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隨想錄]

[“인생이 막막할 땐, 옛 껍질을 벗어던져라”] [요한 볼프강 괴테]

뚝섬 2024. 3. 10. 05:45

[“인생이 막막할 땐, 옛 껍질을 벗어던져라”] 

[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인생이 막막할 땐, 옛 껍질을 벗어던져라”

 

대문호의 그랜드투어 괴테 발자취 따라가기

 

그랜드투어의 상징인 ‘캄파니아의 괴테’. /슈테델 박물관

 

3월이 찾아오면 괴테의 시 ‘미뇽의 노래’를 읽는다. “그대는 아는가, 저 레몬꽃 피는 나라를?” 남국에서 피는 레몬꽃과 금빛 오렌지 향기는 어둡고 추운 겨울을 견뎌야 했던 북유럽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날이 풀리면 알프스산맥 넘어 남쪽으로 달려가는 마차 행렬이 있었으니 그랜드투어였다. 한국 장년층에게 그랜드투어란 손자 손녀(grandchild)에게 줄 선물 챙기는 해외여행이라는 우스개가 있지만, 유럽에서 본뜻은 신선한 영감을 얻기 위한 장거리 여행이고 최종 목적지는 대개 로마였다.

 

그랜드투어의 상징인 ‘캄파니아의 괴테’(1787년 티슈바인 작)를 보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를 찾았다. 유럽중앙은행의 소재지로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는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 것은 무제움스우퍼(Museumsufer)의 존재, 독일어로 ‘박물관 강변’이다. 마인강 따라 모여 있는 39개의 박물관과 산책길의 조화가 아름다운 장소다. 그중 슈테델 박물관은 군계일학. 유대인 사업가 슈테델이 평생 수집한 작품과 재산, 건물을 토대로 설립한 박물관인데 웅장하지는 않아도 훌륭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피렌체 미녀 시모네타 베스푸치를 모델로 그린 보티첼리의 초상화, 페르메이르의 ‘지리학자’, 고흐의 가셰 박사, 샤갈의 랍비, 피카소와 이브 클랭에 이르기까지 걸작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렘브란트의 ‘눈먼 삼손’ 앞에 섰을 때 왜 저렇게 붓질했을까, 화가의 의도를 알 수 없을 때 화가 나기도 하지만 렘브란트의 재치 있는 말을 수긍하기로 했다. “그림에 코를 너무 바짝 들이밀었다간 물감 냄새에 중독되고 말 것이다.” 창작은 예술가의 몫, 감상은 관람자의 몫인가?

 

프랑크푸르트 마인강변의 보물 슈테델 박물관 /손관승 제공

 

미술 관람은 심미안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체력 싸움이다. 위대한 예술품보다 빈 의자에 눈길이 더 가고 명작의 감흥보다 카페의 커피 한 모금이 간절해질 즈음 접이식 의자에 앉은 나이 지긋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가 바라보는 대상은 라파엘로의 교황 율리우스 2세 초상화. 로마의 르네상스를 이끈 두 주역이다. 응시와 스케치를 반복하며 그림에 푹 빠져 있는 남자.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행복의 조건으로 강조한 ‘플로(flow)’ 개념은 저 상태를 말하는 걸까? 시간과 주변을 잊은 완벽한 몰입 상태이다.

 

마침내 고대 로마의 폐허 위에 있는 괴테 그림 앞에 섰다. 괴테의 인생에는 두 번의 결정적 순간이 있다. 첫 번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성공과 변호사 경력을 뒤로하고 고향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바이마르 공국의 인재 초빙에 응한 26살의 도전이다. 두 번째는 10년간 궁정 생활의 안락함을 뒤로하고 새벽 3시에 이탈리아로 떠난 마흔 직전의 여행을 말한다. 괴테는 왜 로마로 떠났을까? “즐기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마흔 고개를 넘기기 전에 나는 위대한 것에 전념하기 위해 배우고 발전시키기 위해 왔다.”

 

라파엘로의 그림 앞 간이의자에 앉은 노관람객 /손관승 제공

 

누군가에게 마흔은 낮은 오름을 오르는 기분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넘기 힘든 거대한 산맥이다. 나도 마흔으로 가는 길목에 이 그림을 처음 만났다. 이 작품을 두 번째로 만난 것은 50대 초반 퇴직자 신분일 때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심정으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자취를 따라가던 길이었다. 직장인의 옷을 벗고 새롭게 탈피해야 했다. 탈피는 괴테가 즐겨 하던 비유로, 이탈리아에서 ‘매일 옛 껍질을 벗어던지고 있다’고 했으며, ‘탈피하지 못하는 뱀이 죽는 것처럼 탈피하지 못한 인간도 정신적으로 죽은 것’이라 강조하였다. 알프스산맥을 넘을 즈음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새로운 일자리가 났으니 빨리 귀국하라는 독촉이었다. 나는 필생의 버킷리스트를 완수하고 싶다고 했다. 수화기에서 울리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너 미쳤니?” 그렇다, 나는 미쳐 있었다. 알프스가 아니라 마음속의 거대한 장벽을 힘겹게 넘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인생의 지름길 대신 우회로에서 헤맬 때도 있다. 괴테는 그런 이들에게 인간은 노력하는 한, 길을 잃기 마련이라고 따뜻하게 위로한다. 렌터카의 바퀴가 터져 큰 고난을 겪었으나 그 과정을 통해 리타이어(retire), 은퇴의 개념에 대해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헌 타이어를 교체하면 산뜻한 리타이어가 되는 것처럼, 퇴직자도 생각의 타이어를 바꿔보자는 다짐이었다. 그 체험을 책으로 냈다가 엉겁결에 글로생활자가 되었다. 직장을 잃은 대신 평생의 업(業)을, 안정을 포기한 대신 자유를 선택한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마인강변에는 39개의 박물관이 있다 /위키피디아

 

