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국내]

[음성] [원남면 문암4리-복호·서당마을] 따뜻한 남녘, 어디론가 떠나는 아득한 마을

뚝섬 2015. 4. 3. 15:49

음성군 원남면 문암리 북쪽, 보천리와 경계를 이루는 종지봉 아래로 백마령(고개)이 지난다. 백마령의 고개 아래로는 문암리와 보천리를 잇는 백마령 터널이 1993년 개통됐다. 백마령은 이 터널이 뚫리기 전 까지 구비구비 이 고개를 지나 청주·증평에서 음성·충주로 또는 그 반대로 넘나들었던 주요한 국도였다.

문암리 동쪽의 백마산(해발 465m)에서 흐르는 산자락은 백마령을 지나 종지봉으로 이어진다. 백마산은 이 지점을 경계로 북쪽은 남한강 수계이고 남쪽은 금강 수계로 되어 있어 분수령인 동시에 충청북도를 북부와 남부로 양분하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백마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 백마령 옛 고갯길. 한국전쟁 당시 인근에서 큰 전투가 있었다]

 

백마령은 지명과 관계된 전설이 전한다. 옛날 어느 장수가 괴산군 사리면의 매바위 윤씨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3일이 지나자 아이가 없어졌다가 닭이 울기 전에 다시 돌아오곤 하였다. 어머니가 뒤를 따라가 보니 아이가 큰 동구나무를 훌훌 뛰어넘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의 겨드랑이를 보니 날개가 있어 이 아이를 그대로 두면 후환이 있을까 두려워 날개를 떼니 아이가 죽었다고 한다.

 

그러자 산 동굴에서 백마가 뛰어 내려와 펄펄 뛰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산이 백마가 태어난 산이라고 하여 백마산, 백마산에 있는 고개라는 의미에서 백마치 또는 백마령으로 불리웠다.

 

백마령고개는 해발 240m의 그다지 험준한 고개는 아니지만 한국전쟁 당시 큰 전투가 있었다. 특히 인근의 동락지구에서는 인민군을 궤멸시키는 전쟁 중 첫승을 거두는 전과를 거두었고, 이 전투에서 아군·적군·민간인 모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서귀자 노인회장은 전한다.

 

청주방향 36번 국도를 우측으로 벗어나 도로 아래의 터널을 통과하면 바로 문암4리 복호말(마을)이다. 마을 바로 앞을 충북선이 지나고, 철로 변 지척에 복호마을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복호(伏虎)라는 마을 이름은 백마산 줄기를 뒤로하고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지형에서 유래되었다. 복호마을과 더불어 문암4리 마을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마을은 서당(書堂)말인데 두 마을은 서로 1.5km 떨어져 있어 같은 마을임에도 왕래가 드물다. 서당말은 글자 그대로 마을에 학문을 하는 선비들이 많아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리 불리웠다.

 

[복호마을 앞으로 달리는 충북선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킨다.. ]

 

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볕이 한껏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 날 복호마을을 찾았다. 국도 아래의 터널을 지나자 바로 마을 앞으로 충북선이 다가선다. 이른 봄 어디론가 떠나온 듯이 아늑하게 마을과 어울린다. 열차가 바로 앞을 지나고 있어 야간 숙면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주민 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방음벽이라도 설치를 하여준다면 좋겠지만.. ”하는 정도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이다.

 

마을 가구 수는 두 마을 각각 12가구, 24가구에 주민은 40여 명이다. 두 마을의 규모가 비슷하지만 마을회관이 복호마을에 있어 이장과 노인회장은 복호말에서 선출을 하고 새마을지도자는 서당말에서 선출을 하였다. 이러한 두 마을 마을 임원 배분과정에서 다른 마을에서는 보기 드물게 노인회장을 서귀자 할머니(73)가 맡았다.

 

[따스한 봄볕이 한껏 마을을 여유롭게 하는 아늑한 분위기의 복호마을. 바로 앞은 복호마을 회관] 

 

주민 거의가 고령이고 젊은 세대는 6~7명에 불과하다. 초·중·고 학생은 단 한명도 없다. 복호·서당말은 대구달성(大丘達城) 서(徐)씨 집성촌으로 대구달성 서씨는 본관으로 두 지명을 같이 쓰는 흔하지 않은 문중이다.  

