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보호의 저주'에 빠진 US스틸]
[트럼프도 해리스도 “US스틸, 일본에는 못 준다” ]
[美 자존심 건드린 日제철의 ‘US스틸’ 인수]
[소니는 바보가 아니다]
60년 '보호의 저주'에 빠진 US스틸
카터부터 트럼프까지 "철강 보호"
관세 올리며 무역 장벽 세워
보호 정책 60년 이어졌는데
美 철강 기업은 왜 무너졌을까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브래드록에 있는 미국 철강 회사 US 스틸 공장의 모습. 124년 전 설립된 이 회사는 반복되는 미 정부의 보호 무역 조치에도 경영 악화를 피하지 못해 일본제철에 매각을 추진 중이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기 취임 후 철강 관세를 ‘예외 없이 25%’로 올렸다. 그러면서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 미국이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전임 대통령인 조 바이든도 비슷한 논리를 폈다. 두 사람만 특이한 것은 아니다. ‘철강은 전략 물자’란 주장으로 무역 장벽을 높여 철강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미 정부의 기조는 수십 년째 이어져 왔다. 마이클 무어 위스콘신대 교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 보고서에 “철강 업계는 지난 30년간 단일대오로 수입(輸入)을 막으려 애썼고 정치권도 호응했다”고 썼다. 보고서가 나온 때가 1996년이다. 미국 철강 보호무역의 역사가 60년은 됐다는 얘기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감싸고도는 산업도 드물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이토록 지켜줬는데 아직도 보호가 필요한 상태라니 이상하다. 지난 30년 사이 40여 철강 회사가 파산했고 관련 일자리는 3분의 1이 사라졌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금융 제왕’ JP 모건이 합작해 만든 124년 역사의 US스틸은 경쟁력을 잃어 “제발 일본제철에 팔게 해달라”고 트럼프를 설득하고 있다. 통상 전문가인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교수는 가장 보호받아온 산업이 가장 허약해진 이유를 “정부의 보호에 중독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들 경제학자는 ‘미 철강 산업이 값싼 수입품 공세로 무너졌다’는 주장이 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역사가 긴 ‘공룡’ 철강 기업들이 과도한 비용과 기술 도태에 안이하게 대처하는 사이 날렵하고 잽싼 미국 내 신규 철강 기업이 시장을 빼앗은 것이 결정적 원인이라고 본다. NBER 보고서에 따르면 미 철강 산업의 쇠락이 본격화한 1979~1991년, 예전 방식대로 고로(高爐)를 쓰는 대형 철강사의 시장 점유율은 64%에서 34%로 줄어든 반면 ‘미니밀(소형 전기로)’이라 불리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미국 내 신생 기업의 점유율은 8%에서 24%로 불어났다. 수입품 비율은 15%에서 18%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제대로 된 회사라면 이런 통계를 보고 신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기존 철강 기업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노사가 결합한 강력한 이권 단체를 만들어 ‘수입을 막아달라’며 정치권에 매달렸다. 경합주가 몰린 중부 지역에 기존 철강 기업이 모여 있다는 특성은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여 주었다. 사측은 노조의 ‘뭉치 표’를 정치권에 미끼로 썼고, 노조는 이런 구조를 지렛대 삼아 급여를 대폭 올렸다. 정치인 입장에선 표를 몰아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철강 기업·노조와 정치권이 맞물린 이 공생 관계는 ‘강철 삼각지대(steel triangle)’라 불린다. 지미 카터부터 트럼프까지, 모든 미 대통령이 예외 없이 철강 산업을 위한 무역 보호 조치를 공약하고 시행한 배경이다.
1970년대 이후 ‘미니밀’ 방식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인 신생 미국 기업의 대표는 뉴코어(Nucor)다. 현재 미국 시장 점유율 1위다. 이 회사의 초기 CEO였던 켄 아이버슨은 1984년 미 하원 청문회에 나가 모든 무역 장벽을 없애 달라고 호소했다. “관세·비관세를 포함한 모든 무역 장벽은 철강 산업의 현대화를 지연시키고 소비자에게 수십억 달러의 피해를 입힐 겁니다. 차라리 재교육 프로그램이나 세금 혜택을 통해 신기술 도입을 장려해 주십시오.” 정치권은 듣지 않았고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트럼프는 1기 때도 철강 관세를 25%로 올렸다. 그 결과 미국 철강 산업 일자리가 1000개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관세 인상으로 철강 가격이 올라, 그 피해는 자동차·가전·건설 등으로 일파만파 번졌다. 비용이 늘어나자 고용을 줄인 이들 업종의 일자리는 7만5000개가 사라졌다. 반복해 언급되는 통계이기에 알았을 텐데, 트럼프는 관세를 또 올렸다. 정치 논리가 경제를 넘어서면 이런 부조리가 생긴다. 미국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김신영 국제부장, 조선일보(2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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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도 해리스도 “US스틸, 일본에는 못 준다”
미국 노동절인 2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를 유세차 찾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의 첫마디는 “US 스틸은 미국인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기업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였다. 이어 “언제나 철강 노동자들을 지키겠다”고 했다. 1901년 US스틸이 탄생한 곳이 피츠버그이고, 지금도 본사가 자리한다. 피츠버그를 통틀어 가장 높은 건물이 US스틸 타워다. 노동절에 ‘러스트벨트(Rust Belt·쇠락한 공업지대)’ 한복판인 피츠버그에서 노조 표심을 향한 구애를 펼친 것이다.
