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독일 제치고 미·러 '천연가스 딜'… '노르트스트림2' 부활하나]
[러시아 에너지 볼모 된 독일]
[러시아발 경제위기, 장기화 대비할 때다]
우크라·독일 제치고 미·러 '천연가스 딜'… '노르트스트림2' 부활하나
[최준영의 Energy 지정학]
지난달 18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고위급 회담이 개최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한 회담이었다.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핵심 관련 세력인 유럽연합(EU)은 초대받지 못했다. 세계 원유 생산 1, 2, 3위 국가가 모인 회담은 인류의 미래는 화석 에너지를 대량 보유한 강대국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회담이 종료된 이후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발표한 합의 사항의 핵심은 가능한 한 빨리 우크라이나 갈등을 종식시킬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협의할 고위급 팀을 짠다는 것이었다. 관심은 당사자를 배제한 강대국 위주 국제 질서 재편에 쏠렸다. 그런데 미국 국무부 발표에는 흥미로운 구절이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의 성공적 종식을 통해 상호 지정학적 이익과 역사적 투자 기회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구절이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회담에서 투자를 논의하는 것은 이상해 보였다.
회담장을 촬영한 사진에서 보인 러시아 측 관계자는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와 외교정책 고문 유리 아샤코프 두 사람이었다. 전통적 외교 안보 관료다. 하지만 또 다른 관계자가 사진 밖에 있었다는 점을 알고 궁금증은 풀렸다. 러시아 국부 펀드(RDIF) 대표인 키릴 드미트리예프가 회담에 참석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태생인 드미트리예프는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과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골드만삭스와 맥킨지에서 근무한 국제 금융 전문가다. 2011년 러시아 국부 펀드 대표가 된 그는 다양한 국가에서 대규모 해외 투자를 유치했을 뿐 아니라 서방 국가를 상대한 비공식 외교 창구 역할을 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와 꾸준히 접촉을 유지해 왔다. 미·러 회담 이후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그는 양측 상호 이익이 있는 분야의 경제적 관계 회복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다양한 회사에 대한 합작 투자, 미국 파트너와 합작회사 설립, 북극에 대한 투자 등이 포함될 수 있다는 그의 언급은 모호했다.
궁금증은 곧 풀렸다. 미국 기업의 참여를 전제로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연결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인 노르트스트림2를 재개통하는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미국 기업이 노르트스트림2를 인수하거나 운영사 지분을 소유하면 러시아의 가스 판매 수익 가운데 일부를 미국이 확보하게 된다. 드미트리예프의 언급대로 미·러 양측이 이익을 보는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가운데 한 명인 마티아스 바르니히에게서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연가스를 통해 유럽을 장악하려 한 러시아의 시도를 설명하는 책 ‘노르트스트림의 덫’에 따르면, 동독 출신인 바르니히는 독일 정치권에 슈뢰더 전 독일 총리를 포함한 광범위한 노르트스트림 커넥션을 구축함으로써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이 건설되도록 한 일등 공신이다.
