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죽느냐, 사느냐 직면”… 제2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되길]
["승부에 독한 삼성" 이재용의 사즉생]
[삼성전자 창립 50주년]
[삼성의 운명을 바꾼 이건희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재용 “죽느냐, 사느냐 직면”… 제2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되길
삼성 임원 교육 참석자들에게 주어진 크리스털 패. 과거 회식 건배사 등에 쓰였던 삼성인에 대한 문구가 쓰여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임원들을 향해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며 “경영진부터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질책했다. 또 “중요한 건 위기라는 상황이 아니라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라며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은 9년 만에 전 계열사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열고 이 같은 이 회장의 발언을 공유했다고 한다.
이 회장이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를 촉구하며 임원들을 질타한 메시지가 공개된 건 사실상 처음이다. 그만큼 삼성이 처한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는 국가 대항전으로 펼쳐지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샌드위치와 같은 처지다. 주력인 범용 메모리에선 중국 기업에 쫓기고 있고, 미래 먹거리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선 선두주자인 대만 TSMC와 격차가 더 벌어졌다. 무엇보다 이 회장이 10년 가까이 사법 족쇄에 묶여 있는 동안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 등 패러다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 뼈아프다.
이런데도 조직 안팎에서는 삼성이 오랜 성공에 안주하면서 긴장감이 느슨해졌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 회장도 “과감한 혁신이나 새로운 도전은 찾아볼 수 없고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고 질타했다. 이 회장은 “다우지수 30대 기업 중 상당수가 사라졌다”며 “이대로 가면 우리도 잊혀질 것”이라고 했는데 괜한 우려가 아니다. 일본 도시바, 미국 인텔 등이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다가 한순간에 몰락했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1983년 ‘도쿄 선언’을 통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비웃던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다. 고 이건희 선대 회장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임원들을 소집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뼈를 깎는 혁신을 주문했다. 이 신경영 선언을 계기로 삼성은 ‘품질경영’과 ‘초격차 기술’을 혁신의 바퀴 삼아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도약했다. 수백억 원어치 불량 휴대전화를 불태우면서까지 혁신과 도전의 DNA를 심었다.
이 회장은 전 임원에게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라고 새겨진 명패를 전달했다고 한다. 이런 각오가 대대적인 조직 쇄신과 초격차 기술 개발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 전체 수출의 18%, 상장기업 매출의 10%가 삼성전자 몫일 만큼 삼성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삼성의 위기 돌파는 ‘피크 코리아’ 극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동아일보(2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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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에 독한 삼성" 이재용의 사즉생
회장 취임 후 첫 내부 조직 비판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 문제다. 경영진부터 철저히 반성하고 '사즉생(死則生·죽기로 마음먹으면 산다는 뜻)'의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할 때다."
이재용<사진>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에 강도 높은 위기 메시지를 던졌다. 사업부별 문제를 조목조목 짚는 통렬한 비판과 함께 '독한 삼성인'이 될 것을 주문했다. 지난 2020년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 이후, 5년간 삼성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이재용 회장이 그간의 조용한 행보를 깨고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메시지를 낸 것이다.
17일 삼성에 따르면, 이 회장은 임원들을 상대로 "전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며 "과감한 혁신이나 새로운 도전은 찾아볼 수 없고, 판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고 질책했다. 또 "21세기를 주도하며 영원할 것 같았던 30개 대표 기업 중 24개가 새로운 혁신 기업에 의해 무대에서 밀려났다"며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위기감을 토로했다. "인류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 혁신이 지속되는 국가 총력전의 양상이 펼쳐지는데, 우리 경제와 산업을 선도해야 할 삼성전자는 과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라는 반성도 있었다. 이 회장의 이 같은 메시지는 지난달 말부터 삼성이 계열사 전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 세미나에서 영상을 통해 전달됐다.
