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16억 처벌 대가로 엘리엇에 물어주는 1400억]
[일류와 이류의 차이]
['이재용의 삼성'은 일류 기업인가.. ]
삼성 16억 처벌 대가로 엘리엇에 물어주는 1400억
[송평인 칼럼]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 큰돈 놔두고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 작은 돈
검찰과 대법원이 걸고넘어진 결과가 기업사냥꾼 엘리엇 배상으로 돌아왔다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검사 시절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할 때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이 그들의 수사에 근거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을 모르지 않았다. 당시 언론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ISDS) 조항에 따라 엘리엇이 소송을 제기할 것을 경고했다. 검찰은 엘리엇의 구미에 딱 맞게 수사했고 예상대로 엘리엇의 청구서가 날아왔다.
국정농단 사건은 최순실이 주도해 설립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이 출연하도록 박근혜 정부가 압력을 넣었다는 혐의로부터 시작됐다. 정작 대법원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국정농단 사건은 한마디로 하자면 출발점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표류해버린 사건이다.
다른 곳 중 하나가 삼성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 16억 원에 대한 제3자 뇌물죄다. 삼성이 최순실 딸 정유라에게 승마 지원을 해준 71억 원도 뇌물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승마 지원 71억 원은 그냥 뇌물죄이고,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 16억 원은 제3자 뇌물죄다. 제3자 뇌물죄는 그냥 뇌물죄와 달리 ‘부정한 청탁’을 요건으로 한다. 법원이 승마 지원 71억 원만 뇌물죄로 인정했다면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따질 필요가 없었고 엘리엇에 빌미를 주지 않을 수 있었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 원과 관련한 부정한 청탁은 삼성이 박 대통령 쪽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도와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명시적 청탁이 없었다는 데에 있다. 검찰과 대법원은 명시적 청탁은 없었으나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봤다. 그러나 여기서의 묵시적 청탁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이심전심(以心傳心)도 아니다. 그냥 기업에 현안이 있는 이상 정부 압력으로 돈을 후원하거나 출연하면 청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청탁에 따른 부정한 지시가 있었다는 증거도 없었다.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비서관이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적은 수첩 61권은 본인도 다 없어진 줄 알았으나 검찰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돼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국정농단 수사에 큰 도움을 줬다. 그러나 안 수석 혼자 보기 위해 적은 그 많은 수첩에도 ‘삼성 합병’이란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현안 없는 대기업은 없다. 현안이 있기만 하면 묵시적 청탁으로 볼 수 있다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대기업들은 다 제3자 뇌물죄로 처벌해야 한다. 사실 그렇게 했어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멋대로 기업에 돈을 내게 하는 걸 근절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기업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계속 돈을 내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은 법에 따라 합병 결의 이사회 전날 시장 주가에 의해 결정됐다. 그러나 시가가 시장 참여자들의 합병 예상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실질적 사정을 고려해 법원은 주식매수청구가격을 재산정했다. 그 민사판결로 일성신약 등이 보상받았고 그 후 엘리엇도 같은 기준에 따라 보상받았다. 엘리엇에 새로 배상해야 할 1400억 원은 이 민사보상금을 뺀 것으로 순전히 국정농단 형사판결 유죄, 그중에서도 삼성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 16억 원에 부정한 청탁이 인정된 데 따른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 자체에 불법이 있었는지는 재판 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 평가 과정에서 분식회계가 있었는지가 쟁점이다. 합병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커져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은 옛 삼성물산 주주들도 합병으로 손해를 보기는커녕 이득을 봤다. 국민연금이 이런 가치 상승을 예상했다면 정부 압력이 있었든 없었든 합병에 찬성할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주장을 힘들게 만든 것이 바로 삼성 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 원 제3자 뇌물죄다.
삼성이 ‘승계 작업’이란 현안에 대해 잘 봐달라고 청탁하고 뇌물을 준다면 고작 16억 원을, 그것도 마지못해 줬을까라는 의문이 처음부터 제기됐다. 승마 지원 71억 원을 포함해도 마찬가지다. 엘리엇으로부터 1400억 원의 청구서를 받고 그 돈을 세금으로 낼 생각을 하니 부정한 청탁에 엮인 16억 원이 세상 끝까지 쫓아가 실현한 정의라기보다 세상 물정 모르고 입신양명하려다 우물 밖 기업사냥꾼에게 돈 뜯긴 빌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송평인 논설위원, 동아일보(2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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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와 이류의 차이
[이동규의 두줄칼럼]
이류는 돈을 번다.
일류는 시대를 번다.
전자제품 회사가 전국적인 애프터서비스(A/S) 망을 운영하고 있다는 광고는 뒤집어 보면 고장이 자주 난다는 자백이다. A/S 자체가 없는 게 진짜 일류다. 품질에 대한 강력한 자신감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일류 회사에는 영업부서가 없다는 이야기와도 비슷하다. 사실 일류 기업은 쓰는 용어부터 다르다. 이류 중국집은 배달을 해주지만 일류 중국집은 가서 먹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결국 순금은 도금할 필요가 없으며, 명품은 호객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명품을 걸치고 다닌다는 건 본인이 명품이 아님을 광고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대인과 소인의 차이는 바로 그릇의 넓이와 깊이의 차이다.
