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왜 난장판 코인 시장을 방치했을까]
[사토시의 정체]
[인플레 공포 없는 일본이 웃을 수 없는 이유]
민주당은 왜 난장판 코인 시장을 방치했을까
[조형래 칼럼]
미래 금융 떠올랐던 가상 화폐… 거대한 도박 플랫폼으로 전락
뒷돈 상장, 시세조종 난무하지만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방치
포퓰리즘인가, 의도적 방치인가… 김남국發 코인게이트로 비화
난장판. 지금의 가상 화폐 시장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은 없는 것 같다. 가상 화폐는 글로벌 금융 위기로 세계 경제의 붕괴를 초래한 기존 금융권에 대한 안티 테제(antithesis)로 출발했다. 2009년 초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개발자는 모든 거래 내역을 모든 거래 참가자의 장부에 분산 저장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 화폐 비트코인을 선보였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중앙은행 체제 아래 대형 은행과 일부 빅테크 기업이 부(富)를 독점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룩한 이상(理想)과 블록체인 기술은 뒷전에 밀리고 가상 화폐가 도박 플랫폼의 매개체로 전락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상 화폐 시장은 똑똑하고 약은 소수(少數)가 ‘지금이 아니면 뒤처진다’는 공포감에 뛰어든 다수(多數)를 마음껏 착취하는 약육강식의 시장으로 변질돼 버렸다.
글로벌 3대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 FTX 파산 여파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가격이 급락세를 보인 14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에 비트코인 시세가 나오고 있다. 2022.11.14/뉴스1
현재 국내에는 27개의 등록 거래소에서 625종(種)의 코인이 거래되고 이용자는 627만명에 이른다. 문제는 가상 화폐 거래 질서를 유지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남국 의원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가상 화폐 거래를 한 혐의가 입증되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견해가 많다. 일부 좌파 세력이 검찰 수사를 ‘김남국 망신 주기’라고 뻔뻔하게 맞서는 것도 이런 맹점 때문이다.
우선 가상 화폐가 어떤 기준과 절차를 거쳐 상장되는지 공통된 기준이 없다. 상장 가격과 발행 물량도 발행 주체가 마음대로 결정하고, 개별 거래소의 자체 심사만 통과하면 그만이다. 상장 심사에서 가장 핵심은 코인 발행 주체가 제출하는 프로젝트 백서(사업계획서)와 기술력인데, 코인 백서는 전문가들조차 이해하기 힘든 기술 용어가 난무하거나 황당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 태반이다. 또 일반 투자자들은 코인 발행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기술력은 어느 정도인지, 혹은 사기꾼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봐야 홈페이지 하나가 전부다. 이러니 국내엔 특정 거래소에만 단독 상장된 코인의 종류(389종)가 유달리 많다. 이 ‘듣보잡’ 코인들이 시세조종의 먹잇감이 된다.
투자자 보호의 첫 단추인 공시 규정조차 없으니 코인 발행 주체가 텔레그램 리딩방을 개설하거나 유튜브를 통해 거짓·과장 정보를 흘리며 맘대로 시세조종을 할 수 있다. 몇몇 큰손이 코인 가격을 끌어올린 뒤 고점에서 팔아치우는 펌핑과 덤핑(pumping & dumping)이 난무해 코인 상장 30분 만에 가격이 1000배나 치솟았다가 곧바로 폭락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가격 그래프는 뾰족한 피뢰침 모양을 그리기 일쑤다.
코인 거래를 관리·감독해야 할 거래소는 더 가관이다. 국내 3대 거래소인 코인원은 임직원들이 지난 3년간 뒷돈을 받고 상장해준 코인이 무려 46개에 이르는데도 아무런 제재 없이 운영을 하고 있다. 또 김남국 코인으로 유명한 ‘위믹스’ 코인의 발행사인 위메이드(게임회사)의 대표는 위믹스 코인을 상장한 거래소 ‘빗썸’의 경영 전반을 관장하는 사내 이사를 맡기도 했다. 주식 시장이라면 플레이어가 심판까지 맡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가상 화폐 시장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다.
이런 광기의 시장은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테라·루나 사태와 미국 거래소 FTX의 파산을 겪으면서 한국 가상 화폐 규모는 2021년 말 55조원에서 1년 만에 19조원으로 쪼그라들었고, 수십, 수백만 명의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정말 의문인 것은 문재인 정부가 왜 이 난장판 시장을 방치했느냐다. 테라·루나 사태 이전에도 수많은 전조(前兆)가 있었고 가상 화폐 업계에서도 줄기차게 제도 마련을 요청했지만 미적거리기만 했다. 많은 사람이 문 정부의 무능 또는 부동산 폭등에 낙담한 2030세대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간호법·노란봉투법 등 온갖 법을 밀어붙이는 다수당 민주당이 왜 가상 화폐 관련법에는 소극적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김남국 사태가 정·관·벤처업계의 치부를 드러내는 코인게이트로 비화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조형래 부국장 겸 에디터(경제담당), 조선일보(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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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의 정체
세계 최초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처음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는 끈기 있는 장기 투자자이기도 하다. 2009년 1월 고작 0.0008달러에 비트코인 첫 거래가 시작된 이후 그의 전자지갑에 있는 비트코인은 한 번도 인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현재 비트코인 약 110만 개를 갖고 있는데, 가치가 약 700억 달러(약 82조5000억 원)에 이른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름만 알려져 있을 뿐 신원은 베일에 싸여 있다. 한 명인지, 여러 명이 한 이름을 쓴 것인지조차 불투명하다. 개발 초기엔 이메일을 통해 공개 글을 쓰기도 했지만 2014년 이후론 종적을 감췄다. 이런 가운데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진짜 사토시’를 가리는 재판이 열리고 있다. 2013년 사망한 미국의 컴퓨터 보안전문가 데이비드 클라이먼의 유족이 “클라이먼과 호주 출신 프로그래머 크레이그 라이트가 바로 사토시 나카모토”라며 이들이 비트코인 공동 개발자임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라이트가 갖고 있다는 비트코인의 절반을 내놓으라는 것인데 재판을 통해 사토시의 실체가 가려질지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본인이 사토시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여럿 나왔지만 한 명도 제대로 된 증거를 대지 못했고, 결국 사기나 해프닝으로 끝났다. 라이트 또한 2016년 처음 “내가 사토시”라고 나섰지만 이후 발언을 번복하다가 다시 재번복하는 등 오락가락을 거듭했다. 증명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토시의 전자지갑에 비밀번호를 입력해 몇 달러어치만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재판 과정에서 금융 역사에 남을 ‘세기의 이체 장면’을 볼 수 있을까.