그리고 다시 10년이 흘렀다. 나이에 따라 그림도 다르게 보이는 걸까? 괴테는 인생 3락(樂)으로 와인, 글쓰기, 여행을 꼽지만, 생활인으로서의 괴테를 주목하게 된다.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는 일자리뿐 아니라 2년 가까운 이탈리아 체류 비용도 후원해 주었다. 괴테는 촌구석 같았던 바이마르를 인재들이 몰려오는 문화 중심으로 만들고 평생 군주 곁을 떠나지 않았다. 군주가 숨지자 “시인의 돈벌이가 시원치 않다는 것을 잘 이해해 주는 이는 나의 군주뿐”이라며 진심으로 애도하였다. 자신보다 뛰어난 부하를 시기하는 리더가 있고, 리더를 배신하는 부하도 적지 않지만, 두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운 동행을 하였다. 83세로 눈감기 1년 전, 괴테는 대작 ‘파우스트’에 마침표를 찍는다.

 

꿈의 폐활량에 비례해 인간은 성장하는 걸까? 나이 들어 어설프게 로망을 추구하면 노망이라지만, 로망은 인생을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동력이 아닐까? 그림 속의 괴테는 말없이 웃고 있었다.

 

-손관승 글로생활자, 조선일보(2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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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파우스트(Faust)』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Faust』

 

1. 줄거리

제1부에서는 학문을 통해 우주의 원리를 규명하려는 파우스트가 지식의 무기력함에 절망하여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맡기고 쾌락을 추구한다. 그 결과 순결한 소녀 그레트헨을 얻어 그녀를 파멸시킨다.

 

제2부에서 파우스트는 현세적 쾌락을 얻게 되지만 결국 만족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파우스트로 하여금 이상을 추구하도록 자극하는 결과를 낳는다. 파우스트는 차츰 무한의 추구에서 다수의 행복을 위한 활동을 시작한다. 100세에 달한 파우스트는 실명하지만 내면의 빛은 꺼지지 않아, '영원히 여성적인 것'에 의해 천상으로 인도된다. 

 

2. <파우스트(Faust)> 해설

 

(1) 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년 8월 28일∼1832년 3월 2일, 향년 83세)의 파우스트 비극이라고 부르는 이 희곡을 만들자는 구상을 가진 것은 괴테가 20세 무렵 즉 쉬트라스브르크 대학생 시절이며 초고 <파우스트>를 쓴 것은 24세(1773년) 때였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이 원고는 오랫동안 상실되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는데, 백 년 가까이 지나서 1871년에 그것의 복사가 발견되고, 그러고도 17년 후에 에리히 쉬미트에 의해서 발표되었다 그래서 최초에 간행된 <파우스트>는 두 번째 원고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대략 나중에 제1부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아직 단편인 데에 불과하여, 그레트헨 비극으로도 완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

 

그후 쉴러에게 권고를 받기도 하여 1808년에 제1부가 출판되었다. 제2부도 약간 집필하고 있었지만 그후 오랫동안 중단 기간이 생기고 1824년에 영국의 천재 시인 바이런이 그리이스 독립 전쟁에 나가서 영웅적으로 죽었을 때, 이 시인의 재능을 사랑하였던 괴테는 강한 자극을 받았으며, 그것이 제2부 집필의 계기가 되었다.

 

전편이 완결된 것은 그가 죽기 전년인 1831년 8월이고 이 이상 이 작품으로 괴로움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던 그는 그 원고에 엄중하게 봉인을 하였는데, 그 다음해 1월에는 자부 옷티일리에게 읽어 주기 위해서 봉인을 떼고, 그때에도 약간 가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가 별세한 것은 2개월 후의 일이다. 이처럼 그것을 완성하는 데에 있어 60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걸린 이 희곡에는 질풍노도시대에서 고전주의 시대를 거쳐서 만년의 종합적 대성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의 궤적을 남기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등장하는 전설적 파우스트는 비텐베르크의 크니트링겐 시에서 태어났으며, 15세기 말에서부터 16세기에 걸쳐서 실재하였던 연금술사 독토르 요한 파우스트를 핵심으로 하여 이것에다 당시에 奇術같은 것을 부려서 어리석은 백성들을 농락한 방랑 학생 과 마술사 등의 전설이 부가되어서 성립한 것이고 16, 17세기경에는 파우스트 전설이 세상에 유포되었다.

 

그것이 처음으로 서적의 형태를 갖춘 것은 1587년에 괴테의 고향 프랑크푸르트의 서점 쉬피이스에서 나온 것이고 또 영국의 배우 겸 작가 마알말우에 의해서 비극 <포오스타스 박사의 비화>가 나왔다. 이 마알로우의 극이 영국의 방랑 배우에 의해서 도리어 도이치로 역수입되어 민중극을 낳았고, 또 그것이 인형극으로서 상연되기도 하였다.

 

(2) 파우스트 전설 내지 파우스트극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있기 때문에 일정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주인공은 전통적 기독교의 속박에서 해방되려고 하는 문예부흥(文藝復興)과 종교개혁(宗敎改革) 시대의 산물(産物)이며 거인(巨人)이다.

 

모든 학술을 연구하여도 결국 만족을 얻지 못하는 파우스트는 악마의 힘을 빌어서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고, 거부를 얻고 향락을 누리며 잠시나마 신과 필적하는 것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여, 여기에 악마와 계약을 맺게 된다. 즉 악마는 24년간 파우스트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모든 봉사를 하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반대로 파우스트를 자기 소유로 한다는 계약이다. 그래서 파우스트는 악마를 데리고 세계를 유랑하고, 악마의 힘에 의해서 모든 쾌락을 맛보고, 공작의 궁정에 체재하여 사자를 불러 내 오고 공자 부인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지만, 모든 욕망의 포만도 마음속에 만족을 느끼게는 하지 못한다.

