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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반도체 단지’ 추진국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일들] ....

뚝섬 2024. 4. 29. 06:46

[‘세계 최대 반도체 단지’ 추진국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일들]

[투자 유치 美 반도체기업 R&D 부지에 아파트 지으려던 정부]

[K반도체 주력 생산 기지, 미국으로 옮겨갈 수도]

[왜 반도체는 비행기로만 실어 나를까]

 

 

 

세계 최대 반도체 단지’ 추진국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일들 

SK하이닉스가 용인시 원삼면에 추진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SK하이닉스 제공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기업인 미국 AMAT가 경기도 오산에 지으려던 연구개발(R&D) 센터가 정부의 무신경 탓에 암초에 부딪혔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 성과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투자 건으로, AMAT가 토지를 매입하고 기본 건축 설계까지 끝냈는데 국토부가 오산시 가장동 일대를 공공 택지 후보지로 발표하며 이 부지를 포함시킨 것이다. 공공 택지로 지정되면 개발 행위가 금지돼 R&D 센터 신축이 불가능해진다.

 

AMAT의 R&D 센터 부지는 세계 최대 규모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불과 18㎞ 떨어진 곳이다.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에 동참하겠다며 투자를 결정한 글로벌 기업을 정부가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골탕 먹여도 되나. 반도체 산업을 ‘국가 전략 자산’이라고 말해 온 정부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부지 확보와 용수 문제로 3년간 첫 삽도 못 떴던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은 발전소 문제에 또 발목 잡혔다. SK는 LNG 발전소를 지어 반도체 공장에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지만 산업부가 ‘탄소 중립’을 이유로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는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대량 전력 공급이 어려운데, 기업이 어쩌란 말인가.

 

미국과 일본은 막대한 보조금을 앞세워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고 있다. 대만은 국가가 앞장서 반도체 공장의 전력·용수 공급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다. 한국에서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송전선 문제 때문에 5년을 허비하는 식의 황당한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기업 투자액의 15%만 세액공제 해 주는 인색한 제도를 운용하면서 공장 못 짓게 온갖 방해까지 하면 어떻게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나.

 

현장에선 행정이 사사건건 발목 잡고 있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반도체 현안 점검 회의’에서 “국가의 모든 역량을 결집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성공시켜야 한다”면서 “전력·용수·주택·교통 등 인프라 구축 상황을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 지시와 일선 부처 행정이 제각각 따로 놀고 있다.

 

-조선일보(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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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유치 美 반도체기업 R&D 부지에 아파트 지으려던 정부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의 게리 디커슨 CEO를 접견하고 있다. 2022.10.7

 

대통령실 제공미국 1위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스(AMAT)의 한국 연구개발(R&D)센터 건립 계획이 우리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업무 혼선 탓에 차질이 빚어졌다. 센터를 지으려던 땅을 정부가 주택 공급을 위한 공공택지 후보지로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방미 때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고 자랑한 사업인데,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AMAT는 재작년 9월 2025년까지 한국에 R&D센터를 짓기로 하고, 투자신고서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했다. 작년 8월에는 경기 오산시에 땅도 매입했다. 그런데 석 달 뒤 국토교통부가 이 땅을 공공택지 후보지로 발표하는 바람에 건물 신축 등 개발이 불가능해졌다. 뒤늦게 오산시는 시 소유 땅을 대신 제공하거나, 택지용도를 바꾸는 방안 등을 AMAT와 협의 중이라고 한다.

문제가 생긴 건 중요한 투자 사안을 놓고 정부 내에서 유기적 공조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택지 지정 전 협의 때 오산시가 AMAT의 투자계획을 알려주지 않아서라고 하지만 책임을 피하려는 변명처럼 들린다. 우리 경제의 사활이 걸린 반도체 산업 관련 투자를 놓고 국토부와 산자부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심각한 문제다.

외국 기업의 투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SK하이닉스는 경기 용인시에 120조 원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밝힌 후 5년 넘게 지났지만 착공조차 못 했다. 토지보상 문제, 주변 지자체와의 물 공급 갈등 등으로 지연됐다. 최근에는 공장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짓는 문제가 걸림돌이다. 나중에 급증할 전기 수요를 고려하면 발전소가 필요하지만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문제가 생길까봐 담당 부처가 주저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일본에선 대만 TSMC와 합작한 구마모토 반도체 공장이 투자 결정부터 완공까지 2년여 만에 끝나 ‘양배추밭의 기적’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와 의회, 지자체가 한 팀으로 움직여 토지 확보, 인허가 등 모든 절차를 초고속으로 진행해 가능한 일이었다.

AMAT, ASML 등 세계 굴지의 반도체 장비 기업이 한국 투자를 검토하는 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지자체는 주요 고객을 찾아온 외국인 투자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한복판에 뛰어든 나라들 가운데 기업 투자를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동아일보(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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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반도체 주력 생산 기지, 미국으로 옮겨갈 수도 

 

삼성전자 미국 반도체 투자 발표회./뉴시스

 

미국 내에 반도체 첨단 공장을 세우는 삼성전자에 미 정부가 64억달러(약 9조원)의 보조금을 현금으로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인텔(85억달러), TSMC(66억달러)에 이어 셋째로 많다. 삼성전자가 당초의 ‘170억달러 투자’ 계획보다 규모를 2배 이상 늘려 ‘10년간 400억달러(약 55조원) 이상 투자’를 결정한 데 대한 보상이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최첨단 메모리 반도체인 2나노급도 미국 공장에서 생산키로 했다.