HBM(고대역폭 메모리) 등 AI(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실기(失期), TV·스마트폰 등 전 사업부의 부진 등 안팎에서 '위기론'이 터져 나왔지만, 이 회장이 직접 위기 메시지를 낸 적은 없었다. 재계에선 삼성이 어려울 때나 호황일 때나 위기를 강조해온 이건희 선대회장을 연상케 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메모리는 자만, 파운드리는 기술 부족" 사업부마다 질책
"메모리 사업부는 자만에 빠져 AI(인공지능) 시대에 대처하지 못했다. 파운드리 사업부는 기술력 부족으로 가동률이 저조하다. DX 부문(TV·스마트폰 등)은 제품 품질이 걸맞지 않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삼성의 상황을 사업부별로 조목조목 질책하며, 그룹에 강도 높은 위기의식을 불어넣었다. 지난 2020년 이건희 선대회장의 별세로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끈 이후는 물론 2022년 회장 취임 당시에도 취임사조차 내지 않을 만큼 대내외 메시지를 자제해 온 이 회장의 이례적인 고강도 발언이다.
이건희 회장이 회장 취임 6년 만인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삼성 수뇌부를 소집해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을 발표했던 것처럼, 이재용 회장도 실질적으로 삼성을 이끈 지 5년이 되는 올해 심각한 위기의식과 함께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삼성전자의 주가는 외국인과 기관의 매수세에 힘입어 전 거래일 대비 5.3% 오른 5만76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사업부 질책하며 '독한 삼성' 강조
이 회장의 메시지는 지난달 말부터 경기도 용인 연수원에서 삼성 계열사 전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세미나에서 전달되고 있다. 특히 메모리와 파운드리의 부진 원인과 함께 TV·가전·스마트폰 등의 품질 문제가 직접적으로 거론되자 임원들이 앉아 있는 강연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근무하는 부사장급 이하 임원들을 모두 불러 이 같은 메시지를 현장에서 직접 듣게 하고 있다. 앞서 삼성은 연초에 사장단을 대상으로도 같은 메시지를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용 회장은 영상을 통해 삼성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으며 "위기 때마다 작동하던 삼성 고유의 회복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간 고비 때마다 삼성을 위기에서 구했던 특유의 '삼성 DNA'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사업 면에서 삼성의 경쟁력은 매년 떨어지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공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TV부터 스마트폰, D램, 스마트폰 패널, 차량용 디지털 콕핏(cockpit·운전석)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업 부문의 점유율은 모두 하락했다. TV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23년 30.1%에서 지난해 28.3%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스마트폰은 19.7%에서 18.3%로, D램은 42.2%에서 41.5%로 하락했다. 스마트폰용 디스플레이 패널(50.1%→41.3%), 디지털 콕핏(16.5%→12.5%)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부 결속력도 약해지고 있다. 삼성 경영진은 주 52시간제 때문에 밤이 되면 연구실 불이 꺼진다며 '52시간제 예외' 적용을 포함한 반도체특별법 통과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노조는 '노동 시간을 줄이고 워라밸을 높이는 게 글로벌 트렌드'라며 이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엔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파업도 벌어졌다. 과거처럼 미국·일본과의 30년 기술 격차를 따라잡겠다며 뛰어들었던 경영진과 직원들의 무모한 도전 정신도 실종됐다. 2016년 국정 농단 사건에서 시작된 '사법 리스크'도 삼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
◇"신상필벌 철저, 수시 인사하라"
이재용 회장은 이 같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최근 사장단에게 "성과를 확실히 보상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신상필벌이 원칙"이라며 "필요하면 인사도 수시로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일 갤럭시 스마트폰 개발을 주도해 온 최원준 MX(모바일)사업부 개발실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원포인트 인사'가 이뤄진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이번 영상에서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며 "경영진보다 더 훌륭한 특급 인재를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양성하고 모셔와야 한다"고 했다. 과거 'S급 인재' 영입에 사활을 걸었던 이건희 회장의 '인재제일' 가치를 재차 상기시킨 것이다.
이 회장은 임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니라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라며, 임직원들이 '삼성다움'이란 가치로 다시 정신 무장할 것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임원들에게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란 글귀를 새긴 명함 크기의 수정패를 하나씩 나눠줬다.