 

그는 드디어 회오(悔悟)의 정에 못 이겨 충심으로부터 신에게 기도를 드리려고 한다. 이 결정적인 순간에 악마는 그에게 그리이스의 최고 미인 헬레나를 데리고 온다. 파우스트는 그 여자의 미에 도취하여 그녀의 몸을 얼싸안는데 헬레나는 복수의 여신으로 화하고 파우스트는 악마에 의해서 지옥으로 납치되어 간다. 그것은 즉 약속했던 24년의 기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괴테가 어렸을 때 정들었던 인형극의 줄거리는 대략 그와 같은 것이었다. 그밖에도 그는 대중본 파우스트도 읽었을 것이다. 천지간의 모든 것을 알고, 거기에서 재배하는 이법(理法)을 탐구하고, 자아를 확대하여 신에게 육박하려는 거인, 더구나 이와 같은 대망 때문에 만족이라는 것을 모르고 미혹과 고뇌를 면치 못하는 인간의 숙명, 이것은 괴테에게 있어서 젊었을 때부터 굉장한 매력을 느낀 제재였다. 파우스트적 충동과 숙명이란 즉, 괴테 자신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재를 다루고, 이처럼 위대한 과제를 푸는 데에는 그의 80여 년의 전생애의 체험과 지혜를 필요로 하였다. 더군다나 결말이 항상 멸망하도록 되어 있는 전설의 인물을 구제되는 것으로 구상한 점에 괴테적인 인생관이 있으며, 또 그것이 많은 논자들의 문제가 되어 있는 점이기도 하다.

 

(3) <파우스트>는 괴테 필생(畢生)의 작품일 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 처음으로 주창한 "세계 문학"으로서 통하는 위대한 작품이기도 하다. 무릇 세계 문학의 걸작에 나타나 있는 인물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전인류적인 문제와 관련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파우스트 박사라는 개인의 저주에서 구제에 이르는 각가지 체험, 운명, 발전은 인류 그 자체의 운명과 발전을 집약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 희곡 전체의 구성 속에 숨어있는 진실성이 개인과 전체와의 역사적 발전의 통일에 의해서 산출된 점이에서 이 작품을 따를 작품은 없다. 괴테는 계몽주의(啓蒙主義) 사상에서 그 핵심을 이루고 잇는 "인류의 진보"에 대하여 부동(不動)의 신념을 이어 받았다. 그러나 개인 의 운명에 대해서는 지극히 냉철한 눈으로 쳐다보고 인류의 진보는 수많은 개인적 비극 사이를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양자의 변증법적(辨證法的) 관계를 생각하고 있었다.

 

<파우스트>가 비극이라고 하는 것은 파우스트 박사가 걷는 길이 이와 같은 뜻에서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파우스트>가 보통으로 말하는 비극과 다른 점은, 제2부 제4막 이하에 전개되는 "구제(救濟)"의 장면에 있어서 창조 전 활동에의 자각이, 인류의 미래를 향해서 밝은 빛을 던지고 있는 까닭이다. 파우스트가 이 "구제"에 도달하기까지에는 네 개의 단계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4) 네 단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제1단계에서는, 파우스트가 우주의 원리를 구명(究明)하려고 하는데 지식의 무력성에 환멸을 느끼고 악마의 도움을 빌어서 모든 현세의 관능적(官能的) 향락(享樂)을 다 맛보려고 생각한다. 제1부 모두(冒頭)의 "밤"의 장면에서부터 "마녀(魔女)의 부엌"까지가 제1단계에 해당한다.

 

② 다음으로 마녀가 만든 약으로, 이제 20대의 청춘으로 소생한 파우스트가 교회에서 돌아오는 마르가레테를 만나는 "길거리"의 장면에서 제1부의 종말 "감옥"의 장면에 이르는 소위 '그레트헨의 비극'이 계속된다.

 

파우스트는 처음에 악마의 사주를 받아 관능적 흥미를 가지고 이 순진한 소시민의 딸에 접근하지만, 그레트헨의 순결성을 보고 자기 욕망을 부끄러워하며 점점 마음속에 애정을 품게 된다. 그러면서도 파우스트의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나아가라, 향상하라 !'는 억제할 수 없는 인간적 충동이 용솟음 쳐서 그레트헨이라는 "소세계(小世界)"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처럼 자기의 인간적 완성을 구하는 내면적 욕구가 그레트헨과의 사랑으로부터의 탈출이 되어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점에 이 연애 비극의 참다운 심각성이 있는 동시에 그레트헨 비극이 괴테의 비극 가운데서 가장 전형적인 것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다. 파우스트의 그레트헨에 대한 사랑은 진실성이 깊은 것이 되면 될수록, 이처럼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비극적이 된다. 이런 의미의 연애의 고뇌는 <베르테르>이래 일관하는 괴테의 인생 경험이었다.

 

③ 제2부로 들어가면 "헬레나 비극"이 전개된다. 이 비극의 뜻을 요약하면, 파우스트가 "그레트헨 비극"을 극복하여 심신(心身)이 다 회복되고 새로운 기분을 가지고 미를 추구하며, 그것에 의해서 생의 진의를 파악하려고 하는데, 이것도 결국 그를 구제하는 것이 되지 못한다. 고전미의 이상을 체험하는 헬레나가 현실적으로 파우스트의 눈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제3막에 들어가서 "스파르타에 있는 메넬라스의 궁전 앞"의 장면에 이르러서부터다. 제1, 2막은 말하자면 헬레나의 출현을 준비하는 단계이고, 거기서 괴테는 고전미의 발전상(發展相)을 그리려고 한다. 헬레나와의 결혼은 조숙한 천재아 이오포리온을 낳게 하지만, 오이포리온은 파우스트(게르만 정신)와 헬레나(그리이스 고전미의 이상)와의 결합을 상징하고 있다. 오이포리온의 생명은 허무하게 끝나 버린다. 즉 고전미와 결합하여 넘쳐 흐르는 생명력을 얻은 도이치 정신도 이것을 담을 만한 새로운 형식을 얻지 못해 비극적인 결말을 고한다. 이것이 제3단계이다.