 

우리로선 K반도체의 주력 생산기지가 미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2021년 4월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자립주의’를 선언한 지 3년 만에 미국은 설계부터 생산, 첨단 패키징까지 모든 공정을 미국 내에서 완결하는 반도체 생태계 조성의 큰 그림을 마무리 지었다. 2022년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하고 보조금 73조원(527억달러)을 유인책으로 제시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로부터 총 487조원의 투자를 유치한 것이다. 2030년까지 첨단 반도체의 20%를 미국 안에서 생산하겠다던 공언이 착착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미국만 뛰는 게 아니다. 지난 3년간 미·중은 ‘1000일 전쟁’으로 불릴 만큼 치열한 반도체 주도권 경쟁을 펼쳤다. 미국의 첨단 반도체 규제에 맞서 중국은 세계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범용 반도체로 눈 돌려 시장 장악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2년 이후 올해 말까지 미국에서 착공하는 반도체 공장이 25곳인데, 같은 기간 중국이 자국에 짓는 반도체 공장이 20곳에 달한다.

 

일본도 반도체 산업을 회생시키려 대만 TSMC와 손잡고 생산 시설 확충을 위한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일본 정부·지자체·의회의 적극적 지원 덕분에 TSMC의 구마모토 1공장은 당초 계획보다 2년이나 앞당겨 불과 2년 만에 완공됐다. 일본 정부는 TSMC 구마모토 1공장 건설에 4760억엔(약 4조2400억원)을 지원했고, 2공장 건설에도 최대 7320억엔의 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반도체 지각 변동의 중대한 시기에 주요국이 세금을 쏟아부으며 반도체 산업 유치에 총력전이지만 한국은 ‘대기업 특혜’라는 반(反)기업 정서에 묶여 보조금 지급은 엄두도 못 낸다. 우리도 2043년까지 총 622조원이 투자되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정부의 현금성 지원은 기업 투자액의 15%를 세액 공제해주는 것이 전부이고, 그나마 올 연말로 시효가 끝난다. 지자체들 훼방으로 SK하이닉스의 용인 클러스터 착공에만 3년이 걸릴 지경이다. 이런 나라에서 반도체 산업이 언제까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겠나.

 

-조선일보(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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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반도체는 비행기로만 실어 나를까

 

[변종국의 육해공談]

 

지난해 국내 공항에서 항공기에 실려 해외로 수출된 품목의 총액은 1835억 달러(약 256조 원)였다.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였다. 반도체 품목의 총수출액은 970억 달러(약 136조 원)로 항공 화물 전체 수출액의 약 53%에 달했다. 수출입 통계가 본격적으로 집계되기 시작한 1988년 이후 반도체가 항공 화물 수출액 1위 자리를 내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반면, 지난해 국내 항만을 통해 나간 반도체 품목은 16억 달러에 불과했다. 주력 수출 상품인 메모리 반도체의 항만 수출액은 ‘0’원이었다. 사실상 반도체를 항공기로만 실어 나른 셈이다.


국제 상품 이동의 95%는 항만을 이용한다. 그렇다면 왜 반도체만 항공기로 실어 나르는 걸까? 리드타임(주문부터 실제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과 품질 문제 때문이다. 화물기는 배보다 빠르고 운항 일정이 정확하다. 공항만 있으면 세계 어느 곳이든 운송할 수 있다. 반도체는 매우 예민하다. 작은 충격이나 흠집, 심지어 물 한 방울만 닿아도 품질에 문제가 생긴다. 선박은 이송 도중 집채만 한 파도를 만날 수 있다. 염분과 해풍, 고온 또는 혹한의 날씨, 습도 등에 오래 노출되는 건 반도체 품질에 치명적이다.

화물기의 경우 온도와 습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화물기 화물칸의 온도 범위는 4∼29도인데, 조종사들은 반도체를 운송할 때 화물칸 온도를 대개 ‘로(LOW)’ 상태(4∼10도)로 해 놓는다. 반도체 성능에 지장을 주지 않는 온도다. 운항 고도가 높을수록 습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습기 걱정도 없다. 화물기 바닥에는 고박장치가 있고, 상품 자체를 벨트로 여러 번 둘러 꽁꽁 싸매기 때문에 난기류를 만나도 반도체에는 충격이 거의 없다고 한다.

반도체와 항공기는 불가분의 관계다. 화물기를 운용하는 항공사가 있기에 반도체 수출이 가능하다. 반대로 반도체도 항공사들을 먹여 살린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화물 사업 덕분에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화물 운임이 급등했던 것이 호실적의 가장 큰 이유였지만, 반도체와 같은 국가대표 수출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성과다. 대만의 중화항공도 2020년 코로나 위기에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대만에 세계 1위 파운드리(위탁생산)업체 TSMC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1970년대부터 반도체를 수출해 왔다. 대한항공은 1971년 처음 화물기 사업을 시작했다. 반도체와 화물기가 서로 없이는 못 사는 관계가 될지 그땐 상상이나 했을까.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사업부 매각이 진행 중이다. 유럽연합(EU)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조건으로 아시아나의 화물 사업 분리 매각 조건을 제시하면서다. 업계에서는 기대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양사의 통합은 국가 물류망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항공 화물은 사이클 사업이라서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가면서 온다. 적자를 낸 기간도 적지 않다는 의미다. 한 항공업계 임원은 “솔직히 화물은 돈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애국한다는 마음으로 화물 사업을 유지했던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초대형 항공사가 탄생하면 그저 모든 게 좋을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만 그리고 있는 건 아닐까. 신중히 생각해 볼 문제다.

-변종국 산업1부 기자, 동아일보(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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