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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조기교육 아홉 살까지만 간다] [수학자와 분필] ....

뚝섬 2024. 5. 4. 06:47

[세 살 조기교육 아홉 살까지만 간다]

[수학자와 분필]

[“굽은 길이 최선의 길”]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있음’]

 

 

 

세 살 조기교육 아홉 살까지만 간다

 

조기교육 나이가 얼마나 빨라졌는지 ‘4세 고시’를 보면 알 수 있다. 4세 고시는 유명 영어유치원 입학을 위한 레벨 테스트. 의대 입학이라는 종점을 향한 달리기가 이때부터 시작된다. 알파벳 읽고 쓰기, 간단한 영어 회화 등이 출제되다 보니 늦어도 3세부터 영유 입학을 위해 프렙(Prep·준비)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아야 한다. 지난해 동아일보가 초1 자녀 학부모 1만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0∼4세에 영어 사교육을 시작했다는 응답이 15.9%나 됐다. 국어는 15.4%, 수학은 13.3%였다.

세 살에 배운 영어, 수학 평생 갈까. 그런 믿음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팀이 유치원 입학 전 조기교육을 연구한 기존 논문들을 리뷰했더니 단기적으론 학업 성과가 올라갔지만 장기적인 효과를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가 부족했다. 미 테네시 유치원 조기교육에 참여한 3∼5세 유아들은 초등 3학년(9세)까지만 읽기, 쓰기 등에서 대조군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 이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미 정부 유아 교육 프로그램 헤드 스타트(Head Start)에 참여한 3, 4세 유아들 역시 초3부터는 더 나은 학습 성취도를 보이지 않았다.

▷이를 설명하는 용어가 ‘페이드 아웃(fade-out)’ 효과다. 알파벳, 구구단 외우기 같은 인지적인 학습은 반복 훈련으로 금세 효과가 나타난다. 일찍 사교육을 받은 아이가 천재 소리를 듣는 이유다. 그런데 누구나 알파벳, 구구단을 외우는 나이가 되면 선행 학습의 효과는 빠르게 사라진다.

 

▷조기교육이냐, 적기 교육이냐. 교육계의 오래된 논쟁은 뇌과학이 발달하며 적기 교육으로 기울고 있다. 유아기엔 인성과 사회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발달하고, 초등학생 시기엔 언어를 담당하는 측두엽과 수학 등 논리를 담당하는 두정엽이 발달한다. 그래서 4∼7세 시기에는 인지 능력보다 정서 능력을 자극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앞선 논문에서 다룬 미 테네시 유치원 유아들의 경우, 학습적인 측면에서 조기교육의 긍정적 효과는 자라면서 사라졌다. 반면 학교에서 징계를 받는 등 사회성 측면에서 부정적 효과가 관찰됐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에게 전력 질주를 시켜봤자 소용없듯이 영유아기 과도한 학습은 오히려 뇌 발달에 해로울 수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태어나 조기교육으로 단련돼 이른 나이에 재능을 꽃피우는 ‘천재 신화’를 동경한다. 하지만 마흔 넘어 첫 소설을 낸 고 박완서 작가나 시인을 꿈꾸며 고교 중퇴를 했다가 39세에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 등을 보라. 인간의 수명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아이의 인생을 일찍 완성하려는 부모의 조바심이 자칫 아이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우경임 논설위원, 동아일보(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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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와 분필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대학 은사인 조순 전 부총리와의 인연을 기록한 책 ‘나의 스승, 나의 인생’에 조순 ‘교수’의 판서 에피소드가 나온다. 칠판 왼쪽 꼭대기에서 오른쪽 하단까지 분필로 쓰는데 한국어, 영어, 일어에 한시까지 동원하며 빼곡히 채웠다. 정 전 총리는 조순 교수의 판서를 ‘가장 지적인 예술 작품’이라고 했다. 1960~70년대 얘기다. 요즘 강의실에선 전자칠판에 전자펜으로 쓴다.

 

▶그런데 유독 수학자들이 여전히 분필을 고집한다. 몇 해 전 미국 CNN의 유튜브 전문 자회사가 수학자들의 유별난 분필 사랑을 취재했다. 거기 나온 미국 수학회장은 “생각의 예술을 하는 이들의 표현 도구”라는 말로 분필 사랑을 고백했다. 엊그제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도 분필 애호가다. 허 교수는 “수학자는 분필과 칠판을 사랑하는 최후의 사람들”이라고 했다.