미국 쪽에서는 20년 넘게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해왔고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운동에 큰 후원을 한 스티븐 린치가 작년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노르트스트림2를 미국이 소유하면 러시아와 협상할 때 레버리지를 확보함으로써 미국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해 왔다. 린치는 2024년 11월 파산 절차가 진행 중인 운영 회사 노르트스트림2 AG가 경매에 나올 경우 자신이 입찰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스위스에서 파산 절차가 진행 중인 노르트스트림2 AG는 1월에 파산 절차에 대해 연기를 허가받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 그리고 독일 선거 등이 노르트스트림2의 미래에 여러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파산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을 스위스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회담 이전부터 물밑에서 노르트스트림2의 재개통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러시아 천연가스의 유럽 시장 재진입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에 대한 대규모 LNG 판매로 큰 이익을 보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량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해 미국 몫을 확보해 준다면 세계 최대 천연가스 시장인 유럽에서 미국과 러시아는 안정적인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 2024년 EU가 미국에서 도입한 LNG는 51bcm(10억입방미터) 규모로 2023년 60bcm보다 줄어들긴 했다. 그래도 앞으로도 이 정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미국 업계로서도 큰 불만은 없을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합작이 성사되려면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천연가스를 다시 도입하기로 결정해야 한다. EU는 2027년까지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포함한 모든 화석연료 수입을 중단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세부 일정을 3월 중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러시아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경쟁력을 상실한 독일 산업계가 저렴한 러시아산 가스 도입 재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1월에는 EU 내부적으로 우크라이나 평화 회담 촉진을 위해 파이프라인을 통한 러시아 천연가스 재도입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유럽 내부의 정치적 상황도 달라졌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탈탄소와 재생에너지 전환에 반대하는 극우 세력의 영향력이 독일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서 확대되면서 유럽의 화석 에너지 수요가 종전 예상보다 증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유럽을 압박해서 더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이제 허무맹랑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보여준 모습은 자국 이익을 최우선시하면서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과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했던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입각한 동맹,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한 다자간 협상과 조율은 사라지고 있다. 불가능해보였던 노르트스트림2의 부활은 화석 에너지 시대가 돌아오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풍부한 화석 에너지를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가 같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가치가 아닌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노르트스트림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1기 땐 푸틴 야욕 막겠다며 ‘노르트…’ 반대
이번엔 재가동 적극 참여… 그에겐 이익이 정의다
노르트스트림은 발트해 해저를 가로질러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연결하는 가스관이다. 노르트스트림이라는 명칭은 북쪽이라는 독일어 ‘nord’와 흐름을 뜻하는 영어 ‘stream’을 합성해 만들어졌다. 핀란드·에스토니아와 가까운 러시아 서쪽 끝에서 출발해 발트해 해저를 1200km 넘게 달려온 가스관은 독일 북동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서 육지로 올라와 20km 더 이어지다가 그라이프스발트에서 끝난다. 묘하게도 이 지역은 노르트스트림 건설을 오랫동안 지휘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지역구였다.
노르트스트림1, 2는 각각 직경 1.22m인 두 가스관으로 구성된 네 가스관이다. 가스관 하나의 연간 수송 능력은 27.5bcm(10억입방미터)로 노르트스트림 수송 능력은 총 110bcm에 이른다. 노르트스트림 1, 2가 최대 용량으로 가동되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2021년 EU(유럽연합) 천연가스 소비량(397bcm)의 27.7%를 공급할 수 있었다.
노르트스트림1은 2011년 11월 가동을 시작했으나 2022년 9월 2일 러시아에 폐쇄당했다. 노르트스트림2는 2018년 1월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트럼프 1기 시절 참여 기업에 대한 미국의 제재로 예정보다 늦은 2021년 9월 완공됐다. 이마저도 인증 절차 지연으로 가동되지 못한 상태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다. 2022년 9월 26일 발트해 해저 폭발로 노르트스트림1은 완전히 파괴됐다. 노르트스트림2는 가스관 하나만 무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르트스트림은 천연가스를 통해 유럽에 대한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생각이 반영된 작품이다. 이에 맞서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노르트스트림2 공사에 참여하는 모든 기업을 제재했다. 러시아가 저렴한 천연가스 공급을 미끼로 유럽을 장악할 것이라는 안보적 우려가 명분이었다. 미국의 제재 조치에 당시 독일과 러시아는 극렬하게 반발했다. 집권 2기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은 노르트스트림2 재가동에 참여해 미국의 이익을 늘리려고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2019년 노르트스트림2를 극렬하게 반대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진심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진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조선일보(25-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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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에너지 볼모 된 독일
이념 앞세워 탈원전·탈석탄 추진… 러 천연가스 의존하다 안보 위기
에너지 정책은 절박한 생존 문제… 새 정부, 자원 무기화 대비 나서야
2019년 10월 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에너지위크 국제포럼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이야기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에너지 정책을 보면 독일과 문재인 정부는 많이 닮았다.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높으면서 탈원전·탈석탄 정책을 동시에 추진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과학보다는 이념을 앞세웠고, 결국 무모한 도전으로 끝나게 됐다는 점도 그렇다.