 

④ 제4단계는 파우스트가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이웃 사람들을 위하여 새로운 행동을 개시하여 적극적인 행동인으로서 사회와 인류를 위해서 창조적 활동을 보이며 여기에 참다운 구제를 받게 되는 제4, 5막이 그 것에 해당한다. 괴테는 생산력의 발전에 의한 인류의 진보 향상을 믿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구제 사상은 "윌헬름 마이스터"의 구극적 사상과도 일맥 상통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해결도 <베르테르>에 있어서의 자살처럼 실은 문학 작품의 예술적 해결에 불과하고, 인간이 자기를 환성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파우스트아 메피스토와의 대결은 인간 내부에서 영원히 계속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희곡은 주인공 파우스트와 메피소토와의 결연에서 시작되어 결연으로 끝나고 있지만, 메피스토는 특별히 객관적 존재를 가지고 있는 악마(惡魔)라고 볼 필요는 없고, 그것은 인간에게 내재하는 하나의 요소이며 경향이다. 이와 같은 요소를 내부에 지니고 있는 인간이 자기의 의욕을 실현하려고 할 때 그는 그 국한된 능력 때문에 지극히 불충분하게 나타날 뿐이다. 그러나 만일에 인간이 그 굳센 의욕대로 생각하는 바에 의해서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 하면 결국 어떤 결과에 도달할 것인가. 그것을 구명하기 위해서는 의욕 실현의 가능성을 극도로 확대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 때문에 마법(魔法)이라는 것의 설정이 필요해진다. 마법에 의해서 파우스트적인 무한의 의욕이 고도로 발휘될 경우에 인간은 결국 어디로 갈 것인가. 파우스트 전편에 참으로 이와 같은 전인간적인 문제를 끝까지 탐구한 시성(詩聖)이 그의 전생애를 바쳐서 죽기 직전에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는 것도 이와 같은 성질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괴테 자신이 "측량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말한 것처럼 파우스트는 동서 고금의 지식과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모든 시형을 구사하여 다방면의 뜻과 가지가지 상징이 포함되어 있다.

 

(5) 전술한 파우스트와 헬레나, 이 양인(兩人) 결합의 정신사적 상징이라든지, 파우스트가 사회 국가를 건설하여 "안으로부터의 창조의 향락"에 존재의 의의를 찾고 인류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행동하는 인간이 되는 것, 그것은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차지하는 사람만이 그것을 누릴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라는 말로써 결정(結晶)되었다.

 

괴테가 80평생을 데모오니시한 힘에 의해서 움직였으며 양극성의 이념이 그의 체험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무한에의 동경, 진리와 순수 활동에서의 의지로 "지선(至善)"을 향해서 돌진하는 <파우스트 정신>의 현대적 의의는 이루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적(神秘的)이다.

 

좌우간 후세의 사람들이 괴테의 문학 세계를 "순수하게 인간적인 것의 승리"라고 단적으로 표현하여 찬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리하여 괴테가 품고 있었던 <문학> 세계의 이념이 파우스트라는 도이치 고전주의 문학의 금자탑(金子塔)을 통해서 영원 불멸의 독특한 모습으로 빛난다. 그가 제창한 세계 문학의 이념은 결코 국민 문학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국민적인 문학이야말로 동시에 뛰어난 세계 문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파우스트>가 시종 일관하여 도이치 국민적인 특질을 지니고 있는 점으로 여실히 증명될 수 있다. 

 

3. 작품에 대한 주변 정리

 

(1) 독일에서 전해지는 파우스트 전설을 극화한 괴테(Goethe 1749 - 1832)의 대작으로, 신과 악마 사이에서 방황하는 한 인간의 내면을 그리고 있다.

 

(2)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천사를 등장시켜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종교적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3) 인간인 파우스트의 내면으로 들어가 인간의 한계에 대해 관조하는 형이상학적인 태도를 보인다.

 

(4) 그래트헨과 헬레네 등의 여인과의 사랑을 묘사하여 낭만주의 극의 특성을 보인다.

 

(5) 주제 - 인간의 한계와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신념 

 

4. 작품의 분위기

 

(1) 맨 앞부분인 <천상의 서곡>에서는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걸고 현세적인 쾌락과 교환할 것을 내용으로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장면이 놓여 있다. 악마의 유혹에 잠시 마음이 흔들려 영혼을 포기하고, 육체적인 쾌락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자신이 지금껏 걸어 온 진리 추구의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파우스트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다.

 

조금 더 세심하게 이 작품을 읽으면(또는 연극을 감상하게 되면) 파우스트의 마음이 벌써 악마의 유혹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학자나 박사가 하는 일이란 게 고작 "말의 소매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외치는 대목은 자기비하의 감정이며, 정신보다는 육체를 갈망하는 악마의 편에 서기 위해 자신을 변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제1부의 발단은 박사이자 유명한 학자인 파우스트가 모든 학문을 탐구해도 마음이 충만되지 않음을 한탄하며 세계를 지배하는 본질을 아직 깨닫지 못함을 새삼 자각하는 부분이다. 제1부의 발단은 박사이자 유명한 학자인 파우스트가 모든 학문을 탐구해도 마음이 충만되지 않음을 한탄하며 세계를 지배하는 본질을 아직 깨닫지 못함을 새삼 자각하는 부분이다. 그는 한때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1503 - 1566, 1555년에 점성술에 기초를 둔 예언서를 둔 예언서를 발행했으나, 오랫동안 금서로 취금됨)에 심취하기도 한다.

