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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소방대] [보험] [보험사는 은행이 아니다]

뚝섬 2025. 1. 15. 06:13

[사설 소방대]

[보험]

[보험사는 은행이 아니다]

 

 

 

사설 소방대

 

미국 남부 테네시주(州)에 있는 오비언 카운티는 서울(605㎢)보다 2배 이상 넓은 1437㎢의 면적에 약 3만명밖에 살지 않는다. 2010년 9월 이곳에 사는 진 크래닉의 집에 불이 났다. 크래닉은 911에 전화를 했지만, 소방차는 오지 않았다. 오비언 카운티에는 카운티 전체를 관할하는 소방본부가 없고, 소도시들이 각자 소방세를 걷어 ‘자치 소방서’를 운영한다. 시(市) 경계선 밖의 주민들은 인근 도시에 ‘소방 정기요금’을 내야 하는데, 크래닉이 연간 75달러의 정기요금을 미납한 사실이 확인돼 출동을 거부당한 것이다. 불이 번지자 소방대가 출동했지만, 요금을 완납한 옆집 불만 끄고 돌아갔다. 크래닉의 집은 전소되고 말았다.

 

▶미국연방재난관리청(FEMA)에 따르면 미국의 91%엔 정부 등록 소방본부가 있다. 나머지 9%의 틈새를 파고든 것이 사설 소방 회사들이다. 이들은 소방서가 없는 지역 주민들에게 정기요금을 받고 불이 나면 출동해준다. 지방 정부가 소방세나 정기요금을 받다 보니 아예 사설 회사를 찾는 경우도 있다. 소규모 지자체나 리조트, 산업 단지의 소방 업무 대행도 한다. 크래닉의 사례가 논란이 됐을 때도 미국엔 “돈을 안 내도 불을 꺼주면 누가 돈을 내냐”는 여론이 있었다.

 

▶사설 소방대의 역사는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와 삼두 정치를 했던 크라수스는 사병 500명으로 소방대를 조직했다. 불이 나면 현장에 출동해 고액의 진화료를 요구했다. 돈을 내면 불을 꺼주지만, 요금 협상이 결렬되면 방치했다. 이런 식으로 돈을 번 크라수스는 당대 로마 최고의 부자였다.

 

런던 시내의 85%를 잿더미로 만든 1666년 런던 대화재 이후 영국 보험 회사들은 자체 소방대를 조직했다. 보험 가입자 집의 외벽에 ‘파이어 마크(fire mark)’라 불리는 명패를 부착하고, 불이 나면 소방대를 보내 명패가 붙은 집 불만 꺼줬다. 지금도 사설 소방 회사들의 가장 큰 고객은 대형 보험 회사들이라고 한다. 프리미엄 화재보험에 가입한 거부(巨富)의 집 주변에 불이 나면 보험 회사가 사설 소방대를 보내 진화한다.

 

▶로스앤젤레스(LA) 부촌에서 대형 산불 피해가 계속되자, 부유한 주민들이 하루 1만달러(약 1470만원) 이상 드는 사설 소방대를 서로 부르려고 난리라고 한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 퍼시픽 팰리세이즈 지역에서도 사설 소방대가 지킨 쇼핑몰은 멀쩡했다. 기후변화로 산불이 잦아지는데, 화재 진압도 부익부 빈익빈으로 갈라지는 미국인 것 같다.

 

-김진명 기자, 조선일보(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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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해상무역하던 고대 그리스서 시작… 17세기 '런던 대화재' 이후 보편화 

 

작년 12월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건강보험회사 CEO(최고경영자)가 총격을 당했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놀랍게도 많은 미국인들은 살해범 루이지 맨지오네를 ‘현대판 로빈후드’라며 동정하고 있는데요. 이는 미국의 악명 높은 의료보험제도 때문입니다. 미국의 공공 의료보험은 보장 범위가 매우 좁아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민간 보험사들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비율이 높아 가입자들의 원성이 높죠. 의료 서비스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보험사 행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드러난 사건이에요. 오늘은 보험이 언제 시작됐나 알아볼게요.

 

보험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위기 상황으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에요. 과거 해상무역을 주로 하던 고대 그리스에서 이뤄진 ‘모험대차(冒險貸借)’가 시초라고 보는 견해가 많답니다. 모험대차는 부자가 상인에게 항해에 필요한 돈을 빌려주는 대신, 배가 무사히 돌아오면 원금과 함께 빌린 금액의 최대 33%에 달하는 이자를 받는 제도였어요. 특이한 점은 배가 돌아오지 못하면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어요. 상인들은 예기치 못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죠. 이런 제도는 지중해 무역이 활발했던 12세기 중세까지 계속됐어요.