▷펜실베이니아주는 11월 미국 대선의 핵심 경합지 중 하나다. 2020년 대선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4년 전인 2016년 대선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신승을 거뒀다. 노조원 120만 명인 철강 노조의 지지 없이는 펜실베이니아주서 승기를 잡을 수 없고, 대선 승리도 장담할 수 없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끔찍한 일”이라 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도 지난달 펜실베이니아주 요크를 찾아 “일본이 사지 못하도록 막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제철이 ‘미국 산업화 100년의 역사’ 자체인 US스틸을 149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한 건 지난해 12월이다. 관세 등 무역장벽이 높고 단단해지자, 미국 시장을 직접 뚫고 세계 3위 철강 기업으로 올라서겠다는 전략이었다. 곧장 전미철강노조가 들고일어났고 의회는 “국가 안보에 핵심적인 사안”이라며 거들었다. 결국 재무부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에 회부됐다. 여기선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의 투자를 제한할 수 있다.
▷그간 US스틸에 대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강경한 태도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쳐 온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해리스 후보의 노동절 발언은 그 연장선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4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직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제철의 인수를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이어진 국빈 만찬에는 전미철강노조 위원장을 초청해 기시다 총리를 대놓고 불편하게 했다.
▷트럼프와 해리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는 무산될 위기다. 국내에선 세계화에서 낙오해 일자리를 잃은 백인 노동자의 좌절이 분출되고, 국외에선 중국이 미국의 리더십에 도전해 오면서 ‘아메리카 퍼스트’가 초당적인 합의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다급해진 일본제철은 펜실베이니아주와 인디애나주 2곳의 US스틸 제철소에 13억 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사실상 US스틸의 일자리 보존을 약속한 셈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마이크 폼페이오 전 장관을 고문으로 영입하며 치열한 로비전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 우선주의의 거센 흐름을 거스르긴 어려워 보인다.
-우경임 논설위원, 동아일보(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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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자존심 건드린 日제철의 ‘US스틸’ 인수
기업명에 국가 이름이 들어간 회사는 국가대표의 위상을 갖고 자국민의 애정도 담뿍 받는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미국 은행일 수밖에 없고, 독일 기업 아닌 도이치텔레콤을 상상할 수 없다. 철강산업에서 미국의 ‘US스틸’도 이런 회사다. 세계 최초 빌리어네어(10억 달러) 기업이자 다우지수 원년 멤버였던 역사적인 회사가 외국에 넘어가게 됐는데 하필 인수 기업이 ‘일본제철’이다. 미국이 일본에 먹힌 셈이니 미국인들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18일 일본제철은 US스틸 지분 전량을 주당 55달러의 현금으로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총 인수가격은 141억 달러(약 18조3000억 원)로, 40%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었다. 일본제철이 US스틸 인수에 성공하면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4위에서 3위로 한 계단 뛰어오르게 된다. 최근 일본제철은 국내 시장의 한계를 절감하고 해외 사업에 주력하며 인도, 태국 등에서 적극적인 인수합병에 나서고 있다.
▷US스틸은 미국 산업화의 상징과 같은 회사다. 1901년 ‘금융황제’ 존 피어폰트 모건이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카네기스틸 등을 묶어 초대형 철강회사로 세웠다. 한때 세계 1위 철강 생산국 미국의 철강산업에서 3분의 2의 비중을 차지한 회사였다. 제너럴모터스 등 미국 자동차회사들이 모두 US스틸의 철강으로 차를 만들었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 미국 마천루의 뼈대를 US스틸이 세웠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일본, 한국, 중국 등의 연이은 부상으로 경쟁력을 잃고 쇠락해 지난해 기준 북미 3위, 세계 27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대해 미국철강노조(USW)와 일부 정치인들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국가 안보와 밀접한 철강산업을 외국 기업에 넘길 순 없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에게는 1980년대 일본이 미국 주요 기업을 마구 사들였던 아픈 기억도 한몫하는 것 같다. 록펠러센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컬럼비아픽처스, 유니버설픽처스 등을 일본인들이 싹쓸이해 갔던 때다. 1989년 10월 9일자 뉴스위크는 ‘일본, 할리우드를 침공하다’는 제목하에 승리의 여신이 기모노를 입고 횃불을 든 모습을 표현했다.