◇이건희 회장처럼 본격 쇄신 나서나
재계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강도 높은 위기 메시지가 수시로 위기의식을 강조했던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발언을 연상케 한다는 말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석자는 "이건희 회장이 제품 불량이 난 휴대폰 15만대를 불태웠던 '애니콜 화형식', 지금 변하지 않으면 삼성뿐 아니라 나라가 2류, 3류로 떨어질 것이라고 위기를 강조했을 때와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실제로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이끌면서 직접적인 어조로 '위기'를 강조해 왔다. 2002년 전자 계열사 사장단을 모아 놓고 "5년, 10년 후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고 토로한 것을 비롯해, 지난 2010년 경영에 복귀할 때는 "앞으로 10년 내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다. 지금이 진짜 위기"라고도 했다. 창업 이래 최대 실적을 냈던 2013년 '신경영 20주년 만찬'에서도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이건희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한 것은 아버지인 이병철 창업회장이 별세한 1987년으로부터 6년이 지난 1993년이었다. 이 회장은 당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유명한 신경영 선언과 함께,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시작으로 총 8개 도시를 돌면서 임직원 1800여 명과 함께 350여 시간의 토의를 진행했다. 이후에도 1995년 '애니콜 화형식', 1996년에는 원가·경비 30%를 3년간 절감하는 '경비 330운동'을 펼치는 등 강도 높은 쇄신을 이어 갔다.
이재용 회장도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지 5년이 되는 올해 심각한 위기의식과 함께, 임원 2000여 명을 모아놓고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이 이번 메시지를 '제2의 신경영 선언' 삼아 그룹 컨트롤타워 부활 등 본격적인 쇄신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은 그간 숱한 위기의식에도 불구하고, 과거 국정 농단 사건에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이 연루됐던 트라우마 때문에 컨트롤타워 복원 등 변화를 제대로 시도하지 못했다. 최근 최윤호 사장을 수장으로 한 경영 진단 기능을 부활시켜 반도체 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것이 삼성 안팎의 평가다.
-박순찬 기자, 조선일보(2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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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창립 50주년
50살된 한국 자존심, 기뻐할 틈도 없다.. 이재용 참석 없이 조용히 치뤄
-고비마다 과감한 결단이 만든 50년.. 직원 36명에서 31만명으로 매출액 244兆 세계 15위
-불확실성 커지는 '앞으로의 50년'.. 밖으로는 중국의 무서운 추격, 안으로는 리더십 부재 걱정..
-삼성전자 세계 1위 품목 12개… 앞으로는 5G·AI 등에서 승부해야
"국내 전자제품은 품질이 조악했고 가격도 비쌌다. 흑백 TV 값은 웬만한 봉급생활자가 엄두도 못 낼 수준이었다. 삼성이 이 산업에 진출해 전자제품의 대중화를 촉진시키고 수출 전략 상품으로 육성하는 선도적 역할을 맡아보자고 결심했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자서전인 '호암자전'에서 1969년 겨울 삼성전자를 창업할 당시 결심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 결심에서 시작한 삼성전자가 11월 1일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종업원 36명에 자본금 3억3000만원으로 조촐하게 시작한 삼성전자는 반세기 만에 매출액 244조원(작년 기준)인 세계 15위 대기업(포브스 선정)으로 성장했다. 세계 12위 경제대국 대한민국 한 해 수출(704조4000억원) 가운데 22%가 삼성전자의 몫이다. 삼성전자가 만드는 세계 1등 제품만 12개에 달한다.
하지만 지천명을 맞은 삼성전자는 축배를 들지 못하는 처지다. 어떤 예단도 불허하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국정 농단 재판, 중국의 거센 추격 등 버거운 내우외환 속에 한발만 잘못 내디디면 벼랑으로 추락하는 4차 산업혁명의 격랑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일 경기도 수원사업장에서 열리는 창립 기념식도 이재용 부회장은 불참한 채 임직원 400여명만 조용히 치를 예정이다. 정옥현 서강대 교수는 "삼성전자는 시장 선도자는 아니지만 빠르게 팔로업해 1등으로 올라서는 노하우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진 기업"이라며 "하지만 모든 것이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삼성에 닥친 위기가 예사롭지 않다"고 했다.
