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經濟-家計]

[IMF와 케인스] [디폴트] [러시아 디폴트]

뚝섬 2023. 9. 27. 09:32

[IMF와 케인스]

[디폴트] 

[러시아 디폴트]

 

 

 

IMF와 케인스

 

[차현진의 돈과 세상]

 

남북전쟁 이후 산업국가로 달려가기 바빴던 미국은 나라 밖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금을 화폐로 쓰느냐(금본위제도), 금과 은을 함께 화폐로 쓰느냐(복본위제도)를 두고 유럽이 30년에 걸쳐 고민할 때 미국은 끼어들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20년 34국이 브뤼셀에 모여서 국제 통화제도를 논의할 때는 대표단도 보내지 않았다. 1933년 런던에서 열린 세계 통화 경제 회의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참가해서 찬물을 끼얹었다. 세계 경제 회복을 위해 ‘킹달러’ 정책 즉, 달러화 가치를 높여달라는 유럽 정상들의 요구를 단칼에 거절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때쯤 생각이 바뀌었다. 좋든 싫든 미국이 빠진 국제 통화 질서는 있을 수 없고, 국제 통화 질서 없이는 미국이 바라는 국제무역 증진과 평화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1944년 7월 미국으로 44국 대표들을 불렀다.

 

700명이 넘는 사람을 한꺼번에 수용할 시설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걸림돌이었다. 중·저소득 국가들의 유색인종이 미국으로 몰려와 떠들썩하게 국제 회의를 여는 데 대한 거부감으로 백인들이 운영하는 대도시 유명 호텔들이 장소 대여를 거부했다. 결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라는 상당히 후미진 곳에서 회의가 열렸다. 거기서 영국 대표 케인스가 제안한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설립안이 채택되었다.

 

38국이 설립 협정문에 서명을 마치자 1946년 3월 이를 알리는 회의가 열렸다. 이번에도 호텔 확보가 어려워 조지아주 서배너라는 곳에서 열렸다. 케인스가 거기서 충격을 받았다. 프레드 벤슨 미 재무장관이 자신과 영국을 얕보는 듯 행동했기 때문이다. 모멸감을 느낀 케인스가 심장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그길로 귀국해서 한 달 뒤 사망했다. IMF의 아버지 케인스가 사라진 뒤 1946년 9월 27일 워싱턴 DC에서 IMF 연차 총회가 처음 열렸다. 달러 패권 시대의 시작이었다.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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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

 

"돈 없어 빚 못 갚겠다" 선언… 국가 부도 상황

 

국제통화기금(IMF)은 디폴트 위기에 처한 국가를 돕는 대표적인 국제기구예요. /IMF

 

Q. 최근 뉴스에서 "세계은행은 올해 개발도상국 12곳이 디폴트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스리랑카는 이미 선언했다고 하고,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등도 위험해 남부아시아 경제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도 하고요. '디폴트'가 뭐고, 요즘 왜 이렇게 많은 나라가 디폴트 위험에 처한 건가요?

A. '디폴트(default)'는 쉽게 말해 빚을 진 기업이나 국가가 "가진 것이 없어서 빚을 못 갚겠다"고 하는 거예요. 채무불이행이라고 해요. 국가의 디폴트 선언은 그 나라가 외국에 진 빚을 못 갚겠다고 발표하는 것이니, 국가가 부도 상황에 놓인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국가가 빚을 갚아야 할 시기가 됐는데 돈이 없을 경우 우선은 "당장은 빚을 갚지 못하겠지만 나중에 갚겠다"는 선언을 합니다. 이를 '모라토리엄(moratorium·지불 유예)'이라고 해요.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돈을 빌려준 국가와 협상하는데, 이렇다 할 해결 방안이 없는 경우 디폴트를 선언하게 됩니다.

최근 경제 상황이 어려워진 개발도상국이 많은데요. 수년간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매우 낮게 유지됐을 시기에 각국 정부와 기업은 개발 사업을 벌이며 외국에서 돈을 많이 빌렸어요. 그런데 코로나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각국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시중에 돈을 풀었어요. 그러면서 물가가 올라갔고, 올 초부터 이어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기름·곡물 가격 등이 오르며 전 세계 물가가 더욱 올라갔어요.

그러자 미국은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달러 가치가 치솟으며 빚을 갚기가 더욱 어려워졌어요. 외국에서 돈을 빌리거나 갚을 때는 보통 미국 달러를 쓰는데요. 빚을 갚으려면 미국 달러가 필요한데, 달러가 비싸지니 비용 부담이 커진 거예요. 예컨대 우리나라 돈을 기준으로 과거 1달러가 1000원의 가치를 가졌는데, 현재 1400원의 가치를 가졌다고 해 볼게요. 그럼 과거 100달러를 갚으려면 10만원이 있으면 됐지만, 지금은 14만원이 필요하니 40%나 빚이 커진 셈이 되는 거예요.

특히 남부아시아 국가들은 관광 산업 비율이 컸는데, 코로나 장기화로 해외여행이 제한되며 산업이 위축됐어요. 그러면 외채를 가진 기업이 빚을 갚기 어려워지고, 국가가 이런 기업을 지원하면서 외환 보유고가 바닥나 국가 자체에서 갚아야 할 빚도 상환하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위기에 처한 국가를 돕는 대표적인 기구가 국제통화기금(IMF)입니다. 디폴트를 선언한 스리랑카나 디폴트 위기에 처한 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에서 현재 IMF에 도움을 요청했고, 경제 안정을 위한 조치를 논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나영 양정중 사회과 교사, 조선일보(2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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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디폴트

 

1971년 8월 15일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금 1온스=35 미 달러화”의 약속을 깰 때 어느 나라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미국이 설계했던 브레튼우즈 체제의 해체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국제사회에서 그런 뻔뻔함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볼셰비키 혁명 직후인 1918년 2월 소련 정부는 34억파운드에 이르는 제정러시아의 부채를 일방적으로 무효화했다.

 

러시아는 80년 뒤인 1998년에도 외채 상환 불능(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한 뒤 당선된 초대 대통령 옐친은 시장 개방과 국영기업 민영화를 약속하면서 많은 외채를 들여왔다. 하지만 관료들이 부패한 데다가 대통령의 건강도 좋지 않았다. 거기에 아시아 외환 위기까지 터졌다. 보유 외환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결국 옐친은 모라토리엄 선언과 함께 통치력을 상실하고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그때 권력을 넘겨받은 푸틴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러시아의 외환 보유액을 세계 9위로 올려놨다. 그러니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상환 능력을 잃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서방세계는 푸틴이 옐친의 길을 걸으며 제발 실각하기를 바란다. 러시아로 송금하는 것은 차단하고 빚은 제때 갚으라고 독촉한다. 푸틴 정권의 붕괴를 향한 일종의 기우제다.

 

1918년 소비에트 정부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을 때 소비에트 외채의 80%는 프랑스 정부가 갖고 있었다. 차관을 통해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을 지원한 결과다. 그러나 1998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때는 서방 민간 금융기관들이 러시아 채권을 골고루 나눠 갖고 있었다. 그래서 뱅커스트러스트, 바클레이즈, 시티 등 유수 금융기관들이 큰 손해를 보았다. 미국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는 파산했다.

 

마침내 러시아가 외화 표시 국채를 갚지 못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지금 서방세계는 신이 났지만, 웃을 일만은 아니다.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는 것은 아닌지도 점검해야 하리라.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조선일보(2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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