▷최종 인수가 성사된다면 한국으로선 철강을 매개로 미국과 일본이 산업 동맹을 강화할 수 있어 신경이 쓰인다. 전기차, 풍력발전, 전력 인프라 등을 중심으로 친환경 철강 수요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미일이 핵심 공급망을 정비하게 된 것이다.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업고 미국 자동차 강판 시장 등을 선점하면 포스코 등 국내 철강업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가뜩이나 수요 부진으로 머리 아픈 철강업계에 고민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김재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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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는 바보가 아니다
삼성을 버리고 샤프와 제휴, 더 나은 기업 조건 찾아간 것
26일 일본 소니가 LCD TV산업에서 같은 일본 샤프와의 연합전선을 공식화했다. 차세대 분야에서 삼성이 아닌 샤프와 손잡은 것 자체가 미래엔 삼성과 결별하겠다는 뜻을 사실상 천명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한국에선 늘 그렇듯 '일본 전자업체의 대역습' '소니의 배신' '삼성의 위기'란 다소 감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소니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한다.
소니가 샤프와 함께 합작 공장을 만드는 곳은 오사카(大阪)에 있는 사카이(堺)시라는 곳이다. 우리가 경제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려면 이 지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년 5월 '죽었다가 살아난' 오사카경제권 취재를 위해 사카이시를 방문한 일이 있다. 샤프가 이곳 250㏊의 거대한 땅에 차세대 액정TV 공장을 세운다는 방침을 세운 직후였다. 당시 현장을 보면서 이해하지 못한 회사가 바로 소니였다. '왜 이런 곳을 놔두고 한국을 선택했지?' 이런 의문이 들었다.
처음 놀란 것은 입지였다. 사카이시는 도쿄와 함께 일본 양대 대도시인 오사카권에 속한다. 오사카경제권의 소비 중심지인 오사카시 도심(都心)에서 자동차로 30분, 수출항인 오사카항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액정 화면의 핵심 부품인 유리기판을 생산하는 아사히글라스가 오사카 시내에 공장을 세우고 대량 생산을 시작한 상태였다. 사카이시의 공장 입지와 아사히글라스 공장 거리는 자동차로 10분 정도에 불과했다.
원래 오사카경제권은 수도 도쿄와 함께 30년 동안 국토 균형 발전을 명목으로 '대도시 규제'를 받아온 곳이다. 우리식으론 '수도권 규제'다. 주변 지역이 모두 규제에 묶여 있던 사카이시의 공장 입지도 1990년 신일본제철이 공장을 폐쇄한 뒤 장장 17년 동안 불모지로 남아 있었다. 이런 곳에 공장이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2002년 일본 정부가 대도시권 규제를 폐지한 뒤 주변 제조업 기반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과거 규제 지역의 한복판에 들어선 아사히글라스가 대표적 사례였다.
다음은 정부 지원이었다. 사카이시청 기업유치과에 따르면 당시 최대 5000억엔으로 알려진 투자금액을 기준으로 오사카부(府)와 사카이시가 샤프에 주는 투자 사례금은 150억엔(약 1320억원)에 달했다. 한국의 재산세에 해당하는 고정자산세도 10년 동안 80%를 깎아준다고 했다. 세금 감면으로 샤프가 혜택받는 금액은 200억엔(약 1700억원)으로 추산됐다.
당시 한국 사정과 비교하기 위해 샤프의 경쟁 업체인 LG필립스LCD가 위치한 경기도 파주시 담당 부서를 전화로 취재했었다. LG필립스LCD가 경기도와 파주시로부터 공공시설 조성비로 지원받은 금액은 220억원. 재산세 감면 비율도 5년간 50%로 샤프가 받는 혜택에 턱없이 부족했다. 근로자 임금, 공장 부지 가격 등 어떤 경쟁 분야에서도 파주가 사카이시에 비해 월등히 나은 것이 없었다.
나는 소니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한다. 특검이다 뭐다 시끄러운 삼성에 질려서 삼성을 버리려는 것도, 일본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사무라이 연합군에 가세한 것도 아니다. 본질적으로 그렇다. 글로벌기업인 소니는 삼성과 한국보다 더 좋은 경제적 조건을 제시한 샤프와 일본을 선택했을 뿐이다. 소니를 다시 한국에 불러들이는 방법?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아주 명쾌하다. 샤프와 일본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된다. 이걸 못하면 앞으로 한국은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어야 할지 모른다. 삼성이 일본으로 떠나는 것이다.
-선우정 도쿄특파원, 조선닷컴(0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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