 

(2) 발단부의 극적 기능

 

극의 발단부에서 이미 갈등의 기본적인 이유가 제시된다. 그러나 극작가나 배우가 직접 갈등을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 놓인 소도구나 배경 그림, 혹은 등장 인물의 사소한 대사를 통해 그 갈등의 일부만 암시해 주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는 마치 '스무고개 문답'에 비유될 수 있다. 우리는 여러 번의 질문을 통해 정답의 일부분을 암시받으면서 점차 수수께끼를 풀어 가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연극에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꺼번에 제시되는 게 아니라, 발단부에서 전개 부분에 이르기까지 아주 조금씩 서서히 밝혀지는 것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도 그가 왜 고민하고 있는지에 대해 서서히 드러내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약간의 균열이 심화되면 빌딩이 붕괴하는 것퍼처럼, 극의 발단부에서 제시된 사소한 갈등이 결국은 주인공의 극적인 파멸을 몰고 오는 것이다.

 

(3) 맨 앞부분인 <천상의 서곡>에서는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걸고 현세적인 쾌락과 교환할 것을 내용으로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장면이 놓여 있다. 악마의 유혹에 잠시 마음이 흔들려 영혼을 포기하고, 육체적인 쾌락을 얻고자 하는 마음과, 자신이 지금껏 걸어 온 진리 추구의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파우스트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다.

 

조금 더 세심하게 이 작품을 읽으면(또는 연극을 감상하게 되면) 파우스트의 마음이 벌써 악마의 유혹 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학자나 박사가 하는 일이란 게 고작 "말의 소매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외치는 대목은 자기비하의 감정이며, 정신보다는 육체를 갈망하는 악마의 편에 서기 위해 자신을 변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5. 파우스트 박사 전설의 희곡화

 

'파우스트'는 괴테 한 사람만의 노작은 아니다. 파우스트 박사에 대한 전설에 의하면 그는  과학이라는 요술과 또 악마의 요술을 둘다 가지고 불변의 지식을 추구했던 사람이다. 실존의 인물인 '요하네스 파우스트'는 1480년부터 1540년까지 살았다. '요하네스 수피스'라는 사람이 이 파우스트 박사의 모험적인 생애를 각색하여 27년 뒤에 이야기로 꾸몄는데, 이것이 17-18세기에 독일에서 행해지던 '인형극과 마당극의 바탕이 되었다. 이런 연유로 해서, 괴테는 이 파우스트의 전설을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있었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완성하는데 60년을 소비하였고 1774-1775년에 우선 '우어 파우스트(Ur-Faust)'를 제작, 1790년에 '단편 파우스트'를 간행, 1808년에 '파우스트 비극 제1부'를 발표, 1831년에 제2부를 완성하였다. 신과 악마의 대결이라는 중세 사회의 종교적 주제를 파우스트라는 인간의 내면으로 극화시킨 대작으로 평가된다. 

 

6. <파우스트>의 특징

 

(1) 내용

 

파우스트는 신과 異性의 범주를 떠나 악마와 쾌락의 범주로 타락하게 된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악마와의 결합을 새로운 인간형의 창출이라고 애써 변명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여기에는 '질풍노도'기의 낭만주의적 인생관과 예술관이 개입되어 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존재이다.

참된  인간은 잠시 어두운 충동에 동요할지라도 옳은 길을 망각하지 않는 법이다.

항상 노력하는 자는 구원받을 수 있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2) 구성

 

신과 악마, 천상과 지상, 완전 무결한 인간과 부족한 인간의 대비를 통해 연극적인 갈등을 제시하고 있다.

 

(3) 표현

 

타락한 인간만이 진실로 자연과 신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낭만주의 문학관의 핵심이다. 작자는 파우스트의 타락을 통해 신의 영광을 제시하는 역설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인생관은 '파우스트' 속에 하나의 역설로 제시된다. 파우스트는 신과 이성을 의심하고 악마와의 결합을 통해 인생의 본질을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한다. 그러나 정작 파우스트가 구원되는 것은 자기 스스로 배반한 신에 의해서였다. 이러한 역설을 통해 괴테는 궁극적으로는 신의 세계를 긍정하는 대단원으로, '파우스트'의 결말을 장식한다. 

 

7. 결말 부분에서 파우스트의 비젼

 

마지막에 파우스트가 보고 있는 것은 그가 추구했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젼이다. 파우스트가 죽자, 천사들은 그를 악마의 범주에서 구출하여 하늘로 당당히 호위해 간다. 작자는 파우스트가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성숙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실수를 저질러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을 신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이 위대한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은 천상에서의 신비의 합창으로 마감된다.

 

우리의 모든 과거 행위는

다만 희미하게 비칠 뿐,

우리에게는 미흡하던 모든 것이

여기서는 모두 충만하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여기에서 본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들이

우리를 천상으로 인도한다. 

 

8. 괴테

 

자유 분방한 생활

 

괴테는 라이프치히 대학에 들어간 후 작은 파리라고 불리는 이 도시에서 자유 분방한 생활을 하였다.  그 덕분에 병을 얻어 각혈까지 하게 되자 3년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 요양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요양 중에, 그는 친척이 되는 경건한 신자 프레텐베르크 경을 만났는뎌,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그트프리트 아르놀트의 ≪교회 및 이단자의 역사≫를 읽은 후 비교회적 범신론적인 종교관을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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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어느 봄날 교양 있는 청년 베르테르가 한 시골 마을에 나타난다.  그곳에서 그는 법관의 딸 로테를 알게 되어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의 약혼자 알베르트가 여행에서 돌아오자 그의 감정은 빛을 잃게 된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공사관 비서를 자청하여 떠나는 그의 마음은 쓸쓸하기만 하다.  알베르트와 로테는 그에게 소식도 주지 않고 결혼해 버린다.

 

이듬에 그는 고향을 방문해 로테가 있는 곳으로 간다.  그러나 이미 그의 운명은 다해 가고 있었다.  그는 로테에 대한 희망 없는 사랑과 귀족 사회에 대한 울분에 휩싸여 자살을 결심한다.  12월 21일 그는 알베르트가 부재 중일 때 로테를 찾아가 오시안의 시에 감격해 있는 로테를 자신도 모르게 꺼안아 버린다. 그 이튿날 그는 여행을 구실로 알베르트로부터 권총을 빌린다.  그리고 그것으로 한밤중에 자살하고 만다.  한 사람의 성직자도 참석해 주지 않은 채 그의 장례식이 치러진다.