◇직원 36명에서 31만명으로 성장
삼성전자의 지난 50년은 절체절명의 위기와 그에 대응하는 혁신의 연속이었다. 사업 정체 등 위기를 맞을 때마다 과감한 결단으로 도전에 나서 성장을 쟁취했다. 대표적인 것이 반도체 사업 진출이다. 1983년 2월 이병철 당시 회장은 "일본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도쿄선언으로 D램 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국내외에서 "무모한 도전"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내 나이 74세, 비록 인생의 만기(晩期)이지만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어렵더라도 전력투구를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썼다. 삼성전자는 그해 64K D램 개발에 성공했고 1988년엔 삼성반도체통신과 통합하면서 창립 기념일을 인수·합병 날짜인 11월 1일로 바꿨다. 1992년엔 전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오너의 과감한 투자와 혁신으로 반세기 만에 세계적 IT(정보기술) 기업으로 성장했다. 고(故) 이병철(왼쪽) 창업주는 반도체 산업 진출이라는 결단을 내렸고 이건희(가운데) 회장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으로 품질경영 시대를 열었다. 오른쪽은 지난 7월 일본으로 출장을 떠나는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 /삼성전자
도쿄선언에 버금가는 또 한 번의 혁신은 1993년에 이뤄졌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경영진을 불러모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고 했다. '품질의 삼성'이 시작된 '신경영 선언'이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전자는 1994년 첫 휴대전화 애니콜을 성공시켰고,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로 세계를 석권하면서 반도체 신화를 휴대폰 분야로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삼성전자가 전 세계에서 1등을 하는 제품은 TV, 냉장고, 스마트폰, 메모리반도체 등 12가지에 이른다.
◇내우외환 빠진 삼성, 앞에 놓인 50년에 안개
전 세계에서 31만명을 고용한 삼성전자는 브랜드 파워 글로벌 6위의 IT 거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지난 23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있는 삼성전자 핵심 반도체 연구개발(R&D) 기지인 DSA(디바이스 솔루션 아메리카). 2015년 실리콘밸리 한복판에 지은 이 빌딩은 메모리 반도체를 세 겹으로 층층이 쌓은 듯한 독특한 구조다. 삼성이 한국에는 드문 이런 화려한 사옥을 지은 것은 인재 유치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구글·애플·페이스북과 같은 쟁쟁한 기업을 제치고 인재를 유치하려면 이런 눈에 띄는 건물이라도 있어야 한다"며 "정말로 절박한 심정"이라고 했다. 지난 반세기 삼성전자의 질주를 가장 질투 어린 시선으로 봐왔던 일본의 시각은 더욱 냉정하다. 일본 경제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31일 "삼성전자는 실적 부진, 중국의 추격 등으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올 3분기 매출은 62조원, 영업이익은 7조78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5.3%, 55.7% 줄었다. 반도체 업황 악화로 실적에 직격탄을 맞아 이익이 반 토막 난 것이다. 반면 한 수 아래로 평가했던 중국은 화웨이·샤오미 등을 앞세워 스마트폰에서 삼성의 목전까지 쫓아왔다. 반도체 분야에선 막대한 금액을 쏟아붓고 있고, 디스플레이 분야에선 이미 한국을 추월했다.
위기 해결의 정점에 있는 이재용 부회장은 그러나 지난달 26일부로 사내이사 자리에서도 내려왔다.
재계에서는 재판 일정 등으로 인해 이 부회장의 글로벌 경영 행보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5G(5세대) 이동통신·인공지능(AI)·자율주행·양자컴퓨터 등 미래 기술로 급변하는 상황도 쉽지 않다.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발굴한 스마트폰·반도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극복하기도 만만치 않다. 김창경 한양대 교수는 "삼성이 마주한 현실은 지난 50년 중 전례 없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며 "삼성이 현 상황에만 안주한다면 삼성의 미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두울 것"이라고 말했다.