독일은 2030년까지 석탄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계획이다. 또 작년 말 원전 3기를 폐쇄한 데 이어 마지막 남은 3기마저 가동을 중단해 올해 말까지 원전을 없애기로 했다. 대신 2035년까지 100% 태양광·풍력으로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락가락 재생에너지에 뒤통수 맞은 독일은 지난해 풍력발전 부진으로 인한 전력 부족을 원전·석탄 발전으로 메웠다. 지난해 독일의 석탄 발전 비중은 28.1%로 전년(23.7%)보다 늘었다. 원전 발전도 증가했다.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율은 44.1%에서 40.9%로 감소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독일을 에너지 안보 위기에 빠뜨렸다. 석유·가스 공급은 불안해졌고, 재생에너지는 격차를 메우기 어려운 수준이다. 독일의 원유 수입 비율은 98%로 절대적이다. 천연가스는 95%, 연료탄은 100% 수입한다. 원유·가스·연료탄의 러시아산 비율은 34~55%다. 러시아와 연결된 가스관 ‘노르트스트림’은 독일 에너지 생명줄이다. 이를 더 확대한다고 ‘노르트스트림2′까지 깔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가동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독일은 러시아의 에너지 볼모가 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독일의 천연가스 의존은 원전을 서둘러 종료하겠다고 한 결정의 당연한 결과였다”며 “독일의 탈핵 정책은 푸틴에겐 횡재”라고 했다.
3월 7일 독일 루브민에 있는 노르트 스트림 2 가스 파이프라인 시설./로이터 뉴스1
지난해 독일의 가스 요금은 47% 올랐고, 난방유(40%)·전기요금(18%)도 급등해 소비자 부담은 커졌다. 독일 언론은 정전으로 인한 대재앙 시나리오까지 우려하는 상황이다. 뒤늦게 가스 수입을 다변화한다면서 LNG(액화천연가스) 터미널 건설에 나섰다. 독일 경제장관은 “현재 에너지원에 대한 금기는 없다”고 했다. 원전 수명을 늘리고, 석탄발전소 폐쇄도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탈원전 탈석탄을 추진하면서 신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로 메우겠다는 계산이었다. 국제유가·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자 작년 12월 원전 발전량은 월 기준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1월은 역대 2위다. 석탄 발전은 3~15% 늘었다. 비싼 천연가스를 11~13% 줄이면서 원전과 석탄으로 메운 것이다. 해외 자원개발 적폐 몰이는 5년 내내 이어졌고, 경제성을 이유로 해외 광산을 떨이로 내다 팔기에만 바빴다. 최근 광물 값이 폭등하자 매각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한다. 탈원전 부작용 비판을 피하려 꾹꾹 눌러 온 전기요금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돌리기가 됐다.
에너지 정책이 헛바퀴 도는 동안 글로벌 에너지 안보 지형은 크게 바뀌었다. 자원 무기화가 더 공고해졌고, 석유·가스 같은 전통 화석 에너지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진 게 현실이다. 석유·가스 공급은 점점 더 적은 수의 국가와 생산업체에 집중되면서 공급망은 더 위태로워졌다. IEA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가 세계 석유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현재 47%에서 2050년 61%로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신재생에너지·이차전지 등에 필요한 핵심 광물은 석유·가스보다 더 적은 국가에 집중돼 있다. 자원 공급망이 소수 국가의 규제 변화, 정치 불안정 영향을 더 빠르게, 크게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새 정부는 글로벌 자원 패권경쟁 대비를 정책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 생존의 문제인 에너지 정책이 정권 호불호에 따라 다뤄져선 안 된다.