 

최첨단 필기도구인 전자펜은 수학자들에게 찬밥 취급을 당한다. 삼성전자가 2020년 내놓은 갤럭시 20 전자펜의 반응속도는 26ms(ms는 1000분의 1초)다. 펜이나 분필로 쓸 때보다 1000분의 26초 느리다는 뜻이다. 올 초 선보인 S22는 2.2ms로 사실상 일반 펜과 비슷해졌다. 그래도 머리에서 폭포처럼 쏟아져나오는 수식을 써내려가는 수학자에겐 여전히 분필을 손에 쥐고 싶어지는 속도일지 모른다.

 

▶세계 수학자들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분필은 일본의 하고로모(羽衣)다. 재질이 단단해 가루가 날리지 않으면서 필기감이 부드럽다고 한다. 몇 해 전 이 분필 회사의 일본인 대표가 병마로 사업을 접게 되자 수학자들 사이에 사재기 소동이 빚어졌다. 하루 사용량을 계산해 15년치를 사서 쟁여둔 이도 있다. 다행히 하고로모를 인수해 수학자들을 안심시킨 이가 나타났는데, 평소 이 분필을 애용하던 한국의 수학 일타 강사였다.

 

▶고대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철학자이기도 했다. 수에서 자연의 숨은 질서를 찾으려 했다. 수학 연구를 ‘편견과 한계를 이해하는 과정’이라 설명하는 허준이 교수도 철학자라 할 수 있다. 오가와 요코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 수학 박사와 그에게 고용된 가사도우미가 나온다. 둘은 서로에게 인간적 연민을 느끼지만 연인 사이는 아니다. 박사는 그런 둘의 관계를 수학의 우애수(友愛數)와 같다고 믿는다. 요즘 말로 ‘썸’을 타는 듯한 둘의 묘한 관계조차 박사는 칠판에 분필로 수식을 써가며 설명한다. 수학자 손에는 역시 분필이 제격인 모양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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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길이 최선의 길”

 

한국계 최초로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39)를 수학의 길로 안내한 사람은 히로나카 헤이스케 하버드대 명예교수(91)다. 스승과 제자는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음악과 글쓰기를 좋아한다. 두 사람 모두 어려서는 신통치 않았지만 뒤늦게 수학적 재능을 발휘한 늦깎이 천재들이다.

1970년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교수는 일본 벽촌 장사꾼의 열다섯 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공사장에서 알바 뛰고 밭에서 거름통 메고 일하느라 중학교도 대학도 재수해서 갔다. 피아니스트가 꿈이었지만 교토대 이학부에 진학했는데, 3학년 때 대학을 방문한 하버드대 수학과 교수를 만나면서 수학의 아름다움에 눈떴다. 허 교수도 글쓰기와 작곡에 빠져 고교를 자퇴했고, 서울대 물리학과에 들어가 D, F학점을 맞으며 6년을 다니다 마지막 학기에 석좌교수로 온 히로나카 교수를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천재의 유형을 설명할 때 타이거 우즈와 로저 페더러를 곧잘 예로 든다. 우즈는 생후 7개월 때 골프채 쥐고 조기교육을 받아 세 살 때 골프장 9홀을 돌면서 11오버파를 쳤다. 반면 페더러는 스키 레슬링 수영 야구 핸드볼 탁구 배드민턴 축구를 전전하다 뒤늦게 테니스를 시작했는데 또래 선수들은 근력 코치, 스포츠 심리학자, 영양사를 따로 두고 훈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설적 테니스 선수들이 은퇴할 나이를 훌쩍 넘겨서까지 테니스 황제 자리를 지켰다. 여러 스포츠를 접한 것이 손과 눈의 조화로운 발달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늦깎이 천재들의 자산은 지름길 놔두고 둘러가느라 겪은 다양한 경험이다. 히로나카 교수는 저서 ‘학문의 즐거움’에서 “여러 가지가 통합돼 창조가 이뤄진다”며 “중학교 시절 음악에 열중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고 썼다. “상아탑에 틀어박혀 수학만 생각했다면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지진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허 교수도 완전히 다른 수학 분야인 대수기하학과 조합론을 연결해 난제를 풀었다. 그는 문제를 잘 푸는 비결에 대해 두뇌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종류의 ‘무작위 연결’이 일어난다고 했다.