▷라이트든, 또 다른 제3자이든 사토시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에 대해 코인 투자자들은 호기심만큼이나 큰 불안감을 갖고 있다. 사토시가 가진 비트코인 수량은 총 발행량 2100만 개의 5%가 넘는다. 일부라도 현금화할 경우 시세 급락이 예상된다. 비트코인은 가상화폐 시장 총액의 약 43%를 차지하고 있어 다른 코인들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일각에서 ‘사토시의 출금을 강제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이유다.
▷사토시가 비트코인을 만든 시점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 직후였다. 미국 등의 중앙집중형 금융 권력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는 개인 간 거래를 내세운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으로 불리며 또 다른 금융 권력이 됐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탈중앙화 가치를 설파했던 개발자가 전체 발행량이 제한된 비트코인을 대량 소유한 채 결과적으로 ‘중앙화’된 것은 아이러니다.
-황인찬 논설위원, 동아일보(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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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공포 없는 일본이 웃을 수 없는 이유
[특파원칼럼]
일본서만 생활하면 싼 물가에 만족할 수도
임금 30년 정체, 해외 가면 높은 물가 충격
2019년 1월 일본 도쿄에 특파원으로 부임했을 때 집 앞 주유소는 휘발유를 L당 134엔(약 1400원)에 팔았다. 최근 다시 확인해 보니 164엔으로 올랐다. 고공 행진하는 유가 충격을 일본도 피해갈 수 없는 모양이다.
유가가 오르면 플라스틱 제품 가격도 덩달아 오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서 ‘보복 소비’란 단어가 나올 정도로 소비도 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0월 한국의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3.2%, 미국은 6.2% 급등해 인플레이션 공포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9월 소비자물가는 0.2% 상승에 그쳤다. 8월(―0.4%), 7월(―0.3%)은 오히려 떨어졌다. 어찌된 일일까.
최근 저녁 모임에서 자동차용 부품을 생산하는 일본 중소기업 사장 A 씨의 고민을 들으면서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는 “원자재 값이 올라도 부품 값에 반영할 수 없다. 부품 값을 올리면 다음 계약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업 이윤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기업들도 A 씨처럼 행동하면 최종 소비재 가격은 오르지 않고, 소비자물가도 낮게 유지될 수 있다.
일본인들은 안도하는 모습이다. 마트에 가면 어제 가격표가 오늘도 동일하게 붙어 있다. 전자 제품은 오히려 값이 싸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늘 살 것을 내일로 미루면 이득을 보게 된다. 5000원이면 식사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체인 음식점이 널렸고, 5만 원이면 비즈니스호텔에서 숙박할 수도 있다. 기계화하고, 서비스를 규격화해 가격을 낮추는 체인형 기업들의 등장도 물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같은 상황이 마냥 긍정적이기만 할까.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7월 발표한 맥도널드의 빅맥 가격은 스위스 7.04달러, 미국 5.65달러, 한국 4달러, 일본 3.55달러였다. 57개 조사 대상국 중 일본 빅맥 가격은 31번째로 중간보다 아래였다. 자유로운 물류 이동으로 햄버거의 원재료비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격 차이는 인건비에서 결정된다. 즉, 일본은 인건비가 낮아 햄버거 가격을 낮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물가 수준을 반영한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지난해 일본의 연평균 임금은 3만9000달러다. 1990년부터 30년 동안 불과 4%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은 48%, OECD 평균은 33% 올랐다. 임금이 오르지 않으니 개인이 소비를 늘리기 힘들다. 개인이 소비를 하지 않으니 기업은 제품 가격을 올릴 수 없다. 기업 이윤이 늘지 않는데 근로자 임금을 올려주기 힘들다. 악순환이다.
개인소비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그렇다 보니 국가의 경제 규모를 나타내는 일본의 GDP도 늘지 않았다. 1990년 이후 30년간 미국 GDP는 3.5배로, 중국은 37배로 커졌지만, 일본은 1.5배로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일본이 세계 3위 경제대국 자리를 내주는 것도 시간문제다.
코로나19 백신이 보급되면서 차츰 해외여행이 늘고 있다. 일본인들도 거의 2년 만에 해외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일본 내 싼 물가와 달리 해외에선 물가가 크게 올랐다. 저성장, 저물가로 인해 어느새 일본인들이 가난해져 버렸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동아일보(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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