 

영원하고 여성적인 것

 

"무릇 옮아가는 것은 모두가 영원한 것과의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  일찍이 채워지지 않는 것, 이제 여기에 채워진다.  형용하기 어려운 것, 여기서 이루어지고, 영원하고 여성적인 것, 우리를 이끌어 오르게 하도다."

 

이는 시극 <파우스트>제2부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에는 파우스트의 연인 그레이트헨과 같은 여성의 순결한 사랑과 지상 적인 것을 초월하고 싶은 염원이 담겨져 있다.  또한 남성적인 원리와 여성적인 원리와의 참된 결합이야말로 차원 높은 인간성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 있다.

 

파우스트

 

대학자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서로계약을 맺는다.  천지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 대신에 영혼을 가져가겠다는 계약이다.  그리하여 파우스트는 미남 청년이 되어 아름다운 처녀 그레이트헨의 마음과 육체를 독차지하게 되지만, 이 때문에 그녀를 죽게 한다.  그 뒤에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책략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괴테의 여인들

 

괴테는 1770년 대학 시절에는 제젠하이의 목사 딸 프리드리케 브리온을, 1772년에는 친구의 약혼자 샤로테 부흐를, 1774년 무렵에은 약혼자 리리 쉐레만을, 1775년에는 폰 슈타인 남작의 아내이며 7년 연상의 유부녀인 슈타인 부인을, 1786년부터 2년에 걸쳐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온 후에는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그리고 1822년 74세때에는 보헤미아의 온천으로 휴양하로 온 17세의 소녀 울리케 폰 레보초를 사랑했다.  이처럼 많은 여인들과 열애했던 체험과 반성이 그의 작품들 속에 나타나 있다.  괴테가 가장 오랫동안 연인으로 사귀었던 슈타인 부인은 괴테가 바이마르에 온 26세 때부터 그가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와 결혼한 58세 때까지, 때로는 그의 변함없는 이해자요 지도자이며 때로는 자유분방한 그의 생활 태도를 시정하고 이성적인 안정을 분 보호자로서 최선을 다했다.  괴테는 이러한 그녀를 항상 잊지 못했으며 그녀를 정신적인 등불로 여겨 찬미했다.

 

또한 74세의 괴테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17세의 소녀 울리케는 괴테의 청년 시절의 연인 프리드리케 브리온과 마찬가지로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냈다.  괴테를 아름다운 서정시를 짓는 시인이 되게 하였던 프리드리케는 말크에 있는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녀가 되었으며, 후에는 보헤미아의 그녀 집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1899년 9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작가 괴테에 대하여

 

괴테는 거인이다. [올림포스의 신]이라고까지 불리운다. 왜 그럴까? 대답은 간단하다. 거인답게 살았고, 거인다운 문학을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80평생에 걸친 삶의 행적을 좇으며 우리는 찬탄을 거듭할 수  밖에 없다. {괴테는 머리끝에서 발바닥까지 천재다}라고 하이네는 말했다지만, 그의 인생은 자신의 천재성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었다. 부단한 자기연마와 쓰지 않고는 못배기는 프로 정신-.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뼈를 깎는  노력의 연속이었다. 엄청난 양의 드라마, 소설, 시, 논문, 연구 보고, 1만5000통이 넘는 편지와 52년간의  일기를 그는 남겨놓았다. 심지어 정신적 안정을 얻으려 찾은 이탈리아에서 조차 단 하루도 무위하게  보내지 않았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자신을 혁신시키고 충실을 기하기 위해} 절치부심하였다.  대작 [파우스트]에 대한 집념은 어떠했던가? 20대의 청년기에 구상한 이 인간  드라마에 그는 60여년을 매달렸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절절한 화두이다. 그 속에는 한 개인을 넘어 전인류를 보듬어 안는 인간사랑의 정신이 넘쳐난다. 삶의 회의와 고뇌를 극복하고 파우스트는 외칠 수 있었다.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으로 아름답구나!}. 괴테는  비단 문학의 세계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26세때  초빙된 바이마르에선 재상에까지 이른 정치가였다. 인간과 예술의 연원이라고 믿는 자연을 탐구하기 위해 식물학, 동물학, 기상학, 지질학, 해부학, 광물학, 색채학까지 깊이있게 연구하였다.

 

괴테는 항상 정신적 편협성을 경계하고 열려있는 개방정신을  촉구했다. 독일인을 넘어 세계인으로 사고하고 창작하고 행동했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부터 [파우스트]에 이르기까지 질풍노도의 정열과 고전주의적 균제의 아름다움을 두루 호흡했다. 그는 작품 곳곳에서  인류애를 강조하고,  그 실천을 촉구했다. [영원한 여성]을 찬미함으로써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은 또 어떠한가? 호문클루스라는 인조 인간을 출현시켰고, 태환지폐의  발행으로 경제파탄을 막는 처방도 보여주었다.

 

200여년 전에 활동했던 세계시민 괴테의 위대함은 오늘날에도 건재하다. 프랑크푸르트의 생가와 바이마르 괴테하우스엔 그의 숭배자들이  연일 구름처럼 몰려든다. 그러나 괴테가 역설한 인간  사랑의 시대는 아직도 요원하다. 오히려  인간 상호간에 다툼과 불신과 냉냉함이 짙어가기만 한다. 자유로운 백성이 사는 복락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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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가 바라마지 않는 이상향은 언제나 지상에 이루어질까?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독일의 시인으로 교통, 상업의 요지인 프랑크푸르트에서서 궁정 평위원인 아버지와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한 그는 특히 어학에 뛰어났다.  17세에 라이프치히 대학에 들어가 법률 공부를 하며, 미술 연구와 회화, 문학 등에도 관심을 두고, 연애도 하고 약간의 창작도 하며 당시 유행하던 포코코풍에 젖어 자유롭게 생활을 하였다.