▷세계적 과학자들이 100년 넘게 매달리고도 해결 못 한 것이 식품 저장 기간 늘리기였다. ‘통조림’ 발명으로 난제를 풀어낸 사람은 식품업계를 두루 거친 만물박사 니콜라 아페르였다. 한 우물만 깊게 파다 보면 바로 옆의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 법. 예측 불허의 미래일수록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허 교수는 내가 지나온 매우 굽은 길이 실제로는 최선의 경로였던 것 같다고 했다. 늦더라도 넓게 파야 깊어질 수 있다는 뜻일 게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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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있음’

 

현대 무선통신 실용화 계기는 호기심에 발견한 전자기파 덕
허준이 교수 한국 첫 필즈상도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서 가능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KIAS) 수학부 석학교수가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수학연맹(IMU) 필즈상 시상식에서 필즈상을 수상한 뒤 메달과 함께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7.5 /연합뉴스

 

아인슈타인과 괴델은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와 수학자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창시하였고, 괴델은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있음을 보였다. 이 두 과학자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각각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소(IAS)가 바로 이들이 정착한 곳이다. 아인슈타인은 그곳에서 퇴근 때 괴델과 함께 걷기 위해 일한다고 말할 정도로 둘은 가까웠다. 고등연구소는 뉴저지 주의 백화점 부호 뱀버거 남매가 기부한 500만 달러를 기금으로 1930년 창립되었다. 이 기금은 남매가 월스트리트 대폭락 몇 주 전에 백화점을 팔아 확보한 현금의 일부였다. 그야말로 고등연구소는 천운으로 탄생했던 연구소인 셈이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첫 소장은 플렉스너였다. 그는 애초 치과대학을 만들고자 했던 뱀버거 남매를 설득하여 대신 기초학문의 고등연구소를 설립하였다. 그에게는 또 코닥 필름으로 백만장자가 된 이스트맨과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이스트맨이 자기의 막대한 재산을 유용한 분야의 교육을 위해 기부할 작정이라고 말하자, 플렉스너는 그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유용한 과학자는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스트맨의 즉답은 “사상 최초로 무선통신을 실용화한 마르코니 아닌가요?”였다. 그러자 플렉스너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스트맨을 놀라게 하였다. “무선통신기와 라디오가 제아무리 쓸모가 많더라도 이에 관한 마르코니의 공헌은 하찮기만 합니다. 무선통신의 공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전자기파의 이론을 정립한 맥스웰과 전자기파를 발견한 헤르츠입니다. 맥스웰과 헤르츠는 연구의 효용성에 관해서 아무 관심도 없었죠. 애초에 실용적인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어요. 그들의 쓸모없는 이론을 마르코니가 기발하게 응용하여 효용가치가 엄청난 통신장비를 만들고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가 발명한 검파기는 얼마 안 가서 사라졌어요. 돌이켜 보면 맥스웰과 헤르츠는 쓸모에는 무관심한 천재였고, 마르코니는 쓸모에만 관심 있는 현명한 발명가였지요. 과연 누가 더 쓸모있는 일을 했을까요? 바로 맥스웰과 헤르츠입니다.”

 

플렉스너는 이스트맨에게 덧붙이길, 과학사에서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유익했던 위대한 발견들은 유용성을 추구하다가 얻은 게 아니고, 오히려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다가 뜻밖에 얻게 된 것이라고 말하였다. 호기심에서 하는 연구의 결과는 대부분 쓸모로 직결되지 않는다. 그래도 대학과 연구소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연구를 적극 장려해야 하며, 연구자들에게 자유로운 소요(逍遙)의 분위기를 제공해야 한다. 눈앞의 응용에서 초연한 연구일수록 종국에는 인류의 행복에 공헌하며 인간의 지적 호기심도 충족하게 된다.

 

