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성치는 민생의 현장에 장관들이 없다]
[해외 탈출 2800곳 vs 국내 유턴 22곳, 기업 내쫓는 나라]
['24시간 군인대출' 오늘도 성업중]
아우성치는 민생의 현장에 장관들이 없다
집값 치솟고 '영끌' 현상 심각
식당은 배달비로 몇 년째 신음
해결 위해 달려드는 장관 없어
관료 조직 자발성 회복시켜야
문재인 정권이 실패한 이유를 한두 가지로는 꼽기 어렵다. 굴종적인 대북(對北)·대중(對中) 관계, 극단적 정치 양극화를 초래한 적폐 청산, 원전 생태계 파괴, 청와대 조직을 동원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서해 공무원 피살 방관, 탈북자 강제 북송….
이런 숱한 악행들에도 불구하고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결정적인 요인을 꼽으라면 단연 ‘조국 사태’와 부동산 문제, 두 가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것들은 정치·이념의 문제이지만 두 사안은 국민들의 상식적인 정의감을 거스르고, 생활과 직결된 문제였다. 이 두 가지가 지금 거의 다 상쇄되고 있다. 조국 사태는 김건희 여사 문제로 덮이고, 부동산은 문 정권 때 못지않게 심각해졌다.
조국 사태는 진보·좌파 정치인과 극성 지지자들의 극단적인 위선과 내로남불로 진영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가져왔다. 상당수 지자들이 돌아섰다. 김건희 여사 문제가 지금 비슷한 길로 가고 있다. 보수 콘크리트 지지층에서도 돌아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평범한 생활인들까지 돌아서게 만드는 건 부동산과 같은 민생 문제다. 지난 8월 서울 아파트 값은 6년 만에 월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주간 단위로는 9월 넷째 주까지 27주째 계속 올랐다. 자고 나면 오르니 빚을 내서라도 아파트를 사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5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은 지난 8월 집계 이래 최대치인 8조9115억원이나 증가했다. 올 1~7월 5억원 이상 대출을 받아 서울에서 집을 산 30~40대는 2021년 연간 전체의 3.7배에 달했다. ‘영끌 투자’ ‘패닉 바잉’이 문 정권 때보다 오히려 심하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부동산 관련 정책 수단인 세제와 금융, 주택 공급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국토부 수장들이 긴장감 있는 모습으로 국민들 앞에 나선 적이 없다. 그렇다고 대통령실 정책실장이나 경제수석이 이 문제를 틀어쥐고 챙긴다는 인상을 준 적도 없다. 이들은 아예 존재감조차 없다. 논란을 불러오긴 했지만 부동산과 가계 부채 문제를 환기시킬 정도로 발언한 사람이 어떻게 금융감독원장일 수가 있나.
부동산 문제만이 아니다. 아우성치는 민생의 현장에 장차관들이 뛰어들어 끈질지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이 정부는 주지 못하고 있다. 수백만 자영업 식당주들이 몇 년째 배달비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데도 정책적 해법을 마련하려고 나서는 부처가 없었다. 몇 년 뒤면 수도권 첨단 산업 클러스터에 전력 대란을 초래할지도 모를 송배전망 건설 문제가 수년째 해결되고 있지 않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왜 그럴까. 정부 핵심 부처의 한 고위 인사는 “새 정책을 추진하다가 용산(대통령실)과 코드를 잘못 맞추었거나 삐끗했다간 너무 심하게 깨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 주도적으로 나서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하다. 한 고위직 공무원은 최근 퇴직한 선배로부터 “이 정권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지 않도록 너무 두드러지는 일은 가급적 맡지 마라”는 충고를 들었다고 했다. 관료 사회에 ‘이 정권에서 잘나간 공무원’으로 분류되길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논란이 되는 정치적 사건이 끊이지 않으면 민생 현안이라도 유능하게 처리해 국민들의 마음을 잡아야 할 것이다. 20%대 국정 지지율은 지금 그것이 안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관료 조직의 상층부에서부터 자발성이 사라지면 어떤 민생 현안도, 국정 과제도 해결될 리 만무하다. 관료 조직이 책임지고 자기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권한을 주어야 유능하게 일할 수 있다.
-조중식 뉴스총괄에디터, 조선일보(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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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탈출 2800곳 vs 국내 유턴 22곳, 기업 내쫓는 나라
지난해 해외로 진출한 국내 기업이 2816곳에 달한 반면 해외에서 돌아온 국내 복귀(유턴) 기업은 22곳에 불과했다. 7년간 법인세 100% 감면, 최대 400억원의 투자 보조금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하며 기업 유턴을 적극 유도하고 있지만 초라한 실적에 그쳤다.