 

22세에는 알자스의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수학했다.  이때 이곳에 왔던 헤르더에 접근하여 자연과 민중과 개성을 존중하는 '질풍 노도'라는 새로운 문예관에 빠져들어 프랑스 문학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일의 독자적인 문학을 수립하는 기초를 얻었다.  23세에 졸업하고 고향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였으며, 24세부터는 천재적인 개성을 지닌 그의 창작 활동이 폭발하기 시작하여, 희곡 <괴츠>와 소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여 문명을 떨쳤다.  

 

27세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공 카를 아우구스트의 도움으로 정치 생활을 하면서 대신까지 되었다.  이 무렵 그는 광물학, 지질학, 식물학, 해부학 등의 자연 과학도 연구 하였다.  그러다가 과중한 업무에 지쳐 이탈리아로 도피했다가 돌아온 그는 고전주의를 절정기를 이루었던 그는 갖은 연애 사건으로 시대를 떠들썩하게 하면서도 창작에 열을 올렸다.  1806년 58세 때 나폴레옹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침입할 당시 크리스티아네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희곡 <파우스트>,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 <서덩 시편>, 자선전 ≪시와 진실≫, ≪이탈리아 기행≫,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작품으로 <첫사랑>, <이별>, <5월의 노래>, <사랑하는 사람 가까이>, <마음 변한 소녀>, <경고>, <넓은 세계로>, <목자 탄식의 노래>, <나그네의 밤 노래>, <미뇽에게>, <탄금 시인>, <마왕>, <툴레의 임금님>, <신비의 합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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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 작품에 제작 경위

 

(1) 이 작품은 괴테가 쉬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사의 학위를 받고 귀향하여 프랑크푸르트에서 아버지의 권유에 못 이겨 변호사 개업을 시작한 데에 그 원유(原由)를 갖는다. 아버지의 감시 하에 1주일 동안에 그가 해 치운 업무량이 아버지가 1년 걸려 해내는 양과 비견되는 데에 놀란 아버지는 곧 그로 하여금 곧 그 당시 도이치의 대심원이 있었던 베츨러로 가서 수습 판사 생활을 하게끔 하였다.

 

처음 그가 그곳에 도착하였을 때는 주위도 살벌하여 매일 대하는 것이라야 먼지 속에 파묻힌 판례(判例)를 뒤적이는 것뿐이어서 그의 말대로 1주일도 못 견딜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던 것이 어느 무도회에서 자기 친구인 케스트너의 약혼자 샤를로테·부프를 사귀게 되었다. 이 샤를로테를 알고 나서부터 그에게 고민이 생겼고, 이 고민의 피난처를 이 작품 속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어느 하나의 대상을 연모하거나 존경하다가 그것이 도저히 자신에게 독점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내리면 으레 그는 작품의 세계에서 피난처를 찾았기 때문이다.

 

(2) 그는 고민하던 끝에 베츨러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샤를로테에 대한 연모의 정은 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늘 케스트너와 샤를로테에게 서신을 보내어 그가 거기에서 보낸 시절에 대한 추억을 새롭게 하였다. 거기에다 고향에 돌아 온 후 여러 가지로 불쾌한 일이 많았기 때문에 생활력이 강한 청년이면서도 가끔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한 일이 있다. 마침 이때 그가 베츨러에서 알게 된 예루살렘이라는 청년이 어느 유부녀에게 연정을 품다가 그것이 도저히 이룰 수 없다는 절망에 그만 자살을 하고 만 소식을 들었다. 그후 괴테는 직접 베츨러에 가서 예루살렘이 자살하게 된 경위를 체스트너와 샤를로테로부터 듣고 <베르테르>의 구상을 완전히 하였다.

 

(3) 이 작품에 나오는 베르테르가 괴테 자신의 분신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일부는 예루살렘을 그 모델로 삼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로테는 물론 샤를로테·부프를 그대로 등장시켰으며 나산제 이무에서 결혼 후의 로테는 샤를로테라기보다는 괴테가 그 당시 출입이 잦았던 늙은 친지인 무렌타노이의 불행한 저 막시밀리아네가 모델이 되어 주었다. 알베르트역의 케스트너는 작품 속에서 실제의 그보다 약간 성격적으로 악화된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그러기에 이 작품이 발표되자 누구보다 먼저 케스트너가 이의를 제기한 하고 나선 것이다. 그밖에 샘터나 무도회나 보리수 그늘이나 재회의 대화 같은 것은 모두 괴테 자신이 체험한 것이라 한다.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괴테의 감성적(感性的)이고 관능적(官能的)인 면은 당시를 풍미하던 계몽주의(啓蒙主義) 사상에 대한 일종의 반동(反動)의 표현으로써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그 당시를 평하기를 인간의 감정을 폭발할 길이 없어 감정의 태아의 시체가 머리를 살갗에 싸여 머리는 그의 공동 묘지로 화했다고 평할 정도였으니까, 괴테가 이렇게 자기의 감정을 여지없이 폭발시켜 질풍과 노도(疾風怒濤 - strum und Drang)같이 시대에 앞장서는 기수가 되었던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감상적인 경향을 보이면서 그 시대의 조류인 낭만주의의 이상을 구체화한 감이 없지 않다. 

 

2. 작품의 개관

 

(1) 이 작품은 낭만적인 사랑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괴테의 서한체(書翰體) 소설이다.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편지를 통해 친구에게 고백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술과 연인에 대한 사랑의 열정을 제재로 하여 "아름다움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

 

(2) 이 작품은 작자인 괴테 자신의 사랑의 체험엣 비롯된 것으로 전한다. 이 작품 속에 매력적인 젊은 청년 베르테르가 괴테의 회신인 셈이고, 베르테르가 갈망하던 로테라는 여인은 샬롯테 뷔페라는 실존 모델 속에서 창조된 것이다.