 

달성은 대구의 옛 지명이고 대구를 본관으로 삼은 것은 문충공 서거정 등 명신이 나옴으로써 비롯되었는데 대구가 달성과 같은 지명이었기 때문에 달성, 혹은 대구로 본관을 쓰는 후손이 생기게 되었다. 본관을 다르게 쓰나 대구서씨와 달성서씨는 같은 핏줄이라고 서씨 문중인 서동화 이장이 설명했다.  

 

마을의 유동이 많아진 지금에도 마을의 네 가구만 타지인이고 20 가구가 대구달성 서씨 문중이다. 서 이장은 종손은 아니지만 5대조(고조)까지 일일이 제사를 챙기고, 그 윗대는 년간 시제로 가름을 한다고 한다. 

 

두 마을의 공통된 현안은 최근에 발표된 충청내륙고속화전용도로 확장공사의 일환으로 기존 4차선에 2차선을 추가하는 공사로 정작 마을 주민들은 차량소음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구빅비 돌아 옛 고갯길로 왕래하여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여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

 

마을의 주요 불편한 현안은 비나 눈이 올 때는 물론 평상시에도 경운기를 포함한 두 대의 운반구의 교행이 불가능한 마을 안 도로를 확장·포장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 예산문제 등 쉽지 않은 사안이라 생각하여 주민들은 조급해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소하지만 마을회관이 세워진지 10년이 지나다보니 비가 오면 이곳저곳 누수가 되어 손볼 곳이 많다고 한다. 행정기관에서 적절한 보수를 해 주기를 당부했다. 

 

매년 년말에는 서당말과 더불어 두 마을이 대동계를 열고 주요한 두 마을현안을 협의한다. 지난해 말 이 대동계에서 다른 마을에서 보기 힘든 할머니 노인회장이 선출됐다.

 

[이웃 복호마을과 동일한 마을 규모의 서당마을 전경]    

 

마을 위 백마령 중간에 삼미스피커(주)등 몇 기업체가 들어와 있지만 마을과의 교류는 전혀없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벼농사를 주로하며, 일부 연초와 인삼, 약간의 밭농사를 하고 있다.

 

복호·서당마을 탐방을 위하여 서동화 이장과 통화를 할 때부터 최근 몸이 불편하니 다음으로 취재를 미루자는 그를 몇 번이나 사정을 하여 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를 붙들고 이런저런 마을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불편한 몸에도 삼밭으로 향하는 그를 더 붙들기가 미안하여 아쉬운 마음으로 취재수첩을 접었다. 서 이장의 바램대로 마을 주민 모두가 편안하고 더욱 살기 좋은 마을이 되길 기대하며 옆 마을 서당말로 향했다.

 

   

우리동네 사람들 

 

최운식 새마을지도자

원남면 조촌리가 고향이지만 서당말에 정착한지 40년 째인 최 지도자는 74세의 높은 연령임에도 벼농사 1000평, 콩, 감자, 팥 등 밭농사 1000평을 손수 경작한다. 작년 대동계에서 서당말에 배분된 마을 임원 중 하나인 새마을지도자로 선임되었다. 마을에 다른 애로사항은 없지만 굳이 말한다면 “최근 전답 주인과 실제 경작하는 사람이 달라 이런저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토로했다. 

 

서귀자 노인회장

다른 마을에서 보기 드물게 여성으로써 올해 초 노인회장에 선임되었다. 73세 답지않게 부지런하게 또한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전임 회장이 88세여서 내가 어거지로 노인회장이 되었다”면서도 마을 현안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노인회에서 주관이 되어 매주 3회 독거노인 집을 청소하고, 매주 노래강사, 건강체조강사, 그림강사 등을 마을로 초빙을 하여 마을 주민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마을이 버스 승강장이 없고, 마을회관의 냉장고가 시원찮아 교체를 하여야 하고, 마을에 운동기구가 아쉽고... 등 마을 일 하나하나가 노인회장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듯 하다.  

 

서동화 이장

이장 취임 4년차인 서동화 이장은 복호마을에서 출생하여 현재까지 마을을 지키는 마을역사의 산증인이다. 문암리에 세거한 대구달성 서씨 문중의 원로로, 매년 5대조까지 제사를 모시고 있다. 벼농사와 삼농사를 짓는데 삼밭의 규모는 20,000칸(평)이나 된다. 금년 57세의 젊은 이장인 서씨는 “마을 주민 모두가 편안하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 이외에 더 무슨 바램이 있겠냐”며 불편한 몸이지만 해야 할 일이 태산이라며 바쁘게 삼밭으로 향했다.

 

                                                                                                                                                                              -음성자치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