-새너제이=박순찬 특파원 /김성민 기자/강동철 기자, 조선비즈(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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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운명을 바꾼 이건희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선언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강연이었다. 부문 직급별로 4회에 걸쳐 모두 100여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93년 6월 13일부터 14일까지 실시한 강연이 프랑크푸르트선언이라고 불리운다. 첫강연은 93년 6월13일 프랑크푸르트 에쉬본의 삼성유럽총본부에서부터 시작해 캠핀스키 호텔에서 끝이 난다. 캠핀스키 호텔은 시내 중심에서 2킬로쯤 떨어진 최고급호텔로 마치 전원형 펜션과 같은 분위기이다. 거기서 그는 삼성의 임직원 60여명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다음은 강연요지.
<삼성그룹은 15만명이다. 15만명의 가족이 제각각 움직이면 배는 제자리에서 뱅뱅 돌게 되지만, 한방향으로 나아가면 속도는 15만배 빨라진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뱅뱅 도는 상황이다. 삼성가족들은 누구나 나름대로 고민하고 고생하지만, 저마다 다 제각각이다보니 악순환이 거듭되고 모두 손해를 본다. 세계에서 일류가 되면 이익이 3-5배까지 늘어난다는 것은 반도체 메모리 분야에서 이미 입증됐다. 전자는 40만평에서 3만4000명이 일하지만 이익은 겨우 400억-5000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반도체는 겨우 10만평에서 1만명이 5000억-6000억원의 순익을 내고 있다. 삼성그룹이 대대적인 변신을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건희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서 200여명의 임직원들에게 품질경영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강연은 최하 여덟시간이었다. 때로 사장단을 대상으로 한 강의와 질의는 무려 14시간이었다. 그는 거기서 담배를 피우면서 물수건에 손을 닦으면서 어눌하지만 확신에 찬 어조로 강연했다. 삼성그룹은 이 강연내용을 전국사업장에 방영했다. 삼성의 임직원은 누구라도 다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 헌데 그 강연내용이 상당히 센세이셔널해서 일간신문은 물론 KBS-TV에까지 방영됐고, 이 내용은 한국의 기업문화를 바꾸는 일대 전환점이 된다.
LA에서부터 출발한 회의는 동경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대장정이 끝났다. 이른바 신경영 대장정이라 불렀던 이건희의 강연은 68일간 계속되었는데 350시간 강의에 1800명의 임직원이 참석했고, 토론시간만도 800시간이나 되었다. 새벽4시까지 강의가 계속되기도 했다. 참석자 전원은 햄버거로 식사를 때우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었다.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말이 없고, 조용조용하게 일을 처리해오던 이건희는 이때 삼성의 위상에 대한 솔직한 진단, 경영진에 대한 질타, 자신의 경영에 대한 구상 등을 사원들 앞에서 직접 설파했다. 신경영 대장정 후 삼성의 수뇌부는 신경영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수립에 들어갔다. 그 최종 결론은 ‘배우자’ 였다. 즉 벤치마킹을 통해 삼성의 취약점을 보강하자는 것이었다. 벤치마킹은 삼성의 장점이다.
‘100년전 신사유람단을 해외에 파견했던 심정으로 국내용 관리자를 조속히 해외에 보내 글러벌 전략가를 육성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기업의 기본적 책무이다.’
그렇게 설파했다. 신경영 대장정 이후 삼성이 벤치마킹 대상기업으로 확정한 기업은 다음과 같다.
전자부문-일본의 소니 및 마쓰시다
중공업-일본의 미쓰비시
섬유-일본의 도레이
재고 관리부문-미국의 웨스팅 하우스, 애플 컴퓨터, 페더럴 익스프레스
고객서비스-제록스, 노드스트롬
생산 작업관리-휴렛팩커드, 필립모리스
마케팅-마이크로소프트, 헬렌 커티스, 더 리미티드
신제품 개발-모토로라, 소니, 3M
구매 및 조달-혼다, 제록스, NCR
품질 관리-웨스팅 하우스, 제록스
판매 관리-IBM, P&G
물류-허시, 메리케이코스메틱
당시만 해도 소니, 마쓰시다(파나소닉), 미쓰비시 중공업이나 미국의 가전회사들은 모두 삼성보다 앞서 있었을 때였다. 위의 기업들에 대한 철저한 벤치마킹이 이루어진다.
