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짝사랑 연습] [부부 갈등 있을 땐 기차 좌석을 따로 끊는 여행을]

뚝섬 2023. 8. 27. 05:35

[짝사랑 연습]

[부부 갈등 있을 땐 기차 좌석을 따로 끊는 여행을]

 

 

 

짝사랑 연습] [부부 갈등 있을 땐 기차 좌석을 따로 끊는 여행을

 

[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소중한 사람에게 사과할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찾아올 수 있다. 이때 상대방이 잘 받아주지 않으면 난감해진다. 대표적인 경우를 들면 충분히 사과했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과거 이야기를 꺼내며 화를 내는 경우에 어찌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다.

 

이 고민엔 ‘용서란 과정이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면 10만큼 잘못했으니 10만큼만 사과하면 상대방이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보통은 그 이상 사과해야 상대방 마음에 미안한 마음이 먼저 찾아오고 다음에 용서가 일어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라고 답변한다. 여기서 상대방의 미안한 마음은 ‘저렇게까지 용서를 구하는데 내가 너무 매몰차게 몰아붙이고 있나’ 같은 감정이다.

 

그래서 ‘이렇게 사과했는데도 너무한 것 아니야’라고 느끼는 시점이 역설적으로 화해에 가까워진 시점이라 조언한다. 이때 너무하다 싶은 감정으로 상대방에게 짜증을 낼 수 있는데 이 경우 앞선 수고가 물거품이 된다. 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억울한 감정이 들 때 ‘아 이제 곧 화해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해 버티며 더 적극적으로 용서를 구하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질문도 받는다. 그건 상대방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에 따른 선택 문제다. 상대방은 더 힘들겠지만 그만큼 용서를 구하는 쪽도 감정적인 에너지 소모가 많다.

 

자기 실수로 부부 갈등이 있었던 남편이 앞의 조언대로 하니 아내와 관계가 안정되었다고 고마워한다. 훈수가 쉽다. 실제 적용은 어렵기에 어떤 마음으로 소통했는지 궁금해 질문했다. 연애 시절에 짝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니 훨씬 편하게 실천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문득 ‘세상에 짝사랑이 아닌 관계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적 의미처럼 일방적 짝사랑은 아니더라도 딱 반반으로 오고 가는 관계는 없는 듯하다. 더 좋아하는 쪽이 있다. 또 시간 흐름에 따라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관계에 섭섭함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어떤 원인이든 관계 고민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짝사랑의 문제’라고 하면 ‘그건 어렸을 때나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좀 더 이야기 나누면, ‘그렇네요. 내가 자식을, 배우자를, 애인을 또는 친구를 조금이라도 더 짝사랑해서 섭섭한 것’이라 수긍한다.

 

‘짝사랑 연습’이 필요하다. 짝사랑에 섭섭하다고 불평하면 상대방은 보통 더 멀리 간다. 짝사랑 연습의 핵심은 상대방 처지에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쉽지 않다. 상대방이 소중해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처지의 부딪침이 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선일보(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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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갈등 있을 땐 기차 좌석을 따로 끊는 여행을

 

과도한 햇빛·무더운 날씨 탓에 여름 바캉스에 우울증도 많아
여행지에서 각자 시간 보낸 뒤 저녁에 경청하면 관계에도 도움

 

신나는 바캉스 시즌인 여름과 우울증은 먼 듯하지만, 의외로 계절성 우울증이 겨울 다음으로 여름에 많다. 왜 여름에 우울해질까. 우선 햇빛이다. 뇌 안엔 수면과 호르몬 분비 등을 시간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하는 '생체(生體) 리듬' 시계가 있는데 해시계처럼 햇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겨울엔 햇빛의 양이 줄어드는 것을 겨울 우울의 중요한 원인으로 여기고 있어, 빛을 쬐는 광선 치료도 사용된다. 반대로 여름엔 과도한 햇빛이 생체 시계를 오작동시키고 뇌신경의 정보 흐름에 혼란을 주어 불면·식욕부진·불안감 같은 우울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또 고온 다습한 날씨도 뇌의 에너지를 소모시켜 피로 현상으로 우울이 찾아올 수 있다.

심리적 요인도 여름 우울에 영향을 준다. 이유는 다양하다. 남들은 여름 바캉스를 즐기고 있는데 나만 땀 흘리며 일한다는 박탈감, 환상적인 여름휴가에 대한 기대에선 한참 벗어난 현실 휴가의 피로감도 있다. 거기에 휴가 후 찾아온 카드 청구서가 주는 경제적 위기감, 노출의 계절이다 보니 나보다 멋진 몸매를 가진 사람을 볼 때 느끼는 열등감 등이 여름을 우울한 계절로 만든다.


여름철 '마음 보양'을 위해선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날씨가 덥고 낮이 길어지다 보니 취침 시간이 뒤로 밀려 수면의 양과 질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침실에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고 최대한 편안하고 조용한 수면 환경을 만들어 충분한 숙면을 취하는 것이 삼계탕보다 마음엔 더 좋은 보양식이다. 마음 안의 생체 시계가 정상 리듬을 유지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경우 자녀가 방학하는 여름은 바캉스 계절이 아닌 '집중 근무 기간'이 되어버리기 쉽다. 나보다 더 소중한 자녀지만 사랑도 에너지고 쓰기만 하다 보면 마음에 피로가 찾아온다. 피로한 마음은 짜증 소통을 일으키기 쉽고 가족 갈등마저 일으킬 수 있다. 바캉스의 어원이 '자유로워짐'이라 하는데 행복에 대한 연구는 자유로움을 느낄 때 마음에 행복 반응이 원활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바캉스를 '마음 충전'하는 활동으로 본다면 충전은 행복할 때 일어나기에 내 마음에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좋은 바캉스라 볼 수 있다. 쉽지 않겠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아 당일치기라도 부부만의 여유로운 데이트를 권한다. 이땐 잠시 부모가 아닌 남녀로서의 대화만을 하는 것이 좋다. 여행지는 어떤지, 음식은 어떤지 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이기에 자녀라는 소중한 선물을 얻은 것인데 자녀 출산 후 '엄마 아빠의 동호회'처럼 지내다 보면 남녀로서의 느낌이 옅어진다. 나중에 자녀가 출가하면 다시 남녀로 남게 되는데 어색해서 힘들다고 하는 부부들의 고민 상담이 적지 않다.

부부 갈등이 있을 때 여행으로 풀겠다고 시도했다가 더 갈등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관계에는 이중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까워지면 따뜻해지나 단점이 보여 부딪치고, 떨어지면 자유롭지만 외로워져 배우자의 소중함이 절실해진다. 부부 갈등이 있는 상황이라면 기차 여행을 권하고 싶다. 여행지까지는 각자 좌석을 예약해 내려간다. 혼자만의 자유로움도 느끼고 창에 비쳐 흘러가는 풍경에 내 마음도 비추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 저녁 식사 때 만나는 것도 좋다. 이때 최대한 내 이야기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것이 관계 힐링에 도움이 된다.

바캉스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을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지칠수록 강한 자유와 즐거움을 찾아 멀리 해외여행이나 사람 많은 흥겨운 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게 되는데 더 지칠 수 있다. 기대를 낮춘 심심한 여행이 마음 충전엔 더 좋을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선일보(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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