-전수용 기자, 조선일보(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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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발 경제위기, 장기화 대비할 때다
목표 불분명, 종료 불투명한 대러 제재
원자재발 공급위기, 금융위기 우려 커져
외부쇼크 취약 韓경제 정신 바짝 차려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 달째로 접어들고 있다. 반인륜적 무력행사에 맞서 미국과 서방 진영은 군사 행동 대신 ‘경제제재’를 택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지난 20년간 그 사용 빈도와 범위가 크게 늘어나며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전술이다. 그러나 경제제재만으로 러시아를 변화시키긴 어렵다. 장기화된다면 포스트 코로나 인플레이션 때문에 이미 삐걱대는 글로벌 경제를 수렁에 빠뜨릴 공산이 크다. 한국 경제에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먼저 목표가 불분명하다. 대(對)북한 경제제재에도 ‘비핵화’란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 한데 이번 경우는 아직도 ‘엔드 게임’의 시나리오만 무성하다. 러시아를 우크라이나에서 완전히 내쫓자는 건지,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의 타협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건지 오리무중 상태다. 구(舊)냉전시대의 ‘봉쇄(containment)’ 전략에서 심지어 러시아 내부 쿠데타까지 거론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유 수호’란 원론적 명분만 되풀이하며 제재 수위를 점점 높이고 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불을 놓는 위태로운 확산 형국이다. 명확한 목표 없이는 언제 어떻게 제재가 끝날지 예측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더 큰 문제는 돈이다. 러시아 경제를 ‘왕따’시키는 데 드는 비용의 엄청난 규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는 에너지를 비롯한 세계 최대 자원 부국이다.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달러 상승하면 미국 인플레는 0.2%가량 증가한다. 지난해 12월 배럴당 60∼70달러 수준이던 유가는 130달러 돌파 후 진정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200달러 전망까지 나온다. 여기에 원자재 전반에 걸친 가파른 가격 상승세를 고려하면 어느새 7%까지 올라온 글로벌 인플레가 금방 두 자릿수로 치솟을 수 있다. 급격한 금리 인상과 이로 인한 불황의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다.
러시아는 오일·가스 말고도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는 반도체와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팔라듐과 니켈의 주요 생산국이기도 하다. 이들의 가격은 두 배로 뛰었다. 반도체는 팬데믹 때문에 수요가 공급을 넘어선 지 오래인데 이젠 원자재발(發) 공급 쇼크까지 일어날 판이다. 금융위기 또한 우려된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들과 금융권의 러시아 자산이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다. 이 밖에도 경제 전쟁이 장기화될 시 글로벌 경제의 발목을 잡을 폭탄이 도처에 널려 있다.
제재 비용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도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가장 혹독한 비용을 치르는 건 물론 러시아다. 그런데 그 피해의 대부분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러시아 정권과 군부다. 이들에게 직접적이고 충분한 타격을 가하지 못하면 제재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2008년 조지아 침공과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러시아가 받은 제재만 100개가 넘는다. 지금도 북한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사체’를 날리고 있다. 제재를 달고 사는 또 하나의 ‘악의 축’ 이란도 끈질기게 버티며 중동에서 벌어지는 분쟁마다 개입을 멈추지 않는다.
비용 부담 문제는 제재를 가하는 측에도 분열 요소로 작용한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미국 혼자 단행한 러시아 원유의 수입 금지 조치다. 미국은 실질적인 에너지 독립 국가지만 유럽의 사정은 다르다. 원유는 그렇다 쳐도 러시아 의존도가 무려 45%에 달하는 가스 얘기는 꺼내지도 못할 형편이다. 한편 중국은 러시아와 교역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확대하는 중이다. 전쟁 발발 직전 장기 에너지 수입 계약을 체결했다. 양국은 달러 대신 위안화 거래 비중을 꾸준히 늘리며 서방의 금융 제재에도 대비하고 있었다. 중국과 파키스탄을 견제해야만 하는 인도는 러시아 무기의 핵심 거래처다.
이렇게 목표는 불분명하고 가성비 낮은 전술이 단시일에 성과를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강경 노선을 취한 바이든 대통령과 서방 정상들의 지지율은 연일 상한가다. 그만큼 민심이 들끓고 있다. 아무래도 긴 싸움이 될 것 같다. 뚜렷한 목표와 전략 수립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텐데, 그 사이 열강들의 무모하고 이기적인 파워 게임은 점점 더 고조될 것이다. 특히 중국의 행보가 주목된다. 중국을 겨냥한 추가 제재 가능성마저 생기고 있다. 한국 경제는 외부 쇼크에 취약하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사방에서 들이닥칠 난관을 뚫기 힘들 것이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동아일보(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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