불면의 계절
이 무렵, 삼성 내부에서는 이상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다. 한쪽에서는 기술과 경영의 진보를 위해 그룹차원에서 벤치마킹을 하고 있는데 내부적에서는 여전히 과거와 같은 구시대적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건들이 터진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사건은 아래와 같은 것이다.
당시 삼성그룹에는 몰래카메라라는 것이 있었다. 한때 공중파 TV에서 몰래카메라라는 것을 많이 했지만, 삼성그룹은 이미 지난 83년부터 몰래카메라로 촬영한 장면들을 그룹내 방송인 SBC를 통해 방송해왔다. 93년 6월의 어느날, 몰래카메라는 삼성전자의 세탁기 생산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거기 담긴 장면은 세탁기 생산라인이었는데, 납품된 세탁기 뚜껑 여닫이 부분의 플라스틱 부품이 규격이 맞지 않자, 현장에서 칼로 2밀리를 깍아내서 조립하는 장면이었다. 주문은 밀려오고 생산대수는 맞추어야 하는데, 납품된 부품의 규격이 맞지않자 고육지책으로 임시변통으로 깍아서 넣고 있었던 것이다.
제대로 하려면 아예 뚜껑부문의 플라스틱을 새로 설계해서 금형을 뜬 후 다시 생산을 해야 하지만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생산직 사원들은 플라스틱 부품을 깍아 조립하면서도 거기에 대해 어떤 거리낌도 없었다. 깍아서 넣어도 물건을 쓰는데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불감증이었다. 이 장면이 그룹방송인 SBC를 통해 방송되자, 관계자들은 물론 회사의 경영진까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국에서 물건을 제일 잘 만든다는 삼성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 테이프는 당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하고있던 이건희 회장에게 공수되었다.
<3만명이 만들고 6000명이 불량품을 수리하는 회사가 무슨 경쟁력이 있는가.>
이건희 회장이 당시 ‘세탁기 몰카’를 보고 던진 말이다. 6월19일 프랑크푸르트 현지에서 그는 세탁기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시켰다. 본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은 그 골자가 국제화와 복합화였다. 그러나 몰카를 지켜본 이건희 회장은 국제화, 복합화보다 우선 품질개선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품질경영’이었다. 삼성전자의 세탁기 생산 라인을 비롯한 가전제품 139개 생산라인에 라인 스톱제가 도입되었다. 불량이 발생하면 즉시 라인을 세워 문제가 완전해결될 때까지 가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세탁기 생산라인에서는 261개 항에 달하는 설계입력 자료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했다. 또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일류 세탁기 제품의 세탁방식도 다시 비교연구되었다. 세탁기 몰카 사건으로 삼성은 양적 성장을 중단하고 품질로 거듭날 때까지 새로운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선언한다.
홍하상 작가
기업인에 관한 책을 많이 써온 작가로 유명하다. 2003년에 국내 최초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을 다룬 책 <이건희, 그의 시선은 10년 후를 바라보고 있다>를 시작으로 <이병철 경영대전>, <정주영 경영정신>, <주식회사 대한민국 CEO 박정희>, <세계를 움직이는 삼성의 스타 CEO> 등 국내의 기업가를 다룬 10여권의 저서를 냈다. 그 외에 <일본의 상도>, <중국을 움직이는 10인의 CEO> 등 일본과 중국의 기업인들에 관한 저서가 상당수 있다. 최근에는 <유럽명품기업의 정신>을 출간, 기업과 기업가 정신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루었다.
1년의 절반 정도를 일본·중국·유럽 등 현장을 누비면서 직접 취재하는, 발로 뛰는 작가이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이후 논픽션 작가로 30여년간 활동하고 있다.
-조선닷컴(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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