 

괴테는 베르테르라는 허구적 인물이 다른 친구인 빌헬름에게 보낸 서한과 일기의 형식을 차용하여 소설을 전개시켰다. 이 작품에는 독인 낭만파를 이끌어간 '질풍노도(疾風怒濤, strum und Drang)'의 이념과 정열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반면 이 작품에서의 법칙은 시민 사회를 유지하는 법칙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의 고전주의 문학 작품이 엄격한 법칙만을 강조함으로써 자연의 진정한 감정을 솔직하고 자유분방하게 표현하지 못했다는 비판의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한 말이다. 법칙을 준수하고 타산적인 이성에 꿰맞추어 사는 일이 시민 사회의 미덕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와는 정반대로 정열적인 사랑과 순수한 열정이 더욱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의 낭만주의적 사고가 잘 집약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당시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旋風的)인 노란색 복장이 크게 유행하고, 여인을 위해 자살하는 베르테르의 비극적인 자살까지 유행했다는 일화가 남겨져 있다. 괴테의 예술에 대한 낭만주의적 사고, 예술적 천재에 대한 예찬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3) 이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사랑을 예찬하는 듯하면서도, 그 이면에는 평범함을 거부하고 순수와 열정으로 인해 고통받는 진정한 예술적 천재의 내면을 토로(吐露)하는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비유하자면 '배부른 돼지가 되느니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역설과도 통한다. 베르테르의 슬픔은 일차적으로는 기혼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현실의 온갖 법칙과 제도를 뛰어넘어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낭만주의자들의 비극이 담겨 있다. 이 슬픔은 낭만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젊은이,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만 주어진 하나의 특권인 셈이다.

 

 3. 형성 평가

 

(1) 다음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구절이다. 이 대목과 <젊은 느티나무>를 비교하면서 순수하고 낭만적인 사랑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보자.

 

(가) 한 젊은이가 어떤 처녀에게 마음이 끌려서 하루 종일을 그녀 곁에서 지내며, 매순간순간을 그 처녀에게 완전히 헌신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의 모든 힘과 모든 재산을 탕진해 버렸다고 하세. 그런데 그때 어떤 속된 인간, 예컨대 공직에 있는 남자가 찾아와서는 그 청년에게 "여보게 젊은이 ! 사랑이란 인간적이라네. 그러니 자네는 인간적으로 사랑해야만 할걸세 ! 자네 시간을 나누어서 하나는 일하는 데 바치고, 나머지 휴식 시간을 자네의 연인에게 바치도록 하게. 그리고 자네의 재산도 잘 계산해서 자네가 필요한 데 쓰고 남는 것이 있어서 그녀에게 선물을 한다면 반대하지 않겠네. 그러나 너무 자주 해서는 안 되고 그녀의 생일이나 행사 때 하도록 하게." 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그 젊은이가 그 말을 따른다면 그는 유용한 젊은이가 될 걸세. 하지만 그 젊은이의 사랑은 끝장난 것일세.

 

(나) 그가 예술가라면 그의 예술은 끝장난 것이고. 아아, 친구들이여 어찌하여 천재의 흐름이란 그다지도 드물게 솟아 나오고, 거대한 홍수를 이루어 용솟음치며 그대들의 놀란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일이 드물까 ?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거기 천재의 흐름의 양쪽 강변에는 평범한 인간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의 조그만 정자나 튤립 화단이나 채소밭이 파괴될까 염려하여 그들은 적당한 때에 제방을 쌓고 도랑을 파서 미래에 닥쳐올 위험을 막는 거라네.

 

☞ 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젊은 부인과 사랑에 빠져 마침내 자살하고 만 베르테르의 순수한 열정과 사랑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 실린 부분은 베르테르가 부인을 사랑하는 데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면서, 친구 빌헬름에게 자신의 심경을 변명하는 장면이다. 베르테르는 바로 이 장면의 앞에서, 한 어머니와 어린 아이가 공원에 나와 사탕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어머니는 사탕이 몸에 좋지 않으므로 조금만 먹어야 한다며, 말하자면 절제(節制)의 미덕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베르테르는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인생이 마냥 행복한 것임을 느낀다. 절제의 미덕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하고 순탄한 사람들의 평화로움에 대한 깨달음 때문이다. 그러나 베르테르는 자신은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고 외친다. 이미 그는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② 괴테는 이 작품 속에서 인생의 의미, 예술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법칙을 준수하고 타산적인 이성에 맞춰 살아가는 것에 평범한 삶의 즐거움이 있다 해도, 천재의 예술과 젊은이의 사랑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천재는 거대한 힘으로 용솟음치는 물결과도 같으며, 조그만 꽃밭 하나가 손상될까 봐 조바심 치며 내일을 위해 제방을 쌓는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이 이 글 속에 웅변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괴테의 웅변은 '질풍노도(疾風怒濤)'로 요약되는 독일 낭만주의의 출발점이 된 바 있다.

 

③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는 젊음의 열정과 첫사랑의 고귀함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괴테의 낭만주의적 세계관과 닮아 있다. 이 작품 속의 주인공 숙희는 마치 베르테르가 그러했던 것처럼,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베르테르가 사회적 지탄을 감수해야 했던 것처럼 그녀 또한 이복 남매와의 사랑이라는 금기(禁忌) 앞에서 심한 정신적 열병을 앓고 있다. 그녀의 열병은 베르테르의 자살과도 같이 매우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현실 속의 사랑을 포기하고 이상 속의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이러한 정신적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 점이 <젊은 느티나무>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구분하는 갈림길이다. 또한 이런 점에서 <젊은 느티나무>는 낭만적인 사랑의 열정을 이상적인 사랑의 감정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dollti(0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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