-이동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조선일보(2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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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의 삼성'은 일류 기업인가..
최순실 게이트 '적극 조력자'로 삼성 이름이 오르내리는 건 글로벌 기업으로서 부끄러운 일
'이재용의 삼성' 만들어준 과정서 사회에 진 빚을 어떻게 갚을지 고민해야
셈이 빠른 삼성도 사태가 여기까지 흘러가리라고는 생각 못했을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 불똥이 여기저기 튀어 급기야 국민연금까지 옮아붙었다. 검찰이 어제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사무실과 국민연금을 압수 수색했다.
작년에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구도를 확실히 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진행됐다. 그 과정에 외국계 헤지 펀드 엘리엇이 양사 간 합병 비율을 문제 삼았다. 주요 주주였던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해준 덕에 삼성은 숙원이던 이재용 후계 구도를 완성했다. 삼성 입장에서 보자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던 '삼성-엘리엇 분쟁'이 최순실로 인해 반전 있는 공포극으로 돌연 되살아났다.
끝난 줄 알았던 엘리엇 불씨가 도로 살아난 건 삼성의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통과된 건 박근혜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만나기도 전이니 당장 대가성을 연관 짓기는 쉽지 않다. 대통령 만난 후에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돈 낸 것이야 단체 모금에 참여한 것이니 혼자만 뭇매 맞을 일도 아니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도 검찰과 국세청을 양손에 쥔 대한민국 대통령이 "나라에 보탬 되는 일이니 성의 표시 해달라"고 요청할 때 "한국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 정경 유착 같은 적폐는 분연히 끊겠다"며 거부 의사를 표시할 간 큰 재벌 총수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유독 삼성이 검찰의 표적이 되고 작년 합병건까지 의심받는 건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삼성의 행보가 여느 재벌 그룹과도 달라 의혹과 공분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라고 하지만 '승마 공주' 정유라에게 비싼 '삼성 말'을 태우고, 독일의 최순실 회사에 35억원을 송금하는 등 온 국민을 분노케 한 최순실 게이트의 적극적 부역자 꼴이 됐다.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압박했다고 하나 최순실 조카 장시호가 실소유주인 신생 단체에도 수억원을 지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들 돈 거둬 재단 만든 건 나라 위하는 순수한 마음'이라고 말하는 걸 총체적으로 못 믿게 됐듯 정보력 탁월한 삼성이 '대한민국 승마 발전과 동계 스포츠를 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지원한 것'이라고 해명한들 몇이나 믿어주겠는가.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는 우리나라 최고 권력과 비선 실세뿐 아니라 최고 기업 삼성까지 등장해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깜'도 안 되는 딸을 말 태워 이화여대 입학시키고, 올림픽 금메달 스펙까지 이어보려고 온갖 비리와 횡포를 저지른 최순실 모녀의 '한·독 올 로케 막장극'에 삼성 이름이 오르내리는 건 글로벌 기업 삼성이 정말로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최순실의 '딸 승마 공주 만들기'만큼은 아니어도 삼성 역시 '이재용을 위한, 이재용에 의한, 이재용의 삼성'을 만드는 20년 승계 과정에서 상당한 무리수로 잡음을 냈다. 사회적 부채도 쌓인 게 많다. 1996년 증여받은 종잣돈 48억원으로 법의 허점을 이용해 취득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가 굴러 굴러 제일모직 지분이 됐고, 급기야 작년에 삼성물산과 합병을 통해 200조원 매출의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경영권이 됐다. 취약한 기업 지배 구조로 서둘러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와중에 드러난 허점을 엘리엇이 공격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이 고심 끝에 삼성 손을 들어준 건 '국민 기업 대 외국 악당 자본' 프레임으로 삼성이 소액 주주와 여론을 설득해 사회적 공감대를 끌어낸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재용의 삼성'이 대한민국에 가져다 줄 미래 가치를 평가해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배 구조 개선과 주주 가치 제고 등에 매진해서 삼성을 더 투명하게, 또 기업 가치를 높여 그야말로 일류 선진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받고 국민연금이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결국 '이재용의 삼성'은 작년 합병 과정에서 소액 주주뿐 아니라 국민연금에 돈 낸 국민 전체에 빚진 셈이다.
그 후 약속대로 삼성은 더 투명하고 선진적인 기업이 되었는가. 이재용 부회장이 주주 친화적 전략을 펴고, 책임 경영을 위해 등기 이사로 등재하며, 핵심 역량을 키우려고 계열사 매각 및 글로벌 기업 인수에도 나서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삼성은 실망스러웠다. 작년에 국민연금에 했던 약속을 저버린 셈이 됐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큰 손으로 평가받는 세계 3위 연기금 국민연금까지 검찰의 압수 수색을 받고 업무가 마비되게 하는 민폐를 끼쳤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한국 기업은 이류, 관료는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20년 전 했던 '베이징 발언'이 지금도 회자된다. 이재용 부회장부터가 '삼성은 일류 기업인가' 자문해봐야 한다. '일류'라고 자신 있게 말 못한다면 무엇 때문인지도 곱씹어봐야 한다. '이재용의 삼성'을 만들어준 과정에서 사회에 진 빚을 어떻게 갚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1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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