사(嶺南寺)가 들어서 있었다. 고려에 들어와 영남사는 종각인 금벽루만 남은 채 스러진 절이 되었는데, 고려 공민왕 14(1365)에 김주(金湊)라는 군수가 이 절터에 영남루라는 이름의 새 누각을 지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의 영남루가 이때 지어진 건물은 아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넓혀 짓고 화재를 만나 훼손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헌종 10(1844)에 다시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당시 영남루는 밀양도호부 객사의 부속건물로, 관원들이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영남루 전경. 밀양강을 발아래 둔 높은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어서 영남루에서 강을 끼고 내려다보는 도심 경치뿐 아니라 강 남쪽에서 바라보는 영남루의 모습 또한 매우 시원하다.

 

영남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이층 누각 팔작지붕집이다. 기둥이 높고 기둥 사이의 간격이 넓어서 규모가 매우 커보이는데, 게다가 양쪽 옆으로 날개처럼 두 건물을 거느리고 있어 더욱 화려하고 웅장해 보인다. 위치 또한 밀양강을 발아래 둔 높은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어서 강 남쪽에서 바라보는 영남루의 모습이나 영남루에서 강을 끼고 내려다보는 도심 경치가 매우 시원하다. 영남루에 올라 강을 내다보고 섰을 때 왼쪽에 있는 건물이 능파당(陵波堂), 오른쪽에 있는 것이 침류각(枕流閣)이다.


영남루객사의 부속건물로 쓰였던 영남루 왼쪽이 능파당, 사진에 나오지는 않지만 오른쪽 계단 아래가 침류각이다. 세 개의 건물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훌륭한 전체를 이루고 있다.

 

현재 영남루를 관람하려는 사람들은 신발을 벗고 능파당으로 해서 본루로 올라가 경치를 즐기도록 되어 있다. 침류각 쪽에서의 출입은 본루와 연결된 월랑(月廊)을 이용하도록 되어 있으나 계단의 파손이 심해서 통제되고 있다.

능파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익공식 팔작지붕집으로 본루와 마찬가지로 중층을 이루고 있으며 2층 두 칸은 온돌방이고 오른쪽 한 칸은 마루로 비워 마루를 통해 본루로 통하도록 돼 있다
.

본루는 누마루 주위로 계자난간을 둘러 사방으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누각에서 강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는 자연경관도 아름답지만, 넓은 마루에 편히 앉아 내부 구조를 요모조모 살피는 재미도 또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다.

 

영남루 배치평면도

영남루 배치평면도

 

본루 2층의 기둥 위에는 각기 하나씩의 포를 얹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도깨비 얼굴 모양의 화반만을 두었다.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나 합각마루 밑은 우물천장을 두어 서까래를 가렸다. 바깥기둥(평주)과 내부의 높은기둥(고주) 사이에는 휘어진 퇴보[退樑]를 걸었으며, 내부 높은기둥 사이의 뜬창방과 그 위에 오는 도리 사이에 화반을 얹어 바깥기둥 창방에 놓인 화반과 시각적으로 어울리게 배려한 것, 대들보 위로 걸쳐 지른 버팀보[衝樑]의 용머리 조각 등이 단조롭고 정적인 내부를 화려하고 역동적인 분위기로 단장시킨다.

본루 정면에는 구한말의 명필 성파 하동주(星坡 河東洲)가 쓴 ‘嶺南樓’라는 편액이 ‘江左雄府(강좌웅부)와 ‘嶠南名樓(교남명루)라는 편액과 함께 나란히 걸려 있다. 내부에도 여러 명필가들이 남긴 편액이 많은데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7세의 이현석(李玄石)’이 썼다는 ‘嶺南樓’와 ‘10세의 이증석(李憎石)’이 썼다는 ‘嶺南第一樓(영남제일루)가 눈에 띈다. 이밖에도 고려시대 이후 각각 당대를 대표하는 유명 문인들이 남긴 기문(記文)과 시 등이 많이 있다. 조선 초기 문인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도 영남루에 올라 ‘영남루십경’을 노래한 바 있으며, 영남루의 가을 달빛은 밀양팔경
의 하나로 손꼽혔다.


영남루의 내부 모습기둥과 기둥 사이가 개방되어 있어 사방을 시원스레 조망할 수 있다. 사진에 보이는 ‘嶺南第一樓’ 편액은 10세의 이증석이 썼다고 한다.

 

본루와 월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침류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집이다. 본루와 침류각의 높낮이를 층층계단으로 연결하고 그 위에 지붕을 연속으로 얹은 것이 매우 율동적이며, 이로써 본루가 한층 더 웅장해 보이는 아주 극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연속적으로 얹은 층단지붕의 추녀마루 마감장치로 놓은 망와의 도깨비 장식도 재미있다.


침류각의 월랑

침류각의 월랑본루인 영남루와 이어진 월랑을 층층계단으로 연결하고 지붕을 얹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율동적이다. 추녀 끝 망와의 도깨비 장식 또한 재미있다.

 

영남루는 예로부터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의 하나로 꼽혀오고 있으며, 현재 보물 제147호로 지정돼 있다.

밀양시립도서관 옆으로 난 계단을 올라 매표소를 지나 영남루에 오르게 되는데, 영남루 외에도 영남루 일원에는 천진궁, 옛 영남사의 암자였다는 무봉사, 밀양시립박물관, 아랑각 등이 있다
.

영남루와 마주보고 있는 천진궁(天眞宮)은 옛 객사 건물의 하나였다고 하는데, 1957년 대종교 산하단체인 단군봉안회에서 이 건물의 이름을 ‘천진궁’이라 하고, 그 안에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의 영정과 역대 8왕조, 즉 부여·신라·고구려·백제·가야·발해의 시조왕과 고려 태조·조선 태조의 위패를 함께 모셨다.


천진궁. 영남루 바로 뒤에 자리하고 있는 천진궁에는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의 영정과 역대 8왕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천진궁 앞에는 어떤 것은 둥글기만 하지만 어떤 것은 기묘하게도 장미나 모란같이 탐스러운 꽃무늬가 박힌 돌들이 있다. 그 앞쪽에 ‘석화’(石花)라는 안내문이 적힌 표지판이 있다. 이런 기묘한 돌은 영남루와 아랑각 아래 강변으로 난 산책로 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 조각된 것 같기도 하고 자연적인 듯도 한 것이 아주 독특하다.


영남루의 석화

영남루의 석화돌의 무늬가 꽃을 닮았다고 하여 석화라 부르는데, 화창한 날보다 비가 온 후에 꽃 무늬가 확연히 드러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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