호기심에 기반한 연구가 위대한 이론을 탄생시키고, 유용한 도구를 발명케 한 경우를 또 얘기해 보자. 유클리드 기하학 원론에는 다섯 개의 공리가 있다. 공리란 워낙 자명하여 증명할 필요가 없는 진리를 말한다. 모든 명제는 공리를 이용하여 증명할 수 있어야 비로소 참이 된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다섯째 공리는 평행선 공리라고도 불리는데 선 밖의 한 점을 지나 그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명제이다. 평행선 공리는 다른 네 공리보다 복잡하여 어쩌면 나머지 공리를 써서 증명할 수 있는 정리일지 모른다고 사람들은 추측하였다. 그리하여 2000년간 많은 사람이 증명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마침내 19세기 초 서광이 비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헝가리의 보여이와 러시아의 로바쳅스키에 의하여 창조적으로 증명되었다. 즉 평행선 공리를 부정하여도 모순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증명하였다. 다시 얘기하면 평행선이 없는 공간도 있고 평행선이 무한개 있는 공간도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이런 공간을 비유클리드 공간이라고 부른다. 독일의 수학자 리만은 이런 공간을 더욱 일반화하여 리만 기하학을 완성하였다. 그 60년 후 리만 기하학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의 수학적 기초가 되었고, 이로부터 인류는 수성의 근일점 이동, 스펙트럼의 적색편이, 중력에 의한 공간의 휨 등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공간의 이상한 현상들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여기서 이론적 쓸모는 뜻밖에 실용적 쓸모로 진화하였다. GPS가 탄생한 것이다. 현대 생활에서 꼭 필요한 GPS는 일반상대성 이론과 특수상대성 이론을 써서 시간을 수정하지 않으면 단 2분 만에 허용오차한도를 초과하게 된다. 이리하여 인류의 평행선 공리에 대한 호기심은 2000년간 숙성한 끝에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일반상대성 이론이라는 위대한 두 이론을 탄생시켰고, 일상생활에서 필수불가결한 위성항법장치를 등장시켰다. 이렇듯 기초과학은 수십 년, 수백 년 후 어떻게 응용될지도 모르는 채 단순한 호기심에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소에서 아인슈타인과 공동연구를 했던 물리학자 인펠트가 말하길 “고등연구소는 손을 뻗으면 어디서나 새 아이디어를 끄집어낼 수 있는 곳이다”라고 다소 로맨틱하게 얘기하였다. 이와 같이 고등연구소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한국인 중에 정근모 박사가 있었다. 그는 박사후과정을 프린스턴 대학의 플라즈마 연구소에서 밟고 있었는데 고등연구소에서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와 수학자 권경환 박사를 만나며 정례 물리세미나에 참석하였다. 그는 차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만의 독특한 세계 최고의 연구분위기를 선망하게 되었다. 30년 후 과학기술처 장관을 맡게 된 정근모 박사는 우리나라에 고등연구소 같은 연구소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인 필립 그리피스 박사를 초빙했다. 수학자인 그리피스 소장은 한국의 과학기술이 모방에서 창조로 발전하려면 고등연구소가 꼭 필요하며 지금이 적기라고 평가했다. 확신을 갖게 된 정근모 박사는 1996년 고등과학원(KIAS)을 설립하였다.

 

오늘 한국에 큰 경사가 있었다. 허준이 교수가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받았다. 그는 유학 중인 부모 아래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허준이 교수는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 6년간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소에서 베블렌 펠로우 등 방문교수로 재직하였다. 이와 동시에 한국의 고등과학원을 6년간 KIAS 스칼라로 방문하였고 올해에는 고등과학원의 석학교수로 임용되었다. 필자는 허준이 교수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와 한국 고등과학원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그의 수학이 크게 성장하였다고 생각한다. 호기심에 기반한 연구를 장려하는 두 기관(프린스턴 대학과 고등과학원)에서 수행하는 연구가 그의 미래에도 더욱 빛나는 결실을 볼 것이라 기대한다. 허준이 교수는 어린 중고등학교 시절 시에 푹 빠졌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시를 쓴다고 학교도 자퇴하였고 결국 검정고시로 대학에 입학하였다. 재미있게도 독일의 수학자 바이어슈트라스가 말했다. “실로 뭔가 시인 다운 어떤 면모도 함께 지니고 있지 않은 수학자는 결코 완벽한 수학자는 아니리라.” 논리를 엮어 만든 아름다움이 수학이고, 언어를 꿰어 만든 아름다움이 시가 아닌가. 필즈상을 받고 시도 좋아하는 허준이 교수는 그야말로 진정한 수학자이다.

 

올해로 개원 26주년을 맞은 고등과학원은 한국에서 호기심의 최전선이다. 고등과학원의 모토는 ‘불가능을 상상하라(Imagine the Impossible)’이다. 고등과학원의 세 학부(수학부, 물리학부, 계산과학부)의 교수와 연구원들은 오늘도 불가능을 상상하고는 손을 뻗으며 새 아이디어를 끄집어내고 있다. 이제는 한국의 과학기술이 모방의 단계에서 창조의 단계로 이미 접어들었다고 확신한다. 머지않아 제2의 필즈상 수상자와 노벨상 수상자도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한국의 국운이 바야흐로 상승하고 있다.

 

-최재경 고등과학원 원장, 조선일보(2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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