 

그러나 1236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가난한 자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는 성경 구절에 따라 금융 거래에서 이자를 금지하는 이자금지령을 공포합니다. 이 때문에 금융가들은 일종의 편법을 생각해냈어요. 금융가들은 항해를 떠나기 전 상인들의 선박과 화물을 사겠다는 ‘가계약’을 맺고, 상인들에게 일정 수수료를 받았습니다. 선박이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경우 금융가와 상인은 구매 계약을 취소해 없던 일로 했습니다. 반대로 선박에 문제가 생겼을 땐 금융가가 상인에게 계약서에 적힌 구매 금액을 지급했죠.

 

이런 계약은 현대 보험과 매우 유사해요. 상인들이 낸 수수료가 보험료 역할을 한 것이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도적인 보험이 등장해요. 1348년 이탈리아 피사에서 작성된 보험증권 계약서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해상보험 증권으로 기록되어 있답니다.

 

17세기엔 ‘화재 보험’이 등장했어요. 1666년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대화재 때문이에요. 4일 동안 불이 지속되면서 런던 중심부가 잿더미가 됐고, 큰 충격을 받은 런던 시민들은 앞으로 또 닥칠지 모르는 재앙으로부터 재산을 보호할 방법을 찾았어요. 최초의 화재보험 회사는 대화재 이듬해에 설립됐습니다. 치과의사 니컬러스 바본이 화재 발생 시 피해 금액을 보장해주겠다며 보험 사무소를 세웠어요. 제대로 된 이름도 없이 시작한 이 사무소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급성장했고, 이를 본 사람들이 잇따라 화재보험회사를 만들며 자연스럽게 화재보험이 정착됐습니다. 이후 질병, 장애, 파산 등 다양한 보험 상품이 등장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황은하 상경중 역사 교사, 동아일보(2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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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는 은행이 아니다

 

[차현진의 돈과 세상] 

 

1666년 런던 대화재를 그린 작자 미상의 그림. 9월 2일 일요일부터 9월 6일 목요일까지 런던을 휩쓴 화재는 상업 중심지 시티 오브 런던의 건물 대부분을 불태웠으며, 웨스터민스터의 귀족 거주지, 찰스 2세의 화이트홀 궁을 위협했다. 도시는 가옥 1만3200채, 세인트폴 대성당을 포함한 교회 87곳이 불에 타는 막대한 피해를 봤지만, 이후 영국이 화재보험의 종주국으로 올라서는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하다. 런던 박물관 소장. /위키피디아

 

남이 아프다고 내가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다 위에서는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될 수 있다. 폭풍우를 만나 배가 위험할 때 남의 물건을 내버릴수록 내 물건은 안전해진다.

 

난파의 위기 앞에서 그런 생각을 품고 남의 물건부터 집어던지면 싸움이 난다.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화물을 버린 뒤 나중에 사이좋게 손실을 분담하는 것이 슬기롭다. 그래서 해상보험에서는 손실액을 애버리지(average)라고 부른다.

 

배가 난파하면 손실액이 엄청나다. 그래서 해상 사고는 곧장 파산으로 이어진다.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청년 재벌 안토니오가 샤일록의 빚을 못 갚는 이유도 배가 난파됐기 때문이었다. 그런 위험을 낮추려면, 화물을 분산해서 실어야 했다. 영국이 스페인과 신대륙에서 싸울 때 네덜란드가 영국군에 은화를 보냈다. 배 한 척에 돈 궤짝 하나씩만 실어서 돈을 기다리던 영국군은 눈이 빠질 지경이었다.

 

무역량이 늘면서 분산 수송도 한계에 다다랐다. 그때 네덜란드가 해상보험을 발명했다. 영국과 네덜란드가 전쟁할 때도 영국 상인들은 적국의 해상보험을 이용했다. 반면 영국은 런던 대화재를 계기로 화재보험의 종주국이 되었다생명보험은 인명을 도박한다는 윤리적 고민 때문에 마지막에 출현했다.

 

우리나라에는 거꾸로 도입되었다. 구한말 일본계 보험사들이 생명보험을 팔고, 해방 후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으려고 화재보험이 확산되었다. 해상보험은 나중에 도입됐다. 일제강점기에 은행은 조선계가 많았지만, 보험사는 일본계가 많았다. 조선총독부는 생명보험이 은행 예금과 똑같다고 선전했고, 그래서 보험사와 은행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한국은행법을 만들 때 “보험사는 은행이 아니다”라는 교육용 문구를 담아야 할 정도였다.

 

오해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보험 시장은 이미 90년대부터 세계 6~7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들이 온갖 위험에 진저리가 났다는 말이다. 안전사고는 언제쯤 줄어들까?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조선일보(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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