미국은 ‘리쇼어링’으로 불리는 기업 복귀 정책이 효과를 발휘해 매년 평균 300곳 이상의 자국 기업이 돌아오고 있다. 일본의 유턴 기업도 연 평균 600곳을 넘는다. 반면 한국은 지난 5년간 유턴 기업 수가 총 108곳에 그쳤다. 그중 대기업은 4곳에 불과하다. 자동차 산업만 봐도 일본 도요타·혼다·닛산 등은 미국과 멕시코 공장을 자국 내로 옮기거나 해외 생산 물량의 일정 비율을 국내 생산으로 돌리는 등 리쇼어링 성과가 뚜렷하다. 반면 현대차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돌발 악재 탓에 러시아·중국 공장을 폐쇄하면서도 리쇼어링 대신 인도에 새 공장을 짓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 같은 차이는 한국과 경쟁국의 기업 투자 여건이 천양지차인 데서 비롯된다. 한번 고용하면 사실상 해고가 불가능한 낡은 노동법, 최저임금 과속 인상에 따른 과도한 인건비,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이라는 주 52시간제, 산업재해 사망 때 최고경영자가 감옥행을 감수해야 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수도권 공장 입지 규제 등 이중 삼중의 규제가 주는 공포가 기업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 무역투자진흥공사 조사에 따르면, 해외 진출 기업의 95%는 “국내 유턴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한 국가의 경제 성장은 기업 활동에 달려있다. 지금처럼 기업들이 국내 대신 해외 투자에 몰두하게 해선 산업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둘러싼 미·중 경제 전쟁과 자국 보호주의 확산 등을 치닫는 글로벌 흐름을 감안하면 공급망 안정 등의 경제 안보 측면에서도 기업 리쇼어링이 절실하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기업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 외에 다른 해법이 있을 수 없다.
-조선일보(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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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군인대출' 오늘도 성업중
‘충성론(Loan)’ ‘병장론’ 등 광고 문구를 내걸고 현역병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사설 대부 업체 중 한 곳에 접촉한 시각은 지난 2일 오후 10시가 넘어서였다. 내년 병장 월급은 205만원. 상당수 병사들이 이 돈을 모아 코인에 투자하다가 실패, 사설 대부 업체에 손을 빌리는 실태를 취재하려 했다. ‘24시간 군인 대출’이라는 홍보 문구에 “이 시간에 설마 되겠나” 싶었다. 하지만 “현역 군인 대출이 가능한가”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기자 답변이 오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분이었다. 담당자는 “소속 부대, 계급, 신용 점수 등 정보를 남기면 심사 후 당장 내일이라도 300만~500만원 대출이 실행된다”고 했다.
군 관계자는 “대부 업체들이 돈 냄새를 제대로 맡았다”고 했다. 의식주를 자기 돈으로 해결하는 간부와 달리 병사들은 마음만 먹으면 돈을 거의 쓰지 않고도 생활이 가능하다. 몇 달만 월급을 저축해도 수백만원 돈이 모인다. 사설 대부 업체들이 내건 이자는 연 20% 안팎이다. 나라에서 돈이 꼬박꼬박 나오는 병사들의 통장을 합법적으로 털어가는 셈이다. 인터넷엔 ‘코인을 하다가 대부 업체에서 수백만원을 빌렸는데 벌써 1000만원이 넘었다’ ‘이자를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되게 생겼다’ 같은 사연이 수두룩하다.
4년 전 현역병들의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이 전면 허용됐다. 요즘 병영은 과거처럼 고참병이 후임병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던 ‘침상형 내무반’이 아니다. 10명도 안 되는 동기들끼리 지내는 ‘침대형 생활관’이다. 오후 6시 일과가 끝나면 휴대전화 화면에 코를 박고 코인에 몰두하는 광경이 일상적이라고 한다. 일부 병사들은 도박에까지 손을 댄다. 지난 7월 전역한 신모(23)씨는 “생활관 전체가 불법 도박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2022년 병영 내 299건이던 불법 도박 범죄가 지난해에는 440건으로 1.5배 가까이 증가했다.
병영 내 코인·도박 문제가 심각하다는 본지 보도가 나온 지난 4일, 국방부는 ‘군 장병 불법 도박 대응 매뉴얼’을 전군에 배포했다. 국방부는 ‘코인 광풍’이 불었던 수년 전 장병들의 코인 투자 규제를 검토했지만 기본권 침해 소지로 물러서기도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병사들 파산이나 개인 회생까지 지원하기엔 힘이 부친다”며 “군대가 그런 것까지 하는 곳은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일각에선 과거 정부의 월급 인상이나 휴대전화 허용이 문제라며 “우리는 몇 만원 받고 박박 기었는데 요즘 애들이 문제”라고도 한다. 하지만 20대 청춘을 국방 임무에 바치는 젊은이들에게 월 200만원 월급이 많다고 할 순 없다. 국가가 월급을 모아 만기 전역 후 일시 지급하는 등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일선 병영이 코인·도박판이 되거나, 병사들의 월급 통장이 사설 대부 업체들의 먹잇감이 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구동완 기자, 조선일보(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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